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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음직한 봉사 (롬15: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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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살 난 어린아이를 위해서 어머니가 그와 함께 잠자리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늘 건강하게 해주시고, 또 총명있게 자라게 해주시고…"이렇게 기도하다가 "어머니 말씀 잘 듣게 해주시고…"그렇게 기도했단 말입니다. 그 늘 기도하는 소릴 듣다가 이 4살 어린아이가 "엄마 오늘은 내가 기도할께그래라" 얘가 기도하는데 "엄마가 내말 잘 듣게 해주세요"하고 기도했습니다. 각각 자기 입장만 생각하고, 자기에게 유리한 서원을 내놓고 있습니다. 어머니라면은 내가 진정 애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잘 하는 것일까, 어떻게 사랑하는 것이 정말 바로 사랑하는 것일까, 그것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인데, '나는 다 잘하고 있고, 저 애가 내 말을 잘 듣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하고 있는 것이죠. 각자 자기 나름에 소원만을 열심히 구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미국에 칼럼리스트들이 여론 조사를 해서, 한 연구 보고서를 내 놨습니다. 그것은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비교하는 그러한 비교 도표입니다. 헌신 봉사를 중심으로 해서 비교한 결과 이렇게, 이런 기준으로 해서 평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첫째는 '봉사 참가 지수', '봉사활동에 얼마나 참가하고 있는가'하는 겁니다. 이 조사해 본 결과 단연 '기독교인들이 월등하게, 뭐 잘 믿거나 못 믿거나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더라'하는 것이구요. 두 번째는 '포용력지수', 그 말은 하나님께 헌신하고, 특별히 인종 문제가 복잡한 나라이기 때문에, 그 '인종차별', 이 문제에 있어서 얼마나 포용력이 있나' 또 '가난한 자와 부한 자, 얼마나 넉넉하게 포용을 하고 있는가'. 포용력 지수를 평가 해 보았다는 겁니다. 그러면 '얼마나 관용할 수 있느냐'하는 것이 그 지수가 되겠습니다. 또 하나는 '가정 안정지수', 뭐 '이혼 문제라든가 이런 불안에 떨지 않고, 아이들도 부모님의 뜻을 따라서 성실하게 잘 자라주고 있는가' 이런 것들을 가정 안정지수라고 해서 평가 해 보았는데, 이것도 월등하게 기독교인들이 더 낫구요. 마지막에 '행복감 지수'입니다.
그것은 '베푸는 삶을 통해서 스스로의 행복을 얼마나 만끽하고 살아가는가'하는데, 이 만족도가 60%라고 했습니다. 60%의 사람들이 '우리는 만족합니다.' 그렇게 생각했더라고 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네 가지에 의해서 우리를 평가한다면, 여러분 자신들을 평가한다면, 얼마의 지수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자 봉사생활 금년에 얼마나 했습니까 얼마나 좀 너그러운 사람이 됐습니까 가정은 얼마나 더 안정이 됐습니까 여러분의 행복감은 어느 수준에 있습니까 스스로 물어야 할 것입니다. 인생은 받는 것보다는 주는 일에서 기쁨을 찾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창조한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 20장에 볼 것 같으면, 35절에 예수님 친히 하신 말씀을 바울이 인용합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 '주는 자에게 기쁨이 있다. 주는 자에게 행복이 있다.' 여러분 이 주는 행복의 진리를 터득하기까지는 여러분은 영영 행복을 모르고 말 것입니다. 이 진리만은 논리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만이 터득할 수 있는 특별한 진리입니다. 자 이제, 자녀와의 관계를 한번 보십시다. 여러분이 자녀들을 위해서 수고합니까 수고하는 그 자체를 행복으로 여기는 자라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여기다가 밑천을 들여가지고 본전 뽑을려고 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불만이 많습니다. 그 키우면서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그것으로 벌써 기쁨을 다 얻은 거예요. 뭐 효도하라고 강요할 거 없습니다. 본전 다 찾은 거예요. 그걸 잊어서는 안돼요. 베푸는 재미, 키우는 재미, 수고하는 재미, 그 자체가 행복이었더란 말이죠. 그런고로 인생은 항상 베풀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행복할 수 있도록 그렇게 창조된 존재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숙된 인격입니다. 삶의 질을 여기서 높여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임종하게 되면, 마지막으로 크게 뉘우치게 된다고 합니다. 죽기 전에는 사람이 착해지니까요. 최소한도 임종에서는 착해지니까요. 그 순간 세 가지를 후회가게 되는 데, 그 첫째가 베풀지 못한 겁니다. '좀 더 베풀 수 있었는데, 좀 더 줄 수 있었는데, 내가 왜 주지 않았나.' 그대로 그대로 생각이 납니다. '좀 더 넉넉하게 주면서 살 수 있었는데…… 이렇게 쥐고, 모아봐도 먹지도 못하고 가는 걸 좀더 좋은 일하면서 살았으면 좋았을 걸' 이것이 큰 후회,첫째 후회입니다.
