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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이 성취되는 예언 (왕하7,12-20)

본문

아합의 아들인 요람 왕은 그 아비 아합왕이 행하던 죄를 또 다시 범하여 백성들로하여금 우상숭배를 하게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로하여금 하나님께 반역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사마리아 성을 아람 군대가 포위하게되었고 이로 인하여 성안에 있는 모든 백성들은 심한 기근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사를 백성들에게 보내어 배고픔을 면게되는 희소식을 전하게됩니다. 7;1절입니다.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 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소망의 예언을 함으로 백성들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런데 이때 이스라엘의 한 장관이 나타나서 엘리사를 향하여 2절 "그 대에 한 장관이 곧 왕이 그 손에 의지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늘에세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엘리사가 가로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먹지는 못하리라" 거침 없이 불신의 소리로 엘리사를 조롱하고 있는 사람은 당시 이스라엘에 지체가 매우 높으신 어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사람이 왕의 장관이란 벼슬만 하지 아니했어도 오늘처럼 이렇게 망녕되이 하나님의 사람의 예언을 비웃고 조롱하지는 아니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의 벼슬과 지위와 모든 학식이 자기 육신을 위하여는 약간의 유익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그의 영은 오히려 그것들 때문에 망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세상으로부터 받는 존경과 경의가 그를 하나님 앞에 오만 불손한 자로 만들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그가 장관이 되지 말고 한 사람의 무식한 농군으로 살았더라면 오늘처럼 이렇게 무례한 불신의 말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엘리사의 예언을 무참히 비웃고 조롱을 할때 엘리사가 저를 향하여 저주의 예언을 하게된 것입니다. 그 결과 이 장관은 비참한 최후를 마치게 됩니다. 오늘 이 장관을 통하여 우리가 은혜를 얻고자하는 말씀의 제목은 반듯이 성취되는 예언 입니다.
1,하나님의 예언을 불신하는 장관 " 왕이 의지할정도면 이 장관의 지위는 대단한 것입니다. 그의 대단한 지위가 결국 그로허여금 하나님의 말슴에 불신을 가지게 했던 것입니다. 장관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의심을 했습니다. 의심하는 순간 하나님의 예언을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이 말의 뜻은 이런 것입니다. "야 거짓 선지자 엘리사야 ! 너는 우매한 백성들은 감언 이설로 속일 수 있을런지 몰라도 절대로 나를 속일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참으로 왕의 장간은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장관의 이 독똑한 머리에 하나님의 말씀이 면박을 받고 있습니다. 외냐하면 왕의 장관의 말과같이 하나님의 예언은 세상이 말하는 합리적 사고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말을 더 신뢰했을까 아니면 왕의 장관인 그의 말을 더 신뢰했을 것인가하는 것입니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엘리사의 말은 전적으로 세상의 합리성 및에 빛을 잃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엘리사의 말보다는 왕의 장관의 말을 더 믿었을 것입니다. 이 강단에서 외쳐지고 있는 모든 말씀이 얼마나 세상의 합리성에 신뢰를 받고 있을까요 롯켓이 하늘을 나는 시대에 유전공학이 판을 치고 있는 시대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했다면 믿어집니까 홍해가 갈라져서 사람들이 바다를 육지같이 건넜다면 믿어집니까 막대기로 반석을 c니까 생수가 쏟아졌다는 말이 사실같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모습으로 성령님으로 처녀의 몸에 잉태되었다는 사실도 믿어지는 일입니까 죽었는데 다시 또 살아 난다니  성경이 합리적이 아니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단지 세상의 합리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오늘 왕의 장관에겐 엘리사의 예언이 있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지금 당장 먹을 것이 없고 또 성 밖에는 아람 군대가 개미색끼 한마리 못빠져 나가게 철통같이 지키고 있으니 내일 이맘 때 양식을 얻는다는 것은 말이 아닙니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왕의 장관은 엘리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 할 때 믿어지지 않는 다고 비웃고 조롱을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유명한 철학자인 헤겔이라는 분의 정의 가운데 "정반합"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는 여러분들이 너무나도 잘알고 있는 이론입니다. 이 "정반합"이란 결국 이간의 이성의 합리성은 불완전하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의 사람들이 다 합리적인 방법을 따라 살고 있는데 어느 한사람도 실패가 없는 삶을 산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뭔가를 처음 시도할 그때는 분명히 합리적인 것이었는데 일이 진척되면서 다시 살피니 덜 합리적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예언을 비웃고 조롱하고 있는 이 왕의 합리성이 과연 성경보다 더 합리적이었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 하나님게서 홍해가 갈라져 사람들이 건늘것을 말했을 때 사람들은 믿을 수 없었으나 분명한 것은 홍해는 육지 같이 갈라졌습니다. 반석을 치면 물이 나오는 사건도 마찬가지 입니다. 분명히 반석에서 물이 나왔습니다. 그것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먹고도 남을 물이 철철 흘러 넘쳤습니다. 예수님게서 성령님으로 처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셨고 또 죽은지 삼일만에 다시 살아 나신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이렇게 하시는 모든 말씀이 세상의 합리성에 상반대는 것들이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예언은 성취가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먹고 있는 음식을 우리들이 다 이해를 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이 먹고 있는 음식이 건강을 줄것이라는 믿음이 나를 이렇게 건강하게 만 들고 있음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다 이해가 되질 아니하더라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기만 하시면 내 영을 건강케 하시는 것입니다. 절대로 의심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100 % 아멘으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2,불신은 용서받지 못함의 원인이다.
