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고백 (고후1:12-24)
본문
바울은그의 전도여행중 수많은비난을 받았다.동족인 유대인들로부터는 '율법을 파 괴하는 자"라는 비난 받았고(행15:1-5),이방인들로부터는 각종 이권과 헌금을 착복 하였다라고 비난받았다(행14:1-5,8-20,16:19-39,17:5-9,19:23-41).그중에서도 고린 도 교회로부터 받은 비난은 바울은 심히 갈등하게하고 괴롭혔고, 바울로 분노케하고 견딜수 없는 내적 고통을 안겨 주었다. 그들이 왜 오해를 하게 되었느냐 하면 우선 고린도교인들은 바울의 행위가 불 성실하고 믿을 수 없다고 비난하였다. 그것은 약속한 방문이 지연되었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먼저 고린도 교회를 첫번째로 방문했으나 피차간에 좋지 않게 헤어졌다) 다시말하면 바울은 두번에 걸쳐 고린도에 가려고 했는데,우선 고린도 먼저 들른 후 마케도냐를 방문하고 다시 고린도를 거쳐 가려는 계획이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두번 다 무산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의 약속은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으며,이것으 로 인해 사도적 권위까지 의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바울의 편지도 불성실하다고 비난 하였다(13-14).사람도
그런데 편지야 오죽하겠는가 더구나 그들은 지나번 바울을 대면했을 때 바울의 초라한 외모와 말재주에 풍기는 연약함을 보았기에 그것은 더했다. 그래서 바울은 목회적 측면에서 그들의 신앙 보호를 위해 고린도인들의오해를 풀 어 주기위해 이 편지를 쓰게 된 것이다. 오늘은 고린도 교회를 향한 자신의 애절한 바램과 사랑을 전하기 위한 바울의 고백 적인 편지 내용을 통해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참으로 괴로운 시기에 쓴것이 라 생각된다.사람이 특히 지도자가 그의 성실성과 진실성에 대해 오해를 받는다면 그이 후에 목회의 모든 부분에서 치명타를 입은것이라 할 수잇다)
1.바울은 진실하며 성실한 사람이엇습니다.(12-14) 12절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하므로써 " 특히 12절에 "진실함"(에일리그리네이아) 은 '인간의 생각이 썩이지 아니하였다' 라는 의미가 들어있다.바울이 신적인 성실함을 가지고 행하였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자신의 양심이 증거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들이 참으로 소중하게 여겨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봉사와 희생과 사역에 결코 다른 불순수한 것들이 들어있어서는 안된다. 그렇게 하면 '이'를 위한 것이 되고 곧 삭군인 것이다. 물론 성도들이 드리는 예배,헌금,충성,봉사도 마찬가지이다.그 자체만이 목적이어 야하지 다른 생각이 거기에 복선으로 깔려있지 않아야 한다. 사람은 서로를 "대강 밖에 모른다" 그러나 "주 예수의 날이" 오면 모든 것이 낱 낱 이 밝혀 질 것이며 누구든지 예외없이 하나님의 저울에 올라 그 온전함을 판단 받게 될 것이다. 특히18절에 보면 바울은 자신의 '신실함'을 하나님의 신실에 비교해 밝히고있다." 하나님은 미쁘시니라"에서 "미쁘시니라"(피스토스)는 사업 거래나 공적인 의무의 수 행에 있어 '신실한'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성실하시기에 우리도 성실해야 한다(신7:9,사49:7) 신 7:9에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 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2.성령님의 인도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와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은 자신의 경솔함이나 변덕때문이 나,혹은 무책임이나 불성실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있다. 이것은 자신의 양심 뿐 아니라 하나님이 증거자 이심을 분명히 한다."내가 내 영혼을 두고하나님을 불러증거하노니." 실로 바울이 간혹 자신의 계획과는 달리 다른 장소,다른 시간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복음전파와 인간 구원의 주도원을 쥐고 계신 하나님의 초월한 가2가헤 에 자신이 굴복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늘 성령님이 가라면 가고,멈추라면 멈추는 인 생을 살았기에 다시말하 면 철저한 순종으로 비롯된 것임을 말씀하고 있다. "육체의 지혜로 하지아니하고 하나님의 지혜로 했다"(12)고 고백한다. 