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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넝쿨의 교훈 (욘4:5-11)

본문

최근의 가뭄으로 온 나라가 가뭄의 극복을 위하여 힘쓰고 있습니다.한국기독교 교회협 의 회에서도 가뭄극복을 위한 기도운동을 펼치자고 전국교회에 부탁했습니다. 어떤 불신자들은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다면 왜 이런 가뭄 같은 이상기후로 인간에 게 고통을 주느냐고 반문을 하기도 합니다.그러나 기상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이런 이상 기온의 원인은 공해와 자연파괴로 인한 대기질서의 불균형에서 생긴다고 합니다. 결국은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린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자초한 셈이 된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질문하기를 하나님은 왜 아프리카사람들을 저렇게 굶어죽게 만드시 냐고 말합니다.그러나 여러분 사실 유럽이나 구라파에서 개나 동물들이 먹는 음식만 가 지고도 아프리카사람들을 구하고도 남는다고 합니다.모든 정치적인 이유들을 뛰어넘어 서 인류가 서로 돕는다면 넉넉히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 스스로 희생하며 돕기보다는 하나님께 원망하고 책임을 전가시키는 지혜롭지 못 한 질문입니다. 바로 요나가 이와 같이 비슷한 의문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왜 저 니느훼 성의 악인들을 멸망하시지 않으실 까.분명 하나님은 살아 계신데 악인들이 잘되는 것 을 하나님은 왜 보고만 계실까 하는 의문입니다.우리는 지난주에 이런 마음으로 화가 났던 요나의 기도를 들었습니다.얼마나 화가 나고 낙심했든지 차라리 죽고 싶다고 했었 습니다.오늘 본문에서는 이런 요나를 하나님은 박넝쿨을 통해서 설득을 하셨습니다 먼저 4:5절을 보십시다. 기도를 마친 후에 요나는 어디로 갔습니까.니느훼성의 동편 높은 곳으로 올라갔습니다.그리고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 위하여 나무와 풀들을 대충 걸쳐서 초막을 지었습니다.왜 그랬다고 했습니까.그 성이 어떻게되는지 보려고 초막을 지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볼 때 얼마나 앗수르사람들을 요나가 미워했는지 짐작이 갑니다.분명히 3:10에서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지 않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그래서 요나도 화가 났었 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나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자신의 임무도 끝났고 니느훼성의 회개로 심판을 철회하신 하나님의 뜻도 확인했고 이제는 낮선 이방 땅에 있어야할 이유 가 없습니다.고향인 이스라엘로 돌아가서 선지자의 사역을 감당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요나는 고향으로 가지 않고 니느훼성 높은 곳에다 초막을 짓고 그 성이 어떻 게 되는지를 보려하고 있는 것입니다.그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혹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다시 그 뜻을 돌이키실 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 성이 멸망할 테니 결과를 구경해보자는 것입니다. 사실 요나의 생각과 기도는 참으로 이기적인 기도였습니다,그 성에는 약 12만 여명이 있다고 했습니다.아이와 여자들까지 합치면 60여만 명도가 되는 거대한 도시입니다. 올림픽 주경기 장에 꽉 들어찬 군중의 6배 정도의 사람들입니다.그 사람들에게 재앙 을 내려 달라는 것입니다.사실 요나는 바로 얼마전 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살려달라는 기도를 했었던 사람입니다.2:2에서 그는 기도하기를 이 죽음의 뱃속에서 건져달라고 간 절히 기도했었습니다.자기 생명은 중한 줄 알면서 60여만 명의 남녀노소 생명은 귀한 줄 모르고 하나님의 심판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남이야 어떻든 자신의 목적만 이루 어달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2-3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 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정욕으로 지기의 이익만을 채우기 위한 기도는 응답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기도의 본질적인 의미가 어디 있습니까.기도는 내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는 신앙고백의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의지하는 사람,자신을 과신하는 사람,자신 스스로의 능력을 의지하는 사람은 결코 진정한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한다해도 그것은 형식적인 기도 일 뿐입니다.다른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제 경우의 예를 들면 저는 설교를 준비하 기 전에 꼭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저는 주님이 필요합니다.제가 아무리 좋은 설교를 준비한들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람의 귀에 들리는 한낮 소리에 불과 할 뿐입니다.성령님의 감동 없이는 전혀 불가능하오니 지혜와 감동으로 이끌어 주옵소서. 우리는 기도하지 않아도 세상사람들과 같이 아무일 없이 순조롭게 살 수도 있습니다. 기도 없이도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도 있습니다.기도 없이도 한 주간 아무일 없 이 지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즈음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때때로 이런 생각을 합니다. 특별히 기도하지 않았 어도 아무일 이 없으니 구태여 철야하고 밤을 새며 기도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그러나 여러분 여기에 무서운 함정이 있습니다.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말로는 주님을 의지한다고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찬송하지 만 실제는 자신의 능력과 세상을 의지하는 것입니다.기도하지 않는 사람의 깊은 심중에는 어떤 생각이 있습니까.자신의 인생에서 진정 필요하며 도움을 주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능력이요,물질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날 갑자기 일년에 한 두번씩 40일 금식기도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모 든 삶 가운데 하루하루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며 의지하며 사는 겸손한 신앙을 축복하 십니다.내가 능력이 없어서,필요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겠기에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욕심을 이루어야 겠기에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기도는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 의 가장 본질적인 신앙고백의 자세입니다. 여러분 지금 내가 생명을 얻어 지금 숨을 쉬고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닙 니까.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우리는 모든 것이 본질적으로 불가능합니다.여러분은 하루 중 언제 기도하고 있습니까.어떤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이제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 요 주님 오늘도 주님의 인도가 필요합니다.오늘 하루의 삶도 이끌어 주옵소서. 오늘도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원합니다. 여러분이 이 기도를 하기 위한 시간 은 30초면 충분합니다.저는 정말 이렇게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날마다 여러분과 저의 기도생활이 성숙하기를 축원합니다.
