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심정(1) (살전2:14-20)
본문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하며, 항 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감사는 땅의 것으로 인한 감사가 아니라 하늘 의 것으로 인한 감사였으며, 육적인 감사가 아니라 신령한 감사였습니다. 그 감사는 때문에 아름다운 감사였으며 우리 모두의 감사여야 하기도 합니다.
I.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은 것을 감사했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설교자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할 때마다 그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목회자들의 기쁨이요, 축복 받은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확신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 로 된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딤후3:16,17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 즉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벧전1:21 에서도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님의 감동 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볼 때에 구약이나 신약의 모든 말씀은 모두 성령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이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 마음이 뜨거워지며, 생활이 변화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전한 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모범적인 교회로 만들었고, 이런 성도들을 가르쳐 모든 성도들의 모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땅에 있는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그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 하느니 라."라고 했으니 이렇게 귀한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들을 통해서 큰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성령님은 설교라고 하는 수레를 타고 성도의 심령으로 들어가신다."라고 말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들을 때에 사람들의 마음에 감화가 일어나는 것은 성령님이 그 설교를 가지고 역사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설교가 있는 곳에서 많은 감 화가 일어나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도 말씀을 가지고 성령님이 역사 하시기 때문입니다. 방탕한 탕자와 같았던 어거스틴이 어느 날 "펴서 읽어라! 펴서 읽어라!"라 고 하는 동네의 어린아이들의 장난 노래 소리에 성경을 폈는데 그 말씀에 붙 들려 과거의 방탕한 모든 삶을 청산한 후에 위대한 성자가 되고 신학자가 되 었던 것입니다. 그가 그때 읽은 말씀은 롬13:12-14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방탕한 생활을 버리고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 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방탕한 어거스틴을 성자로 만들은 것입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에 붙들려 그 위대한 종교 개혁을 단행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말씀은 롬1:17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 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씀입니다. 이 한 구절의 말씀이 세계 역사의 판도를 바꾸어 놓은 말씀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설교하는 그 말씀의 수레를 타시고 성령님이 역사 하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하신 말씀이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 느니라"(마19:26)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 잉태 소식을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들은 마리아가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나이까!"라고 할 때에 천사가 말하기 를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라고 하시면서 하는 말이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눅1:37)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꼭 확 신해야 할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늘 말씀하시기를 "들을 귀있는 자는 들으라"(막4:23)라고 하 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너무나 귀해서 성령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Ⅱ. 하나님의 교회를 본 받는 자들이 된 것을 감사했습니다. 이제 14절로 넘어 가겠습니다. 14절 이하에서는 예수를 따르는 자들의 자세 를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고난과 박해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 받는 자들이 되었 다고 합니다. 이것을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첫째는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본 받았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행2:42절을 두고 하는 말씀이리라 봅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사도들의 가르침을 잘 받았습니다. 서로 교제가 재미 있었습니다. 떡을 떼며, 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공 동 생활을 하고 모든 물건을 서로 나눠 쓰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고 성전 에 모이기를 힘쓰고, 서로 사랑하는 유대에 있는 교회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이 그대로 본 받았습니다. 우리는 좋은 것은 본 받 을 줄 알아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은혜 받는 중에 더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핍박과 고난도 배웠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나라 사람들에게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14)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그들이 지금까지 섬겨 왔던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 왔습니다.(살전1:9) 그러니 그 마을에서, 그 집안에서 얼마나 핍박이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그 많은 핍박이 있었지만 그 들은 조금도 요동치 않았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귀합니까! 