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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 위의 교회 (마7:24-27)

본문

창립기념일을 마지하여 우리 모두 다시 분명하게 할 일이 있다. 어디 에다 우리의 삶을 세우느냐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무엇을 믿느냐는 것이다. 그 대답에 따라서 삶은 서로 다른 것이 된다. 물론 신자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대답할 것이다. 사실상 우리 모두가 예수를 믿는다고 말한다. 그 러지 않으면 교회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교회의 설립 목적이다.
그렇다면 대답해 보라. 예수를 어느 정도로 믿는가 은행에 있는 돈 만큼 확실히 믿는가 남편이나 아내나 높은 사람 권력 있는 삼촌만큼 믿는가 용한 의사만큼 믿는가 이렇게 질문해 보면 그 대답이 자신이 없어 진다. 정말로 은행의 돈만큼, 남편이나 권력자나 용한 의사만큼 예수로부터 실생활에서 도움을 받고 있는가 아니면 잊어 버리고 사는가
1. 예수는 자신의 몸을 우리에게 주었다 어떤 사람 심장에 이상이 생겼다. 조금만 힘을 쓰면 죽을 것같이 되었다. 그것뿐이 아니다. 실제로 죽어가고 있었다. 병원에서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다가 그에게 행운이 닥쳤다. 어떤 청년이 교통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졌는데 부모가 심장을 기증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자식 몸의 일부 라도 계속 살게 하겠다는 것이다. 곧 심장 수술이 시작되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심장을 제공받은 사람은 바른 정신이 돌아왔다. 뇌에 피가 잘 공급되었기 때문이다. 높은 계단도 문제 없이 뛰어오를 수 있었다. 혈색도 달라졌다. 매사에 용기가 생겼다. 심장을 제공한 청년의 부모는 그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아들의 한 부분을 느끼는 것이다. 둘 사이는 가족 이상의 관계가 된다.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심장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다 받았다. 신자는 자기 속에 그리스도가 들어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언제나 자신이 그리스도와 한 몸임을 주장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모든 축복을 공유할 수 있음도 알게 된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특 별한 것이 된다. 즉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것을 공급하신다. 그리스도의 모든 것은 신자의 속에서 계속된다. 그의 생명, 그의 능력, 그의 사랑과 꿈은 그리스도인 속에 확실히 살아있다.
그러므로 이제 온 세상은 신자에게 복종하게 된다. 믿는가! 천사도 마귀도 모두가 그리스도 에게 복종하듯 신자에게 당할 수 없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더 분명 알 면 알수록 신자 자신도 그 생활도 놀라운 것으로 변하게 된다. 이것이 더 분명해지려면 신자는 외부적인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 사 실을 알려주고 깨닫게 해준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서로를 격 려하고 자기들의 삶으로 서로를 유익하게 한다. 그래서 그들 전체가 다 모여 강한 모임을 형성한다. 이것이 교회이다. 작은 그리스도들은 모여서 온전한 몸을 만든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온전한 그리스도를 보게 한다. 신자들은 이 외형적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으로 더 큰 축복을 받는다. 내면적으로 누리는 그리스도가 이제 외형적으로 더 분명하게 경험된다.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하나님께 예배한다. 교회에 내리는 축복 을 통해서 더욱 자기 속에 그리스도를 잘 알고 그 힘을 누리게 된다. 마 치 아기가 젖을 먹듯, 신자들은 교회에서 하나님의 젖을 받아먹는 것이다. 떼를 지어 사는 동물들을 보라. 그들에게서 이탈은 죽음을 의미한다. 들소떼들이 모여있을 때는 사자들도 어찌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리 저리 몰아쳐서 무리에서 이탈되게 만든다. 그러면 간단히 사자들의 밥이 되어 버린다. 신자가 그리스도의 몸에서 이탈된다면 간단히 마귀의 밥이 된다. 교회를 떠나서 참된 축복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어디 말해보라. 요즘 많은 신자들은 교회에 가지만 교회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무슨 말인가 큰 교회 뒷자리에 앉아서 예배에 참석한다. 좋은 설교를 듣고 훌 륭한 연주를 듣는다. 그리고 돌아온다. 아무 의무도 봉사도 할게 없다. 얼 마나 편한가 그러나 그건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다. 몸은 서로 간에 교제 가 있어야 한다. 머리의 지시대로 힘든 일도 하고 봉사도 해야 한다. 신자가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있다면 개인이 경험할 수 없는 신기한 힘을 더 가지게 된다. 신앙의 성장도 무리에 붙어 있어야 가능하다. 몸은 다른 부분을 위해서 일하면서도움을 받는다. 운동을 하고 필요한 일을 한다. 괴로워도 해야 한다. 그래야 산다. 식탁까지 다리는 움직여야 한다. 음식 먹기 위해서 허리는 불편하다. 그러나 영양을 공급받는 것이다.
