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인생 결산서 (행20,17-35)
본문
오늘로 사도 바울의 모든 행적을 마감한다. 그래서 오늘의 말씀의 제목도 "바울의 인생 결산서"라고 했다. 우리 모두들도 바울처럼 주님 앞에 우리 인생의 결산서를 제출할 날이 있을 것이다. 바울의 인생 결산서와 나의 결산서를 한 번 비교 검토하실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길 바란다. 바울이 하나님의 사도로 부름을 받은지 어언 14-15년이 흘렀다. 바울은 이 14-5년의 날들을 전도 여행으로 보내시었다.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을 마감하는 어느날 예루살렘으로 갈것을 말한다. 17절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밀레도항구에서 에베소가지는 약 40 Km나 되는 먼 거리였다.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교회 장로들이 정성을 다하여 바울을 찾아 왔다. 바울은 장로들을 향하여 하시고 있는 말은 "내가 여러해를 복음을 증거 하면서 오늘에 으리렀다. 이제 나는 예루살렘으로 가야한다.
그런데 내가 예루살렘으로 가면 거기서 무슨 일을 만날른지 알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장로님들이 나의 얼굴을 보는 것이 이 땅에서는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이제 후로는 다시는 나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참으로 심각한 시간이다. 우리들은 오늘까지 바울의 행적을 낱낱이 살펴 보았다. 이제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게되는 날에는 체포가 된다. 그리고 감옥에 가두게 되고 다시 가이사랴에 이감되었다가 빌립보 감옥에서 2년을 지낸 후에 그 어려웠던 풍랑의 항해를 거쳐서 로마의 감옥으로 향하게 되고 끝내는 로마에서 단두대에 목이 잘려서 죽는 순교로 그의 일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 행로를 바울이 어떻게 걸어 왔는가를 함께 종합적으로 살피고자 한다.
1,바울의 겸손 " 19절에 "곧 모든 겸손과…" 이 말은 바울에게는 참으로 의미가 많은 말이다.
왜냐하면 원래 바울은 겸손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부터가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Saul = 나는 위대하다. 나는 잘났다.는 뜻의 이름이다. 실제로 바울은 그런 사람이었다. 사람끼리의 비교가 되 수 없는 위대함이 그에게 있었다. 사람끼리 끼리 비교할 때 정말 잘랐었다. 그들이 자랑하는 히브리인중에 히브리인이었다. 베냐민 지파 사람이었다. 이는 얀반이란 말과 같다. 길리기야 다소에서 나서 자랐다. 큰 도시였고 철학의 도시였다. 가말리알의 문하에서 수학을 했다. 가장 권위 있는 스승이었다. 바리새파 사람이었다. 정통보수주의 를 말한다.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 대 제사장의 위임장을 가지고 있는 신분이었다. 참으로 위대했다. 그런 사울이 다메섹을 통과하다가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주여 뉘시니이까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다" 그때 사울은 자기 자신이 인간 쓰레기에도 미치지 못하는 존재임을 발견 하게 되었었다. 하나님께 잘한다고 했던 일들이 반대로 욕되게 하였었고 자긴 힘을 가지고 약자를 울리면서 살았었고 배운지식과 경험으로 얽울한 사람을 많이 만들면서 살았던 자기를. 사람끼리 끼리 비교했을 때 그깬 참으로 위대했었는데 막상 주님 앞에 서서 보니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바뀌어진 그의 이름이 Paul이었다. 그 후 바울은 한편생 겸손하게 살았었다. 지위, 돈, 지식, 재물, 경험, 인간끼리 비교하지 말라. 남들보다 이것은 내가 더 낳은데 하는 생각이 들거든 이시간 회개하고 바울처럼 겸손한 사람이 되시길 바란다.
2,바울의 눈물 " 19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사람이 땀흘리는 너력이 있으면 가난과 천대를 이기게 된다. 사람이 성경대로 눈물로 살면 죄악에서 떠나 의인의 삶을 살 수 있다. 바울은 예수 만난 후로는 그의 한 평생은 눈물로 살았던 사람이다. 31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일개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게하던 것을 기억하라" 고 했다.