당시에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생명과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회교권 에 가서 선교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 로 영접하는 일은 그 사회에서 매장되는 일이요, 생계에 위험을 가져오고, 집 안에서 쫓겨 나는 일이요, 심하면 암살의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좋은 줄은 알지만 그것이 두려워 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데살 로니가 형편이 그런 상황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주를 섬겼습니다. 이것을 보니 바울은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감사의 눈물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당시의 유대인들의 죄가 무엇입니까! 15절입니다. "유대인은 주 예수 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사도)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아니하고 모든 사람의 대적이."되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죄입니까! 그 들은 예수를 죽였습니다. 흉악한 강도 바라바에게는 너그럽고 나의 죄를 위 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한다고 하였으니 얼마나 악한 일입니까! 빌라도가 "이 예수를 어떻게 하랴!" 하니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아우성입니다. 그때 빌라도가 말하기를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라고 할 때에 그들은 이구 동성으로 말하기를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라!"라고 하면서 예수를 죽이지 않았습니까!(마27:24-26) 그 들은 예수를 죽이면서도 그것이 무서운 죄인 줄 알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그 민족이 하나님의 무서운 형벌을 받고 그 후손이 그들의 말대로 피값을 치르 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선지자들을 죽이고, 핍박하고 괴롭게 하고 고통을 주 었습니다. 사도들을 쫓아내고 말았습니다. 이런 무서운 일을 하면서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강렬한 빛 가운데 계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음성으로 주님을 만났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주여! 뉘시오니까!네가 핍박하는 예수니라!" 사실 바울 은 예수를 괴롭게 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를 만나 본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네가 왜 나를 핍박하였느냐!"라고 하십니다. 무 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온 선지자들을 괴롭히고 주의 종들을 괴롭 게 하고 자기의 백성들을 괴롭게 하는 것은 곧 주님을 괴롭게 하는 것임을 주님은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 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마10:4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사울이 이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런 무서운 죄를 범 하고 말았습니다. 결국은 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는 일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보면 불신자들 보다 하나님을 안다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더 핍박하고, 괴롭게 하고 하나님의 일을 더 훼방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불신자보다 하나님께 더 큰 심판을 받는다고 성경 은 말씀하고 있습니다.(마11:22, 요9:41, 15:22, 롬2:9) 16절에 좀더 구체적으로 그들의 죄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 얻게 함을 저희가 금하여."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 전하는 일을 방해하였다는 말입니다. 구원 얻을 사람을 구원받지 못하게 방 해하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자들을 훼방하지 마세요! 힘써 기도해 주 고, 격려해 주고, 도와주려고 하세요!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하고 있지 않습니까! 길에서 전도하는 사람들을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비난하는 것을 봅니다. "꼭 저런 방식으로 해야 하나! 그래 가지고누가 예수 믿겠나!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 가리우지 않겠나!"하면서 안 좋은 시각으로 보는 그리스도인 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말 한마디라도 "추운데 수고하십니다.!"라고 격려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복음에 역행하고 교회를 핍박하고 선지자와 사도들을 핍박하는 것은 ".자기 죄를 항상 채우."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죄를 항 상 채운다"는 말은 어쩌다 실수로 죄를 범하는 행위가 아니라 의도적이고, 계획적이고, 상습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습관적으 로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게되면 결국은 하나님의 큰 심판을 받고야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마음은 이런 사람들을 심판하시기보다는 회개하고 돌아오기 를 그렇게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딤전2:4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 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벧후3:9에도 "주의 약속이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 하시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죄의 길에 있는 사람들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악용하지 말고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하루 빨리 죄의 길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다.(욥11:14, 사55:7, 엡4:22, 골2:11, 히12:1, 벧전 2:11) 잠28:14에도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하셨으니 우리 하나님께 불쌍히 여 김을 받고 사람에게 불쌍히 여김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15절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라면 가장
