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공동체 (행2:46)
본문
우리의 온갖 삶은 “밥상공동체”에서 시작된다고 말해도 틀린말이 아닐 것입니다. 말그대로 밥상공동체란 밥상을 중심으로 둘러앉은 사람들을 나눔의 자리를 뜻합니다. 여기에서는 언제나 어떤 끈끈한 이음줄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같은 밥상위에 그것이 많든 적든 값진 것이든 그렇지 않든 할 것없이 같은 밥을 나누기 때문입니다. 같이 배고픔을 느끼기도 하며 같이 즐겁고 기쁜 삶의 내용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누가 되었든 서로의 감정을 공유 할 수 있는 만큼 일체감을 느낄 수 있기 마련입니다. 밥상공동체 에서는 그것이 가능합니다. 밥상에 둘러 앉아 먹는 것은 밥알만이 아니라 사랑이며, 때로는 눈물이기도 하며, 속 깊은 대화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밥상공동체는 가장 기본적인 삶의 단위이며 그 속에서 많은 잠재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밥상공동체”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햄버거를 하나씩 들고 각자 알아서 “때우면” 그뿐입니다. “밥상”은 필요 없어진듯이 행동합니다. 둘러앉을 이유가 없으니까 말입니다.
제각기 제몫만을 챙기면 그뿐이고 “나누거나 섬긴다”는 말이 우스운 관념이 되고 말았습니다. “밥상공동체”는 점점 사라지고 “즉석식 개인주의”라는 것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상의하고 나누는 “귀찮은 작업”은 거칠 필요도 없다는 식입니다. 단지 단숨에 자신의 것만을 챙기면 그뿐이 아니겠느냐고 말합니다. 밥상공동체는 구태의연하며 아주 소모적이라고 말히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바쁜 세상에 언제 의견과 생각을 모으고 감정을 공유하겠느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무것도 조금의 손해도 보려하지 않는 이기성이 그 원인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주 폐쇄적이고 경직되어 있어서 자신을 열어 놓는다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인에 스스로 갖혀 나오려 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마당에서 우리가 밥상공동체를 만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한가지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가 진정한 “밥상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 뿐입니다. 밥상공동체가 달리 존재하지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열린마음으로 함께 둘러앉을 때, 그리고 꺼리낌없이 나누며 서로를 섬길 때 바로 그 자리가 비로소 밥상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초기 공동체 속에서 우리는 밥상공동체의 전형을 보게 됩니다. “한마음이 되어” 서로를 인정하고 용납하며 섬기는 모습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집집마다 돌아가며 같이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으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다”고 성서는 전합니다. 자고로 “음식을 나누는 일”은 가장 밀도있는 친근함의 표시입니다. 멍석깔고 넘치도록 잔을 따라 목을 축이며 향토색 짙은 음식을 권하는 마음은 “순수한 서로에의 초대”입니다. 서로 가 자신을 열어놓았으니 막힐 것이 없고 이해하고 용납하는 일이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여기에는 기쁨이 있을 것이고, 어색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밥상공동체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인위적인 모양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럴 수록 더욱 진정한 밥상공동체와는 멀어져갈 뿐입니다. 밥상공동체가 만들어진 곳에 바로 가족이 있고, 그곳에 형제요 자매가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다”(루가8:21)라고 말씀하시면서, 삶의 멍석에 둘러 앉아 하늘 뜻을 나누며 공유하고, 서로가 그것을 자기 삶의 근거로 삼는 밥상공동체가 바로 자신의 가족임을, 바로 그 속에 어머니가 있고 형제자매가 있음을 밝힙니다. 우리가 단지 얼굴을 대면하고 있다고 해서, 함께 시간을 죽인다고 해서 무엇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만남에는 분명한 내용이 있어야 하고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사실은 함께 “한솥밥”을 먹으면서도 제각기 이고 서로를 용납하지 못하는 모습을 우리는 봅니다. 심지어 소위 늘상 “가족”이라고 말해왔던 만남 속에서도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밥상공동체의 진정한 내용을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책임의식을 느끼는 진솔하고 투명한 만남이 있어야 하며, 이해하고 용납하는 여유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어버이주일에 우리에게는 과연 밥상공동체가 있었는지, 그것을 만들어가기 위한 진지한 노력이 있었는지를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애써 부인하며 그 의미를 축소하며 자신과는 무관한 일인 듯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고 하면 할 수록 자신을 속이는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솔직한 마음으로 폭넓게 밥상에로 불러모아 함께하며 이해하고 용서하는 밥상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일이 우리 모두의 일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이건 이렇고 저러하다고 단정 짓거나 평가하기에 빠쁜 우리의 모습을 뒤로하고 “사람”에 관심을 두고 “서로에게 책임의식”이 있는 태도를 마련하는 계기로 만듭시다. 우리가 서 있는 곳에, 만나는 사람들 속에 넓직하고 넉넉한 밥상을 폅시다. 누구라도 편하게 앉아 따스한 사람을 만나서 좋을 그런 밥상을 말입니다.
