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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넝쿨의 교훈 (욘4:6-11)

본문

요나 선지자는 겨우 하룻길을 다니며 니느웨의 멸망을 외쳤다.
그런데 뜻밖에도 온 니느웨 백성이 회개하는 대 역사가 일어났다. 요나는 그런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대하여 화를 내며 성밖으로 나가 동편언덕에 초막을 지었다. 하나님은 초막을 지은 요나에게 박넝쿨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가르치시고 있다.
1. 준비하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삼일 삼야를 불고기 배에 있느니라”(요1:17) 불순종하는 요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물고기를 준비하시고 건지신 하나님. 1 박넝쿨을 준비하셨다.(6절) 요나는 동편 언덕에 올라가 초막을 지었다. 초막을 짓는 곳은 니느웨성이 보이는 곳이어야 하기 때문에 전망이 좋아야 한다. 언덕 위에 시야를 가리는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한다. 요나는 비록 해가 뜨겁게 내리쬐고 따갑지만은 니느웨성이 곧 무너지리라는 신념을 가지고 니느웨성의 심판을 보기 위하여 언덕위에 초막에 앉아 있는 것이다. 요나의 악한 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나님은 바로 언덕위에 초막 밑에 앉아있는 요나를 위하여 박넝쿨을 준비하셨다. 그 넝쿨은 금새 초막을 덮어서 요나위에 드겁게 내리 쬐던 태양을 가리고 요나를 편히 쉴수있게 하셨다. 괴로움을 면케 하셨습니다. 넝쿨은 쉽게 빨리 자라는 것이 특징이지만 그렇게 빨리 자라 초막을 덮은 것을 볼 때 그 안에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요나는 그 넝쿨로 말미암아 태양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었으며, 일사병에서 건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2 벌레를 준비하신 하나님(7절) 넝쿨이 자라서 태양을 가리자 요나는 심히 기뻐하였습니다. 요나는 넝쿨의 그늘에서 기뻐하며 즐기고, 넝쿨의 보호로 추위에서 하루밤을 잘 지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벌레를 준비하사 이틑날 새벽에 넝쿨을 씹게 하셨습니다. 넝쿨은 밑둥만 짤리면 금방 죽어버린다. 벌레가 밑둥을 씹었는지 넝쿨은 금방 시들어 버렸다. 요나가 즐기고 있는 사이 벌레가 넝쿨을 씹은 것이다. 그러나 요나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3 동풍을 준비하신 하나님(8절) 넝쿨이 시들긴 하였지만 시들은 줄기들이라도 태양을 가리니 아직 더운줄 모르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동풍을 준비하셔서 뜨거운 바람이 불게 되었고 그것에 더하여 뜨거운 태양이 요나 위를 집중적으로 내리쬐게 되었다. 요나는 혼곤하였다. 정신이 흐릿하고 기운이 까무라쳐서 고달펴하였다. 요나는 갑작스런 동풍에 하나님께 지금까지 즐거워하고 기뻐하던 모습 대신 하나님께 다시 죽여달라고 간구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사건 속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은 준비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만물안에 섭리하시고 역사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만유의 주인이시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물고기, 넝쿨, 벌레, 동풍까지도 하나님의 섭리와 뜻안에서 움직이다. 이 모든 만물들이 요나를 가르치기 위한 도구로 쓰이고 있다. 만물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만물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보이시고 알리신다. 이 땅에 있는 모든 것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것이며,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이다. 요나는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했어야 한다.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음으로 오늘 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창22:14) 하나님의 준비하심에 대한 찬양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요나는 깨닫지 못하여 죽여달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를 깨달아야 한다. 나를 위해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준비하심을 찬양해야 한다.
2. 넝쿨 아래 있는 요나 1 심히 기뻐한 요나 요나는 자기의 초막을 덮은 넝쿨을 보았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기뻐하고, 하나님께 순종해야 했다.
