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잡힌 야곱 (창29:1-30)
본문
북어 “맛있기로는 청어, 많이 먹기로는 명태”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네 사람들은 명태를 즐겨 먹는다는 이야기이죠. 이 명태는 그 이름의 종류도 많아서 북해에서 난다 하여 북어(北魚), 말렸다 하여 건태(乾太), 얼렸다 하여 동태(凍太), 투망으로 잡았다 하여 망태(網太), 낚시로 낚았다 하여 조태(釣太), 강원도 연안에서 잡혔다 하여 강태(江太), 함경도 연안에서 잡힌 것은 놈은 왜태(倭太), 함경남도에서 봄철에 잡힌 것은 막물태, 노르끄레한 것은 황태(黃太), 정월에 잡힌 것은 일태(一太), 2월에 잡힌 것은 이태(二太)라 부릅니다. 또 그 요리하는 방법도 많아서 살로는 북어국, 북어찜, 북어무침, 북어전, 북어장아찌, 북어저냐, 북어포, 북어더덕, 북어냉국을 내장으로는 창란젓갈, 알로는 명란젓갈, 대가리로는 귀세미젓갈과 대가리무침을. 심지어 눈알을 구워서 마른안주로, 꼬리와 지느러미는 살짝 볶아 우려서 맛국물을 내어 먹습니다. 이렇게 많은 요리 중에 뭐니뭐니 해도 우리들이 즐겨 먹는 것은 북어국이 아닌가 싶습니다. 북어국의 그 시원함 아마 그것은 우리내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맛이라 생각됩니다. 이렇게 시원한 북어국을 끓이기 위해서는 우선 망치나 방망이로 때리는 일이 필수적입니다. 그래야 쭉쭉 찢을 수 있고 또 그래야 제맛이 납니다. 늘 이렇게 해서 북어국을 먹었기 때문에 때려서 찢지 않는 북어국은 상상도 하기 힘듭니다. 아무튼 북어국, 그것은 때려야 제맛이 나고 찢어야 제맛이 납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맛내기 위해서 다루시는 방법도 북어국을 끓이는 것처럼 좀 특별합니다. 사실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처음 부르심을 받았을 때 만 하더라도 별 맛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마치 마른 고구마 줄기를 씹는 그런 맛이었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이런 존재로 남아 있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좀더 감칠맛이 나는 존재가 되기를 원하셨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인생이라는 가마솥에 넣고 끓이셨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이나 저나 다 이 가마솥에서 끓여지고 있는 고구마 줄기와 같은 존재들일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푹 끓여져서 제법 부드러운 맛을 내기도 하지만 어떤 분들은 이제 집어넣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도 그 질긴 맛을 그대로 간직한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제법 잘 끓여진 분들은 하나님께 감사하시고 아직 더 끓여져야 하는 분들은 뜨거운 가마솥을 마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뜨거운 가마솥을 감사하시면서 가마솥에 여러분들을 맡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다루어 가시는 방법도 이와 같습니다. 야곱 그 자체로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존재였습니다. 천하에 사기꾼, 그가 바로 야곱이었죠.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계속 이런 존재로 살아가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좀더 감칠맛이 나는 존재가 되기를 원하셨죠. 그래서 저를 만들어 가기 시작을 합니다. 바로 오늘 우리들이 살피고자 하는 본문서부터 이런 하나님의 손길을 우리는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도 사실은 현대판 야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저와 여러분들도 야곱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쓸모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어디 내 놓아도 쳐다도 보지 않는 그런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쓸모 없는 우리들을 부르셔서 제법 그럴듯한 존재로 만들기 시작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손길이 이곳 저곳에서 감지되면서 서서히 변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야곱을 다루셨던 그 하나님의 손길을 살피면서 오늘 우리들을 다루시고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두 가지 측면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살필 수 있습니다. 하나는 순풍에 돗 단 듯한 순탄한 길을 통한 하나님의 다루심이고 다른 하나는 힘들고 거친 연단을 통한 하나님의 다루심입니다. 순탄한 길을 통해서는 야곱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져 나갔고 거칠고 힘든 광야 길을 통해서는 야곱을 단련시키고 연단 시키셨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순탄한 길을 통하여 그러면 먼저 야곱에게 순탄함을 통해서 저를 다루셨던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발행하여” 이 말의 원래 의미는 야곱이 자기 발을 들어 올렸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왜 야곱이 자신의 발을 들어 올렸습니까 그렇습니다. 긴 행군을 하기 위함입니다. 어디까지의 행군입니까 예, 벧엘에서부터 하란까지의 행군입니다. 약 700여 km 되는 거리입니다. 이 먼길을 행군하기 위해서 야곱은 자신의 발을 들어 올렸습니다. 이렇게 먼길을 여행한다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 살펴 본 것처럼 이 길에는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정말 가기 싫은 그런 발걸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이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가기 위해서 자신의 발을 들어올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야곱이 이렇게 자신의 발걸음을 힘있게 들어올릴 수 있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요 그렇습니다. 28장에 기록되었던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28장에서 어떤 것이 있었습니까 예, 28장에서 야곱이 3가지 본 것이 있었습니다. 무엇이었죠 첫 번째는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닥다리를 보았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라고 했죠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야곱을 이어주는 것이라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본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예, 이 사닥다리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하나님의 사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한다고 했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야곱을 보호하고 이끌기 위해서 열심히 움직이는 것이라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가 세 번째로 본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예, 하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예, 야곱의 하나님의 되고 야곱의 자손을 복줄 것이며, 어디를 가든지 함께 하여 지킬 것이며, 야곱이 하나님께서 약속한 것을 이룰 때까지 떠나지 안고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야곱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을 보고 고무되었습니다. 그래서 재단을 쌓고 이제는 힘있는 출발을 합니다.
