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받은 은혜 (롬15:14-18)
본문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 가 되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그를 믿음으로 가능 합니다. 이 길 말고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세상에 기적적인 일들이 혹 많이 있겠 습니다만 기적 중에 기적은 내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나와 여러분을 육신적으로 보고 말하지 않고 새로운 피조물 된 영의 사람으로 우리를 보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것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다 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제부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의 자녀가 되었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증거를 가지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 증거를 에베소서 5장 9절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 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착함과 의로 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다 면 우리는 분명히 빛의 자녀들이라는 말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빛의 열매가 있어 야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에게 전에는 성품이 추하고 악하고 괴팍스러웠는데 예수 믿고 착해지셨습니까! 전에는 불의하고 더럽고 추했는데 이제는 의로워 지셨습 니까! 전에는 거짓말도 잘하고 남을 속이는 일도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잘 했지 만 이제는 진실해 졌습니까! 그래서 선을 도모하기 위하여 할 수 없이 거짓말을 했을지라도 가슴이 벌떡 벌떡 뛰고 얼굴이 달아오르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분명히 빛의 자녀들로서 마땅히 있어야 할 빛의 열매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심정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들이 되었다면 그리스도 예수의 심정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누가복음 9장에서 예수님의 심정과 제자들의 심정을 비교하여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사마리아를 경유하여 올라가시려고 하 셨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있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의 숙식은 물론하고 그곳 에 머무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고 거절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예수님께서 그들에 게 문전 박대를 당하셨다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 점을 이해합니다. 사마리아는 B. C 723년 앗수르에 의해 정복된 후 앗수르의 혼혈정책과 혼합종교정책에 선 민으로서의 순수 정통성을 상실하게 된 지역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 아인들을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고 이에 격분한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증 오해서 예루살렘 성전에 예배하러 가는 자들을 살해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박대 당하시는 것을 보자 제자 중에 야고보와 요한은 너무나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하여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조금 비약적으로 말씀드린다면 복음도 받지 않고 예수님도 거절하는 그런 인간들은 벼락을 맞아 죽게 할까요!"라는 말일 것입니다. 이것이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영적인 일을 하면서 감정적이고, 혈기로 해결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연약한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혈기 를 부리고 감정적으로 일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꾸짖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각주에 보니 "너희는 무슨 정신으로 말하는지 모르는 구나 인자는 사람의 생명을 멸하러 온 것이 아니요, 구하러 왔노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심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속에는 요한과 야고보를 닮은 데가 많이 있는 것을 느낍니다. 여러 번 복음을 전해도 듣지 않으면 감정이 생깁니다. 노골적으로 예수를 모독하며 듣기를 거부하면 저주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입니다. 요한처럼 하늘 에서 당장 불이라도 떨어져 망하는 것을 보았으면 좋겠다는 잔인한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만일에 이런 마음이 우리 속에 조금이라도 보이거든 뿌리째 뽑아 버려 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것이 전도자의 태도요, 하나님의 자녀들의 마음 자세입니다. 예수님의 마음 중에 대표적인 것은 사랑이 충만한 심정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순종하는 자녀들만 사랑하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밖에 있는 길 잃은 한 마리의 양도! 허랑방탕하는 탕자도! 불순종하여 목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녀들도 동일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 의 심정입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소유해야 합니다. 이 사랑은 성령님의 은혜를 입 어야 합니다.(롬5:5). 그리고 예수님은 오래 참으시려는 심정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오래 참으심은 그의 무궁한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은혜입니다. 어느 정도 참으시는 하나님인가 하 면 우리가 전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오래 참으십니다.(롬2:4) 세례요한은 이스라 엘 백성을 향해 지금 당장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다고 경고했으나 그가 말한 대로 심판이 임한 것은 그후 40년이 지나서였습니다. 또 하나님은 예수를 십자가 에 못 박아 죽인 악한 무리들을 향해서도 35년 가까이 참으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 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겔 18:23). 우리가 예수의 증인이 되려면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심령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기대하시는 심정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지금은 마음을 열지 않 지만 훗날에는 반드시 믿으리라 하는 소망을 가지고 사마리아인들을 보셨다는 말씀입니다. 보십시오. 그로부터 불과