첫째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사람입니다. 모든 삶속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까 하는 것이 신실한 성도들의 관심사입니다. 무슨 일을 하기 전에 이 일이 내게 어떤 유익을 주는가 보다도 이 일로 인해서 하나님과 교회에, 그리고 우리의 이웃에게 어떠한 이득을 줄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사람이 신실한 성도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입니다. 전에 부당한 방법으로 노동자들을 착취한 한 기업의 기업주가 TV에 보도 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장은 교회에 중직자입니다. 공장 내에 예배실 을 마련하여 놓고 늘 공장에 복음 성가와 찬송가를 틀어 주던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직원들의 노임을 착취하고 노동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 동안에 그가 공장에서 예배를 드리고 신앙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것은 아무리 작업 조건이 나빠도 믿음으로 견디라고 하는 아주 고약한 의도 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가 비록 교회의 중직자라고 해도 하나님 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를 박해하는 사람이요, 전도를 막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대선의 성도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실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Ⅲ. 끝으로 바울의 심정을 살펴보면서 이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17절-20절입니다. 이 본문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이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바울은 헤어진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얼굴 보기를 그렇게 갈망했습니다. 저들과 헤어진 것이 너무나 아 쉽고 섭섭해서 잠깐 몸이 떨어져 있을 뿐, 마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을 통하면 얼굴이라도 보고 싶은 법입니다. 누구를 보고 싶다는 것은 그 마음속에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가기를 애썼습니다. 사랑하는 그들을 찾아가서 아직도 신 앙이 어린 그들을 붙잡아 주고 싶었고, 핍박 중에 있다고 하니 위로해 주고 싶기도 하였고, 그들의 신앙의 성장을 도와주고 싶어서 그렇게 가기를 원하 였지만 사단이 막았다고 했습니다. 사단이 어떻게 막았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벵겔(Bengel)이라는 학자는 핍박 때문이라고도 했고, 바울의 몸이 약해서 가지 못하지 않았지 않는가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복음이 활발하게 전하여지고 교회가 아름답게 성장되려고 하면 반드시 사단의 방해 공작도 활발하다는 것을 기억하고 마귀 를 대적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벧전5:8,9) 바울의 기쁨과 소망과 자랑이 무엇인지 19절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로 "신실한 너희가 아니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 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이것은 어디 바울 뿐이겠습니까! 모든 주의 종들의 기쁨이요, 소망이요, 자 랑일 것입니다. 대선 교회를 목회 하는 나의 기쁨과 소망과 자랑은 바로 내 앞에 있는 여러분들입니다. 여러분들 모두를 장차 재림하실 주님 앞에 자랑 스럽게 세우고 싶은 욕심이 제게 있습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 함께 열심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모두를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I.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은 것을 감사했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설교자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할 때마다 그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목회자들의 기쁨이요, 축복 받은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확신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 로 된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딤후3:16,17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 즉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벧전1:21 에서도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님의 감동 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볼 때에 구약이나 신약의 모든 말씀은 모두 성령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이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 마음이 뜨거워지며, 생활이 변화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전한 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모범적인 교회로 만들었고, 이런 성도들을 가르쳐 모든 성도들의 모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땅에 있는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그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 하느니 라."라고 했으니 이렇게 귀한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들을 통해서 큰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성령님은 설교라고 하는 수레를 타고 성도의 심령으로 들어가신다."라고 말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들을 때에 사람들의 마음에 감화가 일어나는 것은 성령님이 그 설교를 가지고 역사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설교가 있는 곳에서 많은 감 화가 일어나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도 말씀을 가지고 성령님이 역사 하시기 때문입니다. 방탕한 탕자와 같았던 어거스틴이 어느 날 "펴서 읽어라! 펴서 읽어라!"라 고 하는 동네의 어린아이들의 장난 노래 소리에 성경을 폈는데 그 말씀에 붙 들려 과거의 방탕한 모든 삶을 청산한 후에 위대한 성자가 되고 신학자가 되 었던 것입니다. 그가 그때 읽은 말씀은 롬13:12-14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방탕한 생활을 버리고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 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방탕한 어거스틴을 성자로 만들은 것입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에 붙들려 그 위대한 종교 개혁을 단행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말씀은 롬1:17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 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씀입니다. 