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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도 파랗다 (시2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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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년전 우리의 국민소득은 만불이 좀 넘었었습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은 6천불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1년 사이에 전 국민이 40%의 감봉을 당한 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국민이 똑같이 40%의 감봉을 당하였다면 그래도 좀 나았을 것입니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그 어려움을 모두가 함께 분담을 하는 것이 아니라 힘이 없고 약한 사람들이 그 어려움을 거의 도맡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일로 인하여 실직과 파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일을 홍수를 만나듯 갑자기 만난 사람들의 어려움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이 오늘 우리들 중에도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일을 당하게 될 때 우리는 마치 우리의 삶이 캄캄한 밤과 같이 어둡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절망감에 사로잡히게 되곤 합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매우 중요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캄캄하다고만 생각하는 밤하늘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캄캄하지 않고 사실은 파랗다는 사실입니다. 얼마 전 출간한 저의 졸저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책에 '밤하늘도 파랗다'라는 글이 있습니다. 사진을 보여 드릴 수는 없지만 설명만 드려도 쉽게 상상하실 수 있으실 것임으로 그 책에 있는 글을 읽어 드리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밤하늘은 으레 까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림을 그릴 대 밤하늘은 항상 새까맣게 칠을 한다. 그러나 사실은 밤하늘도 파랗다. 사진을 보라. 밤하늘도 파랗지 않은가 사진의 하늘은 분명 밤하늘이다. 아래 보이는 가옥에 볼이 들어온 것과 하늘에 보이는 별빛을 보면 사진의 하늘이 밤하늘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하늘이 까맣지 않고 파랗다. 사진을 찍은 작가에게 물었다. 이런 사진은 어떻게 찍느냐고. 그는 "카메라 셔터를 20초 동안 누르고 있으면 이런 사진이 나온다"라고 대답해 주었다. 보통 사진을 찍을 때 셔터의 속도가 몇십분의 일초 또는 몇 백분의 일초인 것을 생각하며 셔터를 20초 동안이나 누르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긴 시간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에 비하면 20초는 아무것도 아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캄캄한 일을 당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쉽게 절망할 수도 있고 그 절망으로 인하여 인생을 포기할 수도 있다. 하늘이 까맣고 앞이 캄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의 속도를 조금만 늦추어 보라. 평상시에는 60분의 1초, 250분의 1초로 생각을 했지만, 인생의 밤하늘을 바라볼 때는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20초의 속도로 생각을 해보라. 20초만 생각하면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고, 하나님만 생각할 수 있다면 밤하늘의 색깔이 바뀔 것이다. 60분의 1초, 250분의 1초로 밤하늘을 본다면 까만 하늘이지만, 20초의 속도로 밤하늘을 보면 밤하늘도 파랗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밤하늘도 파랗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조금만 생각의 속도를 늦추어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생각해 낼 수 있다면 누구나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그 빛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그 어느 누구도 어두움에 헤메이지 않고 자신의 밤하늘이 캄캄하지만 않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낙심하지 아니하고 소망중에 승리하는 삶을 살아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중에 하나가 바로 오늘 본문의 다윗입니다. 그는 사는 동안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많은 어려움과 역경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절망하지도 아니하였고,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승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존경하는 왕이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으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근사한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가 그와 같은 삶을 살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믿음이었습니다. 환경과 여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모든 어려움에서 건져 주시는 구원의 하나님으로 믿었고 모든 캄캄함에서 건져 주시는 빛의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고백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나의 대적, 나의 원수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시27:1-3) 다윗은 이 시편을 캄캄하고 답답한 삶의 자리에서 기록하였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상황에서 기록하였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은 자리에서 다윗의 고백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나의 빛이시다.
그러므로 삶의 자리가 비록 어둡고 캄캄하여도 나는 무섭지 않다.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다.
그러므로 꼭 죽을것만 같은 이 죽음의 상황이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다. 상황과 여건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입니다. 믿음 때문에 다윗은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을 바울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 만일 우리 복음 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고후 4:1-12) 바울은 복음의 사역을 감당할 때 많은 어려운 일을 많이 당하였습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사실을 1절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격은 어려움이 많이 있지만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것은 복음이 전해지지 아니하고 가리워지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설교를 할 때와 기독교대학교 채플에서 설교할 때가 다릅니다. 교회는 설교를 들으려고 오는 분들에게 설교를 하는 것이 쉽습니다. 그러나 학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설교 중에 자는 아이들이 태반이고 어떤 학생들은 설교 중에 신문을 읽기도 합니다. 억지로 와 앉아있는 것이기 때문에 설교가 듣기 싫은 것입니다. 그와 같은 학생들 앞에서 설교를 한다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일인지 모릅니다. 복음이 전해질 때 그 기쁨과 감격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복음이 가리워질 때 그 답답함과 고통스러움을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바울에게 그러한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낙심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이 가리워짐으로 망하는 것이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은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워져 있다고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3절) 바울은 저들에게 복음이 가리워지게 된 이유를 4절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세상신이 영광의 복음의 빛을 가리워 저들에게 비취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광의 복음의 빛'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6절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빛'으로 표현하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광의 빛으로 표현하고 고백한 바울은 즉시 그 예수 그리스도를 보배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엄청난 고백을 합니다. 자신은 비록 질그릇과 같은 사람이지만 그 질그릇에 보배를 가졌기 때문에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당하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한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빛이시기 때문에 어두운 세상이라고 낙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다윗이 우리가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에서 여호와가 빛이요 구원이시기 때문에 세상의 어떠한 일을 만나도 무서워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라고 고백한 것과 똑같은 고백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사람이고 또 다른 하나는 참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세상을 의존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흔들리는 세상을 따라 흔들리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이 아무리 흔들려도 그 세상을 따라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사람은 세상이 밤이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사람은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을 만난다고 하여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아니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승리합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 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도 그일을 위하여 수고하고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기도도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일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우리의 인생이 걸려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 없음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세상의 사람들은 경제위기가 극복이 되어야 숨을 쉬고 살 수 있지만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그것과 관계없이 언제나 승리와 구원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성경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시편 43편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치 아니한 나라에 향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어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단에 나아가 나의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43:1-5)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하실 때 이 말씀을 한 번 깊이 묵상해 보실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말씀으로 여러분의 고백을 삼으실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놀라운 힘과 능력을 경험하시게 되실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앞이 캄캄할 때 하나님을 바라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를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밤하늘이 파랗게 변하는 것을 여러분들도 보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지금은 도리러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근사한 기회입니다. 믿음은 힘들고 어려울 때 그 진가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편안하고 안정되었을 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울도 골리앗이 나타나기 전에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골리앗이 나타났을 때 불행하게도 그는 하나님을 믿어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이 나타났을 때 하나님을 믿어 드렸습니다. 믿음의 진가는 골리앗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보다 골리앗이 나타났을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밝은 낮에 소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누가 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캄캄한 밤에 소망을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믿음은 소망하는 것입니다. 앞이 캄캄할 때 하나님을 믿어 드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앞이 캄캄할 때 소망을 가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진가는 밝은 대낮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캄캄한 밤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믿음의 진가를 발휘할 때가 되었습니다. 캄캄한 밤에 하나님을 바라보심으로 밤하늘도 파랗다라고 외치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그 소망으로 어두운 밤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밤하늘도 파랗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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