그러므로 그가 이렇게 힘있게 자신의 발을 들어올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야곱을 다루어 가시는 한 방법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힘을 잃었을 때 그에게 자주 자신을 보여 주시면서 야곱을 격려하셨습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좀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7번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왜죠 그렇습니다. 자신을 확인시켜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힘을 잃을 때마다 자신을 보여 주시며 힘을 잃지 말라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계시하심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는 우리들에게 어떻게 나타나 실까요.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쉽고 건전하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것인 줄 아십니까 예,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주 말씀을 통해서 자신을 보여 주시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펼칠 때 하나님께서는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오셔서 말씀하십니다. 힘을 잃었을 때는 사랑하는 아무개야 힘을 내라 말씀하시기도 하고 용기를 잃고 두려움 가운데 있을 때는 두려워 말라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때로는 따뜻하게 감싸주시기도 하시고 때로 내가 잘 못된 길을 걸어갈 때 책망하시기도 하십니다. 이렇게 말씀을 통해 만나는 하나님, 그분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우신 지요. 아마 말씀을 지속적으로 묵상을 하시는 분들은 제 말이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매일 아침 하나님의 말씀을 펼칠 때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세미한 음성을 들려주시면서 말씀하시는 것을요. 저는 제가 힘들고 지칠 때 말씀을 펼쳐 들고 그 말씀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거기서 저를 만나 주시고 저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힘을 얻고 다시 제사역을 감당하죠. 이런 사실을 잘 알았던 스바냐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습 3:16-17)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여기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기죽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기죽지 말라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면서 우리 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야곱에게 자신을 계시하시고 용기를 불러 일으키셨던 그 하나님께서 지금도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그리고 그분으로 인해 힘과 용기를 얻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환경을 통하여 말씀하심 다음으로 야곱이 본 것이 있었습니다. 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 무엇을 보았다고 말하죠 그렇습니다. 우물과 양떼들과 목동들을 보았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길을 묻기 위해 저들에게 다가갑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4절을 보죠 ““ 무엇이라 대답을 합니까 예, 하란에서 왔노라고 대답을 합니다. 또 무엇이라 묻죠 예, 라반을 아느냐고 묻습니다. 무엇이라 대답을 하죠 예, 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요 예, 그의 딸이 지금 양떼를 몰고 이리로 오고 있노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라헬을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 이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십니까 어찌어찌 하다 보니 하란 사람을 만나게 되고 어찌어찌하다 보니 라반을 그 사람들이 라반을 아는 사람이었고 어찌어찌하다 보니 거기에 라헬이 있었더라 입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어찌어찌하다보니 이렇게 된 일이 아닙니다. 확률적으로 여기에서 라헬을 만난다는 것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서울 장안에서 김서방 찾기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게 그냥 쉽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게 가능한 이야기입니까
그렇다면 이 일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즉, 우연이 일어난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보는 것이 당연하죠.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벧엘에서 나타나셔서 야곱이 어디를 가든지 함께 하리라고 하셨던 말씀을 신실하게 지키셨다고 밖에는 이 사건을 설명할 도리가 없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발걸음 하나하나를 이렇게 인도하셨기에 여기에 올 수 있었고 또 이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이루어 가시기 위해서 이처럼 애쓰심을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야곱에게 약속하신 것을 지키시기 위해서 이렇게 섬세하게 역사 하셨습니다. 바로 이런 분이 저와 여러분들이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이런 사실을 잘 알았던 바울도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기 합력 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섭리하신다는 말입니다. 즉, 바울이 되어진 모든 일들을 바라보면서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섭리하심이었다고 말하는 것이죠. 바로 이렇게 야곱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섭리하심으로 이루어진 일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자신을 보여주시기도 하시고 환경을 섭리하시기도 하시면서 야곱을 인도해 가실까요 그것은 야곱에게 하나님에 대한 신뢰감을 갖게 하기 위함입니다. 즉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따라오게 하기 위함이죠. 자식과 부모와의 관계에 있어서 아니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 신뢰가 무너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바로 이 신뢰 위에 쌓게 되는 것이죠. 이 신뢰감이 바탕이 되지 않는 모든 관계들은 모래성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 신뢰가 전제되어야 그 다음 모든 것들이 가능한 것입니다. 거친 광야길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다음으로 야곱을 다루어 가신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에게 거칠고 힘든 길을 예비해 둔 길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삼촌 라반에게 맡기신 일입니다. 