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부활 메시지 (고전15:12-19)
본문
바울은 회심 전에 예수의 부활을 전하는 자들을 미친놈 취급을 하고 용납할 수 없는 이단으로 생각하고 잡아 가두고 죽이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180도 전향하여 십자가의 복음과 부활을 전하다가 순교한 사도입니다. 이런 사도 바울의 부활 메시지는 주의 깊게 들어야 합니다. 더욱이 고린도는 헬라의 도시였는데, 헬라인들은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설교할 때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사도행전 17장 32절)
왜냐하면 헬라 철학에서는 육신은 영혼을 가두는 감옥으로 생각했고 죽음은 바로 감옥에서 해방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런 회의주의 사상이 당시 교회에도 엄습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최선을 다하여 이 회의주의를 격파하고 부활 신앙을 심어 주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치밀한 생각을 가지고 부활 설교를 했던 것입니다. 여기에 네 가지 형식의 질문을 하고 대답하는 형식을 가지고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1. 죽은 자가 부활할 수 있느냐. (15장 1-19절) 고린도 교인들이 부활을 믿게 하는 것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3가지 증거를 대면서 설교했습니다. 1구원과 부활(15장 1-2절) 복음의 중요한 내용은 그리스도의 부활인데 죽은 후 부활하지 못한 그리스도라면 그가 어떻게 우리의 구세주가 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부활 신앙이 없으면 구원받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15장 2절에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항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2 성경의 예언 (15장 3-4절)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500여 성도들에게 보이신 역사적인 사건이며 이것은 이미 '성경대로'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레위기 16장-속죄일, 이사야 53장) 제3일에 살아나리라는 예언은 예수님 자신이 마태복음 12장 38절-41절에 요나의 일을 가지고 예언하셨고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첫 열매라고 했는데 '첫 열매'는 유월절이 지난 안식일 다음날 드려지는 것입니다.(레위기 23장 9-14절) 15장 23절에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유월절에 십자가에 죽으시고 안식일 다음날 즉 주일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시편 16장 8-11절, 사도행전 2장 25-28절, 시편 22장 22절, 히브리서 2장 12절, 이사야 53장 10-12절, 사도행전 3장 32-33절) 구약의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3 많은 증인들에게 나타내 보이십니다.(15장 5-11절)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는 많은 불신자들이 보았고 부활 후에는 부활의 증인될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셨는데 수제자 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500여 문도들에게 보이셨습니다. 15장 8절에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부활은 속임수나 환각이 아닙니다. 바울은 확실히 예수님은 죽었다고 생각하고 핍박하던 사람인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후 부활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부활하시지 못했다면 복음이 될 수 없고 죽음으로 끝나고 만다면 우리도 아무 소망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고난 당하고 위험을 다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고리도전서 15장 29-34절)
2. 언제 부활하는가 (15장 20-28절)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서 세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1 첫 열매 (15장 20, 23절) 구약의 첫 열매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언한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레위기 23장 9-14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유월절에 죽으셨고 첫 열매의 곡식단을 드릴 때 즉 3일 후 주일날 부활하셨습니다. 제사장은 첫 열매 곡식단을 흔들어 드리는데 이것은 나머지 곡식도 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첫 열매인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 같이 그를 믿는 성도들에게 부활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에게 죽음이란 "잠자는 것"이라고 (빌립보서 1장 21절-23절) 했고 부활하는 날 몸이 깨어나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2 아담 (15장 21-22절) 바울은 아브라함과 예수님을 대조해가며 부활을 설명합니다. (로마서 5장 12-21절) 첫아담은 흙으로 만들어졌으나, 마지막 아담 예수는 하늘로부터 오신 분입니다.(15장 45-47절) 첫아담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세상에 죄와 사망을 가져왔지만 마지막 아담 예수는 아버지께 순종하여 의와 생명을 가져왔습니다. 23절에 부활이 "차례대로"란 말 군대의 계급과 질서를 의미하는 용어입니다. 하나님은 차례(order)를 가지고 있는데 부활도 차례대로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공중에 재림하실 때 교회를 데려가는데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 안에서 죽은 자가 먼저 일어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18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안에서 죽은 자가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됩니다. 이렇게 차례대로 순서대로 부활하게 됩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생명의 부활(요한복음 5장 29절)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심판하러 오실 때 불신자들이 받는 심판은 "심판의 부활"(요한복음 5장 29절, 요한계시록 20장 11-15절)이라고 합니다.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이가 멸망하는 일도 없고
둘째 부활에 참예한 자가 구원받는 일도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3 주님의 나라(15장 24-28절) 예수께서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때 주님은 천년 동안 죄를 없이하고 주님의 나라로 완성하는 때가 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절부터 "천사가용을 잡으니 곧 옛뱀이요 마귀라 잡아 일 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을 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이 때에 성도들은 주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고 왕노릇 하게 됩니다. 그러나 천년이 차면 하나님께 대한 마지막 반역이 일어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20장 7-10절) 이후에 불신자들이 부활하여 심판을 받고 불 못에 던지우게 됩니다. 맨 마지막 원수인 사망도 불 못에 던지우게 됩니다.
