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회고 (행20,17-21)
본문
17절입니다.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니" 바울이 장로들을 청한 때는 우리들이 살고 요즘처럼 교통이 편리하지 못한 때였습니다. 바울이 밀레도에 도착했을 때 아마도 예루살렘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선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밀레도에 이르렀을 때 사람을 에베소 교회에 보내어 교회의 장로들을 오라고 불렀습니다. 다시는 올수 없을 것 같은 길을 가는 바울인지라 마지막으로 장로들이 보고 싶었습니다. 또 저들에게 자기가 살아온 삶을 들려줌으로 말미암아 신앙 샐활에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18절입니다. "오매 저희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바니" 바울이 지금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말을 시작하는 첫말은 18절 하반절로 "너희도 아는바니" 라는 말입니다. 장로들이 무었을 안다는 말입니까 장로들이 알고 있는 것이란 사도 바울이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의 행적을 안다는 말입니다. 장로들이 알고 있는 것은 사도 바울이 아시아에 들어온 날부터 교회와 성도들 중에서 어떻게 행하여 왔는지를 잘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외냐하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3 년 반을 머물면서 교회를 세웠기에 바울과 함께 수고한 장로들이 바울에 관하여 잘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3 년 반의 세월이면 서로 서로를 잘 알 수 있는 그런 세월입니다. 서로의 생활도 서로의 봉사도 서로의 신앙도 서로가 잘 알 수 있는 그런 세월입니다. 눈 빛만 보아도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서로를 잘 알 수 있는 사람들을 앞에 놓고 자기의 과거를 꾸밈없이 회고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부러운 것입니다. 그렇게 살수 있었다는 그 자체가 놀라운 것입니다. 저의 경험으로 말씀을 드린다면 저를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저에겐 설교가 참으로 어렵고 어려운 것입니다. 다른 교회에 가서 집회를 인도하든지 아니면 헌신 예배 한시간 인도하는 것이야 별반 문제가 되질 아니합니다. 외냐하면 그곳의 사람들은 강사를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런 이야기를 한다 할지라도 아멘으로 받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3년 반 동안이나 목회한 교회의 장로들에게 자기가 목회한 과거를 들어서 교훈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자체는 참으로 바울이 얼마나 성경적으로 살았는가하는 것을 보여줌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럽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처음으로 복음의 사역을 시작할 때부터 오늘에 이르까지 안과 밖 동일한 사역을 했습니다.
1,그 첫째가 겸손이었습니다. 19절의 "모든 겸손과" … 한마디로 말해서 바울에겐 모든게 겸손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바울 자신의 말대로 정식으로 난지 8일만에 하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지파로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중에 히브리인이요 자라기는 길리기아 에서 자랐고 배우기는 가말리엘의 학문을 전수했고 조상들의 엄격한 교훈하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위와 재산을 많이 가진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로마의 시민권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흠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습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처형하는 일을 맡아서 다메섹으로 가던 중에 주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날로부터 바울은 완전히 달라진 사람으로 변화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옥중에서 빌립보서를 기록하면서 자기를 다음과같이 말했습니다. 빌3;7-8절 "그러나 무었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소중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다 배설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의 지식도 버렸습니다. 재물도 버렸습니다. 전통도 버렸습니다. 자기의 의도 버렸습니다. 명예도 버렸습니다. 겸손해지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겸손한 삶을 살았습니다. 엡3;8절에 "나는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로다" 고전15;9절엔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로다 내가 사도라 칭함을 감당치 못하겠노라" 딤전1;15절에서는 "나는 죄인중에 괴수라" 사도 바울이 이렇게 하나님께 귀하게 그리고 크게 쓰임을 받았던 그 이유가 바로 그의 겸손한 삶 때문이었던 같습니다. 우리들 모두도 다 바울처럼 겸손해야합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가 섬기는 겸손을 배워야하겠습니다. 바울의 이 겸손은 주님의 겸손을 닮은 것입니다.
2,눈물 "
둘째는 눈물입니다.