그는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육체의 지혜","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의 일은어렵 앉다. 바울은 지금까지 줄곳 자기 의사대로 산 삶이 아니었다.부활의 주님을 만남 으로앉 그의 삶의 목적이 달라졌으며,그이후에도 줄곳 성령님이 친히 그의 삶을 주도 하셔 로마도 보아야 할 것이라는 복음선교의 세계적 비젼을 주셔 그것에 잡혀 남은 생애 다보내었다. 선교 사역지를 정함에 있어서도 자기 뜻대로 하지 못했다.아시아에서 자신은 사역하고 싶었으나 성령님이 아시아에서의 사역을 허락지 않았으며,또한 밤에 환상 가운데 마게도냐인의 손짓하는 것을 보여 주셔서 하나님의 뜻 지시하셨다. 롬 8:14절 말씀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 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예수 믿고 성령님 모신 다음에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이 이 부분이다.성령님 하나님이 친히 우리 가운데서 통치자가 되셔야 한다.개인도 교회도믈 그것은 마찬가지이다.휼륭한 신앙생활이란 얼마나 제대로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삶을 사느냐에 그 관건이 달려있는 것이다. 행 20: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님이 저들 가운 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성령님이 주인이신 교회가 좋은 교회이다.안디옥 교회가 좋은 교회였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왜 성령님의 지시를 들을 수 있었기에. (행13:2-3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님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 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성령님이 가라사대'를 주목하라) 신비로운 것으로 여기지 말라.말씀과 기도가 있지 않은가(위 성경도 금식 기도) 이것이 바울의 능력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이해할 수 없는자들도 있는 것이다.
3.그리고 바울은 항상 하나님의 뜻에순종하는 삶을 살았던 목회가자엿습니다. 지극히 영혼을 사랑하는 목회자였다(23-24). 바울은 항상 어린 영혼을 먼저 생각하고 돌아보는 목회자였다.바울이 고린도 방문 계획을 바꾼 것은 결코 바울 자신의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고린도 성도들을 아끼는 마음 때문이라고 말한다. 망약 바울이 그들을 아기는 마음이 없 이 본래의 계획대로 고린도를 찾아갔다면 바울의 성격상 엄한 책망을 할 것은 불 을 본듯 뻔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일차적으로 그들이 그 일에 대해 회개하는 기 회를 주기 위해서 라고 고백한다(23).즉 고린도 교회에는 바울에게 벌을 받아 야 할 만큼 바울을 금시 하게 하는 사람들이 잇었으나,바울은 징계하기 보다는 그 들이 스스로 깨닫고 회개하며 뉘우칠 시간을 주기 위해 그의계획을 성령님의 뜻 안에서 변경하게 되었다는 것이뵐다.(그리고 또한 바울은 첫 방문시 굴욕을 당하 고 좇겨운 상테에서 다시고린돌을 방문 한다는 것은 더 큰 괴로움을 줄 것으로 여겼 기 때문이었다 (23). 즉 다시말하면 그 속에는 고린도 교인들을 아기고 사랑하며 어떻게든지 그들을 영적으로 돕기를 원하는 바울 사도의 배려와 영혼 사랑의 마음에서 비록된 것이었다. 사실 바울이 개척한 교회 가운데서 가장 큰 교회였던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그 꽃어던 사람들보다 바울의마음을 더 아프게 한 사람들이엇다.그러나 그는 이 들을 사랑 하고아끼고 배려하느 모습을 보면서 참 목자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그들은 양들의 잘못을 보면 마치 자기가 회개할 자인양 함을 그대로 알 수있다.잇다.이 한 구절을 통해 목회자로서의 바울의 지혜로움과 인내와 사랑을 느낄수 있다. 결론 인간관계 속에 역사하는 사단은 무섭다.특히나 교역자와 성도 사이에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말장이들을 통해 마음에 구멍을 내는 악한 영들의 공격은 무섭다. 바울이 바울이 개척한 고린도 교회가 바로이런 풍랑에 쌓여 있는 것이다. 