2,3년 후에 전도자 빌립을 통해 가을 바람에 타오르는 산불처럼 번진 사마리아 지방의 부흥을 우리는 기억합니다(행 9:31). 다시 말씀 드리는데 예수님은 절망의 눈으로 사람을 보시지 않습니다. 아무리 악 한 자라도 예수님은 그에 대해 소망을 두고 바라보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전 도는 누가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심정을 소유한 사람이 가능한 것입니다. 값없는 은혜!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내게 주신 은혜"라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은 혜라는 말은 예수 믿은 사람들은 누구나 제일 많이 사용하는 단어일 뿐 아니라 가 장 사모하는 단어 일 것입니다. 15절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인 하여 더욱 담대히 대강 너희에게 썼노니."라는 말씀입니다. 은혜라는 말은 전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값없이 엄청난 선물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은혜 받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자기는 자격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둘째는 아무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나 과분한 것을 공짜로 얻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기서 과분한 것은 구원의 은혜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은혜요, 더 나아가서 교회에서 얻은 직분이요, 사회적 으로 우리가 받은 일반적인 은총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은혜 받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늘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노라." (롬3:24) 모든 것을 은혜로 되었다고 기뻐하며 감격해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머물면 안됩니다. 바울이 받은 은혜를 좀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곳이 16절입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 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라는 것입니다. 구원받게 하신 은혜만도 가 슴이 벅차 견딜 수 없는데 나를 복음을 전하는 자로 특별히 불러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바울과 우리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바울 은 평생을 이방인들을 찾아다니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해야 될 특별한 직분을 받은 사도입니다. 우리는 사도는 아닙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바울이 받은 것처럼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맡기셨고 전하라고 하는 명령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 같은 점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 어떤 특정한 사람만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이 자리에 계시면 하나님의 말씀 을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니 생각을 고치시기 바랍니다. 바울에게 주신 사명은 나에 게도 주셨다고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은혜 중에 은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의 일군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16절 중반 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일군은 노예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 성경에 보면 일군을 "minister"라 고 번역하였습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는 장관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이요, 성직자 를 의미할 때 쓰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인이 마음에 들어서 자기 일을 맡기는 사람을 말합니다. 좀더 풀어 말씀드리면 나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주셨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 의 마음에 들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복음 전하는 일은 결단코 하찮은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요, 복음을 들고 전하는 사람이 거룩한 사람 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일은 바로 거룩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의 일군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받은 은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전도가 은혜라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는 증 표가 아닙니까!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을 생각해 보십시오, 마4:19에 보면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기 위해서 부르셨 지 않습니까! 왜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성령님의 권능을 주시고 싶어하십니 까!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까!(행1:8) 우리는 성경 전체를 놓고 볼 때에 하나님께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이 무엇 인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죽은 자를 구원하는 전도요, 선교인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으면 영원히 멸망하고 마는데! 