 4:6을 보십시다. 요나의 초막은 곧 시들기 시작했습니다.나뭇잎이 마르고 그 사이 사이로 햇빛이 들어 왔습니다.그렇지 않아도 화가 나있던 요나의 불쾌지수는 점점 더 높아갑니다.이리 피하 고 저리 피했지만 뜨거운 태양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중동지방은 매우 덮지만 습도가 없어서 그늘에 가면 시원하다고 합니다.그늘이 없는 뜨거운 뙤약 볕에 앉아 있는 것이 얼마나 곤혹스러운 일입니까.이 때 하나님께서는 박넝쿨을 준비하셨습니다.그 넓은 잎 들로 요나의 초막을 덮게 하셔서 시원하게 해주셨습니다.그로 말미암아 요나는 화가 풀 렸고 매우 기뻐했다고 했습니다.우리는 이 본문에서 인간을 인격적으로 대하시는 인애 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또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보실 때 요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닙니다.하나님은 절대자이신 창조 자이십니다.그분은 어느 피조물의 간섭과 영향을 받지 않으십니다.하나님은 그분의 의 지와 계획을 실천하시는데 있어서 누구의 제약도 받지 않으시며 모든 일들을 주권적으 로 역사 하는 분이 십니다. 영원이전 부터 계시고 영원까지 존재하셔서 당신의 뜻대로 우주를 섭리하며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요나의 태도를 보십시다.그는 처음 부터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도망한 사람입니다.그는 고기 뱃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극적으로 살아난 후에도 그는 니느훼성에 가서 겨우 하루만 외치고 다녔습니다.그 뿐입니까.하나님께서 심판을 중지 하시겠다 고하자 그는 화를 냈습니다.감정을 품고 차라리 죽고 싶다고 기도했습니다.여러분 만약 부모 앞에서 자녀가 자기 뜻을 이루어주지 않는다고 차라리 죽여달라고 한 다면 그 부모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세상의 임금이나 왕앞에서도 신하가 자기의 주장 을 고집부리며 그런 행동을 했다면 화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그 뿐입니까.그는 고향으 로 가지도 않고 또 하나님을 불신하고 고집을 부리며 초막을 짓고 뜨거운 태양 아래서 그 성을 심판하기를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디까지 참으셔야합니까.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왜 박넝쿨을 나게 하셨습니까. 또 다시 요나를 설득하기 위해서 입니다. 출34:6에는 하나님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 와 진실이 많으신 하나님으로라 벧후3:9에서는 하나님의 성품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는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 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시기를 원하시느니라 . 하나님은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신다는 것입니다. 평생을 뒷골목에서 불량배생활을 하며 술주정꾼으로 살다가 늦게 회개하고 이제는 전 도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전도 여행을 하던 신앙인이 한 마을에서 미치광이로 취급받으 며 쫑겨나게 되었습니다.그는 바위에 엎드려져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더 이상 어 떻게 참아야 합니까.어떻게 이런 생활을 계속해야만 합니까. 그 때 주님은 그에게 이 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에 대하여 그 동안 50년을 참았었노라 신앙생활을 잘하다가 낙심한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런 비슷한 생각들을 갖는다 고 합니다.처음에 예배를 빠졌을 때는 마치 꼭 무슨 일이 일어날것 같은 불안한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그래도 아무일이 없자 이제는 두번 결석하고 세번 결석하게 됩니다.그래 도 아무일이 없자 이제는 아예 부담없이 신앙생활을 포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관심하여 버리셨기 때문입니까.하나님은 참고계신 것입니다.인내하시고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스스로 돌이키기를 기다리시며 환경을 통하여 사람들을 통하여 권고하시고 설득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생각해보십시다.만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대하여 참아주시지 않았 다면 어떻게 이 구원의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하나님은 심판하시기 이전에 주님을 보내셔서 구원의 길을 여시고 지금도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지난 주간에 친구 목사 안수식에 가서 찬송 404장을 불렀는데 그 날따라 저에게 참으 로 은혜가 되었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말로다 형용못하네 죄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죄로 삼으시고 죄 용서하셨네 우리 다같이 3절만 함께 불러보겠습니다. 그렇습니다.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셨기에 참아주셨고 때를 따라 믿음을 주 셔서 주님을 믿을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영원한 생명으로 구원해 주셨습니다.이 은혜야말로 우리의 영원한 노래의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4:7-8을 보십시다. 하지만 요나의 기쁨도 잠깐 이었습니다.하나님은 곧 벌래를 준비하셔서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심으로 시들게 만들었습니다.그리고 뜨거운 바람을 불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선교하고 있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4-5월달에 사하라사막에서 불어오는 열풍이 실제로 있다고 합니다.이 바람이 불면 44도까지 기온이 올라간다고 합니다.얼마 전 서울의 기온이38도를 넘었을 때를 생각해 본다면 견디기 힘든 엄청난 더위입니다.얼 마나 괴로웠든지 요나는 엎드려 기도하기를 차라리 하나님 죽는 것이 더 낫겠다고 기도 했습니다.이러한 환경을 변화 시켜서 요나를 고통스럽게 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요나 스스로에게 깨우침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뜨거운 햇빛에 괴로워하는 요나 에게 하나님은 9-11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정리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너는 수고하지도 않았고 네가 키우지도 않았고 그저 하룻밤 사이에 나타났다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진 저 박넝쿨 한 포기에 슬퍼하고 있다.
