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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하며 고쳐가는 삶 (눅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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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주간에 충격적인 사건을 보았습니다. 강남의 부자들이 사는 지역의 가장 비싼 땅에 세워진 거대한 백화점이 무너져 내린 것을 망연자실한 가운데 보아야만 했습니다. 세계 각국으로부터 들여온 비싼 물건들, 화려하게 치장된 건물, 첨단의 문화를 즐기며 쇼핑을 했던 사람들, 그리고 수많은 차들이 건물의 붕괴와 함께 처참하게 변해 버렸습니다. 폭삭 주저앉은 무더기에서 쉴새 없이 연기가 나오고 먼지가 나는 폐허를 우리는 보았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허망한 순간이었습니다. 수많은 사상자들을 보면서 (약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하여야 할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사건을 보면서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에게 들려주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알아 이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을 보면 두 가지 사건이 등장을 하고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 이어지고 그리고 예수님의 비유가 나오고 잇습니다. (눅13:1) 그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빌라도는 예수님 공생애 당시의 이스라엘의 총독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민족의 자존심이 매우 강한 민족입니다.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자부하며 이방인들을 멸시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인 로마의 식민지 치하에 있으니 보통 자존심이 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틈만 있으면 독립을 하려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애국적인 저항단체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본문에 나와 있는 사건도 그런 내용 같습니다. 반란과 관계된 사람이 제사를 드리는 중에 빌라도에 의해 살해를 당하게 되어지고 그 피가 제물에 들어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유월절과 같은 행사 때마다 세계 각처에서 제사를 드리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그 때마다 민족주의자들이 반란을 일으키곤 했는데 어떤 때는 몇 천명도 죽고 어떤 때는 몇 만 명도 죽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고 역사가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제사를 드리다가 비명횡사한 것은 비참한 일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런 일들을 해석함에 있어서 이들이 죄가 있어서 하나님께 심판을 받은 것으로 이해를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들은 죄가 더 많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고 살아 있는 자신은 좀 더 의롭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또 4절의 말씀을 보면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비명횡사한 18명에 대한 언급이 나오고 있습니다. (눅13: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1절에 있는 사건이 인위적이고 필연적인 사건이라면 4절의 내용은 자연적이고 우연적인 사건입니다. 쇼핑을 하다가 참사를 당한 사람들과 비슷한 일입니다. 갑자기 되어진 일이라 피하지 못하고 당하고 만 사건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들이 죄가 많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그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눅13: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주님께서는 그들이 우리보다 죄가 더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서 이런 것을 볼 때마다 자신을 돌이켜 회개하는 것이 필요함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금보다 더 거룩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고 더 복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더 충만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언젠가 우리의 삶의 종지부가 찍어졌을 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여 처량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현재에 만족하고 미래를 내다볼 줄 모르는 사람은 향상이 없습니다. 우리는 더 나은 자신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애써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몇 가지 자세가 있습니다.
I. 삶에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만물은 존재의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만물들이 창조 목적의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을 우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밟히면서도 보잘것없는 꽃이라도 피우는 풀꽃들, 혹독한 자연의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구부러지고 비틀어지면서도 의연하게 서 있는 나무들을 우리는 보면서 경외감을 갖습니다.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복되게 삶을 가꾸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시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주셨습니다. 내가 살아 있다고 하는 것은 나에게 사명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 같은 것에 걸고 계신 하나님의 계획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최근의 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평생동안 살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일하지 않고 인생을 즐기겠다는 사람이 전 인구의 72퍼센트나 된다고 합니다. 이 사실만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현대인들이 돈의 노예가 되어 돈만을 위해 살고 있는 지 알만하지 않습니까 일이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는 질서를 구체적으로 가시화시키는 수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은 한결같이 편안하게 살면서도 경제적 보상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직업을 찾기 위해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면서 서로 싸우고 있으니, 노동의 질서가 깨어질 수밖에 없으며, 적자생존의 법칙만이 지배하는 무섭고 믿을 수 없는 혼란한 사회에서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요 인간은 누구나 일을 해야 하는 존재이며, 일의 종류는 인간가치를 판단하는 척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부르시는 방법임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회심이며, 이와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동고동락하는 터전이 바로 이 땅에 임한 하나님나라, 다시 말한다면 살아 계신 예수님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예수사회 곧 교회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보람있게 삶을 살아가셔야 합니다. 육신에게 져서 육체대로 살 것이 아니라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서 살아야 합니다. 