그런데 요나는 그렇지 않았다. 요나는 무엇을 심히 기뻐하였는가 뜨거운 태양을 덮는 넝쿨을 기뻐하였다. 잠깐 태양을 가리는 넝쿨을 기뻐한 것이다.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지 못하고 그 넝쿨을 기뻐한 것이다. 니느웨성의 많은 사람들이 살아났다는 사실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기를 위해 태양을 가리는 넝쿨을 더 기뻐하였다. 자기에게 주어진 만족만을 찾고 기뻐하였다. 자기에게 주어지는 유익만을 기쁨으로 여겼다. 여기에서 넝쿨은 오늘날 복을 의미한다. 성장이라는 넝쿨 은혜 지혜 능력 물질 진정 기뻐해야 할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다른 것을 기뻐하였다. 82장-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낮 불러서 찬송을 아뢰도 늘 아쉰 마음 뿐일세 91장-예수의 이름은 세상의 소망이요 예수의 이름은 천국의 기쁨일세 93장-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기쁨 되시니 우리의 진정한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만을 기뻐하는 성도, 예수의 일만을 기뻐하는 성도 예수님만을 위해 충성하는 성도
2 잠자는 요나
그런데 요나는 시원한 넝쿨 아래 기뻐하며 잠을 즐기고 있다. 시원한 박넝쿨을 즐기며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 있는 요나 불순종의 요나 요1:5의 요나 “ 불순종은 영적 잠에 빠져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 하나님이 많은 넝쿨을 주셨습니다. 물질도 주시고, 많은 사람도 채워주시고, 크고 아름다운 건물도 주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 넝쿨만 유지하기 위해 애쓰다보니 참으로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 머물러 즐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 물질의 복을 주고, 명예의 복을 주고, 마치 누가복음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의 모습입니다. 많은 부를 채워주니 큰 창고만 짓고 떵떵거리는 것입니다. 자기 배만 두드리는 것입니다. 넝쿨 아래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깨어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넝쿨이 없는 요나
그런데 하나님이 벌레를 통하여 넝쿨을 하루 아침에 시들게 하셨습니다. 넝쿨은 하루 아침에도 시들 수 있는 것입니다. 넝쿨은 언제고 사라지고 맙니다. 넝쿨에 메달린 자는 넝쿨이 사라지면 문제가 생깁니다. 넝쿨 때문에 생기는 기쁨은 넝쿨로 말미암아 사라집니다. 자녀 때문에 얻는 기쁨은 자녀로 말미암아 사라집니다. 물질 때문에 얻는 기쁨은 그 물질 때문에 사라집니다. 명예 때문에 얻는 기쁨은 그 권력 때문에 사라집니다. 당장 요나에게 넝쿨이 사라지자 문제가 되기 시작합니다. 1 죽기를 구하는 요나(8)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겠다. 요나의 이런 모습은 여러번 나타납니다. 1:12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4:3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겨우 넝쿨 때문에 자기 목숨을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죽는게 낫겠다는 것입니다.
2 완악한 요나의 모습(9) 하나님은 요나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이런 과정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는 화를 내기 시작하고 하나님이 네가 어지하여 화를 내냐고하자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니이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요나는 목이 곧은 사람입니다. 겨우 그늘을 거두어 간 것가지고 하나님께 성을 내며 대들고 있습니다. 악을 쓰고 있습니다. 내가 합당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 의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넝쿨이 사라지더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지 않기를 메달려 기도해야 하는데 하나님께 대들고 있는 것입니다. 넝쿨로 인한 믿음이 아니라 나를 위해 피흘린 예수의 십자가를 믿고 바라보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4. 하나님의 가르치심 넝쿨은 요나를 가르치시기 위한 하나님의 시청각 교육입니다. “요나야!” “네 하나님” “박넝쿨이 네것이냐” “아니죠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네것도 아닌 것을 네가 아끼지 않았느냐 니느웨성의 저 많은 영혼들은 내가 창조한 나의 백성들이란다. 그들을 아끼는 것이 왜 합당치 아니하냐” “요나야!” “네 하나님” “네가 저 박넝쿨을 길렀느냐” “아니죠 하나니이 기르신 거죠” “네가 만들지도 아니하고 기르지도 앉은 박넝쿨을 네가 아끼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 “그것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내가 만들고, 내가 기르고, 내가 섭리하고 있는 니느웨성의 그 많은 영혼들을 내가 아기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요나야!” “네 하나님” “박넝쿨은 몇일이나 가느냐” “글쎄요. 제 머리위에 있었던 박 넝쿨은 하루밖에 가지 않았습니다.” “네가 하루살이 박넝쿨을 아꼈지” “그렇습니다. 하나님” “하루살이 넝쿨을 네가 아꼈다면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하는 니느웨성의 그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내가 아끼는 것이 왜 합당치 아니하냐” 이 박넝쿨을 통해서 하나님은 많은 교훈을 주십니다. 1 하나님의 가치 여부를 주목해 보십시요 식물과 동물과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날카롭게 구별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식물보다 동물을 더 귀중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니느웨성에 사람들 뿐만 아니라 육축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육축의 숫자는 세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에 살고 있는 사람의 숫자는 세고 계십니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 12만명이 니느웨성에 있는데 그들을 내가 아끼는 것이 왜 합당치 아니하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2 인간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십시요 요나는 니느웨성의 많은 영혼들을 향하여 설교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러나 영혼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박넝쿨을 소중히 여겼지만 니느웨의 영혼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의 복음전파는 영혼사랑이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요나와 같이 넝쿨을 즐기며 앉아있는 성도가 아니라 맡겨진 사명을 위해 달려 나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 책에서 요 ‘나’에게 이렇게 선교하라고 외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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