여러분 라반이 어떤 인물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어떤 인물입니까 그렇습니다. 천하에 사기꾼 야곱을 속일 정도로 라반은 계략에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것은 집안 내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누이인 리브가나 동생인 라반 둘다 계략이 뛰어난 인물입니다. 바로 이런 라반에게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맡기셔서 훈련을 시키십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오늘 설교의 제목을 보고 재미있게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발목잡힌 야곱”입니다. 참 재미있는 제목 아닙니까 여기 야곱이란 말이 무슨 뜻이죠 그렇습니다. 발목을 잡다는 뜻입니다. 왜 이런 이름을 지었죠 그렇습니다. 태어날 때 형 에서의 발목을 잡고 나왔다고 해서 이렇게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는 그 이름대로 형의 발목을 잡아서 형의 장자권을 빼앗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발목도 잡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제목은 어떤 뜻입니까 예, 발목 잡는 자가 발목을 잡혔다는 것이죠. 즉, 천하의 사기꾼 야곱이 사기를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을 사기친 라반은 야곱보다 더 대단한 인물임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여러분 삼촌 라반이 야곱의 발목을 얼마동안 잡고 있었는지 아십니까 20년 동안입니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태어날 때부터 발목을 잡는 일에 익숙해 져 있는 야곱의 발목을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닌 20년 동안이나 잡고 있었다면 대단한 인물이 아닙니까 바로 오늘 본문은 이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야곱이 어떻게 해서 발목을 잡히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죠. 이제 그것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라반과의 첫 만남 13절에서는 천하의 사기꾼 야곱과, 야곱보다 더 뛰어난 라반과 첫 만남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있습니다. ““ 여러분 이 만남을 잘 살펴보십시오. 이 만남에서 이미 누가 우위를 점령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예, 라반입니다. 왜죠 그렇습니다. 야곱은 이 만남에서 자신의 약점을 다 노출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떤 점이 그렇죠 예,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고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야곱은 이 이야기에서 어떤 일을 했을까요 그는 자신이 당한 모든 일들을 다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형 에서를 속인 일이며, 아버지 이삭을 속인일, 그리고 아버지 이삭에게는 아내를 얻기 위해서 이곳으로 왔다는 이야기까지 다 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라반은 야곱이 쉽게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과 자신의 딸 중에 하나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다 알게 된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라반은 한 달 동안 야곱에 대한 탐색전을 벌입니다. 라반의 계략 그리고 나서 15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 라반은 한 달 동안 야곱이 꾀 쓸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탐색을 했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자신의
둘째 딸인 라헬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 말은 사실 야곱에게는 너무나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아내를 얻기 위해서는 남자 쪽에서 지참금을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아내를 얻고자 자신의 종과 이삭을 이곳을 보냈을 때 많은 지참금을 가지고 가게 했던 일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십시오. 지금 야곱에게 지참금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렇다면 아내를 맞이할 수 없습니다. 속히 아내를 맞이해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터인데 홀홀 단신인 야곱의 입장에서 지참금을 마련한다고 하는 것은 쉽지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삼촌의 이 말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말이겠습니까 그러나 사실 이것은 라반의 계획이었습니다. 이미 라반은 야곱의 의중을 꿰뚫고 있었던 것이죠. 창세기 기자도 이 사실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15절에서 라반의 이야기를 적고는 16,17절에서 당시의 정황을 이렇게 적고 있지 않습니까 ”“.“ 그러나 이런 사실을 모른 야곱은 덥석 이렇게 답해 버리고 맙니다. 18절 “.“ 삼촌 라반은 이런 야곱의 이야기를 듣고는 회심의 미소를 짖고는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이 흥정에서 라반은 라반대로 쾌재를 불렀을 것이며 야곱은 야곱대로 쾌재를 불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십시오. 이 흥정에서 사실은 누구이긴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라반이 이긴 것입니다. 라반은 이미 야곱이 7년을 이야기했을 때 14년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내가 14년은 이 녀석을 부려먹을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이죠. 이런 라반의 예상은 적중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눈치 체지 못한 야곱은 7년의 세월을 보냅니다. 7년이 지난 뒤 그는 자신이 삼촌 라반에게 보기 좋게 참패를 한 것을 깨닫습니다. 21절 말씀을 읽습니다. ”“.“ 또 22-2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 라반은 이미 7년 전에 세운 계획대로 하나 하나 진행을 해 나갑니다. 사실 라반의 이 계획은 꿩 먹고 알 먹는 격이었습니다. 자 16, 17절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라헬과 레아에 대한 비교이죠. 레아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예, 안력이 부족했다고 말합니다. 글세요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치 않지만 어떤 성경학자는 레아는 총명이 부족했다고 해석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좋은 말로는 총명이 부족했다는 말이지만 나쁜 말로는 어떤 말입니까 예, 좀 티미했다는 말이죠. 글쎄요. 