3. 왜 부활이 있어야 하는가 (15장 29-34절, 49-58절) 몸의 부활은 미래의 사건이지만 현재 우리의 삶을 강권하는 힘이 있습니다.(Compelling implication) 만일 부활이 없다면 미래를 생각할 것 없이 욕망대로 즐기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다시 오십니다. 재림하실 때 영광스러운 몸으로 그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다음 네 가지를 힘쓰며 살아야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전도 (15장 29절) 부활이 없다면 전도할 필요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또 예수 믿을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부활의 소망이 있고 심판과 천국 지옥이 있으니까 열심히 전도하는 것이 아닙니까
2 고난 (15장 30-32절)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고 했고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온갖 육체의 고난과 위험을 참고 견디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8절-5장 10절, 11장 23-28절) 그는 끈임 없이 원수들에게서 위협을 받았고 어떤 때는 돌탕에 맞아 죽을 줄 알고 성밖으로 끌어다 버린 적도 있었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이런 고통과 위협을 감수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이사야 22장 13절) 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육신으로 있을 때 행한 모든 것이 심판대 앞에서 다 드러나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 하나님은 영혼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몸으로 행한 모든 것에 대해 관찰하시고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몸도 구원에 참예하게 됩니다. (로마서 8장 18-23절)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고 했고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겸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한다"(고린도후서 4장 17절)고 했습니다.
3 죄를 짓지 않음 (15장 33-34절)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까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고 했는데 부활이 없다면 죄 안 짓고 선하게 살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고린도인들은 부활을 부인하면서 부도덕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신자의 몸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입니다. "열매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라"(에베소서 5장 6-17절)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근신할지라"(데살로니가전서 5장 6절)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없이 살다가 멸망을 하고 있는데 죄악 가운데 이기적인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4 죽음 (15장 49-57절)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신자들은 번데기가 나비가 되듯이 주님과 같은 몸으로 홀연히 변화를 받게 됩니다. 요한일서 3장 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로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을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재림)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라"한 말씀대로 우리의 몸은 죽지 않고 썩지 않는 몸을 입게됩니다. 정신분석학자 Sigmund Freud는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음의 고통의 수수께끼가 있다 아무도 이것을 치료할 방법을 찾지 못했고 앞으로도 찾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지만, 기독교인들은 죽음을 정복하고 있고 또 정복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내가 살았기 때문에 너희도 살리라"(요한복음 14장 19절)고 했습니다. 57절에 "그러나 우리 중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부활의 능력을 우리 실생활에서 체험해야 됩니다.(빌립보서 3장 10절) 58절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을 줄을 앎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이기신 것이 확실하므로 주님 위해 수고하고 봉사한 것이 하나도 헛되지 않습니다. 58절 솔로몬이 전도서에서 38번이나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고 한 말에 해답을 주는 말씀입니다.
