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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람의 세 번째 신탁 (민24:1-9)

본문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말씀만 말할 수 있다는 계속적인 발람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발락은 또 다시 전략을 바꾸어 제사 장소를 바꾸었습니다. 세 번째 장소는 브올산 정상입니다. 일곱 제단의 제사가 세 번째로 행하여졌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이미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저주를 허락하시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 이상 다른 점( 의 징조를 찾지 않고 그 대신 이스라엘 진영을 바라보고 전개되는 각 지파의 진영을 관찰해 보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영이 발람에게 임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초기의 예언자들에게 있었던 것과 같이 하나님의 개인적 능력이 그를 황홀경으로 몰아 놓아 예언하게 하였습니다. 예언은 이스라엘 진영에서 본 것을 아름답게, 그러면서도 힘차게 묘사한 서정시의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발락을 향해 발해진 말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향한 말입니다. 발람은 자기의 신탁이 어떻게 환상으로 임했는지 설명하는 말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신이 그 위에 임하였습니다. 성령께서 그에게 임하신 것은 그를 옳게 여겨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요, 그를 사로잡아 쓰시려는 것뿐입니다. 그것은 마치 성령께서 다윗을 잡으러 가던 사울을 사로잡으시고 그로 하여금 엎드러지게 하고 예언하게 함과 같은 것입니다(삼상 19:24). 발람은 성령께 붙잡힌 바 되어 하나님의 예언을 말한 것입니다.
1절에 “발람이 ‥‥ 여호와께 선히 여기심을 보고”라고 했습니다. 발람이 그 악한 왕을 만족케 하려고 자기의 소원에 따른 대답을 얻고자 여러 가지 술책과 수단으로 노력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제 그로 하여금 이 응답을 전하도록 강요하고 계십니다. 성령께서는 이때 발람의 혀를 움직여 예언하게 하였습니다. 마치 그가 새 사람이 된 것 같이 하나님의 위엄이 빛나도록 그의 혀를 붙잡아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신이 그 위에 임하신끼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발람 자신의 육적 지성에 따라 말하지 않았음을 명백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5절에 “야곱이여 네 장막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라고 했습니다. 발람은 이스라엘 골짜기와 강가의 동산에다 비교하고 있으며, 수분이 충분하여 즙이 많은 나무에 비교하고 그리고 수분으로부터 자양분을 빨아들이는 종자들이 뿌려진 밭에다 비교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발람은 온갖 풍성한 좋은 것들로 이스라엘 백성을 부요하게 할 하나님의 축복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즉 발람은 이스라엘의 진영을 바라보고, 이제 그의 눈앞에 넓고 비옥한 정원이 전개됨을 보았고 거기에는 침향목과 백향목으로 가득 찬 사막 중의 오아시스가 있음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발람의 입술을 통해 이스라엘을 향한 축복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7절에 “그 왕이 아각보다 높으니”라고 했습니다. 이제 발람은 그들의 외적 번영을 크게 말하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힘이 있고 번창하게 될 것이며 그들의 원수들이 공격해 올 경우 물리칠 전쟁의 정신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예언은 하나님의 백성은 아말렉 사람보다 우월하다는데 촛점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아말렉은 열국 중 으뜸이라는 말과 같이 당시에 그들의 세력은 극히 컸으나 이것보다 이스라엘이 강대해진다는 것입니다. 발람의 예언은 이스라엘을 “물가의 백향목”과 같이 간주하였습니다. 근동지방에 물이 귀하기 때문에, 그는 이렇게 물을 행복과 관련시켰습니다. 발람은 그 때 이스라엘의 현실을 말함보다 그 민족의 장래를 내다본 것입니다.
 9절에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신탁의 반복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어떠한 원수도 대항 못하게 강화시킨 하나님의 힘을 찬양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을 다시 한 번 선포함으로써 이 노래는 그 절정에 다다릅니다(창 12:3, 27:29).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지로다”고 한 이러한 선포와 함께 하나님의 선택이 이스라엘을 안전하게 축복으로 보호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저주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택한 민족과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 민족을 축복 하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민족이 이렇게 위대해질 이유는, 오로지 하나님께서 그 민족과 함께 하시 기 때문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자들은 그 때문에 좋은 대접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원수들과 그들에게 대적하는 자들은 비참한 꼴을 당하게 됩니다.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지로다” 그들에게 어떤 해를 끼치는 자들은 그 때문에 자기들이 고통을 당할 것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악간에 그들에게 행한 그대로 갚아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발람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축복(창 12:3)을 확인하고 “그러므로” 이제자기도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저주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던 축복,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축복이 여러분 가운데에서도 임하시길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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