이렇게 까지 비약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그것은 잘 모르겠지만 좀 더 비약을 해 본다면 라헬보다는 레아가 시집을 보내기가 더 어렵다는 이야기이겠죠. 아마 어리석게도 아버지의 말에 그대로 순종을 하고 그날 밤 라헬의 흉내를 내면서 침상에 들어간 것을 보면 레아가 총명이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렇다면 라반의 입장에서는 정말 꿩 먹고 알 먹는 격이죠 왜죠 예, 시집보내기 힘든 레아도 지참금을 톡톡히 받고 시집을 보낼 수 있고 라헬도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막힌 계산을 야곱은 모른 체 첫날밤을 지내고 다음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25절을 읽습니다. “.“ 아침에사 그는 자신이 속은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 때 야곱의 마음은 어떠했을 까요 라반은 자신이 행한 일을 따지는 야곱에게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26,27절 ”“.“ 여러분 이 라반의 이야기는 정당하다고 보십니까 그렇습니다. 정당하지 않습니다. 만약 풍습이 그러했다면 미리 이야기를 했어야 옳았습니다. 그러나라반은 이 것을 감춘 것입니다. 왜죠 그렇습니다. 야곱이 흥정에 응해 오지 않을 것이 뻔한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럴듯한 위장술이죠. 여기에 그만 야곱은 속아넘어가고만 것입니다. 천하의 사기꾼 야곱이 삼촌 라반에게 속아넘어가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야곱이 이렇게 자신이 속은 줄을 알았을 때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아마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자신이 에서를 속였을 때의 생각을 가장 많이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하 내가 형 에서를 속였을 때 형의 마음이 이러했겠구나하고 뭔가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28절을 보십시다. 야곱이 어떻게 하죠 그렇습니다. 그대로 행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27절에 대해서 야곱이 아무런 반항을 하지 않은 것을 본다면 뭔가 깨달은 것이 있은 듯 보입니다. 이렇게 천하의 사기꾼인 야곱은 삼촌에게 발목이 잡혀서 수많은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렇게 보낸 세월들이 우연히 이렇게 되었다고 보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왜죠 그렇습니다. 야곱을 훈련하기 위함입니다. 무엇을 훈련하기 위함일까요 그렇습니다. 야곱의 약점을 훈련하기 위함입니다. 야곱은 장점도 있었지만 약점이 많았던 인물입니다. 이 약점이 훈련되지 않으면 맛을 낼 수 없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저를 20년이라는 세월을 통해 훈련하시고 다듬어 가셨던 것입니다. 즉, 맛내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죠.
그렇다면 야곱의 약점이 무엇이었습니까 첫 번째로 그의 약점은 남을 잘 속인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야곱보다 더 뛰어난 라반을 선택하셔서 그에게 야곱을 맡기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살펴 본 대로 라반은 야곱도 능히 속여먹는 사기꾼이었습니다. 후에 야곱은 삼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창 31:41) “내가 외삼촌의 집에 거한 이 이십 년에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년, 외삼촌의 양떼를 위하여 육년을 외삼촌을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값을 열 번이나 변역 하셨으니” 야곱이 무엇이라 말합니까 예, 삼촌이 자신을 열 번이나 속여먹었다는 것입니다. 참 대단합니다. 천하의 사기꾼 야곱을 한 두번이 아닌 열 번이나 속일정도니요. 야곱은 이 사실에 대해서 대단히 원통했던 모양입니다. 자신이 몇 번 속았는지 그것을 다 계산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야곱은 자신보다 훨씬 더 뛰어난 라반을 만났습니다. 이렇게 보면 야곱의 20년 세월은 속아 사는 세월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이 이렇게 20년 동안 속아 살면서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자신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남들에게 행한 대로 당해봐야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줄 깨닫게 됩니다. 즉,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자신을 보게 되는 것이죠 바로 이런 사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20년 동안 라반에게 속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 20년의 세월이 야곱의 입장에서 볼 때는 쓰라림의 세월들이었지만 사실은 자신을 다듬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기다림의 훈련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야곱의 약점은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기다릴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창 25: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는 이 말씀을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형의 장자권을 훔쳐 자신의 것을 만들고 형의 축복을 속여서 빼앗았습니다. 사실은 이렇게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이미 약속하신 것이니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가실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것을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성큼 성큼 자기 멋대로 일을 처리해 버리고 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기다리지 못하는 야곱을 20여년의 세월을 보내게 하면서 기다리게 했습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여러 가지의 것들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라헬을 기다리며 7년을 보내야 했고 또, 채무자로서 7년을 더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또 자신의 것을 만들기 위해서 6년이란 세월을 더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기다리지 못하는 야곱을 훈련하시기 위해서 야곱을 20년 동안 라헬의 손에 맡기신 것입니다. 야곱이 입장에서 볼 때는 이 20여년의 세월이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한 세월들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는 좀 다릅니다. 이것은 꼭 필요한 시간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 대부분에게는 이런 세월들이 있었습니다. 모세도 광야 세월이 있었고 다윗도 그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도 광야에서 다듬어 지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진국이 되었습니다. 