그런데 세상엔 원놈의 눈물의 종류가 그렇게도 많은지 받은바 은혜가 감격하여 흘리는 눈물이 있다. 바나가운 사람을 만났을 때 흘리는 눈물이 있다. 사명을 다하지 못한 죄책으로 인한 눈물이 있다. 마리야처럼 주님 사랑하는 것때문에 흘리는 눈물이 있다. 그런가하면 세상엔 배가 곱파서 흘린는 눈물이 있다. 재난을 통한 눈물이 있다. 윗 사람들로부터 받은 꾸지람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 있다. 또는 실연을 당해서 흘리는 눈물이 있다. 어떤 학자에 의한 여학생들의 정조관염을 조사한 통계입니다. 한국의 학생들은 정조을 잃으면 흘적흘적 울고 영국의 학생은 이 사실을 남에게 알리지 말자고 서로 당부를 하고 독일 학생은 더 굳세게 살자고 다짐을 하고 불란서 여힉생은 신나게 휘파람을 분답니다. 오늘 신앙의 정조를 빼았기고도 불란서 여성들처럼 휫바람을 부는 이 회개가 없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목회를 좀더 잘하기 위한 눈물의 사람이었습니다. 19절에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사도 바울은 눈물의 사람이었습니다. 31절을 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워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시억하라" 한두 번의 눈물이 아닙니다. 삼년 반 그것도 밤과 낮을 눈물로 목회하셨던 주님의 사도였습니다.
첫째는 자기 자신의 죄로인한 눈물이었을 겁니다. 자기 자신을 죄인중의 괴수라고 부를 정도로 자기를 뉘우치고 돌보았던 사도인지라 그에 따른 회개의 눈물 또한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 사람들의 눈에는 회개의 눈물이 말라가고 있는 것 갔습니다. T,V, 앞에 앉아서 연속극을 보면서 질질 눈눌을 흘리는 사람들은 있는 것 같은데 자기 자신의 죄악을 돌아 보면서 심각한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그리 많치를 않은 것 갔습니다. 주님을 향한 자신의 부족한 정성을 생각히시면서 바울은 눈물로 눈물로 보내셨습니다 마치 베드로가 주님을 삼년이나 따라다니면서 제자로릇을 하고도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을 세번이씩이나 부인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새벽에 닭이 울때에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통곡을 하면서 울었더라고 하신것과 같이 사도 바울도 늘 자신을 뒤돌아 보면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면서 사시었습니다.
둘째는 남을 위한 눈물이었습니다. 우리는 에레미아 선지자를 눈물의 선지라고 부릅니다. 에레미아는 범죄한 자기 민족을 위하여 눈물로 한 평생을 보내신 선지자 입니다. 렘9;1절에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그렇게 되면 살륙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곡읍하리로다" 우리 주님께서도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범죄로 인하여 멸망될 예루살렘을 내려다 보시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에서 목회를 하시는 동안 삼년 육개월을 밤낮 눈물로 보내셨음을 봅니다. 교회를 위하여 성도를 위하여 에베소 시민을 위하여 눈물의 기도가 끊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언제 눈물을 흘리십니까 교회를 위하여 눈물을 흘려 보셨습니까 성도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려 보셨습니까 어두워져만 가는 이 대구 도성을 놓고 눈물의 기도를 해 보셨습니까 그리고 주님을 위하여 눈물을 흘려 보셨습니까 사도 바울은 눈물로 눈물로 사신 분이십니다. 시126;5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3,시험을 참고 이 세상은 온갓 유혹과 시험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19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 예수믿는 사람들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십자가의 군병들이기에 더많은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석가모니의 제자중에 " 브르나" 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서가는 이 제자를 서방 나라를 위하여 전도 여행을 떠나 보내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욕을 먹어도 참아라 , 때려도 참아라, 주여도 참아라"고 했답니다. 우상을 전하면서도 이렇게 참는데 살아계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예수의 제자가 된 자들이야 말해서 무었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한 시험들을 잘 참았습니다. 매 맞으면서도 참았습니다. 태장으로 맞으면서도 참았습니다. 돌에 맞으면서도 참았습니다. 옥에 같여 있으면서도 참았습니다. 동족들의 온갓 간계가 많았지만 참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인내의 사람입니다. 골1;24절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고 했습니다. 4,유익한 것은 무었이든지 공중 앞에서 가르쳤습니다. " 20절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점하여 가르치고" 바울은 간데마다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드로아에서 유두고가 3층루에서 떨어져 죽던 날도 밤이 늦도록 강론했다 고 했습니다. 신약 성경중 바울의 서신이 무려 13권이나 됩니다. 성경 한권 읽기도 얼마나 힘이듭니까
그런데 성경 한 권을 집필하기는 얼마나 더 어렵겠습니까 바울이 많은 성경을 기록했다함은 그만큼 많이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5,그리스도께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입니다. 21절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일에도 유대인이나 헬라인에게나 누구 에게든지 다 본이 되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회개하는 일에 본이되기란 쉬운게 아닙니다. 이는 한마디로 눈물의 회개가 많았다는 것을 말함입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일에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문물로 삼년 반이나 목회를 했던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어려운 일이나 시험을 잘 참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열심히 가르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회개에도 모든 사람들에게 본이 되었습니다. 우리들 모두다 우리의 생을 마치는 그날에 바울처럼 나를 평소에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앞에 불러 놓고 우리들의 살아 온 삶을 교훈으로 들려 줄 수 있는 멋진 삶을 살아 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오 축원합니다.