그런 사람들이 지금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은데, 내가 주님의 일에 태만이 하고, 하나님을 만홀이 여기는 순간에도 시간은 지나가고, 영혼은 죽어 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이 일만큼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 전하는 일꾼으로 부름을 받았다면 이것은 영광이요, 은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나 같은 것이 어떻게 그런 귀한 일을 하게 되었는가 생각해 보면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습니까! 이 신앙 정신 때문에 바울은 감옥에 갇혀서도 하나님을 찬양 할 수 있었습니다. 배가 고파도 이 감격 때문에 몸을 떨었습니다. "이렇 게 중요한 일을 나에게 맡기셨다니.!" 하면서 그의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복음을 위하여 산 것입니다. 참으로 돌이켜 보면 우리가 택함 받았다고 하는 일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에서는 미워하시고 야곱은 택하여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야곱 같은 자가 아닙니 까! 모든 사람을 다 택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을 부르 셨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에게 이 복음 전하는 일을 맡기셨는데 그 속에 내 가 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영광이요, 은혜입니까! 그래서 전도가 은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맡겨도 되겠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우리요, 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우리를 인정하셨다는 말입니다. 아무 자격 없는 우리를!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하나님께서 그만큼 인정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복음의 제사장 직무 그리고 16절 중반 절에 "복음의 제사장의 직무를 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 전하는 일은 아주 신령한 제사라는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려면 제사장이 있어야 합니다. 제단에 제물 바치는 일을 제사장이 합니다. 다시 말하면 제사장은 바로 나와 여러분이요, 제물은 불신자, 이방인을 말합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목하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죄인을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화목케 하는 말씀까지 우리에게 주셨다고 하십니다.(고후5:19) 복음입니다. "예수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예수 믿으면 모 든 죄를 사함 받고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게 됩니다. 오직 예수님이 그 길입니다.!" 라고 하면서 그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데리 고 나가는 것이 전도입니다. 만일에 여러분이 금번 기회에 태신자에게 전도하여 교회에 데리고 오셨다면! 그래서 그 사람이 믿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제일 좋은 제물로 제사를 드리신 것 입니다. 불신 남편을 아내가 열심히 전도하여서 예수 믿게 하였다면 아내는 그 남 편을 제물로 삼아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드리는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자 식이 아버지를 전도하여 주님께로 인도하였다면 그 아들은 아버지를 제물로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드리는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제사장입니다.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라고 하셨습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제사장은 아무나 할 수 없었습니다. 아론과 그 아들들(나답, 아 비후, 엘르아살, 이다말)만 제사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출28:1,2) 제사장은 전능하 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높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받들어 섬기는 직분입니다.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래서 제사장은 하나님께 인정하시고 부르신 사람 아니면 아 무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번은 웃시야라는 왕이 하나님의 은혜로 나라가 부강해지고 평안해 지자 그만 교만해 졌습니다. 그래서 성전으로 들어 가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자기가 하겠다고 제단에 제물을 드리다가 문둥병이 된 사건이 나옵니다. 구약시대에는 그 런 제사장의 자리를 넘보는 자를 하나님은 가만히 두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함 부로 될 수 없는 제사장의 직분을 우리에게 맡겨 주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은 혜냐는 것입니다.
벧전2:9 이하에 우리를 가리켜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왕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신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복음을 전하라고 왕같은 제사장 삼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너무나 고귀한 직분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전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우리를 세 워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런 제사장이 되었다는 의식이 투철 할 때 전도의 열정이 생겨 나는 것입니다. 왕같은 제사장의 축복 이제 끝으로 왕같은 제사장! 복음의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며 사는 자에게 축복 하여 주십니다. 그 축복은 18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 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님의 능력으로 역사 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 니하노라" 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는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은혜를 반드시 주신다는 것입니다. 복음서는 이것을 우리에게 잘 증명해 주고 있는 책들입니다. 복음을 전할 때! 앉 은뱅이가 일어났습니다. 눈먼 자가 눈을 떴습니다. 귀신들린 자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사도행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님의 능력은 사도들과 성도들이 복음 전하는 현장에서 가장 많이 일어났습니다.