둘째가 참지 못한 것. '조금만 참았더라면 좋았을 걸, 왜 쓸데없는 말을 하고, 쓸데없이 행동했던가' 그렇습니다. 세 번째가 '좀 더 행복하게 살수도 있었는데, 좀 더 즐길 수 있었는데, 뭐 그렇게 아웅다웅 싸우고 울고불고 할 필요가 없었는데, 얼마든지 즐겁게 살수 있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사람이 못돼 먹어서 나 괴롭고, 남 괴롭히고, 그렇게 살아야 했던가' 이것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후회입니다. 여러분 정말 받는 데만 급급하고, 못 받는 원망, 더 가지고 싶은 욕심, 여기서만 버둥거리고 있기 때문에 영영 행복할 길이 없습니다. 문제는 베푸는 생각을 해보십시다. 베풀기 위한, 한번 마음을 가져 봅시다. 그리하지 않고는 절대로 여러분은 행복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자 베푸는 자가 누굽니까 우리 생각에는 "아! 돈 많은 사람이 주는 거지. 아, 우리같이 가난한 사람, 나야 구제 받아야 할 대상인데 누굴 구제한단 말이냐."라고 생각하겠죠. 아니 그렇습니다. 지금은 문전에 오는 거지가 없지만, 옛날에는 거지가 많았죠. 얻어먹으러 오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 거지들 말에 의하면요. 대문이 크고 담장이 높은 집에 가서는 얻어먹지 못 한답니다. 욕만 먹고 나온답니다. 재수 없다고, 아침부터 뭐 얻으러 온다고. 아주 가난한 집, 대문도 없는 집에 가야 넉넉히 얻어먹는다고 합니다. 구제를 부자가 하는 게 아니에요. 그걸 알아야돼요. 성공한 사람이 구제하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사업이 망한 사람이 구제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돕게 마련이지, 부한 사람, 그 사람들은 돈에 미쳐가지고요. 정신없어요. 내버려두세요. 어림도 없습니다. 어렵고 가난한, 바로 그 형편에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마음을 쓸 수가 있는 것이에요. 또, 누구에게 주어야 되느냐 하는 겁니다. 우리는 그 쓸데없이 괜히 돈 있는 사람에게 주느라고 문제예요. 뭐 사과상자니 뭐니 해가지고 말이야. 이게 우리의 선행은 전혀 보상할 수 없는, 대신 보답할 수 없는 사람에게 주어야 되는 것이에요. 그걸 있지 말아야 돼요. 내 친척, 내 아는 사람, 뭐 주변에, 그게 아니구요 날 찾아오지도 못하고, 내가 와서 도움을 청할 수도 없는 바로 그런 사람들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4장 12절에서 '부한 자는 너의 잔치에 초청하지 말라' 그랬어요. '초청하면, 다시 그 사람이 너를 대신 청할 것 아니냐.' 그러면 쓸데없는 거죠. '대신 청할 수 없는, 보답할 수 없는 바로 그, 그 사람을 대상으로 해서 선한 일을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문제는 어떻게 해야되는 겁니까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 읽게 됩니다. 저는 몇 일전에 미국으로 여행을 가면서, 집회 인도하러 가면서 비행기 안에서 참 많은 마음을, 아픈 마음을 뉘우쳐 봤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내 앞에 앉은 의자에 점잖은 미국사람 내외분이, 백인인데, 한국에 와서 고아를 데리고 가는 거예요. 아직 낯을 가리지 못하는 어린애, 칭얼거리는 애를 하나 딱 안고, 이걸 가면서요. 열시간동안 내내 아버지가 돌봐요. 그것 또 이상하데요. 그 어머니는 까딱도 안 해요. 옆에서 구경만 하고, 아버지가 그 애를 안고 그 애쓰는 걸 볼 때요, 나는 저렇게 오랫동안 애를 안아 본 일이 없어요. 이렇게 정성스러울 수가 없어요. 그렇게, 아이를 분명히 한국아이인데, 고아를 하나 데리고 가면서 그렇게 정성을 다하는 걸 보고, 제가 많이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들은 여기까지 와서 저 애를 데리고 가는 데, 우리는 도대체 고아를 팔아먹는 나라가 됐으니, 이래가지고도 복 받겠다고 조심하세요. 무슨 복이 온다는 얘기입니까 이 땅에. 도대체 이게 될 말입니까 바로 그 얘기를 '아 저 사람 참 훌륭하다고'. 마침, 내 옆에 미군, 옛날에 장성이 왔다가면서 옆에 앉았어요. 그 얘기를 주고받았더니, 자기 말이라고는 안하데요, 꼭 자기 같은데 말은 안하면서 "아, 내가 아는 사람은요. 