오늘 교회속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만일 여러분이 이런 일에 관 련되어 있다면 어떻게 행동하겠습니까 과연 성도들은 사역자의 좋지않은 소문 을 들었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일까요 어떤 교회 집사님은 확인도 않고, 대표기도시간에 '하나님 우리 목사님 잘못한 것 있으면 회개하게 하옵소서! 눈물이 메말랐으니 눈물의 종 되기를 원하나이다.'공중기도에서. 분명히 기억하십시오.우리가 우리를 서로 간에 이해하고 아는 것은 한계가 있고특히 정확하게 알 수없습니다.본문에 "너희가 대강 우리를 아는 것 같 이."(14) 저는 아직 어린 하나님의 사람입니다만 이런 경험을 여러번 당했습니다. 바울 처럼 꽃차라리 편지라도 쓸수잇었다면 얼마나 속이 시원하겠습니까(그래서 이 편 지 있) 우선 성도들은 남의 들은 확인되지않은 말로 이야기 거리를 삼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바울이 던져 주신 교훈을 보면서 우선은 누구 말장이고,누가 하나님의 일군인가를 확인해야 합니다.바울도 오해를 얽힌 고린도 성도들을 향해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14)라고 고백한다.즉 그 우상과 음란으로 가득한 고린도에서 우리들이(바울 일행이) 1년6개월 간이나 사역한 결과로 세워진 고린 도 교회의 구성 원이 너희들이 바로 우리의 자랑이다.이 말은 너희가 바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경시는 참 사역자인 최고의 증거이라는 말이다.고후3:3에도 동일하게 말한다. 너희들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인정하신다는 그리스도의 확실한 편지라고 고백한다.(이런 맥락에서 바울이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잇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잇다고 했다") 자세히 보면 구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말세에 성도들도 이 분별의 영을 받 아야 합니다.말쟁이들의 장난에 말려 참 사역자들을 대적하고 교회 공동체를아 프게 하는 사단의 계략에 두구로 전락하지 말가아야 할 것입니다.(기도 않는 사람이 도구) 그리고 정작 시간이 지나면 다 밝혀진다.만일 여원히 그오해를 풀지못한다 할 지라꽃도 주 예수의 날 주님이 오시면 밝히 들어날 것이다.
1) 먼저 그가 얼마나 순순한 마음으로 일하는가
2) 그리고 그가 성령님에 얼마나 예민한 사람인가(기도) 성령님의 인도를 얼마나 사모하며 갈망하는 자인가
3) 영혼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가
예)부산 어느목사님 당신들 나를 보고 사명자 같거든 도와달라고 요구. 이후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성도들이 교역자들을 도울수있는 최고의 길 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11절에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자신이비록 사도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자이나 지극히 누구와도 동일한 연약 하고 초라한 질그릇과 같은 자임을 고백하며 중보기도로 두울 것을 권면하고 있다. 히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 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그런데 편지야 오죽하겠는가 더구나 그들은 지나번 바울을 대면했을 때 바울의 초라한 외모와 말재주에 풍기는 연약함을 보았기에 그것은 더했다. 그래서 바울은 목회적 측면에서 그들의 신앙 보호를 위해 고린도인들의오해를 풀 어 주기위해 이 편지를 쓰게 된 것이다. 오늘은 고린도 교회를 향한 자신의 애절한 바램과 사랑을 전하기 위한 바울의 고백 적인 편지 내용을 통해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참으로 괴로운 시기에 쓴것이 라 생각된다.사람이 특히 지도자가 그의 성실성과 진실성에 대해 오해를 받는다면 그이 후에 목회의 모든 부분에서 치명타를 입은것이라 할 수잇다)