이 한 구절의 말씀이 세계 역사의 판도를 바꾸어 놓은 말씀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설교하는 그 말씀의 수레를 타시고 성령님이 역사 하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하신 말씀이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 느니라"(마19:26)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 잉태 소식을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들은 마리아가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나이까!"라고 할 때에 천사가 말하기 를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라고 하시면서 하는 말이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눅1:37)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꼭 확 신해야 할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늘 말씀하시기를 "들을 귀있는 자는 들으라"(막4:23)라고 하 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너무나 귀해서 성령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Ⅱ. 하나님의 교회를 본 받는 자들이 된 것을 감사했습니다. 이제 14절로 넘어 가겠습니다. 14절 이하에서는 예수를 따르는 자들의 자세 를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고난과 박해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 받는 자들이 되었 다고 합니다. 이것을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첫째는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본 받았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행2:42절을 두고 하는 말씀이리라 봅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사도들의 가르침을 잘 받았습니다. 서로 교제가 재미 있었습니다. 떡을 떼며, 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공 동 생활을 하고 모든 물건을 서로 나눠 쓰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고 성전 에 모이기를 힘쓰고, 서로 사랑하는 유대에 있는 교회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이 그대로 본 받았습니다. 우리는 좋은 것은 본 받 을 줄 알아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은혜 받는 중에 더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핍박과 고난도 배웠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나라 사람들에게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14)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그들이 지금까지 섬겨 왔던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 왔습니다.(살전1:9) 그러니 그 마을에서, 그 집안에서 얼마나 핍박이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그 많은 핍박이 있었지만 그 들은 조금도 요동치 않았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귀합니까! 당시에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생명과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회교권 에 가서 선교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 로 영접하는 일은 그 사회에서 매장되는 일이요, 생계에 위험을 가져오고, 집 안에서 쫓겨 나는 일이요, 심하면 암살의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좋은 줄은 알지만 그것이 두려워 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데살 로니가 형편이 그런 상황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주를 섬겼습니다. 이것을 보니 바울은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감사의 눈물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당시의 유대인들의 죄가 무엇입니까! 15절입니다. "유대인은 주 예수 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사도)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아니하고 모든 사람의 대적이."되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죄입니까! 그 들은 예수를 죽였습니다. 흉악한 강도 바라바에게는 너그럽고 나의 죄를 위 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한다고 하였으니 얼마나 악한 일입니까! 빌라도가 "이 예수를 어떻게 하랴!" 하니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아우성입니다. 그때 빌라도가 말하기를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라고 할 때에 그들은 이구 동성으로 말하기를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라!"라고 하면서 예수를 죽이지 않았습니까!(마27:24-26) 그 들은 예수를 죽이면서도 그것이 무서운 죄인 줄 알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그 민족이 하나님의 무서운 형벌을 받고 그 후손이 그들의 말대로 피값을 치르 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선지자들을 죽이고, 핍박하고 괴롭게 하고 고통을 주 었습니다. 사도들을 쫓아내고 말았습니다. 이런 무서운 일을 하면서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강렬한 빛 가운데 계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음성으로 주님을 만났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주여! 뉘시오니까!네가 핍박하는 예수니라!" 사실 바울 은 예수를 괴롭게 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를 만나 본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네가 왜 나를 핍박하였느냐!"라고 하십니다. 무 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온 선지자들을 괴롭히고 주의 종들을 괴롭 게 하고 자기의 백성들을 괴롭게 하는 것은 곧 주님을 괴롭게 하는 것임을 주님은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 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마10:4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사울이 이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런 무서운 죄를 범 하고 말았습니다. 결국은 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는 일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보면 불신자들 보다 하나님을 안다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더 핍박하고, 괴롭게 하고 하나님의 일을 더 훼방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불신자보다 하나님께 더 큰 심판을 받는다고 성경 은 말씀하고 있습니다.