4. 어떻게 부활하는가 (15장 35-48절) 헬라 철학에서는 몸의 부활이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그 흙에서 다른 육체가 영양을 취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먹은 음식은 오래 전에 죽은 시체의 일부인 것입니다. Rhode Island란 사람이 Roger Williams의 시체를 발굴했을 때 사과나무의 뿌리가 바로 그 Roger의 시체를 담은 관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결국 그 사과를 먹은 사람은 Roger씨의 시체의 일부를 섭취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활 때에는 그 여러 가지 요소 중에 누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겠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바울은 "어리석은 자여"라고 하면서 부활은 재건축이나 재구성(Reconstruction)이 아님을 설명합니다. 성경 어디서도 부활 때에 그 사람의 시체의 요소가 재구성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연속성(continuity)은 있지만 우리 몸과 같은 성질(identity)로 구성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신비한 사실은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다음 세 가지 유추(analogies)를 가지고 설명합니다. 1 씨에 대해서 (15장 35-38절 42절, 48절) 종자를 뿌릴 때 우리는 추수기에 그 씨가 다시 올라올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 씨는 죽고 그 죽음에서부터 다른 생명이 올라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한 알의 밀이 죽지 않으면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복음 12장 23-28절)고 말씀했습니다. 바울도 15장 36-37절에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알갱이 뿐이라"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추수 때에 거두는 것은 심은 것 보다 더 아름답고, 더 많고, 더 강한 것을 거둡니다. 고구마를 심을 때 형편없는 것, 한 쪼가리로 심는데 거둘 때는 많고 아름다운 거둡니다. 부활시에도 우리의 살과 피를 가진 몸으로 부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15장 42-48절에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을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노니 육의 몸이 있은 즉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육신은 썩지만 부활의 몸은 죽지도 썩지도 않습니다. 우리 육신은 아담으로부터 썩을 몸을 받았지만 부활의 몸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신령한 몸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순간적으로 옮기신 것 같이, 또 문이 잠겼으나 뚫고 걸어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잡숫고 제자들이 만져 볼 수도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9-29절, 누가복음 24장 33-43절) 먼저는 흙에서 난 몸이요 나중에는 하늘로부터 온 신령한 몸인 것입니다. 첫 출생은 자연의 몸을 받고 두 번째는 영적인 몸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첫 것을 거부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반드시 두 번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 육체 (15장 39절) 바울은 과학의 발견을 이용해서 각 동물은 각각 다른 세포를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동물의 세포, 물고기의 세포, 사람의 세포가 전혀 다른 것처럼 부활 때에도 우리 몸과 전혀 다른 몸을 가지게 됩니다. 3 하늘의 문 (15장 40절부터) 땅에 속한 몸이 있고 하늘에 속한 몸이 있는데 이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천국에서 영광의 몸을 입게 되지만 그 영광이 각각 다릅니다. 모든 컵이 가득 채워지지만, 컵의 크기가 각각 다른 것과 같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지옥에 합당한 몸을 주어지며 어두움과 고통 중에 영원히 지내게 됩니다. (마태복음 25장 41-42절, 데살로니가후서 1장 7-10절, 요한계시록 20장 11-15절) 구원받은 사람은 고린도후서 5장 11절에서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명심하고 속히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도록 해야 하며 불신자들은 늦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헬라 철학에서는 육신은 영혼을 가두는 감옥으로 생각했고 죽음은 바로 감옥에서 해방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런 회의주의 사상이 당시 교회에도 엄습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최선을 다하여 이 회의주의를 격파하고 부활 신앙을 심어 주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치밀한 생각을 가지고 부활 설교를 했던 것입니다. 여기에 네 가지 형식의 질문을 하고 대답하는 형식을 가지고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1. 죽은 자가 부활할 수 있느냐. (15장 1-19절) 고린도 교인들이 부활을 믿게 하는 것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3가지 증거를 대면서 설교했습니다. 1구원과 부활(15장 1-2절) 복음의 중요한 내용은 그리스도의 부활인데 죽은 후 부활하지 못한 그리스도라면 그가 어떻게 우리의 구세주가 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부활 신앙이 없으면 구원받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15장 2절에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항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2 성경의 예언 (15장 3-4절)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500여 성도들에게 보이신 역사적인 사건이며 이것은 이미 '성경대로'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레위기 16장-속죄일, 이사야 53장) 제3일에 살아나리라는 예언은 예수님 자신이 마태복음 12장 38절-41절에 요나의 일을 가지고 예언하셨고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첫 열매라고 했는데 '첫 열매'는 유월절이 지난 안식일 다음날 드려지는 것입니다.(레위기 23장 9-14절) 15장 23절에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유월절에 십자가에 죽으시고 안식일 다음날 즉 주일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시편 16장 8-11절, 사도행전 2장 25-28절, 시편 22장 22절, 히브리서 2장 12절, 이사야 53장 10-12절, 사도행전 3장 32-33절) 구약의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3 많은 증인들에게 나타내 보이십니다.