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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영적인 기도 (엡1: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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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불행한 일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고도 그 축복을 알지 못한채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향하여 편지 하면서 그들의 영적인 눈이 열려서 그리스도안에서 그들이 얼마나 위대한 영적인 축복을 이미 받은 사람인가 하는 사실을 깨닫게 해달라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하나님앞에 기도 하고 있습니다. 오래전에 미국에 윌리암 헐스터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이 사람은 신문 편집인겸 고 미술품을 수집하는 수집광이었습니다. 그는 유럽의 왕가에서 사용하였던 도자기가 탐이나서 그것을 구입 할려고 그 도자기의 자취를 찾았습니다. 여러해를 찾고 수소문 해보니까 그 도자기는 벌써 미국의 어떤 언론인이 사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가 누구인가 하고 찾아 다녔습니다. 후에 알고 보니까 그 도자기를 산 사람은 자신이었습니다. 자신이 이미 오래전에 사서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사고가 그리스도인들의 삶속에서 다시 재현되고 있으니 참으로 비극이 아닐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큰 축복을 이미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사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 그에게 예배 드린다는 것,-이 모두가 놀라운 축복인 것입니다. 오늘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우리의 영적인 눈이 열려,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한 축복을 우리에게 주셨는가를 분명히 깨달아야만 할 것입니다. 첫번째 기도는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17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큰 영적인 축복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보다 더 고상한 지식은 세상에 없습니다. 여기에서의 지식은 헬라적이라기 보다는 히브리적 개념입니다. 즉, 경험적인 지식, 경험적인 앎인 것입니다. 이 말씀은 쉽게 얘기하면 하나님은 철학적인 어떠한 방법으로 알수 있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우리의 생활터전에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와 만나지심으로 알수 있는 그러한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자라지 않는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주님을 알고 싶어하는 열망이 없어서 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참으로 사랑하는 주님을 더 깊이 알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면 어떻게 기도 하지 않을수가 있으며 말씀을 공부 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가 너무 위대하고 절실하다는 것을 경험 했으면 주님을 알아 가지 않고는 견딜수가 없을 것입니다. 연애를 해보신 경험이 있습니까. 내가 상대방을 사람합니다. 그러면 상대방을 더 알고 싶어하는 열망은 그 무엇으로도 중단할수 없습니다. 알면 승리합니다. 알면 사탄의 권세를 이깁니다. 알면 축복의 대열에설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저희에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풍성히 주옵소서,그래서 하나님을 알게 하옵소서. 하나님은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가를,얼마나 놀라운 분인가를,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 분인가를,-알게 하여 주옵소서 이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할것입니다. 지혜와 계시의 정신으로 하나님을 알게 될때 우리의 삶은 찬란하게 빛날 것이며 복받쳐 오르는 기쁨과 감격을 주체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의 찬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참맛은 하나님을 아는데 있으며 하나님은 지혜와 계시의 정신으로만이 알수가 있는 것입니다. 호세아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우리 하나님을 아는 자에게는 새벽의 동터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것처럼 일정하게 우리를 도우시고 함께 하시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두번째 기도는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기를 기도합니다. 8절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만군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이 사실이 우리에게 실로 놀라운 영적인 축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합니다.그래서 바울은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눈을 밝히사”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즉 하나님이 왜 부르셨는지를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 왜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이땅에 살아가는 목적이 무엇이며 나를 통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일평생을 부르심에 대한 소망을 즉 소명의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우리 기독교공동체의 특징은 '부르심의 소망''소명받은 백성'이라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부르심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돌이켜보면,우리는 대단히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사실 우리는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지도 못하는 연약하고 게으르고 보잘것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마치 질그릇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보화를 담았습니다.그 보화가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내가 휼륭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불러 주셨기에 무가치한 나의 삶에서 참다운 가치를 찾았고, 허무한 삶에서 보람을 찾았으며,절망에서 희망을,죽음에서 생명과 영생을 얻은 것이었습니다.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것입니다. 어떤 정치가는 대통령이 한번 불러 주기만을 기다리며 일평생을 지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히3:1)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가장 높은 곳에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딤후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에게 그 소명을 받도 나아가는 자에게 풍성한 기업의 영광을 약속하셨습니다. 기업이라는 말을 다른말로 하면 '상속'입니다. 지혜와 계시의 정신으로 하나님을 알고 마음의 눈을 밝히 떠서 부르심의 소망을 알때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즉 '하나님의 상속' 입니다. 바울은 지금 너희가 하나님의 상속자라는 것을 분명히 알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우리에게 기업을 그것도 풍성한 기업을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더이상 가난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의 슬픔과 절망과 좌절은 더이상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즉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안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느냐 하는데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가져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소명에 응답하는 자에게 풍성한 축복을 허락하신다고 말씀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먼저 채워 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소명이 무엇인지 살펴서 힘써 행하여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의 삶에 풍성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세번째 기도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알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19절에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기를 구하노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하나님의 능력은 측량할 수 없이 큰 능력입니다. 측량할 수 없다는 말은 우리의 계산법으로는 헤아릴 수 조차도 없는 큰능력이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20절부터 이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능력은 죽음을 이기신 능력입니다. 즉 죽은 자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어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신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정사와 권세와 능력을 주셔서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케한 능력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교회는 능력의 공동체입니다. 교회에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능력이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머리이기 때문입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는 또한 우리에게 놀라운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인들은 놀라운 능력을 주셨다는 사실을 모르고 아주 무력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바울은 답답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우리 속에서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를 저희로 알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능성이 없는 사람은 대단히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가능성이 있으면서도 그 가능성을 알지못하는 사람은 더욱 불쌍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이 세상 살아갈 때,우리는 여러가지 이유로 좌절하고 실망도 합니다. 진정 어찌하여야 좋을지 모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우리가 기억할 것은 우리의 주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시34: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시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우리가 믿는 우리의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으로 우주를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이 하나님께서 그 오른손으로 우리를 붙들고 계시며,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지키시며, 우리를 보호하시고 함께하시고 인도하신다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음을 우리는 확신해야 합니다. 초대 교회 교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 이었습니다. 제자들도,사도들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성령받고,충만한 능력을 받고나서 전 세계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그 능력이 지금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꿈을 가지고 전진하여 합니다. 원대한 꿈과 비젼을 가지고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공동체를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가 기도할 때,“하나님,저에게 능력을 주시옵소서”하고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능력을 가지고 전진하게 하소서”라고 기도 하여야 할것입니다. 그러할 때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이제 바울의 기도는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으로,위대한 도전으로 다가옵니다. 이제 우리는 나의 삶속에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아시기 바랍니다 마음의 눈을 밝혀 부르심의 소망을 아시기 바랍니다. 기업의 풍성함에 대한 약속을 믿읍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 가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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