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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심정(2) (살전3:1-3)

본문

우리는 앞서 전도자의 소원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간절히 만나고 싶은 심정! 사단이 길을 막은 사건! 장차 주님 앞에 영광스럽게 jd도들을 세우고 싶은 소원! 그런 심정으로 충만한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주의 종들과 성도들이 서 로 그리워하며, 서로 보고 싶어하는 이와 같은 심정은 사랑의 극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직접 뛰어가 보고싶은 마음이지만 형편이 그렇게 되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대신 동역자 디모데를 보내고 있습니다.
I.디모데를 파송하게 된 동기 그래서 살전3:1,2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여겨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군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 말씀을 생각해 볼 때에 바울의 심정을 이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 참다 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기에."라는 뜻입니다. 견딜 수 없는 그리움이 그에게 있 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때만 해도 바울은 유대인들의 박해를 피해서 베레아 로 잠시 피하였다가 다시 아덴에 와서 머물고 있었을 때입니다.(행17:10) 그리고 아덴에서 디모데와 실라를 만나고 거기서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을 그들에 의해 서 듣게 됩니다. 그 이야기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비롯하여 마게도냐에 있는 교회 들이 핍박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직접 가서 위로하고 권 면하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형편이 갈 수 없어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바울은 "사단이 길을 막"아서 가지 못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리워 하다가 이제 3장에 넘어와서 기록한 것을 보니 자기의 동역자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장면을 우리가 읽은 것입니다. 사실 바울이 자기 곁에서 늘 자기를 도와주던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떠나 보내 고 자기 혼자 지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육신이 그리 건강한 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에게는 디모데가 곁에 있어 주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불편함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는 고생 할 각오를 가지고 데살로니가에서 박해 받고있는 성도들을 생각하여 디모데를 보내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주의 종 바울의 희생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2절에서 바울은 디모데를 가리켜 "우리 형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바울은 다른 곳에서는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딤전1:2)
그런데 여기서는 "형제"입니다. 사실 디모데는 바울 보다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사회적으로 보나! 영 력으로 보나, 은사 체험으로 보아도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그를 형제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바울의 겸손을 말합니다. 그를 나이 어린 아들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고 자기의 동역자로 그리스도의 사역자로 보았습니다. 이것은 데살 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디모데를 높여 주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한마 디로 바울은 디모데가 높임을 받고 교회의 존경을 받기를 간절히 마음으로 바라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즘같은 세상에 참 귀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자기보 다 남을 높이는 넉넉한 마음 자세가 곧 그리스도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빌2:2-5 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 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 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 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Ⅱ. 디모데를 보내게 된 목적 2절 하반 절입니다.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누구든지 이 여 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1) 믿음을 굳게 하기 위함입니다.(2c) 믿음에는 큰 믿음이 있고 작은 믿음이 있습니다. 죽은 믿음도 있고 산 믿음도 있습니다. 대장부의 신앙도 있고, 어린 아이 같은 신앙도 있습니다. 대장부의 신앙은 굳은 신앙이요, 어린 아이 같은 신앙은 연약한 신앙입니다. 여기서 "굳게 한다"는 말은 "힘있게 한다, 단단하게 한다. 세운다" 그런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신 앙생활에 활력이 있게 하고, 흔들리지 않게 하기를 원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데살 로니가 성도들은 뜨거움은 있었지만 예수 믿은 지가 오래지 않아 뿌리가 깊지 못한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란 단번에 깊은 신앙으로 자라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과나무 씨를 심는다 해서 금방 사과를 딸 수는 없습니다. 육상선수가 한 일주 일 운동장 트랙을 돌았다고 해서 금방 실력이 향상되는 것이 아닙니다. 산의 나무 가 온갖 풍상을 겪은 후에야 뿌리 깊은 단단한 나무가 되듯이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됩니다.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됩니다. 기도를 통하여 깊은 신앙으로 들 어가게 됩니다. 전도를 통하여 한 영혼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신앙의 기반을 감정이나 꿈이나 환상이나 사람에 두어서는 아니 됩니다. 주의 말씀에 두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모래가 아닌 반석 위에 지은 집과 같이 될 것입니다. 다윗은 시119:133에서 "나의 행보를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아무 죄악이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 소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신앙은 아직 연약해서 믿음을 굳게 해 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를 보낸 것입니다.
2) 말씀으로 위로해 주기 위해서입니다.(2c)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지금 핍박을 받고 고난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물론 주를 믿다가 당하는 어려움입니다. 그들은 바른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에 당하는 어려 움도 아니고 죄를 지었음으로 당하는 부끄러움도 아닙니다. 주를 섬기다, 바로 살 려고 하다 보니 당하는 어려움입니다. 이런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입니다. 말씀을 가지고 위로해 주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말 한마디, 전 화 한 통화는 여름날에 시원한 생수와 같고, 천군만만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 대 선의 성도들은 모두가 위로 자로 살기를 바랍니다. 이 경제 위기의 시대를 만나서 많은 사람들이 실직 당하고, 사업의 부도를 만나고 세상을 비관하고, 좌절과 낙망 을 만나고 있는 시대인데 이와 같은 때에 말 한마디라도 위로의 말이 얼마나 힘을 주겠습니까! 주님이 오신 목적도 여기에 있다고 이사야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 상한 자 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베풀기 위해서 주님이 오셨습니다. 성령님은 왜 보내셨습니까!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시기 위해서! 우리로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성령님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보혜사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최고의 위로자 성령님이 계심으로 우리가 마음 상해 할 때에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엎드려 있으면 어느새 어머니의 따뜻한 손과 같은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의 쓰린 마음을 위로해 주시고 고쳐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위로가 필요하기 때문에 디모데를 보내는 것입니다.