아 지금 아이가 다섯인데 남의 아이가 또 다섯이에요. 그 집에 가면 아주 와글와글 하는데 아 나는 그 집에 갈 때마다 너무 행복하게 보이더라"고, 아 또 그러고 나니까 점점 더 부끄러워져서, 아 그렇게 민망한 줄 모르겠어요. '어쩌다가 우리는 이렇게 이 모양이 됐나……' 생각이 들어요. 복 달라고 열심히 소리만 질렀지, 복 받을 만한 짓을 하지 못해요 도대체가요. 자 오늘 본문에 나타난 말씀을 보십시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 전 지역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데 그건 개척교회를 하는 겁니다. Church Planting을 하는 거거든요. 아 전혀 예수 믿는 사람이 없는 곳에 가서 예수 믿는 사람을 만드는 거예요. 교회를 세워요. 지금 아직도 이 사람들이 신앙적으로 익숙하지도 못했는데 성숙하지 못한 사람을 놓고, "자, 헌금합시다." 연보하자고 저 예루살렘에 많은 사람들이 지금 흉년들어서 굶어 죽어 간다고, "당신들도 소식 들어 알잖습니까 우리가 도웁시다!" 정성껏 헌금을 했어요. 이 연보를 예루살렘으로 송금을 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오늘 본문에 보는 대로는 많은 헌금을 해 가지고 이번만은 내가 직접 가지고 갈 것이다. 친히 가지고 간다고, 소중하기 때문에, 마음을 담아 가지고 가야겠기 때문에 또, 특별히 중요한 것은 이 헌금을 한 이 이방교인들에, 이방사람들에 마음, 사랑을 전달하고 싶어서 이 헌금을 손수 가지고 갑니다. 여기에는 큰 위험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사도 바울을 죽이겠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바울은 알고 있습니다. 너무 위험해요. 이번에 갔다가는 살아남기가 어렵겠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를 쓴 겁니다. 내가 로마로 가고 싶은데, 만일에 여차해서 못 가더라도 이 편지로 대신하고 싶어서 쓰게 된 편지가 로마서입니다. 그러면 그 성금을 이 위험을 무릎 쓰고 직접 가지고 갑니다. 그러나 이것을 받은 예루살렘이 결코 그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를 죽일려고 들었고, 죽이지 않고는 먹지 않겠다고 맹세한 사람들도 있었어요. 사도 바울이 결국은 많은 핍박을 받고 갇혀가지고, 로마로, 죄수의 몸으로 상소해서 로마까지 가게 되지 않습니까 그렇게 된 것이에요. 그런데 지금 로마에 편지를 합니다. '내가 예루살렘에 대한 섬기는 일, 받음직한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섬김은 섬기는 거지요 분명히. 돈은 가지고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받음직한 것이 되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 요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얘기입니까 주는 자의 마음입니다. 먼저는 주는 자의 마음이 뜨거워야됩니다. 던져주는 게 아니에요. 억지로 주는 거 아니에요. 불가피해서 주는 게 아니에요. 자랑삼아 주는 게 아니에요. 높은 자세로 주는 게 아닙니다. 주는 자의 마음, 물질이 아니고 사랑을 주고, 희생을 주고, 죄송한 마음으로 주고 그래야 된다는 거죠. 더구나 겸손한 마음으로 주어야 하는 거죠. 아쉬운 마음으로. 여러분 자녀교육에 있어서 아이들의 용돈 때문에 고생하십니까 또 아이들의, 자녀교육에 문제가 있습니까 말 한마디에 달린 거예요. 아이들에게 무엇을 주더라도 줄 때 "미안하다. 더 잘해주고 싶은데 요것밖에 없어서 어떻하냐 네가 우리 집에 태어나길 잘못이지. 아버지 재주 없고, 내 재주 더 없고. 그러니까 요것밖에 없지 않니 그저 다른 집에는 더 잘해 주더라마는 나는 못 해주니 미안하다." 이러면서 주어야 아이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감사하지요. "야, 왜 이렇게 용돈이 많으냐 남에 집 아들은 조금 쓰드만 너는 그 모양이냐" 이렇게 나오죠 얘들이 얼마나 머리가 빠른대요. "아버지 골프 한번 치는데 얼마인줄 아세요 다 알고 있어요. 아버지가 술좌석 한번 벌이면 얼만 줄 아느냐고요" 말은 안하지만 속은 멀쩡합니다. 이 아들이 어떻게 잘 되겠습니까 보세요. 마음이 없잖아요. 