(15장 5-11절)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는 많은 불신자들이 보았고 부활 후에는 부활의 증인될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셨는데 수제자 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500여 문도들에게 보이셨습니다. 15장 8절에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부활은 속임수나 환각이 아닙니다. 바울은 확실히 예수님은 죽었다고 생각하고 핍박하던 사람인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후 부활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부활하시지 못했다면 복음이 될 수 없고 죽음으로 끝나고 만다면 우리도 아무 소망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고난 당하고 위험을 다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고리도전서 15장 29-34절)
2. 언제 부활하는가 (15장 20-28절)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서 세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1 첫 열매 (15장 20, 23절) 구약의 첫 열매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언한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레위기 23장 9-14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유월절에 죽으셨고 첫 열매의 곡식단을 드릴 때 즉 3일 후 주일날 부활하셨습니다. 제사장은 첫 열매 곡식단을 흔들어 드리는데 이것은 나머지 곡식도 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첫 열매인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 같이 그를 믿는 성도들에게 부활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에게 죽음이란 "잠자는 것"이라고 (빌립보서 1장 21절-23절) 했고 부활하는 날 몸이 깨어나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2 아담 (15장 21-22절) 바울은 아브라함과 예수님을 대조해가며 부활을 설명합니다. (로마서 5장 12-21절) 첫아담은 흙으로 만들어졌으나, 마지막 아담 예수는 하늘로부터 오신 분입니다.(15장 45-47절) 첫아담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세상에 죄와 사망을 가져왔지만 마지막 아담 예수는 아버지께 순종하여 의와 생명을 가져왔습니다. 23절에 부활이 "차례대로"란 말 군대의 계급과 질서를 의미하는 용어입니다. 하나님은 차례(order)를 가지고 있는데 부활도 차례대로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공중에 재림하실 때 교회를 데려가는데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 안에서 죽은 자가 먼저 일어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18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안에서 죽은 자가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됩니다. 이렇게 차례대로 순서대로 부활하게 됩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생명의 부활(요한복음 5장 29절)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심판하러 오실 때 불신자들이 받는 심판은 "심판의 부활"(요한복음 5장 29절, 요한계시록 20장 11-15절)이라고 합니다.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이가 멸망하는 일도 없고
둘째 부활에 참예한 자가 구원받는 일도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3 주님의 나라(15장 24-28절) 예수께서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때 주님은 천년 동안 죄를 없이하고 주님의 나라로 완성하는 때가 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절부터 "천사가용을 잡으니 곧 옛뱀이요 마귀라 잡아 일 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을 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이 때에 성도들은 주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고 왕노릇 하게 됩니다. 그러나 천년이 차면 하나님께 대한 마지막 반역이 일어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20장 7-10절) 이후에 불신자들이 부활하여 심판을 받고 불 못에 던지우게 됩니다. 맨 마지막 원수인 사망도 불 못에 던지우게 됩니다.
3. 왜 부활이 있어야 하는가 (15장 29-34절, 49-58절) 몸의 부활은 미래의 사건이지만 현재 우리의 삶을 강권하는 힘이 있습니다.(Compelling implication) 만일 부활이 없다면 미래를 생각할 것 없이 욕망대로 즐기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다시 오십니다. 재림하실 때 영광스러운 몸으로 그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다음 네 가지를 힘쓰며 살아야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전도 (15장 29절) 부활이 없다면 전도할 필요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또 예수 믿을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부활의 소망이 있고 심판과 천국 지옥이 있으니까 열심히 전도하는 것이 아닙니까
2 고난 (15장 30-32절)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고 했고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온갖 육체의 고난과 위험을 참고 견디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8절-5장 10절, 11장 23-28절) 그는 끈임 없이 원수들에게서 위협을 받았고 어떤 때는 돌탕에 맞아 죽을 줄 알고 성밖으로 끌어다 버린 적도 있었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이런 고통과 위협을 감수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이사야 22장 13절) 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육신으로 있을 때 행한 모든 것이 심판대 앞에서 다 드러나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 하나님은 영혼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몸으로 행한 모든 것에 대해 관찰하시고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몸도 구원에 참예하게 됩니다. (로마서 8장 18-23절)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고 했고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겸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한다"(고린도후서 4장 17절)고 했습니다.