1),불신은 모든 죄에 관계가 있습니다. 불신이 관여되지 않은 죄는 하나도 없습니다. 인류의 모든 죄는 불신 때문에 생겨진 것들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간교한 뱀의 말을 들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했기 때문입니다.
2),불신은 계속적인 죄의 매개체가 됩니다. 만일 성경에 어떠한 귀절이라도 불신을 하게되면 즉시 사탄은 그 심령에 역사를 하게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보하는 심령에는 사탄이 틈탈 여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불신은 즉시 제거하지 못하면 살아 있는 씨앗과 같아서 점점 더 튼 불신으로 자라가는 특성이 있습니다.
3),불신의 말로는 비참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에덴 동산을 마음에 상상만 해 보십시요. ㅇ 얼마나 아릅답습니까 그러나 그 아름다움도 불신의 씨앗이 뿌려지면 비참한 결과로 전락되고 맙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 좋던 에덴을 좇겨나고 가시와 엉컹퀴가 도사리고 있는 곳에서 땀을 흘리면서 살다가 죽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일점일획이라도 변개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만으로 살아 가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반듯이 성치되는 예언 " 1절입니다.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왕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 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 고 엘리사가 예언을 했을 때 누가 이를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왕의 한 장관의 말과같이 하나님게서 하늘의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지금까지 없어떤 양식인데 어찌 내일이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16절입니다. "백성들이 나가서 아람 사람들의 진을 노략한지라 이에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이 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이 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고 " - 분명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아람 사람들이 허겁지겁 도망을 가느라고 금이며 은이며 옷이며 장막이며 병거며 말이며 모든 귀한 것들을 고스란히 남겨두고 갔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아람 사람들은 참으로 많은 것을 가져다 놓고 가 버렸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의 예언은 너무나도 정확하게 성취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100 %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100 %의 이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불신한 사람에게도 100 %의 성취가 있었습니다. 18-19절의 말씀입니다. "일찌기 하나님의 사람이 왕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내일 이맘 때에 사마리아 성분에서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한 즉 그 때에 이 장관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랴 하매 대답하기를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였더니 " 라고 한 예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한 사람에게도 100 % 저주가 내렸습니다. 17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왕이 그 손에 의지하였던 그 장관을 세워 성문을 지키게 하였더니 백성이 성분에서 저를 밟으매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죽었으니 곧 왕이 내려 왔을 때에 그의 한 말대로라" 얼마나 무서운 예언의 성취입니까 17절 하반절에 이렇게 단서를 첨부했습니다. ".죽었으니 곧 왕이 내려 왔을 때에 그의 한 말대로라"는 말입니다. 왕의 장관이 언제 죽었다는 것입니까 왕과함께 있을 때에 죽었다는 말입니다. 왕의 장관으로 있을 때에 죽었다는 말입니다. 그러서 저는 생각을 달리 해 보았습니다. 이 사람이 차라리 왕의 장관이 아니었더라면 오늘에 기쁜 날에 백성들과 함께 즐거웠을 텐데 왕의 장관이었기에 그런 기쁨에 동참치도 못하고 이렇게 비참한 죽음을 보는구나 하고  학문을 닥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지위가 올라가는 것을 싫어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나라의 장관이 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많이 가진자가 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 가지지 말라가 아니고 가졌을 때 우리들은 더 많은 믿음의 조심을 하여야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죽은 장관이 왕과 함께 있을 때 그 때에 그가 한 말을 검토해 보면 그의 말들은 다 왕의 비위를 마추기 위한 말들이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결국 그 왕을 닮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왕을 닮으니 또한 그런 비참한 최후를 마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평소에 좀 힘이 들고 어렵더라도 왕을 하나님게서 인도하는 방면으로 힘을 써ㅅ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가 가진실력과 그가 얻은 신망으로 여호와를 위한 삶을 사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람은 누구나 다 왕처럼 될 인간 타락의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었을 가지기 전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합니다. 우리가 무었이 되기 전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해야합니다. 그리고 세상이 말하는 것을 가졌을 때 또 세상에 뭔가가 되었을 때는 만만 조심 조심 살아야합니다. 날마다 기도하는 시간을 늘릴려고 힘써야합니다. 매일 말씀 상고하는 시간을 늘려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예언의 말씀은 반듯이 성취됩니다. 평소에 내게서 기도하는 시간이 줄고 있는지를 살펴야합니다. 내게서 말씀 사랑하는 시간이 줄어지고 있지 않나를 날마다 점검을 하셔야합니다. 그리고 현재 내가 처해 있는 환경을 놓고 비관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현재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못하고 살고 있는 나를 질책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날마다 자기를 쳐서 복종케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 될 수 있었던 것과 같이 여러분 모두가 다 반듯이 성취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아멘만으로 사시는 은혜의 사람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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