그렇다면 저 성에는 12만명 이상이 있고 수많은 가축이 있는데 내가 어찌 슬퍼하 지 않겠느냐 이 말씀에서 보듯이 청째 하나님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방 땅까지 온 세계를 다스 리시고 통치하고 계시는 것입니다.뿐만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 모두 어떤 죄를 범했든 은혜의 대상이요 긍휼의 대상이 된다는 놀라운 복음의 선포인 것입니다.
셋째는 11절에는 하나님께서 가축들에게까지 관심을 가지실 정도로 깊은 사랑을 가지고 돌보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하나님은 모든 피조 세계를 사랑으로 다스리고 계신다는 영광스런 선포가 요나서의 결론이며 핵심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주권과 하나님의 주권의 차이입니다.우리는 피조물인 인간으로서의 본 분이 있습니다.이 선을 넘어서 자신이 마치 하나님처럼 되려할 때 멸망 받는 교만의 길 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정리를 하면서 다른 구약의 성경과 비교해 볼 때 요나서처럼 가축까지 언 급하시면서 이방인에 대하여 관심과 사랑을 말씀하신 내용은 많지 않습니다. 또한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께 대하여 그토록 불순종하며 고집부리며 경솔했던 요나선 지자를 은혜로 인내하시면서 박넝쿨까지 준비하셔서 설득하신 내용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요나서는 은혜의 책입니다.그들의 악독한 죄악을 당장 심판하시지 않고 요 나에게 니느훼성으로 가서 심판의 메세지를 전하라고 한 것이 은혜입니다.불순종하여 도망한 요나를 고기 뱃속에서 살리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렇게 불순종했음에도 다시 선지자의 사명을 주신 것도 은혜입니다.하루를 외치고 다 녔어도 그 악독한 니느훼백성들이 회개 할 수 있도록 회개의 영을 부어주신 것도 하나님 은혜입니다.심판의 계획을 철회하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화를 내며 불평하는 요나를 향해 인내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박넝쿨을 통하여 자상하게 설득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온 세계의 피조물을 용 서와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큰 은혜는 지금 이 시간 우리들에게 이 요나서 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알게 해 주신 것이 은혜입니다. 요나의 분노는 자기 이기적이 분노였지만 하나님의 분노는 죄악으로 인한 공의의 분 노였습니다.요나의 관심은 자기민족을 위한 관심이었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불쌍한 모든 이방인의 구원이었습니다.요나의 고통은 뜨거운 햇빛이었지만 하나님의 고통은 죄에 빠 지는 인간을 사랑하기 위한 고통입니다.요나의 꿈은 자기 민족의 번영이었지만 하나님 의 꿈은 세상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세계선교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마침내 그 꿈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모든 사람을 향한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지시고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돌아가셨습니다.누 구든지 믿는 사람은 구원의 은혜를 약속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원하는 정반대의 길로 불순종의 길을 떠나는 요나는 누 구입니까.회개의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딱딱한 마음을 가졌던 니느훼성의 백성들은 누구입니까.하나님 인내를 요구하면서 화를 내며 자신의 이기심만을 요구했던 요나는 누구입니까.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의심하여 언덕에 앉아 있던 요나는 누구입 니까. 바로 여러분과 저입니다.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이렇게 부끄럽고 허물이 많은 우리들 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오늘 여러분 중 이 하나님의 사랑을 잊고 계신 분은 안계십니까.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계획된 사랑에 의하여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오늘도 이 사랑의 확신에 힘입어 새힘을 얻고 돌아가는 축복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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