2. 예수의 몸에 힘써 참여하라 무엇보다 교회 집회에 열심을 내라고 성경은 말한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관습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5) 힘써서 모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 에 모이는데는 이유가 없다. 길이 막힌다던지 시간이 없다든지 몸이 아프 다든지 그러면 않와도 된다는 말이 없다. 몸에 참여하는 것은 무조건이다. 왜 그런가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기 때문이다. 교회에 가 지 않고 어디서 말씀을 듣겠는가 거기에 가지 않고 어떻게 합심해서 기도하겠는가 거기 가지 않고 어떻게 성도의 교제를 나누겠는가 하나님은 신자 각 사람을 다르게 만드셨다. 받은 은사가 다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라는 모임에 합해야 완전한 힘을 발휘하고 온전해 진다. 이것은 보여지는 말씀 성찬을 통해서 더 분명해 진다. 이제 가끔 우리는 성찬을 나눈다. 그리스도는 떡을 자기 몸이라 하셨다. "내가 영으로 너희 속에 들어가는 것이 이 떡을 나눔과 같다." 그는 자기 몸을 찢듯 떡을 나누어 제자들에게 주셨다. 떡은 그들 속에 들어가서 한 몸이 된다. 다시 그 떡들은 모여서 본래의 완전한 한 덩어리의 떡을 이루어 준다. 이것이 그리스도가 축복해 주시는 방법이다. 내면적으로 우리 속에 들 어와서 한 몸을 이룬다. 그래서 그의 모든 축복이 우리 것이 되게 하신다. 또한 다 모여 그의 외형적인 몸을 이루게 하신다. 우리 각자는 그 몸의 한 부분이다. 손도 있고 발도 있고 눈도 귀도 입도 있다. 안보이는 내장도 혈관도 있다. 모두가 모여서 한 몸을 이루고 서로를 유익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방법은 서로 보완하며 우리에게 하나님의 축복 을 쏟아주신다. 둘 중 하나만 없어도 안된다. 그리스도의 내재하심을 모른 다면 우리는 그의 몸 구실을 할 수 없다. 아무 힘이 몸에 공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바로 들려지지 않고 그것이 삶에 적 용되도록 가르쳐지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복음이 바로 전파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복음은 여러가지 면에서 혼탁한 과정에 있다. 재미있고 감동적인 말씀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빠져 있음을 본다. 아 무리 유명한 교회라도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하신 일이 들려지지 않고 다 른 복음이 들려지면 저주가 있을 것이다. 절대로 축복은 없다. 교회는 다른 기초 위에 서 있어서는 않된다. 오직 예수와 그의 복음 위에 세워져야 한다. 지도자들의 인간적 욕심이 지배해서는 않된다. 그러 한 경우를 주위에서 많이 본다. 안그러도록 우리는 서로 기도해야 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해 주신 일들만이 들려지고 그것으 로 우리의 삶이 힘을 얻어야 한다. 그것으로 훈련되어야 한다.
3. 예수는 말씀의 행동으로 표현된다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반 석은 "말씀을 행하는 것"이다.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견고 한 토대에 세울 수 없다. 잠시 머리에 머물다 말씀은 사라지고 만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어리석은 사람이 누구인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도 행치 않는 사람이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듣는자는 행동하는 자가 되어야지 안그러면 세워놓은 모든 것이 다 무너진다. 백번 들어도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다. 또한 백번 보는 것보다 한 번 행하는 것이 더 낫다. 행하면 직접 경험하며 직접 보며 듣는다. 그리스도의 말씀도 그러하다. 믿으면 본다. 그러나 보기 위해서 믿음은 행동을 요구한다. 누구나 말씀대로 행동하면 반드시 본다. 경험한다. 그래서 그 말씀이 자기 삶의 한 부분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개인이나 교회나 다 반석 위에 서 있는 존재이다.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개인도 교회도 다 말씀을 행동해야 한다. 그 말씀은 그리스도의 말한 것도 같다. 개인도 교회도 그리스도 자 신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그렇게 함으로서 세상을 향해서 살아있는 그리스도로 나타나게 된다. 세상은 우리를 통해 구원의 소식을 접한다. 마태 28:2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 라." 그는 우리 속에 살아있는 말씀으로 계신다. 신자 개개인은 작은 그리스도요 신자 개개인이 모인 교회는 큰 그리스도이다. 세상은 이 두 그리스도를 통해서 빛을 받는다. 그리스도는 신자 개개인 속에 그리고 더 큰 몸인 교회 속에 계신다. 그래서 끝날까지 그의 일을 행하게 하신다. 그리스도의 몸을 온전케 하는 것보다 더 보람된 일이 있던가 작은 몸이 온전케 되기 위해 말씀대로 실행한다. 주위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어 그리스도의 역할을 한다. 또한 큰 몸이 온전케 되기 위해 교회 일에 적극 참여한다. 특별히 교회의 집회에 마치 인도자처럼 협조한다. 교회 행사마 다 앞장서서 그리스도처럼 활동한다. 그렇게 주의 몸은 자란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속에 흐른다. 또한 교회는 그러한 생명체가 모인 몸이다. 절대로 외형적인 기관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살아있는 유기 체여야 한다. 이 사실을 잘 명심하라. 이 모두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움직 여질 때 반석 위에 세워진다. 세상적인 방법과 세상적인 기술에만 의지한 다면 무너지고 만다. 말씀 위에 서서 그 말씀대로 움직이라.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더 큰 축복의 미래를 향해서 달려가 려고 한다. 더 복음을 듣기 위해 열심히 모일 것이다. 그리스도가 나를 위 해서 하신 일들의 내용을 하나도 헛되히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들이 다 내 마음 옥토 밭에 떨어져서 싹이 나고 꽃피고 열매맺게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 앞에 갔던 위대한 축복의 사람들을 열심히 따라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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