1),자기의 과거를 청산하는 회개의 눈물이었다.
2),겸심의 눈물이었다. 다시는 과거로 돌아 가지 않겠다는 각오의 눈물이었다. 죄악과 결별하는 결김의 눈물이었다.
3),간구의 눈물이었다. 바울은 자기 수련을 위하여 아라바 관야에세 3년을 기도로 단연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4),감사의 눈물이었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이몸.) 나 같은 죄인 살리신 . 5),동정의 눈물이었다. (죄인들을 위해, 믿음 약한 자들을 볼때,. 31절의 말씀과 같이 눈물로 가르치고 교훈했던 사도였다. 바울은 뜨거운 눈물의 사람이었다.
3,바울의 증거 " 20절 "유익한 것은 무었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절에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유익된 것은 무었이든지 증거했다. 공중 앞에서 각 집에서 유대인에게든지 헬라인게든지 회개와 믿음에대하여 증거했다. 27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4,바울의 희생 " 23절 "오직 성령님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14-5년을 복음을 증거한 후의 예루살렘에서 바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었인가 결박과 환난이었다. 사도 바울이 당한 환난은 성령님께서 미리 예시해 주었던 환난이었다. 로마를 위하여 또 이방세계를 위하여 더 땅끝까지의 복의 역사를 위하여 바울이 환난과 결박을 당해야 했었다. 그렇다 희생이 없이는 사람을 살릴 수 없다. 24절에서 "나의 달려 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음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복음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희생한 바울이다 누군가가 교회를 위한 희생이 있을 때 교회가 부흥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남들을 위하여 희생할 때 그가 살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의 희생 때문에 믿는 온 인류의 구원이 있었다. 희생이 없이는 천국도 면류관도 생각하지 말라.
5,바울의 사명 " 24절의 말씀과 같이 바울은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이었다. 주께로부터 받은바 사명을 감당함에 자기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한 사람이었다. 사명을 수행하는 사람은 사명을 수핸할 때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는다. 사명자는 군인과 같은 사람이다. 우리에게 사명을 주신 분은 우리들의 대장인신 에수 그리스도이시다. 대장이신 에수께서 "너는 예루살렘으로 가라 !" 하시면 "아멘 !너는 로마로 가라 !" 하시면 "아멘 !" 아멘만 있을 뿐이다. 바울은 이 아멘을 수행하기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었다. 바울에게 생명이 두개 세개 있었던 아니다.
6,바울의 결백 " 33절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이나 탐하지 아니하였고" 34절에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에베소 장로들에게 실지로 삶으로 보여 주었던 것을 말하고 있음이다. 바울은 물질에 결백한 사람이었다. 물질 때문에 남에게 전혀 부담이 되지 않았다. 목사이든 장로이든 일반 성도이든지 우리 모두는 바울처럼 물질에 결백한 사람이 되어야 믿음에 성공할 수 있다. 사람이 물질에 눈이 뜨이게 되면 추잡해지기가 쉽다. 물질에 좀 둔해도 영적으로 민감할 수 있어야 한다.
