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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신앙관 (빌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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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빌립보서 3장 10절부터 공부하겠습니다. 3장 10절부터 16절까지 함께 봉독, 지난 시간에 우리는 바울의 신앙관을 통해 은혜를 받았다. 자신이 영광스럽게 생각했던 모든 것들, 즉 자신의 지식과 지혜,가문과 학벌,그리고 율법준수에 대한 자부심등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 할 수 있는 것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후 부터는 배설물로밖에 여기지 않는다는 놀라운 바울의 고백을 통해 강한 신앙의 도전을 받았다. 이제 그가 새롭게 알게 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1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그리스도를 머리로만 아는 지식적인 믿음. = 자칫 비판적인 사람으로 변화. =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판단 하므로 하나님을 오해하게 되고 그래서 이단이 나오기도 한다.-실제 삶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배우고 체험하는 믿음. = 바람직한 믿음이지만 그러나 체험적 신앙만 고집하게 되면 자칫 신령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산신령이 된다. 여러분, 빛이 있다고 말로만 들은 사람의 빛에 대한 개념과 짙은 어둠속에서 길을 잃고 두려움속에 서 방항하다가 빛을 바라본 사람의 개념은 이론상으로는 같은 빛이지만 그 이미지는 하늘과 땅과 같은 차이를 이룬다. = 부활의 권능은 무엇인가-바로 사망권세를 깨뜨린 힘이다. 예수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사흘만 에 다시 부활하시므로 죽음직전의 모진 고통과 죽음을 이기셨다.-예수를 믿게 되면 바로 이 부활의 권능의 옷을 입게 되므로 고난을 이기는 힘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 고난에 참예함은 무엇인가-하나님의 뜻에 자기를 복종시키는 것이다.-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을 따랐듯이 우리도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다 벧전2:21에서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계속해서 벧전4:13에서 말씀하고 있는데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줄거워 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함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할때 어떤 어려움이 그 우리 앞을 가로 막을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참고 이기는자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에하는 자요 그리스도의 영광에도 함께 참예하게 되는 것이다. 11절 '어찌 하든지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바울의 부활은 심판의 부활이 아니라 생명의 부활이다. 자신의 순교를 생각하며 주님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자신의 처지가 자랑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자랑스럽게 주님앞에서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으로 부활하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부활하게 된다. 믿는자나 믿지 않는자나 모두 다시 부활하게 되는데 저와 여러분은 심판의 부활이 아니라 생명의 부활로 다시 일어나게 될 것이다. 12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 가노라.' = 이 땅에서 우리는 완전히 그 무엇을 이룰수는 없다. 내가 어떤 신앙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해서 안심하고 만족해 버리면 마치 이것과 같다.-마라톤 선수가 앞장섰다고 해서, 아니면 이미 트랙에 들어섰고 아무도 따라 오는 자가 없 다고 해서 이제 됐다고 주저 앉아 있으면 이 선수는 면류관을 쓰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 게 빼앗기고 만다.-바울같은 위대한 믿음의 소유자도 결코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 만족함이 없었다. 끊임없이 거룩한 것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자세로 살았다. = 그가 앞으로 나아가는 뚜렷한 목표가 무엇인가-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에수께 잡힌바가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구원을 체험했고 또 이방 구원을 위한 사도로써 사용되었다. 이와 같이 그는 자기를 예수께서 잡으신 이유를 알고 있었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죽을 때까지 혼신의 힘을 기울이겠다는 그의 의지이기도 하다
여러분은 예수께서 여러분을 잡으신 목적을 헤아리고 있는가 왜 예수께서 여러분을 위해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는가 그리고 여러분을 구원하신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가 = 공통적인 목적은-바로 나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나타내시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신이 되는 셈이다.-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나를 통하여 예수를 알리므로 세상 사람들을 구하시기 위함이다. = 우리는 그 임무를 죽을 때까지 완수해야 한다. 앞으로 달려가는 육상선수에게는 쉼이라는 것이 없다. 끊임없이 달려야 한다. 13절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이 말씀은 12절의 말씀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확고부동한 바울의 목표를 말씀하고 있다. = 무엇을 정해놓고 뛰기 시작했으면 절대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된다.