1.바울은 진실하며 성실한 사람이엇습니다.(12-14) 12절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하므로써 " 특히 12절에 "진실함"(에일리그리네이아) 은 '인간의 생각이 썩이지 아니하였다' 라는 의미가 들어있다.바울이 신적인 성실함을 가지고 행하였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자신의 양심이 증거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들이 참으로 소중하게 여겨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봉사와 희생과 사역에 결코 다른 불순수한 것들이 들어있어서는 안된다. 그렇게 하면 '이'를 위한 것이 되고 곧 삭군인 것이다. 물론 성도들이 드리는 예배,헌금,충성,봉사도 마찬가지이다.그 자체만이 목적이어 야하지 다른 생각이 거기에 복선으로 깔려있지 않아야 한다. 사람은 서로를 "대강 밖에 모른다" 그러나 "주 예수의 날이" 오면 모든 것이 낱 낱 이 밝혀 질 것이며 누구든지 예외없이 하나님의 저울에 올라 그 온전함을 판단 받게 될 것이다. 특히18절에 보면 바울은 자신의 '신실함'을 하나님의 신실에 비교해 밝히고있다." 하나님은 미쁘시니라"에서 "미쁘시니라"(피스토스)는 사업 거래나 공적인 의무의 수 행에 있어 '신실한'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성실하시기에 우리도 성실해야 한다(신7:9,사49:7) 신 7:9에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 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2.성령님의 인도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와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은 자신의 경솔함이나 변덕때문이 나,혹은 무책임이나 불성실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있다. 이것은 자신의 양심 뿐 아니라 하나님이 증거자 이심을 분명히 한다."내가 내 영혼을 두고하나님을 불러증거하노니." 실로 바울이 간혹 자신의 계획과는 달리 다른 장소,다른 시간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복음전파와 인간 구원의 주도원을 쥐고 계신 하나님의 초월한 가2가헤 에 자신이 굴복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늘 성령님이 가라면 가고,멈추라면 멈추는 인 생을 살았기에 다시말하 면 철저한 순종으로 비롯된 것임을 말씀하고 있다. "육체의 지혜로 하지아니하고 하나님의 지혜로 했다"(12)고 고백한다. 그는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육체의 지혜","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의 일은어렵 앉다. 바울은 지금까지 줄곳 자기 의사대로 산 삶이 아니었다.부활의 주님을 만남 으로앉 그의 삶의 목적이 달라졌으며,그이후에도 줄곳 성령님이 친히 그의 삶을 주도 하셔 로마도 보아야 할 것이라는 복음선교의 세계적 비젼을 주셔 그것에 잡혀 남은 생애 다보내었다. 선교 사역지를 정함에 있어서도 자기 뜻대로 하지 못했다.아시아에서 자신은 사역하고 싶었으나 성령님이 아시아에서의 사역을 허락지 않았으며,또한 밤에 환상 가운데 마게도냐인의 손짓하는 것을 보여 주셔서 하나님의 뜻 지시하셨다. 롬 8:14절 말씀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 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예수 믿고 성령님 모신 다음에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이 이 부분이다.성령님 하나님이 친히 우리 가운데서 통치자가 되셔야 한다.개인도 교회도믈 그것은 마찬가지이다.휼륭한 신앙생활이란 얼마나 제대로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삶을 사느냐에 그 관건이 달려있는 것이다. 행 20: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님이 저들 가운 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성령님이 주인이신 교회가 좋은 교회이다.안디옥 교회가 좋은 교회였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왜 성령님의 지시를 들을 수 있었기에. (행13:2-3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님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 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성령님이 가라사대'를 주목하라) 신비로운 것으로 여기지 말라.말씀과 기도가 있지 않은가(위 성경도 금식 기도) 이것이 바울의 능력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이해할 수 없는자들도 있는 것이다.