막16:15절에 보면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라고 하시면서 17절에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믿는 자 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 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 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이 능력이 나타나리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곳에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에 연청에서 캄보디아를 단기 선교하였을 때 그렇게 문제를 일으켜서 집에 서도 내어놓고 교회에서도 내어놓았던 청년이 선교 현장에서 복음이 전하여 질 때 에 나타났던 성령님의 강한 역사로 완전히 깨어져서 이제 선교지에서 살겠다고 하였 다는 간증을 우리가 들었습니다. 부모도 못 고치는 자식! 선생님도 바르게 못하던 자식! 그야말로 아예 포기해 버린 젊은이가 예수 믿고 변화되어 새롭게 변화된 것 입니다. 이런 일들이 복음이 전하여지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특혜인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 하는 사람들은 자랑거리가 많게 되고! 간증거리가 많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대선의 성도 여러분! 아무나 할 수 없는 제사장! 전능하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영광스러운 일을 하는 제사장의 직분을 받았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흡족해 하시는 제물로 제사를 드리는 영광을 우리가 누려야 하겠습니다.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제사장 삼아 주셨으니! 천사 도 흠모하는 이 일을 나에게 맡겨주셨으니 우리 대선의 모든 성도들이 힘써 전도 하여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특혜를 누리시기를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그렇다면 빛의 열매가 있어 야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에게 전에는 성품이 추하고 악하고 괴팍스러웠는데 예수 믿고 착해지셨습니까! 전에는 불의하고 더럽고 추했는데 이제는 의로워 지셨습 니까! 전에는 거짓말도 잘하고 남을 속이는 일도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잘 했지 만 이제는 진실해 졌습니까! 그래서 선을 도모하기 위하여 할 수 없이 거짓말을 했을지라도 가슴이 벌떡 벌떡 뛰고 얼굴이 달아오르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분명히 빛의 자녀들로서 마땅히 있어야 할 빛의 열매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심정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들이 되었다면 그리스도 예수의 심정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누가복음 9장에서 예수님의 심정과 제자들의 심정을 비교하여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사마리아를 경유하여 올라가시려고 하 셨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있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의 숙식은 물론하고 그곳 에 머무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고 거절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예수님께서 그들에 게 문전 박대를 당하셨다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 점을 이해합니다. 사마리아는 B. C 723년 앗수르에 의해 정복된 후 앗수르의 혼혈정책과 혼합종교정책에 선 민으로서의 순수 정통성을 상실하게 된 지역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 아인들을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고 이에 격분한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증 오해서 예루살렘 성전에 예배하러 가는 자들을 살해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박대 당하시는 것을 보자 제자 중에 야고보와 요한은 너무나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하여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조금 비약적으로 말씀드린다면 복음도 받지 않고 예수님도 거절하는 그런 인간들은 벼락을 맞아 죽게 할까요!"라는 말일 것입니다. 이것이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영적인 일을 하면서 감정적이고, 혈기로 해결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연약한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혈기 를 부리고 감정적으로 일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꾸짖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각주에 보니 "너희는 무슨 정신으로 말하는지 모르는 구나 인자는 사람의 생명을 멸하러 온 것이 아니요, 구하러 왔노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심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속에는 요한과 야고보를 닮은 데가 많이 있는 것을 느낍니다. 여러 번 복음을 전해도 듣지 않으면 감정이 생깁니다. 노골적으로 예수를 모독하며 듣기를 거부하면 저주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입니다. 요한처럼 하늘 에서 당장 불이라도 떨어져 망하는 것을 보았으면 좋겠다는 잔인한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만일에 이런 마음이 우리 속에 조금이라도 보이거든 뿌리째 뽑아 버려 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것이 전도자의 태도요, 하나님의 자녀들의 마음 자세입니다. 예수님의 마음 중에 대표적인 것은 사랑이 충만한 심정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순종하는 자녀들만 사랑하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밖에 있는 길 잃은 한 마리의 양도! 허랑방탕하는 탕자도! 불순종하여 목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녀들도 동일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 의 심정입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소유해야 합니다. 이 사랑은 성령님의 은혜를 입 어야 합니다.(롬5:5). 그리고 예수님은 오래 참으시려는 심정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오래 참으심은 그의 무궁한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은혜입니다. 어느 정도 참으시는 하나님인가 하 면 우리가 전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오래 참으십니다.(롬2:4) 세례요한은 이스라 엘 백성을 향해 지금 당장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다고 경고했으나 그가 말한 대로 심판이 임한 것은 그후 40년이 지나서였습니다. 또 하나님은 예수를 십자가 에 못 박아 죽인 악한 무리들을 향해서도 35년 가까이 참으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 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겔 18:23). 우리가 예수의 증인이 되려면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심령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기대하시는 심정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지금은 마음을 열지 않 지만 훗날에는 반드시 믿으리라 하는 소망을 가지고 사마리아인들을 보셨다는 말씀입니다. 보십시오. 그로부터 불과