만약 모세나 다윗이나 바울들에게 이런 광야가 없었다면 진국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광야를 마련해 놓으시고 사람을 다듬고 맛을 내십니다. 아무리 질기고 맛없는 것이라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다듬어 지기 시작을 하면 맞잇게 요리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물론 얼마나 자아가 강한가에 따라 다듬어 지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질기면 질긴 만큼 더 삶고 때려야 부드러워 지지 않습니까 이것은 오늘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다듬어 실 때 반항하지 말고 다듬는 대로 맡기십시오. 왜 나는 이렇게 다듬는 시간이 긴가 생각하지 마시고 아하 내 자아가 이렇게 강하구나 생각하십시오. 혹 내 자아가 너무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속히 자아를 꺾으십시오. 그래야 그 시간이 단축이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을 다듬어 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거부하시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시련의 거친 광야 길을 걸어 갈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맛을 내고 다듬으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분께서 여러분들을 어떻게 다듬으실 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내어 맡기십시오. 그러면 오히려 그런 상황가운데서 감사하는 마임이 생길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약 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아마 여러분들이나 저나 다 이 가마솥에서 끓여지고 있는 고구마 줄기와 같은 존재들일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푹 끓여져서 제법 부드러운 맛을 내기도 하지만 어떤 분들은 이제 집어넣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도 그 질긴 맛을 그대로 간직한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제법 잘 끓여진 분들은 하나님께 감사하시고 아직 더 끓여져야 하는 분들은 뜨거운 가마솥을 마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뜨거운 가마솥을 감사하시면서 가마솥에 여러분들을 맡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다루어 가시는 방법도 이와 같습니다. 야곱 그 자체로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존재였습니다. 천하에 사기꾼, 그가 바로 야곱이었죠.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계속 이런 존재로 살아가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좀더 감칠맛이 나는 존재가 되기를 원하셨죠. 그래서 저를 만들어 가기 시작을 합니다. 바로 오늘 우리들이 살피고자 하는 본문서부터 이런 하나님의 손길을 우리는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도 사실은 현대판 야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저와 여러분들도 야곱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쓸모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어디 내 놓아도 쳐다도 보지 않는 그런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쓸모 없는 우리들을 부르셔서 제법 그럴듯한 존재로 만들기 시작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손길이 이곳 저곳에서 감지되면서 서서히 변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야곱을 다루셨던 그 하나님의 손길을 살피면서 오늘 우리들을 다루시고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두 가지 측면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살필 수 있습니다. 하나는 순풍에 돗 단 듯한 순탄한 길을 통한 하나님의 다루심이고 다른 하나는 힘들고 거친 연단을 통한 하나님의 다루심입니다. 순탄한 길을 통해서는 야곱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져 나갔고 거칠고 힘든 광야 길을 통해서는 야곱을 단련시키고 연단 시키셨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순탄한 길을 통하여 그러면 먼저 야곱에게 순탄함을 통해서 저를 다루셨던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발행하여” 이 말의 원래 의미는 야곱이 자기 발을 들어 올렸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왜 야곱이 자신의 발을 들어 올렸습니까 그렇습니다. 긴 행군을 하기 위함입니다. 어디까지의 행군입니까 예, 벧엘에서부터 하란까지의 행군입니다. 약 700여 km 되는 거리입니다. 이 먼길을 행군하기 위해서 야곱은 자신의 발을 들어 올렸습니다. 이렇게 먼길을 여행한다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 살펴 본 것처럼 이 길에는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정말 가기 싫은 그런 발걸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이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가기 위해서 자신의 발을 들어올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야곱이 이렇게 자신의 발걸음을 힘있게 들어올릴 수 있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요 그렇습니다. 28장에 기록되었던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28장에서 어떤 것이 있었습니까 예, 28장에서 야곱이 3가지 본 것이 있었습니다. 무엇이었죠 첫 번째는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닥다리를 보았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라고 했죠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야곱을 이어주는 것이라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본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예, 이 사닥다리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하나님의 사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한다고 했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야곱을 보호하고 이끌기 위해서 열심히 움직이는 것이라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가 세 번째로 본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예, 하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예, 야곱의 하나님의 되고 야곱의 자손을 복줄 것이며, 어디를 가든지 함께 하여 지킬 것이며, 야곱이 하나님께서 약속한 것을 이룰 때까지 떠나지 안고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야곱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을 보고 고무되었습니다. 그래서 재단을 쌓고 이제는 힘있는 출발을 합니다.