3)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해서 보냈습니다.
(3) 사방에서 닥쳐오는 각종 박해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갖게 하기 위해서 디모 데를 파송 하였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에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심한 역경과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고난은 믿음 때문이었고, 예수님 때문이며, 하나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요동한다"는 말은 "개가 꼬리를 흔든다"라는 말에서 근거한 것인데 성도가 환난 을 당할 때에 사단은 죄와 타협하게 해서 고난이 없는 쉬운 길! 범죄의 길로 가게 하려고 개가 꼬리치듯 성도들을 유혹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에 있는 성도들이 환난 중에 사단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디모데를 보내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하나님 자녀에게도 환난은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4절에 보면 데살로니가에서 3주 동안 복음을 전할 때에 미리 환난 있을 것을 이미 가르쳤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환난은 미리 예고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환난이 나에게 닥쳤을 때, 이상하게 여길 필요 가 없습니다. 3절 하반절에서도 "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줄 너희가 친히 알리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마5:10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행14:22에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벧전4:12에 ".너희를 시련 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 상히 여기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초대교회당시는 육체적인, 외적인 고통을 받았지만, 오늘날에는 외적인 것이 아니 라 내적인 정신적인 면에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쾌락주의, 권위주의, 개인주의, 이기주의의 때문에 겪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고, 잘못된 사상에 물들기가 쉬운 때를 만났습니다. 이런 것에 요동치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환난은 예정 된 것입니다.
벧전5:8-9에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 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그리고 성도들의 환난은 믿음을 더욱 굳게 해 주는 유익이 있습니다. 롬5:3,4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 속에 있는 성도들의 환난은 필연적입니다. 환난 중에 우리가 더욱 신앙의 깊은 대로 나 아갈 수 있는 것은 신앙 생활의 기초 상식입니다. 금은 풀무에 단련 할 때에 정금 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환난 중에도 기뻐할 줄 아는 비밀을 가진 사람 들입니다. 그것은 환난 자체 때문이 아니라 환난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과 그것이 더 큰 소망을 가져다준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욥이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성도의 환난은 축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벧전4:12,13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 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성도에게 시련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음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 된 자리에 앉게 된 것처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모든 성도들은 또한 하나님의 아들로 영광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고난과 시련을 두려워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 하다 우리 성도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야말로 기쁨이요, 즐거움이 아 닙니까! 그러므로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어떤 시련이나 괴롬이나 핍박을 만날지 라도 신앙에 요동함이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고전10:13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 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우리는 이 말씀을 굳게 붙들고 시험 중에도 요동치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 하다가 문제를 만나 넘어지고 쓸어지고 낙심하는 것을 주님은 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가 칠전팔기하는 신앙으로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히10:38 에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 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 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 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4) 마지막으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을 알기 위해서 디모데를 보냅니다.(5a) 5절에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 일러니"라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시험하는 자는 예수를 박해하는 유대인들이나 데살로니가에 살고있는 불 신자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말하면 사단 마귀를 가르칩니다.(마4:3) 사 단은 바알세불(마12:27,막3:22), 귀신의 왕(막3:22), 살인한 자(요8:44), 거짓말쟁이 (요8:44), 이 세상 임금(요14:30), 벨리알(고후6:15), 뱀(고후11:3), 악한 자(엡6:16), 대적자(벧전5:8), 꾀이는 자(계12:9), 참소하던 자(계12:10)등의 별명을 가지고 있는 자입니다. 이 사단은 그 말 그대로 시험하는 자가 되어서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 놓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시험거리를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신앙을 나태하게 만듭니다. 우리 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들고 강퍅하게 만듭니다. 순진한 성도의 마음을 모질게 만 듭니다. 우리가 돌이켜 어린 아이 같아져야 하는데 더 오염시키고, 타락시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단의 세력을 대적해야 합니다.(엡4:26,27, 6:11, 약4:7, 벧전5:8,9)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 마음속에 믿음이 있는가에 관심을 가진 것처럼 우리의 관심이 이것입니다. 우리 속에 믿음이 있는가 늘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내 말속 에 믿음이 있는가! 내 행동 속에 믿음이 있는가! 내 생각 속에 믿음이 있는가! 내 계획 속에 믿음이 있는가 시험해 보고 점검해 보는 것이 지혜입니다. 이 믿음만이 모든 환난에서 견딜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유혹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화전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모든 좋은 것을 내게로 끌어다 주는 견인차가 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천국 문을 여는 열쇠가 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보배 중에 보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늘 점검하시고 믿음을 회복하시 고, 믿음의 부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은총 이 우리 교회와 성도들에게 충만하시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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