7,바울의 사랑 " 세상에선 어떤 사람이 부자인가요 재물이 많은 사람, 남들보다 많이 가진 사람이 부자이다. 그렇다 많이 가진 사람이 부자이다. 그러나 하늘에 쌓는 사람은 그 사람들 보다 더 큰 부자이다. 35절 하반절에 ".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했다. 우리 주님은 골고다 십자가에서 인류를 위하여 자기 전부를 다 주시었다. 한 방울의 피도, 물도, 살도 남기지 않으시고 다 주시었다.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시었기 때문이다. 사랑이 무었인가 주는 것이다. 주님처럼, 바울처럼 주는 것이 사랑이다. 오늘의 사랑의 정의를 다시해야할 것 같다. 계산적이고 타산적이고 다시 되돌려 받기 위한 것이 되고 있다. 사랑은 아낌 없이 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자기를 주기 위하여 지금 에루살렘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남김이 없이 다 주시기 위하여 로마로 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여러분들이 인생의 결산서를 쓰신다면 어떤 것을 쓸 수 있겠는가 사람들과 비교하지 말라. 바울과 비교해 보자! 예수님과 한 번 비교해 보자 !. 바울처럼 아주 멋 있는 인생의 결산서를 주님께 드릴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축원한다. 아멘
그런데 내가 예루살렘으로 가면 거기서 무슨 일을 만날른지 알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장로님들이 나의 얼굴을 보는 것이 이 땅에서는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이제 후로는 다시는 나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참으로 심각한 시간이다. 우리들은 오늘까지 바울의 행적을 낱낱이 살펴 보았다. 이제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게되는 날에는 체포가 된다. 그리고 감옥에 가두게 되고 다시 가이사랴에 이감되었다가 빌립보 감옥에서 2년을 지낸 후에 그 어려웠던 풍랑의 항해를 거쳐서 로마의 감옥으로 향하게 되고 끝내는 로마에서 단두대에 목이 잘려서 죽는 순교로 그의 일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 행로를 바울이 어떻게 걸어 왔는가를 함께 종합적으로 살피고자 한다.
1,바울의 겸손 " 19절에 "곧 모든 겸손과…" 이 말은 바울에게는 참으로 의미가 많은 말이다.
왜냐하면 원래 바울은 겸손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부터가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Saul = 나는 위대하다. 나는 잘났다.는 뜻의 이름이다. 실제로 바울은 그런 사람이었다. 사람끼리의 비교가 되 수 없는 위대함이 그에게 있었다. 사람끼리 끼리 비교할 때 정말 잘랐었다. 그들이 자랑하는 히브리인중에 히브리인이었다. 베냐민 지파 사람이었다. 이는 얀반이란 말과 같다. 길리기야 다소에서 나서 자랐다. 큰 도시였고 철학의 도시였다. 가말리알의 문하에서 수학을 했다. 가장 권위 있는 스승이었다. 바리새파 사람이었다. 정통보수주의 를 말한다.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 대 제사장의 위임장을 가지고 있는 신분이었다. 참으로 위대했다. 그런 사울이 다메섹을 통과하다가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주여 뉘시니이까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다" 그때 사울은 자기 자신이 인간 쓰레기에도 미치지 못하는 존재임을 발견 하게 되었었다. 하나님께 잘한다고 했던 일들이 반대로 욕되게 하였었고 자긴 힘을 가지고 약자를 울리면서 살았었고 배운지식과 경험으로 얽울한 사람을 많이 만들면서 살았던 자기를. 사람끼리 끼리 비교했을 때 그깬 참으로 위대했었는데 막상 주님 앞에 서서 보니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바뀌어진 그의 이름이 Paul이었다. 그 후 바울은 한편생 겸손하게 살았었다. 지위, 돈, 지식, 재물, 경험, 인간끼리 비교하지 말라. 남들보다 이것은 내가 더 낳은데 하는 생각이 들거든 이시간 회개하고 바울처럼 겸손한 사람이 되시길 바란다.
2,바울의 눈물 " 19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사람이 땀흘리는 너력이 있으면 가난과 천대를 이기게 된다. 사람이 성경대로 눈물로 살면 죄악에서 떠나 의인의 삶을 살 수 있다. 바울은 예수 만난 후로는 그의 한 평생은 눈물로 살았던 사람이다. 31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일개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게하던 것을 기억하라" 고 했다.
1),자기의 과거를 청산하는 회개의 눈물이었다.
2),겸심의 눈물이었다. 다시는 과거로 돌아 가지 않겠다는 각오의 눈물이었다. 죄악과 결별하는 결김의 눈물이었다.