그러므로 그가 이렇게 힘있게 자신의 발을 들어올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야곱을 다루어 가시는 한 방법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힘을 잃었을 때 그에게 자주 자신을 보여 주시면서 야곱을 격려하셨습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좀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7번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왜죠 그렇습니다. 자신을 확인시켜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힘을 잃을 때마다 자신을 보여 주시며 힘을 잃지 말라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계시하심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는 우리들에게 어떻게 나타나 실까요.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쉽고 건전하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것인 줄 아십니까 예,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주 말씀을 통해서 자신을 보여 주시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펼칠 때 하나님께서는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오셔서 말씀하십니다. 힘을 잃었을 때는 사랑하는 아무개야 힘을 내라 말씀하시기도 하고 용기를 잃고 두려움 가운데 있을 때는 두려워 말라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때로는 따뜻하게 감싸주시기도 하시고 때로 내가 잘 못된 길을 걸어갈 때 책망하시기도 하십니다. 이렇게 말씀을 통해 만나는 하나님, 그분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우신 지요. 아마 말씀을 지속적으로 묵상을 하시는 분들은 제 말이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매일 아침 하나님의 말씀을 펼칠 때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세미한 음성을 들려주시면서 말씀하시는 것을요. 저는 제가 힘들고 지칠 때 말씀을 펼쳐 들고 그 말씀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거기서 저를 만나 주시고 저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힘을 얻고 다시 제사역을 감당하죠. 이런 사실을 잘 알았던 스바냐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습 3:16-17)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여기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기죽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기죽지 말라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면서 우리 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야곱에게 자신을 계시하시고 용기를 불러 일으키셨던 그 하나님께서 지금도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그리고 그분으로 인해 힘과 용기를 얻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환경을 통하여 말씀하심 다음으로 야곱이 본 것이 있었습니다. 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 무엇을 보았다고 말하죠 그렇습니다. 우물과 양떼들과 목동들을 보았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길을 묻기 위해 저들에게 다가갑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4절을 보죠 ““ 무엇이라 대답을 합니까 예, 하란에서 왔노라고 대답을 합니다. 또 무엇이라 묻죠 예, 라반을 아느냐고 묻습니다. 무엇이라 대답을 하죠 예, 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요 예, 그의 딸이 지금 양떼를 몰고 이리로 오고 있노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라헬을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 이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십니까 어찌어찌 하다 보니 하란 사람을 만나게 되고 어찌어찌하다 보니 라반을 그 사람들이 라반을 아는 사람이었고 어찌어찌하다 보니 거기에 라헬이 있었더라 입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어찌어찌하다보니 이렇게 된 일이 아닙니다. 확률적으로 여기에서 라헬을 만난다는 것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서울 장안에서 김서방 찾기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게 그냥 쉽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게 가능한 이야기입니까
그렇다면 이 일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즉, 우연이 일어난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보는 것이 당연하죠.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벧엘에서 나타나셔서 야곱이 어디를 가든지 함께 하리라고 하셨던 말씀을 신실하게 지키셨다고 밖에는 이 사건을 설명할 도리가 없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발걸음 하나하나를 이렇게 인도하셨기에 여기에 올 수 있었고 또 이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이루어 가시기 위해서 이처럼 애쓰심을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야곱에게 약속하신 것을 지키시기 위해서 이렇게 섬세하게 역사 하셨습니다. 바로 이런 분이 저와 여러분들이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이런 사실을 잘 알았던 바울도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기 합력 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섭리하신다는 말입니다. 즉, 바울이 되어진 모든 일들을 바라보면서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섭리하심이었다고 말하는 것이죠. 바로 이렇게 야곱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섭리하심으로 이루어진 일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자신을 보여주시기도 하시고 환경을 섭리하시기도 하시면서 야곱을 인도해 가실까요 그것은 야곱에게 하나님에 대한 신뢰감을 갖게 하기 위함입니다. 즉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따라오게 하기 위함이죠. 자식과 부모와의 관계에 있어서 아니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 신뢰가 무너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바로 이 신뢰 위에 쌓게 되는 것이죠. 이 신뢰감이 바탕이 되지 않는 모든 관계들은 모래성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 신뢰가 전제되어야 그 다음 모든 것들이 가능한 것입니다. 거친 광야길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다음으로 야곱을 다루어 가신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에게 거칠고 힘든 길을 예비해 둔 길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삼촌 라반에게 맡기신 일입니다. 여러분 라반이 어떤 인물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어떤 인물입니까 그렇습니다. 천하에 사기꾼 야곱을 속일 정도로 라반은 계략에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것은 집안 내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누이인 리브가나 동생인 라반 둘다 계략이 뛰어난 인물입니다. 바로 이런 라반에게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맡기셔서 훈련을 시키십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오늘 설교의 제목을 보고 재미있게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발목잡힌 야곱”입니다. 참 재미있는 제목 아닙니까 여기 야곱이란 말이 무슨 뜻이죠 그렇습니다. 발목을 잡다는 뜻입니다. 왜 이런 이름을 지었죠 그렇습니다. 태어날 때 형 에서의 발목을 잡고 나왔다고 해서 이렇게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는 그 이름대로 형의 발목을 잡아서 형의 장자권을 빼앗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발목도 잡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제목은 어떤 뜻입니까 예, 발목 잡는 자가 발목을 잡혔다는 것이죠. 