2,3년 후에 전도자 빌립을 통해 가을 바람에 타오르는 산불처럼 번진 사마리아 지방의 부흥을 우리는 기억합니다(행 9:31). 다시 말씀 드리는데 예수님은 절망의 눈으로 사람을 보시지 않습니다. 아무리 악 한 자라도 예수님은 그에 대해 소망을 두고 바라보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전 도는 누가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심정을 소유한 사람이 가능한 것입니다. 값없는 은혜!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내게 주신 은혜"라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은 혜라는 말은 예수 믿은 사람들은 누구나 제일 많이 사용하는 단어일 뿐 아니라 가 장 사모하는 단어 일 것입니다. 15절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인 하여 더욱 담대히 대강 너희에게 썼노니."라는 말씀입니다. 은혜라는 말은 전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값없이 엄청난 선물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은혜 받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자기는 자격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둘째는 아무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나 과분한 것을 공짜로 얻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기서 과분한 것은 구원의 은혜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은혜요, 더 나아가서 교회에서 얻은 직분이요, 사회적 으로 우리가 받은 일반적인 은총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은혜 받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늘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노라." (롬3:24) 모든 것을 은혜로 되었다고 기뻐하며 감격해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머물면 안됩니다. 바울이 받은 은혜를 좀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곳이 16절입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 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라는 것입니다. 구원받게 하신 은혜만도 가 슴이 벅차 견딜 수 없는데 나를 복음을 전하는 자로 특별히 불러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바울과 우리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바울 은 평생을 이방인들을 찾아다니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해야 될 특별한 직분을 받은 사도입니다. 우리는 사도는 아닙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바울이 받은 것처럼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맡기셨고 전하라고 하는 명령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 같은 점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 어떤 특정한 사람만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이 자리에 계시면 하나님의 말씀 을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니 생각을 고치시기 바랍니다. 바울에게 주신 사명은 나에 게도 주셨다고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은혜 중에 은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의 일군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16절 중반 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일군은 노예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 성경에 보면 일군을 "minister"라 고 번역하였습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는 장관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이요, 성직자 를 의미할 때 쓰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인이 마음에 들어서 자기 일을 맡기는 사람을 말합니다. 좀더 풀어 말씀드리면 나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주셨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 의 마음에 들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복음 전하는 일은 결단코 하찮은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요, 복음을 들고 전하는 사람이 거룩한 사람 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일은 바로 거룩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의 일군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받은 은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전도가 은혜라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는 증 표가 아닙니까!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을 생각해 보십시오, 마4:19에 보면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기 위해서 부르셨 지 않습니까! 왜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성령님의 권능을 주시고 싶어하십니 까!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까!(행1:8) 우리는 성경 전체를 놓고 볼 때에 하나님께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이 무엇 인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죽은 자를 구원하는 전도요, 선교인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으면 영원히 멸망하고 마는데! 그런 사람들이 지금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은데, 내가 주님의 일에 태만이 하고, 하나님을 만홀이 여기는 순간에도 시간은 지나가고, 영혼은 죽어 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이 일만큼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 전하는 일꾼으로 부름을 받았다면 이것은 영광이요, 은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나 같은 것이 어떻게 그런 귀한 일을 하게 되었는가 생각해 보면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습니까! 이 신앙 정신 때문에 바울은 감옥에 갇혀서도 하나님을 찬양 할 수 있었습니다. 배가 고파도 이 감격 때문에 몸을 떨었습니다. "이렇 게 중요한 일을 나에게 맡기셨다니.!" 하면서 그의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복음을 위하여 산 것입니다. 참으로 돌이켜 보면 우리가 택함 받았다고 하는 일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에서는 미워하시고 야곱은 택하여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야곱 같은 자가 아닙니 까! 모든 사람을 다 택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을 부르 셨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에게 이 복음 전하는 일을 맡기셨는데 그 속에 내 가 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영광이요, 은혜입니까! 