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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칙과 음모 (단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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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한국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습니다. 새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많은 말씀을 하셨지만 저의 마음을 사로잡은 한 마디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시대는 이제 끝나야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사실은 지난 해 대통령 선거의 과정에서 노무현 후보에 대한 상대방들의 반칙과 태클이 난무했었고, 그런 과정에서 쌓인 앙금이 이렇게 표현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오죽했으면 시사평론가인 유시민 씨가 더 이상 이런 반칙을 두고 볼 수 없다며 현실정치에 뛰어들었겠습니까?

반칙이란 규칙을 어기고 게임을 하는 행위입니다. 반칙을 하는 이유는 규칙대로 해서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칙을 해서 이기는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규칙을 어기면 게임에서 퇴장을 당한다거나 게임을 몰수당한다거나, 어쨌든 규칙에 따른 불이익을 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반칙이 공공연하게 시행되고 있고, 반칙을 한 사람들이 이겨버리는 불공정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노무현 후보는 경선 과정에서부터 너무나 많은 반칙들에 의해 불이익을 당했다는 것이지요. 왜 원칙과 소신을 가진 사람을 사회가 뒷바라지해주지 않고 오히려 반칙하고 변절하는 사람 편을 들어주느냐 하는 것이 그의 큰 불만이었습니다.

그가 당했던 반칙들 가운데 하나는 음모론이었습니다. 상대방에서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으니까 음모가 개입된 결과라며 뒤통수를 친 것입니다. 자기가 진 것은 상대방이 잘해서도 아니고 자신이 잘못한 것도 아니라 제3의 세력에 의한 음모가 개입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상대방을 부도덕인 집단으로 만들고 자기가 패배한 승부 자체를 무효로 만들어 원점으로 되돌려놓고자 하는 반칙입니다. 결국 이렇게 있지도 않은 음모를 들썩이며 음모론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음모 아닌가요?

음모라는 것은 어두운 곳에서 꾸며집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사악하고 치명적인 독성을 내포합니다. 그리고 매우 비겁한 방법으로 시행이 되지요. 여기 나오는 총리들과 방백들이 다니엘을 제거하기 위해 음모 꾸미는 것을 보세요. 다니엘의 능력이나 성품이나 사생활에서 아무런 꼬투리도 잡을 수 없으니까 사악한 음모로 그를 없애버리려고 하는데, 그 내용이 뭔가 하면 앞으로 한 달 동안 누구든지 왕 외에 어떤 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뭔가 부탁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어기는 사람은 사자 굴에 던져 넣는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날마다 시간을 정해놓고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 사람들은 오로지 다니엘을 붙잡을 수 있는 올가미를 만드는 데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음모가 얼마나 악하고 얼마나 치명적인 것인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음모로 다니엘을 붙잡아 사자 굴에 던져 넣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다니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사자 굴에 던져 넣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단 말이죠.

세상에 한 달 동안이나 누구에게도 부탁을 하지 않고 산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요?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아쉬울 것 없는 사람, 아무리 독립심이 강한 사람이라 한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일 없이 하루를 사는 것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혹시 산 속에 들어가 혼자서 사는 경우라면 가능할 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우리가 사회와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가운데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당장 이 사람들이 이 음모를 꾸민 후에 집에 돌아가서 “여보, 나 왔어요. 밥 주세요.” 이렇게 말하는 순간 자기 스스로를 사자 굴에 던져 넣어야 할 것입니다. 아기가 배가 고파 우유 달라고 울면 이놈을 들고 가서 사자 굴에 던져야 하겠군요. 도대체 이런 일이 가능하기나 한 일입니까? 어떻게 이런 악하고 끔찍한 음모를 꾸밀 수가 있단 말입니까? 물론 이 음모를 꾸민 사람들은 자기 아내나 자녀들을 사자 굴에 던지고 심지어는 자기 자신까지 사자 굴에 던져 넣으려는 생각은 없었을 것입니다. 오로지 다니엘만 붙잡아 죽이는 것이 목표였지요. 그러나 그 다니엘을 죽이기 위해서는 자신과 가족과 자기 주변의 모든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청렴하고 성실한 다니엘을 죽여야 한다면, 그보다 못한 사람들, 잘못도 하고 실수도 저지르는 사람들, 부도덕한 사람들을 죽이지 않을 수 있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도 그 끔직하고 비열한 음모를 꾸민 사악한 인간들이 버젓이 살아남아 활보해야 할 법적, 도덕적 근거는 무엇입니까? 다니엘을 사자 굴에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들부터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겠군요. 결국은 다니엘을 죽이겠다는 음모가 사실은 자신들의 무덤을 파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이 사악한 음모는 온 나라를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고 모든 인간관계를 붕괴시킬 것입니다. 아무에게나 무슨 부탁을 하기만 하면 사자 굴에 던져진다는 것을 알면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어떻게 달라지겠습니까? 얼마나 분위기가 무섭고 삭막하겠습니까? 마음 놓고 입을 열 수도 없습니다. 무의식중에라도 뭐 좀 달라, 이거 좀 해달라는 말이 튀어나왔다가는 큰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도우면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각자의 능력과 처지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같은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도 멀리 있는 사람이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소금 좀 집어 달라, 감자 좀 전달해 달라, 이런 식으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삶의 기본적인 패턴이 금지되고 불법화된 사회라면 어떤 모습이 되겠어요? 서로 불신의 장막을 치고 사는 가운데 배신과 증오는 증폭되어 그 사회와 모든 구성원이 스스로 파괴될 것입니다. 다니엘을 제거하기 위해 급조된 이 음모가 이런 독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았을까요? 이것이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돌봐야 하는 총리와 방백들이 할 짓인가요?