!
그런데 사도 바울이 3년 반 동안이나 목회한 교회의 장로들에게 자기가 목회한 과거를 들어서 교훈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자체는 참으로 바울이 얼마나 성경적으로 살았는가하는 것을 보여줌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럽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처음으로 복음의 사역을 시작할 때부터 오늘에 이르까지 안과 밖 동일한 사역을 했습니다.
1,그 첫째가 겸손이었습니다. 19절의 "모든 겸손과" … 한마디로 말해서 바울에겐 모든게 겸손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바울 자신의 말대로 정식으로 난지 8일만에 하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지파로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중에 히브리인이요 자라기는 길리기아 에서 자랐고 배우기는 가말리엘의 학문을 전수했고 조상들의 엄격한 교훈하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위와 재산을 많이 가진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로마의 시민권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흠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습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처형하는 일을 맡아서 다메섹으로 가던 중에 주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날로부터 바울은 완전히 달라진 사람으로 변화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옥중에서 빌립보서를 기록하면서 자기를 다음과같이 말했습니다. 빌3;7-8절 "그러나 무었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소중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다 배설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의 지식도 버렸습니다. 재물도 버렸습니다. 전통도 버렸습니다. 자기의 의도 버렸습니다. 명예도 버렸습니다. 겸손해지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겸손한 삶을 살았습니다. 엡3;8절에 "나는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로다" 고전15;9절엔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로다 내가 사도라 칭함을 감당치 못하겠노라" 딤전1;15절에서는 "나는 죄인중에 괴수라" 사도 바울이 이렇게 하나님께 귀하게 그리고 크게 쓰임을 받았던 그 이유가 바로 그의 겸손한 삶 때문이었던 같습니다. 우리들 모두도 다 바울처럼 겸손해야합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가 섬기는 겸손을 배워야하겠습니다. 바울의 이 겸손은 주님의 겸손을 닮은 것입니다.
2,눈물 "
둘째는 눈물입니다.
그런데 세상엔 원놈의 눈물의 종류가 그렇게도 많은지 받은바 은혜가 감격하여 흘리는 눈물이 있다. 바나가운 사람을 만났을 때 흘리는 눈물이 있다. 사명을 다하지 못한 죄책으로 인한 눈물이 있다. 마리야처럼 주님 사랑하는 것때문에 흘리는 눈물이 있다. 그런가하면 세상엔 배가 곱파서 흘린는 눈물이 있다. 재난을 통한 눈물이 있다. 윗 사람들로부터 받은 꾸지람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 있다. 또는 실연을 당해서 흘리는 눈물이 있다. 어떤 학자에 의한 여학생들의 정조관염을 조사한 통계입니다. 한국의 학생들은 정조을 잃으면 흘적흘적 울고 영국의 학생은 이 사실을 남에게 알리지 말자고 서로 당부를 하고 독일 학생은 더 굳세게 살자고 다짐을 하고 불란서 여힉생은 신나게 휘파람을 분답니다. 오늘 신앙의 정조를 빼았기고도 불란서 여성들처럼 휫바람을 부는 이 회개가 없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목회를 좀더 잘하기 위한 눈물의 사람이었습니다. 19절에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사도 바울은 눈물의 사람이었습니다. 31절을 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워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시억하라" 한두 번의 눈물이 아닙니다. 삼년 반 그것도 밤과 낮을 눈물로 목회하셨던 주님의 사도였습니다.