3.그리고 바울은 항상 하나님의 뜻에순종하는 삶을 살았던 목회가자엿습니다. 지극히 영혼을 사랑하는 목회자였다(23-24). 바울은 항상 어린 영혼을 먼저 생각하고 돌아보는 목회자였다.바울이 고린도 방문 계획을 바꾼 것은 결코 바울 자신의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고린도 성도들을 아끼는 마음 때문이라고 말한다. 망약 바울이 그들을 아기는 마음이 없 이 본래의 계획대로 고린도를 찾아갔다면 바울의 성격상 엄한 책망을 할 것은 불 을 본듯 뻔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일차적으로 그들이 그 일에 대해 회개하는 기 회를 주기 위해서 라고 고백한다(23).즉 고린도 교회에는 바울에게 벌을 받아 야 할 만큼 바울을 금시 하게 하는 사람들이 잇었으나,바울은 징계하기 보다는 그 들이 스스로 깨닫고 회개하며 뉘우칠 시간을 주기 위해 그의계획을 성령님의 뜻 안에서 변경하게 되었다는 것이뵐다.(그리고 또한 바울은 첫 방문시 굴욕을 당하 고 좇겨운 상테에서 다시고린돌을 방문 한다는 것은 더 큰 괴로움을 줄 것으로 여겼 기 때문이었다 (23). 즉 다시말하면 그 속에는 고린도 교인들을 아기고 사랑하며 어떻게든지 그들을 영적으로 돕기를 원하는 바울 사도의 배려와 영혼 사랑의 마음에서 비록된 것이었다. 사실 바울이 개척한 교회 가운데서 가장 큰 교회였던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그 꽃어던 사람들보다 바울의마음을 더 아프게 한 사람들이엇다.그러나 그는 이 들을 사랑 하고아끼고 배려하느 모습을 보면서 참 목자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그들은 양들의 잘못을 보면 마치 자기가 회개할 자인양 함을 그대로 알 수있다.잇다.이 한 구절을 통해 목회자로서의 바울의 지혜로움과 인내와 사랑을 느낄수 있다. 결론 인간관계 속에 역사하는 사단은 무섭다.특히나 교역자와 성도 사이에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말장이들을 통해 마음에 구멍을 내는 악한 영들의 공격은 무섭다. 바울이 바울이 개척한 고린도 교회가 바로이런 풍랑에 쌓여 있는 것이다. 오늘 교회속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만일 여러분이 이런 일에 관 련되어 있다면 어떻게 행동하겠습니까 과연 성도들은 사역자의 좋지않은 소문 을 들었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일까요 어떤 교회 집사님은 확인도 않고, 대표기도시간에 '하나님 우리 목사님 잘못한 것 있으면 회개하게 하옵소서! 눈물이 메말랐으니 눈물의 종 되기를 원하나이다.'공중기도에서. 분명히 기억하십시오.우리가 우리를 서로 간에 이해하고 아는 것은 한계가 있고특히 정확하게 알 수없습니다.본문에 "너희가 대강 우리를 아는 것 같 이."(14) 저는 아직 어린 하나님의 사람입니다만 이런 경험을 여러번 당했습니다. 바울 처럼 꽃차라리 편지라도 쓸수잇었다면 얼마나 속이 시원하겠습니까(그래서 이 편 지 있) 우선 성도들은 남의 들은 확인되지않은 말로 이야기 거리를 삼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바울이 던져 주신 교훈을 보면서 우선은 누구 말장이고,누가 하나님의 일군인가를 확인해야 합니다.바울도 오해를 얽힌 고린도 성도들을 향해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14)라고 고백한다.즉 그 우상과 음란으로 가득한 고린도에서 우리들이(바울 일행이) 1년6개월 간이나 사역한 결과로 세워진 고린 도 교회의 구성 원이 너희들이 바로 우리의 자랑이다.이 말은 너희가 바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경시는 참 사역자인 최고의 증거이라는 말이다.고후3:3에도 동일하게 말한다. 너희들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인정하신다는 그리스도의 확실한 편지라고 고백한다.(이런 맥락에서 바울이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잇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잇다고 했다") 자세히 보면 구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말세에 성도들도 이 분별의 영을 받 아야 합니다.말쟁이들의 장난에 말려 참 사역자들을 대적하고 교회 공동체를아 프게 하는 사단의 계략에 두구로 전락하지 말가아야 할 것입니다.(기도 않는 사람이 도구) 그리고 정작 시간이 지나면 다 밝혀진다.만일 여원히 그오해를 풀지못한다 할 지라꽃도 주 예수의 날 주님이 오시면 밝히 들어날 것이다.
1) 먼저 그가 얼마나 순순한 마음으로 일하는가
2) 그리고 그가 성령님에 얼마나 예민한 사람인가(기도) 성령님의 인도를 얼마나 사모하며 갈망하는 자인가
3) 영혼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가
예)부산 어느목사님 당신들 나를 보고 사명자 같거든 도와달라고 요구. 이후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성도들이 교역자들을 도울수있는 최고의 길 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11절에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자신이비록 사도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자이나 지극히 누구와도 동일한 연약 하고 초라한 질그릇과 같은 자임을 고백하며 중보기도로 두울 것을 권면하고 있다. 히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 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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