그래서 전도가 은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맡겨도 되겠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우리요, 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우리를 인정하셨다는 말입니다. 아무 자격 없는 우리를!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하나님께서 그만큼 인정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복음의 제사장 직무 그리고 16절 중반 절에 "복음의 제사장의 직무를 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 전하는 일은 아주 신령한 제사라는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려면 제사장이 있어야 합니다. 제단에 제물 바치는 일을 제사장이 합니다. 다시 말하면 제사장은 바로 나와 여러분이요, 제물은 불신자, 이방인을 말합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목하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죄인을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화목케 하는 말씀까지 우리에게 주셨다고 하십니다.(고후5:19) 복음입니다. "예수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예수 믿으면 모 든 죄를 사함 받고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게 됩니다. 오직 예수님이 그 길입니다.!" 라고 하면서 그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데리 고 나가는 것이 전도입니다. 만일에 여러분이 금번 기회에 태신자에게 전도하여 교회에 데리고 오셨다면! 그래서 그 사람이 믿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제일 좋은 제물로 제사를 드리신 것 입니다. 불신 남편을 아내가 열심히 전도하여서 예수 믿게 하였다면 아내는 그 남 편을 제물로 삼아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드리는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자 식이 아버지를 전도하여 주님께로 인도하였다면 그 아들은 아버지를 제물로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드리는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제사장입니다.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라고 하셨습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제사장은 아무나 할 수 없었습니다. 아론과 그 아들들(나답, 아 비후, 엘르아살, 이다말)만 제사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출28:1,2) 제사장은 전능하 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높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받들어 섬기는 직분입니다.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래서 제사장은 하나님께 인정하시고 부르신 사람 아니면 아 무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번은 웃시야라는 왕이 하나님의 은혜로 나라가 부강해지고 평안해 지자 그만 교만해 졌습니다. 그래서 성전으로 들어 가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자기가 하겠다고 제단에 제물을 드리다가 문둥병이 된 사건이 나옵니다. 구약시대에는 그 런 제사장의 자리를 넘보는 자를 하나님은 가만히 두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함 부로 될 수 없는 제사장의 직분을 우리에게 맡겨 주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은 혜냐는 것입니다.
벧전2:9 이하에 우리를 가리켜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왕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신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복음을 전하라고 왕같은 제사장 삼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너무나 고귀한 직분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전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우리를 세 워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런 제사장이 되었다는 의식이 투철 할 때 전도의 열정이 생겨 나는 것입니다. 왕같은 제사장의 축복 이제 끝으로 왕같은 제사장! 복음의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며 사는 자에게 축복 하여 주십니다. 그 축복은 18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 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님의 능력으로 역사 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 니하노라" 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는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은혜를 반드시 주신다는 것입니다. 복음서는 이것을 우리에게 잘 증명해 주고 있는 책들입니다. 복음을 전할 때! 앉 은뱅이가 일어났습니다. 눈먼 자가 눈을 떴습니다. 귀신들린 자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사도행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님의 능력은 사도들과 성도들이 복음 전하는 현장에서 가장 많이 일어났습니다.
막16:15절에 보면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라고 하시면서 17절에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믿는 자 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 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 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이 능력이 나타나리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곳에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에 연청에서 캄보디아를 단기 선교하였을 때 그렇게 문제를 일으켜서 집에 서도 내어놓고 교회에서도 내어놓았던 청년이 선교 현장에서 복음이 전하여 질 때 에 나타났던 성령님의 강한 역사로 완전히 깨어져서 이제 선교지에서 살겠다고 하였 다는 간증을 우리가 들었습니다. 부모도 못 고치는 자식! 선생님도 바르게 못하던 자식! 그야말로 아예 포기해 버린 젊은이가 예수 믿고 변화되어 새롭게 변화된 것 입니다. 이런 일들이 복음이 전하여지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특혜인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 하는 사람들은 자랑거리가 많게 되고! 간증거리가 많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대선의 성도 여러분! 아무나 할 수 없는 제사장! 전능하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영광스러운 일을 하는 제사장의 직분을 받았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흡족해 하시는 제물로 제사를 드리는 영광을 우리가 누려야 하겠습니다.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제사장 삼아 주셨으니! 천사 도 흠모하는 이 일을 나에게 맡겨주셨으니 우리 대선의 모든 성도들이 힘써 전도 하여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특혜를 누리시기를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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