즉, 천하의 사기꾼 야곱이 사기를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을 사기친 라반은 야곱보다 더 대단한 인물임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여러분 삼촌 라반이 야곱의 발목을 얼마동안 잡고 있었는지 아십니까 20년 동안입니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태어날 때부터 발목을 잡는 일에 익숙해 져 있는 야곱의 발목을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닌 20년 동안이나 잡고 있었다면 대단한 인물이 아닙니까 바로 오늘 본문은 이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야곱이 어떻게 해서 발목을 잡히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죠. 이제 그것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라반과의 첫 만남 13절에서는 천하의 사기꾼 야곱과, 야곱보다 더 뛰어난 라반과 첫 만남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있습니다. ““ 여러분 이 만남을 잘 살펴보십시오. 이 만남에서 이미 누가 우위를 점령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예, 라반입니다. 왜죠 그렇습니다. 야곱은 이 만남에서 자신의 약점을 다 노출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떤 점이 그렇죠 예,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고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야곱은 이 이야기에서 어떤 일을 했을까요 그는 자신이 당한 모든 일들을 다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형 에서를 속인 일이며, 아버지 이삭을 속인일, 그리고 아버지 이삭에게는 아내를 얻기 위해서 이곳으로 왔다는 이야기까지 다 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라반은 야곱이 쉽게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과 자신의 딸 중에 하나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다 알게 된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라반은 한 달 동안 야곱에 대한 탐색전을 벌입니다. 라반의 계략 그리고 나서 15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 라반은 한 달 동안 야곱이 꾀 쓸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탐색을 했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자신의
둘째 딸인 라헬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 말은 사실 야곱에게는 너무나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아내를 얻기 위해서는 남자 쪽에서 지참금을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아내를 얻고자 자신의 종과 이삭을 이곳을 보냈을 때 많은 지참금을 가지고 가게 했던 일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십시오. 지금 야곱에게 지참금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렇다면 아내를 맞이할 수 없습니다. 속히 아내를 맞이해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터인데 홀홀 단신인 야곱의 입장에서 지참금을 마련한다고 하는 것은 쉽지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삼촌의 이 말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말이겠습니까 그러나 사실 이것은 라반의 계획이었습니다. 이미 라반은 야곱의 의중을 꿰뚫고 있었던 것이죠. 창세기 기자도 이 사실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15절에서 라반의 이야기를 적고는 16,17절에서 당시의 정황을 이렇게 적고 있지 않습니까 ”“.“ 그러나 이런 사실을 모른 야곱은 덥석 이렇게 답해 버리고 맙니다. 18절 “.“ 삼촌 라반은 이런 야곱의 이야기를 듣고는 회심의 미소를 짖고는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이 흥정에서 라반은 라반대로 쾌재를 불렀을 것이며 야곱은 야곱대로 쾌재를 불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십시오. 이 흥정에서 사실은 누구이긴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라반이 이긴 것입니다. 라반은 이미 야곱이 7년을 이야기했을 때 14년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내가 14년은 이 녀석을 부려먹을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이죠. 이런 라반의 예상은 적중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눈치 체지 못한 야곱은 7년의 세월을 보냅니다. 7년이 지난 뒤 그는 자신이 삼촌 라반에게 보기 좋게 참패를 한 것을 깨닫습니다. 21절 말씀을 읽습니다. ”“.“ 또 22-2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 라반은 이미 7년 전에 세운 계획대로 하나 하나 진행을 해 나갑니다. 사실 라반의 이 계획은 꿩 먹고 알 먹는 격이었습니다. 자 16, 17절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라헬과 레아에 대한 비교이죠. 레아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예, 안력이 부족했다고 말합니다. 글세요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치 않지만 어떤 성경학자는 레아는 총명이 부족했다고 해석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좋은 말로는 총명이 부족했다는 말이지만 나쁜 말로는 어떤 말입니까 예, 좀 티미했다는 말이죠. 글쎄요. 이렇게 까지 비약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그것은 잘 모르겠지만 좀 더 비약을 해 본다면 라헬보다는 레아가 시집을 보내기가 더 어렵다는 이야기이겠죠. 아마 어리석게도 아버지의 말에 그대로 순종을 하고 그날 밤 라헬의 흉내를 내면서 침상에 들어간 것을 보면 레아가 총명이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렇다면 라반의 입장에서는 정말 꿩 먹고 알 먹는 격이죠 왜죠 예, 시집보내기 힘든 레아도 지참금을 톡톡히 받고 시집을 보낼 수 있고 라헬도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막힌 계산을 야곱은 모른 체 첫날밤을 지내고 다음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25절을 읽습니다. “.“ 아침에사 그는 자신이 속은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 때 야곱의 마음은 어떠했을 까요 라반은 자신이 행한 일을 따지는 야곱에게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26,27절 ”“.“ 여러분 이 라반의 이야기는 정당하다고 보십니까 그렇습니다. 정당하지 않습니다. 만약 풍습이 그러했다면 미리 이야기를 했어야 옳았습니다. 그러나라반은 이 것을 감춘 것입니다. 왜죠 그렇습니다. 야곱이 흥정에 응해 오지 않을 것이 뻔한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럴듯한 위장술이죠. 여기에 그만 야곱은 속아넘어가고만 것입니다. 천하의 사기꾼 야곱이 삼촌 라반에게 속아넘어가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야곱이 이렇게 자신이 속은 줄을 알았을 때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아마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자신이 에서를 속였을 때의 생각을 가장 많이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하 내가 형 에서를 속였을 때 형의 마음이 이러했겠구나하고 뭔가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28절을 보십시다. 야곱이 어떻게 하죠 그렇습니다. 그대로 행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27절에 대해서 야곱이 아무런 반항을 하지 않은 것을 본다면 뭔가 깨달은 것이 있은 듯 보입니다. 이렇게 천하의 사기꾼인 야곱은 삼촌에게 발목이 잡혀서 수많은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렇게 보낸 세월들이 우연히 이렇게 되었다고 보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왜죠 그렇습니다. 야곱을 훈련하기 위함입니다. 무엇을 훈련하기 위함일까요 그렇습니다. 야곱의 약점을 훈련하기 위함입니다. 야곱은 장점도 있었지만 약점이 많았던 인물입니다. 이 약점이 훈련되지 않으면 맛을 낼 수 없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저를 20년이라는 세월을 통해 훈련하시고 다듬어 가셨던 것입니다. 즉, 맛내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죠.