마음을 주지 못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주는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미안합니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아쉬운 마음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부모에게 효도할 때에도 "더 잘해주고 싶지마는 그저 형편이 이래서요." 이런 마음이래야지. "뭐 그만하면 됐지 뭘." 그딴 소리를 하면 안되는 겁니다. 탈무드에 재미있는 소리가 있어요. 어떤 왕이 있는데, 왕에게 외동딸이 있는데, 병이 들어서 죽게 됩니다. 죽어가니까 왕이 너무 다급해서 "이 딸의 병을 고치는 자는 사위를 삼고, 내 대를 이어서 왕을 삼겠습니다. 왕을 만들게 되겠다. 왕위에 오르게 해 주마." 방을 붙였어요. 먼먼 나라에 있는 어느 삼형제가 산골에 살았는데, 이 삼형제가 보화, 신기한 보화를 하나씩 가지고 있어요. 큰형은 멀리 보는 망원경을, 천리를 보는 망원경이 있어요. 그래서 그 망원경으로 이 사실을 보게 됐어요. 방 붙인걸 보게 됐고, 또
둘째형은 말입니다, 그 옛날에 있잖아요, 하늘을 날아다니는 양탄자, 아 그거 하나를 가지고 있거든요. 이거를 타고 이제 가게 되는 거예요. 거기까지. 세 번째 동생은 말이죠. 어떤 병이라도 요것만 먹으면 낫는 귀중한 사과 하나를 갖고 있어요. 자, 이 삼 형제가 멀리서 보고, 양탄자를 타고 와서 이 사과를 주워서 이 공주가 병이 나았어요. 이제사위를 삼아야 하는 데, 여기에 공을 세운 사람이 세 사람이에요. 어느 사람을 사위로 삼아야 하느냐 이겁니다. 여기에 대한 탈무드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망원경은 도로 가져가면 되고, 양탄자도 도로 가져가면 되고, 사과는 먹어 없어졌으니까 당신이야말로 큰 희생을 한거요.". 그 사람이 왕이 됐답니다. 없어져야 되는 거예요. 사랑이란 희생해서 내가 없어져야지. 아직도 멀쩡한데요. 무슨 사랑이 그런 게 있나요. 그런고로 주는 자의 마음이 얼마나 지극해야 하는 가. 나 자신이 사라지는, 거기에 진정한 주는 자의 마음이 있는 것이구요. 또 하나는 신앙적이고, 절대적이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하고 비교 할 것 없어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요. 하나님께로 나는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그 받은 마음에서 적은 봉사를 하는 것입니다. 받은 마음에 대한 감사가 이렇게 열매를 맺어 나가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누구에게 주느냐 할 때는, 전혀 보답을 바람이 없이 줘야됩니다. 보상을 바람이 없이, 전혀 기대를 걸지 않고. 인사도 안 해도 좋아요. 전혀 상관이 없이, 조금이라도 그 어느 누구라든지 보상을 바라는 마음 없는 봉사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는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마음을, 사랑을 그래요. 똑같은 일이라도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 언제 한 번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저 지난 삼월 달에 북한 나진에 갔을 때 그때 만해도 삼월 달에는 추워요, 북한은. 그래서 차를 타고 가다가 식량을 구하러 다니느라고 보따리를 지고서 여기저기 다니는 사람을 많이 보는데, 마침 넓은 벌판을 지나가게 돼서 차를 세우고 "가는 길까지 태워다 드릴테니 타십시오. 같은 방향이니까" 타라고 그래서 탔어요. 보니까 옷을 입었는데, 방한복이 괜찮아요. 좋은 옷을 입었더라구요. 그래서 "아이구, 동무 옷이 참 좋습니다.이거요 평화그룹에서 보내 준겁니다." 저희 교회가 북한을 도울 때에 그 이름이 '평화그룹'입니다. '소망교회'가 아닙니다. '평화그룹'이라는 이름으로 주는데요. 그렇다고 그래요. 그 옆에 있던 사람이 한 마디, 그 말을 안 했어야 되는 데 "이분이 평화그룹 이사장입니다." 그랬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아이구, 감사합니다." 그래요. 딱 쳐다보더니요 깜짝 놀랄 말을 합니다. "소망교회에서 보내온 것이 제일 좋아요." 그래요. 만일에 "소망교회에서 보낸 것이 제일 못 돼요." 그러면 난 큰일날 뻔했어요. 어떻게 고마운지…….