분쟁과 시기가 있는 어린애와 같은 신앙의 소유자가 아닌 장성하고 용감한 십자가의 군병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더 귀한 일들을 많이 감당해야 합니다. 한 영국 귀족이 부모로부터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그 귀족은 그 돈을 가지고 무엇이든지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많은 돈을 점박이 쥐를 만드는 일에 투자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점박이 쥐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무익한 일이었습니다. 귀족은 수많은 돈과 시간과 노력과 재능을 점박이 쥐를 위해 바쳤지만 점박이 쥐는 귀족이나 인류에게 아무런 유익도 가져다 주지 않았습니다. 우리들도 자신의 만족만을 위해 일하다 보면 귀족과 같은 어리석음을 범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삶에는 뜻이 있습니다. 더 중요한 일들을 위해 더 귀하게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II.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인내의 때에 살아가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현장 중계를 보면서 사고를 당했던 젊은 여자의 소리가 귓가에 쟁쟁합니다. 그가 피투성이가 되어서 병원에 입원하고서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데 하는 말이 ‘나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꿈도 못꾸었는데, 다른 사람의 일로만 알았는데 ··········,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닥쳤는지 모르겠다’고 넋두리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나만은 아무 일도 없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 가정에 어려운 일이 없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가 잘못한 일이 있어도 즉각적으로 우리에게 심판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를 안심시키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죄를 따라 갚지 아니하시고 회개의 기회를 주시며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중보가 되십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게 되면 주인이 무화과 나무를 열매 맺지 못하는 이유로 잘라 버리겠다고 했을 때 과원지기는 사정을 한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눅13: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눅13:7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눅13:8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눅13:9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 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우리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중보가 되시사 기다리시고 대신 기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공의대로 하셨다면 이미 우리는 심판을 받아 멸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오래 참으심으로 우리가 이렇게 또 은혜의 자리에 있게 된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학자이면서 설교가인 미국의 아이언사이드 박사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이 교회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청년 하나가 손을 들더니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기 시작합니다. "법대로 합시다" 이 말을 듣던 아이언사이드 박사가 아주 놀라운 얘기를 했습니다. "여보게 젊은이, 법대로 자네를 다루었다면 자네는 어떻게 될 것인가 자네는 벌써 지옥에 가 있어야 마땅할 것일세." 라고 했답니다. 우리는 법보다 위대한 원리에 의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은총의 원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께서 나를 다루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대하겠다"는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인간관계를 지배하는 은총의 원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내는 끝없이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내의 끝에는 돌이킬 수 없는 하나님의 진노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노아의 때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비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돌아오라고 애타게 부르실 때에 저들은 웃었습니다. 무슨 소린가, 이렇게 계속된 세상에 심판이 무슨 심판이냐 라고 마비된 삶의 태도를 가진 것입니다. 벧후3:4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벧후3: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벧후3:6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벧후3: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벧후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그러나 주님의 돌보심도 한계가 있음을 알도록 합시다. 눅13:9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 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III. 회개하여야 합니다. 눅13: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회개는 돌아서는 것을 말합니다. 후회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로 잘못을 깨닫고 마음으로 뉘우치고 행위로 돌아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항상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세워야 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항상 하나님을 향하여서 바로 서야 합니다. 죄에 대하여서 예민한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처럼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이 이야기를 하면서 나란히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리스도인이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너무 아픈 나머지 그리스도인은 불평 섞인 욕을 해댔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욕을 했던 것을 회개하면서 "주님, 그리스도인으로서 산다는 것은 때로는 너무 힘이 듭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비그리스도인이 입을 열었습니다. "여보게 뭘 그런 걸 다 회개하나 삶을 좀 자유스럽게 살게." 순간 우리는 비그리스도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조그만 죄에도 민감하게 반응 한다는 것은 그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는 사람은 죄를 짓고도 자신이 지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합니다. 마귀는 지금도 우리를 죄에 대하여 둔하게 해서 자기의 종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마귀는 인정 사정도 없고 겁도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만을 무서워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마귀의 세력을 무력화시키는 것입니다. 95년도 벌써 절반이 지나갔습니다. 세월의 빠름과 무상함을 느낍니다. 헛된 것에 마음 뺏기지 말고 항상 주님 앞에 바로 서서 주님께로부터 칭찬 받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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