첫째는 자기 자신의 죄로인한 눈물이었을 겁니다. 자기 자신을 죄인중의 괴수라고 부를 정도로 자기를 뉘우치고 돌보았던 사도인지라 그에 따른 회개의 눈물 또한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 사람들의 눈에는 회개의 눈물이 말라가고 있는 것 갔습니다. T,V, 앞에 앉아서 연속극을 보면서 질질 눈눌을 흘리는 사람들은 있는 것 같은데 자기 자신의 죄악을 돌아 보면서 심각한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그리 많치를 않은 것 갔습니다. 주님을 향한 자신의 부족한 정성을 생각히시면서 바울은 눈물로 눈물로 보내셨습니다 마치 베드로가 주님을 삼년이나 따라다니면서 제자로릇을 하고도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을 세번이씩이나 부인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새벽에 닭이 울때에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통곡을 하면서 울었더라고 하신것과 같이 사도 바울도 늘 자신을 뒤돌아 보면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면서 사시었습니다.
둘째는 남을 위한 눈물이었습니다. 우리는 에레미아 선지자를 눈물의 선지라고 부릅니다. 에레미아는 범죄한 자기 민족을 위하여 눈물로 한 평생을 보내신 선지자 입니다. 렘9;1절에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그렇게 되면 살륙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곡읍하리로다" 우리 주님께서도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범죄로 인하여 멸망될 예루살렘을 내려다 보시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에서 목회를 하시는 동안 삼년 육개월을 밤낮 눈물로 보내셨음을 봅니다. 교회를 위하여 성도를 위하여 에베소 시민을 위하여 눈물의 기도가 끊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언제 눈물을 흘리십니까 교회를 위하여 눈물을 흘려 보셨습니까 성도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려 보셨습니까 어두워져만 가는 이 대구 도성을 놓고 눈물의 기도를 해 보셨습니까 그리고 주님을 위하여 눈물을 흘려 보셨습니까 사도 바울은 눈물로 눈물로 사신 분이십니다. 시126;5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3,시험을 참고 이 세상은 온갓 유혹과 시험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19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 예수믿는 사람들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십자가의 군병들이기에 더많은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석가모니의 제자중에 " 브르나" 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서가는 이 제자를 서방 나라를 위하여 전도 여행을 떠나 보내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욕을 먹어도 참아라 , 때려도 참아라, 주여도 참아라"고 했답니다. 우상을 전하면서도 이렇게 참는데 살아계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예수의 제자가 된 자들이야 말해서 무었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한 시험들을 잘 참았습니다. 매 맞으면서도 참았습니다. 태장으로 맞으면서도 참았습니다. 돌에 맞으면서도 참았습니다. 옥에 같여 있으면서도 참았습니다. 동족들의 온갓 간계가 많았지만 참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인내의 사람입니다. 골1;24절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고 했습니다. 4,유익한 것은 무었이든지 공중 앞에서 가르쳤습니다. " 20절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점하여 가르치고" 바울은 간데마다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드로아에서 유두고가 3층루에서 떨어져 죽던 날도 밤이 늦도록 강론했다 고 했습니다. 신약 성경중 바울의 서신이 무려 13권이나 됩니다. 성경 한권 읽기도 얼마나 힘이듭니까
그런데 성경 한 권을 집필하기는 얼마나 더 어렵겠습니까 바울이 많은 성경을 기록했다함은 그만큼 많이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5,그리스도께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입니다. 21절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일에도 유대인이나 헬라인에게나 누구 에게든지 다 본이 되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회개하는 일에 본이되기란 쉬운게 아닙니다. 이는 한마디로 눈물의 회개가 많았다는 것을 말함입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일에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문물로 삼년 반이나 목회를 했던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어려운 일이나 시험을 잘 참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열심히 가르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회개에도 모든 사람들에게 본이 되었습니다. 우리들 모두다 우리의 생을 마치는 그날에 바울처럼 나를 평소에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앞에 불러 놓고 우리들의 살아 온 삶을 교훈으로 들려 줄 수 있는 멋진 삶을 살아 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오 축원합니다.
!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