여러분 어떤 일이던 간에 베풀 때는 정말 정성을 다해야돼요. 마음을 주는 것이니까요. 성의를 다해야 됩니다. 그리고 또 하는, 선한 일하는 사람은 결과에 연연하지 마세요. 이 어떻게 되느냐, 어떻게 되느냐. 가끔 보니까 그런 말 많이 해요. 뭐 쌀을 보냈더니 "누가 먹나요." 말이 많아요. 아무가 먹던 별생각 다하네. 당신이 주는 것만 주세요. 누가 먹느냐는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거구요. 그거 그런 것 신경 쓰다가 평생 그 인색한 노릇하다가 끝나지요. 줄 때는 그 생각하는 거 아니에요. 내 손에서 떠난 것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드렸으면 끝난거죠. 어떻게 쓰여지느냐는 묻지 마세요. 하나님이 들어서 '오병이어'처럼,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기적을 낳을테니까, 두고보세요. 그걸 생각하지 마세요. 하나 더 있습니다. 선한 일 하고 잊으세요. 탈무드에 그런 말 있어요. '내가 누구를 줬는 지를 몰라야 하고, 받는 사람은 주는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지 말아야 한다'는 거예요. '누구로부터 받았다'할 때는 벌써 얘기가 달라진다는 것이에요. 의미가 없어요. 잊으세요. 예수님 말씀대로,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오른 손이 하는 거 왼손이 모르게' 얼마나 강한 말씀입니까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마라.' 참 내가 유감스러운 말을 듣습니다. "뭐, 돕자, 돕자하는 거, 뭐 도울 마음은 있습니다마는 내가 가서 주고 악수해야만 주겠데요. 누가 받는지도 모르는 거, 안 준다." 그래요. 이게 한국 교인들이요. 요 정도 밖에 안 되는 거예요. 수준이 이 정도입니다. 이게 무슨 구제요, 선한 일입니까 아무가 받으면 어때요 잊어버리세요. 내가 얼마를 줬는지 기억지도 말아야 돼요. 누구 줬는 지 알아서 뭐해요 내 기억에서 다 잊어 버렸어요. 그런 돈의 숫자 필요없어요. 미안하지만 제가 저희 교회에서 회보를 만들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해요. 회보 가운데 보면은 주보가 전부 그 자랑이죠. 고아원 방문, 양로원 방문, 어데 얼마 주고, 어데 좀……. 난 이거 보기 싫어 안 해요. 그 무슨 소용 있단 말입니까 그 기억이 무슨 소용 있어요 이건 교회답지 못해요. 이거는 하나님의 일도 아니에요. 깨끗한 마음으로 잊어버리세요. 나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어요. 그 마음이라야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어려운 시대를 맞았습니다. "하필이면 경제위기시대에 왜 저런 말을 할까"하겠죠 경제위기시대니까 이 말을 하는 겁니다.
여러분, 삶을 질을 높여 사십시다. 베푸는 마음만이 높은 질의 생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4장 28절에 보면 재미있는 말씀이 있어요. '이제는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제 손으로 수고하여', 이자받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내 손으로 수고하여, 여러분, '난 밥 먹을 것이 있다. 그러니 나는 그냥 있어도 된다.' 그러겠습니까 아니오, 잡수실 것이 있거든 이제부터는 구제할 것을 위해서 일하세요. 무엇이라도 하세요. 이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오. 내 처자식 벌어 먹이기 위한 것이 아니오. 구제할 목적으로 돈을 버는 것이오. 구제할 목적으로 땀을 흘리는 것이에요. 과거보다 더 열심히, 열심히 뛰세요. 뭐라도 해서, 더 벌어서, 좀 더 주의 일 하겠다고, 난 밥 먹을 것이 있으니까, 그저 이자받아 가지고 가만히 놀겠다고. 그러니까 가만있으니까 아주 가만히 있게 되고 말지. 여러분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일을 하세요. 땀을 흘리세요. 자, 그 뿐만 아닙니다. 오늘 본문대로 받을려고 하는 기도에서 이제는 주려는 기도요, 베푸는 기도요, 또 받음직하게, 내가 돕는 그분들이 받음직한 것이 되기 위하여 기도합니다. 바로 이것이 나를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삶의 가치를 높여 줄 것입니다. 여기에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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