그렇다면 야곱의 약점이 무엇이었습니까 첫 번째로 그의 약점은 남을 잘 속인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야곱보다 더 뛰어난 라반을 선택하셔서 그에게 야곱을 맡기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살펴 본 대로 라반은 야곱도 능히 속여먹는 사기꾼이었습니다. 후에 야곱은 삼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창 31:41) “내가 외삼촌의 집에 거한 이 이십 년에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년, 외삼촌의 양떼를 위하여 육년을 외삼촌을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값을 열 번이나 변역 하셨으니” 야곱이 무엇이라 말합니까 예, 삼촌이 자신을 열 번이나 속여먹었다는 것입니다. 참 대단합니다. 천하의 사기꾼 야곱을 한 두번이 아닌 열 번이나 속일정도니요. 야곱은 이 사실에 대해서 대단히 원통했던 모양입니다. 자신이 몇 번 속았는지 그것을 다 계산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야곱은 자신보다 훨씬 더 뛰어난 라반을 만났습니다. 이렇게 보면 야곱의 20년 세월은 속아 사는 세월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이 이렇게 20년 동안 속아 살면서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자신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남들에게 행한 대로 당해봐야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줄 깨닫게 됩니다. 즉,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자신을 보게 되는 것이죠 바로 이런 사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20년 동안 라반에게 속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 20년의 세월이 야곱의 입장에서 볼 때는 쓰라림의 세월들이었지만 사실은 자신을 다듬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기다림의 훈련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야곱의 약점은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기다릴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창 25: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는 이 말씀을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형의 장자권을 훔쳐 자신의 것을 만들고 형의 축복을 속여서 빼앗았습니다. 사실은 이렇게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이미 약속하신 것이니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가실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것을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성큼 성큼 자기 멋대로 일을 처리해 버리고 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기다리지 못하는 야곱을 20여년의 세월을 보내게 하면서 기다리게 했습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여러 가지의 것들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라헬을 기다리며 7년을 보내야 했고 또, 채무자로서 7년을 더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또 자신의 것을 만들기 위해서 6년이란 세월을 더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기다리지 못하는 야곱을 훈련하시기 위해서 야곱을 20년 동안 라헬의 손에 맡기신 것입니다. 야곱이 입장에서 볼 때는 이 20여년의 세월이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한 세월들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는 좀 다릅니다. 이것은 꼭 필요한 시간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 대부분에게는 이런 세월들이 있었습니다. 모세도 광야 세월이 있었고 다윗도 그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도 광야에서 다듬어 지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진국이 되었습니다. 만약 모세나 다윗이나 바울들에게 이런 광야가 없었다면 진국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광야를 마련해 놓으시고 사람을 다듬고 맛을 내십니다. 아무리 질기고 맛없는 것이라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다듬어 지기 시작을 하면 맞잇게 요리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물론 얼마나 자아가 강한가에 따라 다듬어 지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질기면 질긴 만큼 더 삶고 때려야 부드러워 지지 않습니까 이것은 오늘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다듬어 실 때 반항하지 말고 다듬는 대로 맡기십시오. 왜 나는 이렇게 다듬는 시간이 긴가 생각하지 마시고 아하 내 자아가 이렇게 강하구나 생각하십시오. 혹 내 자아가 너무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속히 자아를 꺾으십시오. 그래야 그 시간이 단축이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을 다듬어 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거부하시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시련의 거친 광야 길을 걸어 갈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맛을 내고 다듬으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분께서 여러분들을 어떻게 다듬으실 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내어 맡기십시오. 그러면 오히려 그런 상황가운데서 감사하는 마임이 생길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약 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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