(마11:22, 요9:41, 15:22, 롬2:9) 16절에 좀더 구체적으로 그들의 죄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 얻게 함을 저희가 금하여."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 전하는 일을 방해하였다는 말입니다. 구원 얻을 사람을 구원받지 못하게 방 해하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자들을 훼방하지 마세요! 힘써 기도해 주 고, 격려해 주고, 도와주려고 하세요!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하고 있지 않습니까! 길에서 전도하는 사람들을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비난하는 것을 봅니다. "꼭 저런 방식으로 해야 하나! 그래 가지고누가 예수 믿겠나!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 가리우지 않겠나!"하면서 안 좋은 시각으로 보는 그리스도인 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말 한마디라도 "추운데 수고하십니다.!"라고 격려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복음에 역행하고 교회를 핍박하고 선지자와 사도들을 핍박하는 것은 ".자기 죄를 항상 채우."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죄를 항 상 채운다"는 말은 어쩌다 실수로 죄를 범하는 행위가 아니라 의도적이고, 계획적이고, 상습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습관적으 로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게되면 결국은 하나님의 큰 심판을 받고야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마음은 이런 사람들을 심판하시기보다는 회개하고 돌아오기 를 그렇게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딤전2:4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 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벧후3:9에도 "주의 약속이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 하시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죄의 길에 있는 사람들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악용하지 말고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하루 빨리 죄의 길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다.(욥11:14, 사55:7, 엡4:22, 골2:11, 히12:1, 벧전 2:11) 잠28:14에도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하셨으니 우리 하나님께 불쌍히 여 김을 받고 사람에게 불쌍히 여김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15절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라면 가장
첫째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사람입니다. 모든 삶속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까 하는 것이 신실한 성도들의 관심사입니다. 무슨 일을 하기 전에 이 일이 내게 어떤 유익을 주는가 보다도 이 일로 인해서 하나님과 교회에, 그리고 우리의 이웃에게 어떠한 이득을 줄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사람이 신실한 성도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입니다. 전에 부당한 방법으로 노동자들을 착취한 한 기업의 기업주가 TV에 보도 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장은 교회에 중직자입니다. 공장 내에 예배실 을 마련하여 놓고 늘 공장에 복음 성가와 찬송가를 틀어 주던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직원들의 노임을 착취하고 노동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 동안에 그가 공장에서 예배를 드리고 신앙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것은 아무리 작업 조건이 나빠도 믿음으로 견디라고 하는 아주 고약한 의도 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가 비록 교회의 중직자라고 해도 하나님 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를 박해하는 사람이요, 전도를 막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대선의 성도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실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Ⅲ. 끝으로 바울의 심정을 살펴보면서 이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17절-20절입니다. 이 본문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이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바울은 헤어진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얼굴 보기를 그렇게 갈망했습니다. 저들과 헤어진 것이 너무나 아 쉽고 섭섭해서 잠깐 몸이 떨어져 있을 뿐, 마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을 통하면 얼굴이라도 보고 싶은 법입니다. 누구를 보고 싶다는 것은 그 마음속에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가기를 애썼습니다. 사랑하는 그들을 찾아가서 아직도 신 앙이 어린 그들을 붙잡아 주고 싶었고, 핍박 중에 있다고 하니 위로해 주고 싶기도 하였고, 그들의 신앙의 성장을 도와주고 싶어서 그렇게 가기를 원하 였지만 사단이 막았다고 했습니다. 사단이 어떻게 막았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벵겔(Bengel)이라는 학자는 핍박 때문이라고도 했고, 바울의 몸이 약해서 가지 못하지 않았지 않는가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복음이 활발하게 전하여지고 교회가 아름답게 성장되려고 하면 반드시 사단의 방해 공작도 활발하다는 것을 기억하고 마귀 를 대적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벧전5:8,9) 바울의 기쁨과 소망과 자랑이 무엇인지 19절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로 "신실한 너희가 아니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 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이것은 어디 바울 뿐이겠습니까! 모든 주의 종들의 기쁨이요, 소망이요, 자 랑일 것입니다. 대선 교회를 목회 하는 나의 기쁨과 소망과 자랑은 바로 내 앞에 있는 여러분들입니다. 여러분들 모두를 장차 재림하실 주님 앞에 자랑 스럽게 세우고 싶은 욕심이 제게 있습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 함께 열심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모두를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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