제각기 제몫만을 챙기면 그뿐이고 “나누거나 섬긴다”는 말이 우스운 관념이 되고 말았습니다. “밥상공동체”는 점점 사라지고 “즉석식 개인주의”라는 것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상의하고 나누는 “귀찮은 작업”은 거칠 필요도 없다는 식입니다. 단지 단숨에 자신의 것만을 챙기면 그뿐이 아니겠느냐고 말합니다. 밥상공동체는 구태의연하며 아주 소모적이라고 말히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바쁜 세상에 언제 의견과 생각을 모으고 감정을 공유하겠느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무것도 조금의 손해도 보려하지 않는 이기성이 그 원인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주 폐쇄적이고 경직되어 있어서 자신을 열어 놓는다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인에 스스로 갖혀 나오려 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마당에서 우리가 밥상공동체를 만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한가지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가 진정한 “밥상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 뿐입니다. 밥상공동체가 달리 존재하지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열린마음으로 함께 둘러앉을 때, 그리고 꺼리낌없이 나누며 서로를 섬길 때 바로 그 자리가 비로소 밥상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초기 공동체 속에서 우리는 밥상공동체의 전형을 보게 됩니다. “한마음이 되어” 서로를 인정하고 용납하며 섬기는 모습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집집마다 돌아가며 같이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으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다”고 성서는 전합니다. 자고로 “음식을 나누는 일”은 가장 밀도있는 친근함의 표시입니다. 멍석깔고 넘치도록 잔을 따라 목을 축이며 향토색 짙은 음식을 권하는 마음은 “순수한 서로에의 초대”입니다. 서로 가 자신을 열어놓았으니 막힐 것이 없고 이해하고 용납하는 일이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여기에는 기쁨이 있을 것이고, 어색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밥상공동체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인위적인 모양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럴 수록 더욱 진정한 밥상공동체와는 멀어져갈 뿐입니다. 밥상공동체가 만들어진 곳에 바로 가족이 있고, 그곳에 형제요 자매가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다”(루가8:21)라고 말씀하시면서, 삶의 멍석에 둘러 앉아 하늘 뜻을 나누며 공유하고, 서로가 그것을 자기 삶의 근거로 삼는 밥상공동체가 바로 자신의 가족임을, 바로 그 속에 어머니가 있고 형제자매가 있음을 밝힙니다. 우리가 단지 얼굴을 대면하고 있다고 해서, 함께 시간을 죽인다고 해서 무엇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만남에는 분명한 내용이 있어야 하고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사실은 함께 “한솥밥”을 먹으면서도 제각기 이고 서로를 용납하지 못하는 모습을 우리는 봅니다. 심지어 소위 늘상 “가족”이라고 말해왔던 만남 속에서도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밥상공동체의 진정한 내용을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책임의식을 느끼는 진솔하고 투명한 만남이 있어야 하며, 이해하고 용납하는 여유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어버이주일에 우리에게는 과연 밥상공동체가 있었는지, 그것을 만들어가기 위한 진지한 노력이 있었는지를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애써 부인하며 그 의미를 축소하며 자신과는 무관한 일인 듯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고 하면 할 수록 자신을 속이는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솔직한 마음으로 폭넓게 밥상에로 불러모아 함께하며 이해하고 용서하는 밥상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일이 우리 모두의 일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이건 이렇고 저러하다고 단정 짓거나 평가하기에 빠쁜 우리의 모습을 뒤로하고 “사람”에 관심을 두고 “서로에게 책임의식”이 있는 태도를 마련하는 계기로 만듭시다. 우리가 서 있는 곳에, 만나는 사람들 속에 넓직하고 넉넉한 밥상을 폅시다. 누구라도 편하게 앉아 따스한 사람을 만나서 좋을 그런 밥상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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