= 본문에서 표현한 뒤에 있는 것은 바로 엣날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 세상적 명예심으로 가득했던 자기 자신을 말하고 있다.-세상의 보화에 눈을 빼앗기면 앞에 보이는 찬란한 세계를 볼 수 없다.-롯의 아내의 어리석음, (하나님이 경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보화에 눈을 돌리다가 소금기둥이 되었다) = 세상 부귀와 명예 다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가 목표가 되어 뛰어가는 열정의 믿음의 사나이 바울.이와같은 신앙을 우리도 본받아야 할것이다. 세상 부귀 안일함과 모든 명예 버리고 험한길을 가는동안 나와 동행하소서 주께로 가까이 주께로 가오니 나의 갈길 다가도록 나와 동행하소서(492) 이와같은 신앙이 되도록 우리는 힘을 써야 될 것이다. 14절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 가노라.' 마라톤 선수가 자기에게 주어질 상을 의심하게 되면 고통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상실하게 된다. 자기에게 주어질 면류관과 푸짐한 상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다리에 쥐가 내려도, 심장이 멎어버릴 것 같은 고통이 와도 이를 악물고 뛸 수 있는 것이다. = 누가 뭐라고해도 여러분의 목표는 확고부동한가 = 그리고 여러분에게 완주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는 에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고 게시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는가 = 또한 우리가 달려갈 길을 다 마쳤을 때 우리에게 주어질 면류관을 의심하지 않는가 우리가 면류관을 쓰는 날 이땅의 모든 고통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기쁨과 영광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본문에서 말하는 푯대는 바로 그러한 상급을 말한다. 우리에게 분명한 목표를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해야 한다. 목표가 없는 자는 방황하는 삶이다. 설혹 목표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주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면 그 목표에 대해 곧 실망하게 되고 허탈한 마음으로 좌절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 우리모두 푯대를 향하여, 우리에게 주어질 면류관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힘차게 달려 나가자. ♪앞으로 앞으로 천성을 향해 나가세 천성문만 바라고 나가세 모든 천사 너희를 영접하러 문 앞에 기다려 서있네(401장) 할렐루야! 15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 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여기에서 온전히 이룬자들은
1) 자기는 영적으로 완전무결하다고 생각하므로 남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으로 신앙생활 하는자, 즉 스스로 온전하다고 자부하는자, 또는
2) 신앙적으로 성숙한 자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좀더 깊이 말하면 앞에서 바울이 언급한 '뒤엣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자' 라는 바울의 의견에 반대표를 던지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들은 지적으로 에수를 믿으려 하기 때문에 이 세상것을 완전히 부인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것도 취하고 하늘의 신령한 것도 취하자는 것이다. = 자유주의 신학-세상을 외면해서는 인된다는 논리(맞는 얘기다)-그러나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방법에 있어서가 문제다. = 목사가 날마다 시국문제 때문에 감옥에나 들어가 앉아있고,(예수때문에 핍박을 받는 것이면 몰라도) 날마다 누구 물러나라고 투쟁이나 하고, 농민들 불쌍하다고 농업정책 개선하라고 금식투쟁하고, 사람들을 선동해서 앞장서기 좋아하고, 심지어 어떤 교회는 헌금으로 빵과 우유를 사서 데모하는 사람들에게 점심 제공하고 간식 제공해주는 교회도 있다. = 그렇게 고지식하게 교회에서 날마다 '예수, 예수'만 하지 말고 세상 일에도 좀 신경을 쓰면서 하자는 논리를 펴는 사람들은 사탄적이다.-그런 사람들은 교회당 짓는 것이 못마땅하다. 그돈으로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고 주장한다.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헌금으로 그런 사람들 정치 자금으로 도와 주어서 나라가 잘 사는 것이 더 좋은 일이다라고 말한다.-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들이다.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님을 위해 쏟아 붓자 그것을 아깝게 생각하고 가난한 자들에 게 줄것을 제의 했다. 그러나 성경은 그를 도적이라고 표현했다.
여러분 하나님을 위한 것은 절대 낭비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 영광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은 뒤에 있고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열심히 전도하고 에수 믿는 사람이 많아지면 어두운 사회가 변화되는 것이다. 바울은 그러한 사람들도 하나님께 맡기고 있다. 우리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바울의 신앙이다.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도해 주실 것이다라는 믿음을 갖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성숙한 싱앙인의 면모를 바울은 보여주고 있다. 16절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신앙의 본질은 결코 다를 수 없다. 그러나 신앙의 이해는 그 신앙의 성속도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 그렇다할지라도 목표는 다 같은 예수 그리스도라면 현재의 내 신앙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리스도안에서 완전해 질때까지 분투 노력하자는 의미로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결코 포기 해서는 안된다. 내 믿음이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목표를 향해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달려가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에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 가르치신 믿음의 교훈들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행할때 우리의 목표를 이룰 수가 있는 것이다. 바울과 같이 우리도 뒤엣것은 잊어버리고 오직 앞에 있는 것을 잡기위해 푯대를 향하여 힘차게 달려 가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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