결국 이러한 음모라는 것이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음모라는 것은 그 생성 동기가 악하고, 그 내용이 악하고, 방법이 악하고, 결과도 악합니다. 음모가 판을 치고 음모로 성공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병든 사회요 악한 사회입니다. 그런 음모에 시달렸던 대통령의 첫 마디가 그런 반칙이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 음모는 수천 년 전 페르시아 왕궁의 권력투쟁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장 대통령이 우리 사회에서 없애고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겠다고 선언할 만큼 이 음모는 우리 사회에 깊이 그리고 광범위하게 침투해 있는 것입니다. 이 음모는 우리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그 음모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고, 또 불행하게도 우리 자신이 그 음모의 창시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또 그 상대방을 규칙대로 해서 이길 수 없을 때, 우리도 얼마든지 음모를 꾸미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악한 음모에 대해서는 그것을 꾸민 총리들과 방백들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그것을 방조한 왕에게도 커다란 책임이 있습니다. 이 음모를 꾸민 자들이 왕을 속이고 허락을 받아내기 위해 이용한 것이 왕의 공명심을 부추기는 것이었습니다. 왕에게만 구할 수 있고 신이든 인간이든 다른 누구에게도 구하는 것을 금한다는 것은 왕이 모든 인간과 신 위에 뛰어난 존재라는 어설픈 주장입니다. 이런 입에 발린 아첨에 그 음모의 실상이나 위험성을 간파하지 못하고 왕이 그만 넘어간 것이지요.

성경은 반복해서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교만하다는 것은 끝장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신경질적으로 교만을 싫어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른 잘못은 용서받을 수도 있지만, 교만했다가는 그야말로 패가망신을 당하게 되는 수가 많습니다. 사울이 모든 사람들 위에 뛰어나고 능력도 출중해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사울이 하나님의 버림을 받게 되었던 때는 그가 교만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적의 공세는 강화되고 군대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을 집전해야 할 제사장이 빨리 도착하지 않았다는 상황의 급박함도 있었지만, 오직 제사장에게만 허락된 제사를 자기가 집전했다는 것은 왕이 되기 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교만함이었던 것이지요. 하나님의 관점에서 교만하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며 반항인 것입니다. 왕이라고 해서 교만해도 된다는 법은 없습니다. 느부갓네살이 교만해서 얼마나 하나님과 다투었습니까? 벨사살이 교만해서 그 결말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리오 역시 음모를 꾸미는 자들의 부추김 속에서 교만에 흠뻑 취해버린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이나 벨사살처럼 자기가 앞장서서 교만해지는 경우도 있고, 다리오의 경우처럼 주변 사람들이 부추겨서 교만해지는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교만하다는 것은 멸망으로 가는 입구입니다. 권력을 둘러싸고 사악한 음모가 진행 중인 것도 모르고 그 부추김에 빠져 다리오는 조서에 서명을 하고 말았습니다. 자기만 존중하고 왕의 권위를 높이는 조서인 줄 착각하고 서명을 했지만, 잠깐 교만하고 우쭐한 사이에 사실은 가장 유능하고 충실한 신하를 잡아 죽이라는 조서, 온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망하게 할 조서에 서명을 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전후 문맥을 잘 살펴보면 다리오가 그렇게 무식하거나 꽉 막힌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간신들의 아첨과 부추김에 그만 완전히 제 정신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사람이 언제 가장 바보되기 쉬운 줄 아세요? 바로 다른 사람들이 부추길 때입니다.

페르시아의 법체계에 대해서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라는 표현이 있군요.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등장한 이 페르시아는 메디아와 페르시아의 연합국입니다. 물론 주 세력은 페르시아입니다. 그러나 페르시아는 늘 메디아를 앞세움으로써 메디아의 위신을 살려주고 소수로서의 불만을 잠재우려 했습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세력이 합해서 하나의 나라를 이루었기 때문에, 둘 사이의 약속이 이 나라의 존립 기반이었습니다. 만약 나중에라도 한쪽이 약속을 깬다면 나라가 깨지는 것이고, 세계를 정복하고 통치하려는 꿈도 깨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두 나라는 한번 정한 약속과 한번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바꿀 수 없다는 단서조항을 서로에게 요구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라는 표현이 나온 것 같군요.

아직도 이 세상에는 어두운 곳에서 음모가 생산되고 있습니다. 반칙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소망하고 목표하는 세상은 반칙이 용납되지 않는 세상입니다. 남을 해치려는 음모는 결국 자신의 무덤이 되고 마는 진리가 구현되는 것입니다. 대통령께서 그런 사회를 만들자고 앞장섰습니다. 우리가 실제 삶으로 화답하고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설령 그런 세상이 실현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세상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대통령을 속이고 반칙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까지 속이고 반칙을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완벽한 음모로 상대방을 제거하고 득세하는 일들이 종종 있을 수 있겠지만, 결국 하나님 앞에 설 때는 그 음모가 자신의 무덤으로 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원수 사탄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날마다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사악하고 두려운 음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어떻게 그런 사악한 음모에서 구원하셨는지를 보면서, 오늘 역시 사탄의 음모를 깨뜨리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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