3),간구의 눈물이었다. 바울은 자기 수련을 위하여 아라바 관야에세 3년을 기도로 단연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4),감사의 눈물이었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이몸.) 나 같은 죄인 살리신 . 5),동정의 눈물이었다. (죄인들을 위해, 믿음 약한 자들을 볼때,. 31절의 말씀과 같이 눈물로 가르치고 교훈했던 사도였다. 바울은 뜨거운 눈물의 사람이었다.
3,바울의 증거 " 20절 "유익한 것은 무었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절에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유익된 것은 무었이든지 증거했다. 공중 앞에서 각 집에서 유대인에게든지 헬라인게든지 회개와 믿음에대하여 증거했다. 27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4,바울의 희생 " 23절 "오직 성령님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14-5년을 복음을 증거한 후의 예루살렘에서 바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었인가 결박과 환난이었다. 사도 바울이 당한 환난은 성령님께서 미리 예시해 주었던 환난이었다. 로마를 위하여 또 이방세계를 위하여 더 땅끝까지의 복의 역사를 위하여 바울이 환난과 결박을 당해야 했었다. 그렇다 희생이 없이는 사람을 살릴 수 없다. 24절에서 "나의 달려 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음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복음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희생한 바울이다 누군가가 교회를 위한 희생이 있을 때 교회가 부흥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남들을 위하여 희생할 때 그가 살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의 희생 때문에 믿는 온 인류의 구원이 있었다. 희생이 없이는 천국도 면류관도 생각하지 말라.
5,바울의 사명 " 24절의 말씀과 같이 바울은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이었다. 주께로부터 받은바 사명을 감당함에 자기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한 사람이었다. 사명을 수행하는 사람은 사명을 수핸할 때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는다. 사명자는 군인과 같은 사람이다. 우리에게 사명을 주신 분은 우리들의 대장인신 에수 그리스도이시다. 대장이신 에수께서 "너는 예루살렘으로 가라 !" 하시면 "아멘 !너는 로마로 가라 !" 하시면 "아멘 !" 아멘만 있을 뿐이다. 바울은 이 아멘을 수행하기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었다. 바울에게 생명이 두개 세개 있었던 아니다.
6,바울의 결백 " 33절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이나 탐하지 아니하였고" 34절에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에베소 장로들에게 실지로 삶으로 보여 주었던 것을 말하고 있음이다. 바울은 물질에 결백한 사람이었다. 물질 때문에 남에게 전혀 부담이 되지 않았다. 목사이든 장로이든 일반 성도이든지 우리 모두는 바울처럼 물질에 결백한 사람이 되어야 믿음에 성공할 수 있다. 사람이 물질에 눈이 뜨이게 되면 추잡해지기가 쉽다. 물질에 좀 둔해도 영적으로 민감할 수 있어야 한다.
7,바울의 사랑 " 세상에선 어떤 사람이 부자인가요 재물이 많은 사람, 남들보다 많이 가진 사람이 부자이다. 그렇다 많이 가진 사람이 부자이다. 그러나 하늘에 쌓는 사람은 그 사람들 보다 더 큰 부자이다. 35절 하반절에 ".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했다. 우리 주님은 골고다 십자가에서 인류를 위하여 자기 전부를 다 주시었다. 한 방울의 피도, 물도, 살도 남기지 않으시고 다 주시었다.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시었기 때문이다. 사랑이 무었인가 주는 것이다. 주님처럼, 바울처럼 주는 것이 사랑이다. 오늘의 사랑의 정의를 다시해야할 것 같다. 계산적이고 타산적이고 다시 되돌려 받기 위한 것이 되고 있다. 사랑은 아낌 없이 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자기를 주기 위하여 지금 에루살렘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남김이 없이 다 주시기 위하여 로마로 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여러분들이 인생의 결산서를 쓰신다면 어떤 것을 쓸 수 있겠는가 사람들과 비교하지 말라. 바울과 비교해 보자! 예수님과 한 번 비교해 보자 !. 바울처럼 아주 멋 있는 인생의 결산서를 주님께 드릴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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