3 죄를 짓지 않음 (15장 33-34절)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까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고 했는데 부활이 없다면 죄 안 짓고 선하게 살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고린도인들은 부활을 부인하면서 부도덕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신자의 몸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입니다. "열매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라"(에베소서 5장 6-17절)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근신할지라"(데살로니가전서 5장 6절)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없이 살다가 멸망을 하고 있는데 죄악 가운데 이기적인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4 죽음 (15장 49-57절)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신자들은 번데기가 나비가 되듯이 주님과 같은 몸으로 홀연히 변화를 받게 됩니다. 요한일서 3장 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로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을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재림)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라"한 말씀대로 우리의 몸은 죽지 않고 썩지 않는 몸을 입게됩니다. 정신분석학자 Sigmund Freud는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음의 고통의 수수께끼가 있다 아무도 이것을 치료할 방법을 찾지 못했고 앞으로도 찾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지만, 기독교인들은 죽음을 정복하고 있고 또 정복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내가 살았기 때문에 너희도 살리라"(요한복음 14장 19절)고 했습니다. 57절에 "그러나 우리 중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부활의 능력을 우리 실생활에서 체험해야 됩니다.(빌립보서 3장 10절) 58절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을 줄을 앎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이기신 것이 확실하므로 주님 위해 수고하고 봉사한 것이 하나도 헛되지 않습니다. 58절 솔로몬이 전도서에서 38번이나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고 한 말에 해답을 주는 말씀입니다.
4. 어떻게 부활하는가 (15장 35-48절) 헬라 철학에서는 몸의 부활이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그 흙에서 다른 육체가 영양을 취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먹은 음식은 오래 전에 죽은 시체의 일부인 것입니다. Rhode Island란 사람이 Roger Williams의 시체를 발굴했을 때 사과나무의 뿌리가 바로 그 Roger의 시체를 담은 관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결국 그 사과를 먹은 사람은 Roger씨의 시체의 일부를 섭취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활 때에는 그 여러 가지 요소 중에 누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겠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바울은 "어리석은 자여"라고 하면서 부활은 재건축이나 재구성(Reconstruction)이 아님을 설명합니다. 성경 어디서도 부활 때에 그 사람의 시체의 요소가 재구성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연속성(continuity)은 있지만 우리 몸과 같은 성질(identity)로 구성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신비한 사실은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다음 세 가지 유추(analogies)를 가지고 설명합니다. 1 씨에 대해서 (15장 35-38절 42절, 48절) 종자를 뿌릴 때 우리는 추수기에 그 씨가 다시 올라올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 씨는 죽고 그 죽음에서부터 다른 생명이 올라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한 알의 밀이 죽지 않으면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복음 12장 23-28절)고 말씀했습니다. 바울도 15장 36-37절에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알갱이 뿐이라"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추수 때에 거두는 것은 심은 것 보다 더 아름답고, 더 많고, 더 강한 것을 거둡니다. 고구마를 심을 때 형편없는 것, 한 쪼가리로 심는데 거둘 때는 많고 아름다운 거둡니다. 부활시에도 우리의 살과 피를 가진 몸으로 부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15장 42-48절에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을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노니 육의 몸이 있은 즉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육신은 썩지만 부활의 몸은 죽지도 썩지도 않습니다. 우리 육신은 아담으로부터 썩을 몸을 받았지만 부활의 몸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신령한 몸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순간적으로 옮기신 것 같이, 또 문이 잠겼으나 뚫고 걸어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잡숫고 제자들이 만져 볼 수도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9-29절, 누가복음 24장 33-43절) 먼저는 흙에서 난 몸이요 나중에는 하늘로부터 온 신령한 몸인 것입니다. 첫 출생은 자연의 몸을 받고 두 번째는 영적인 몸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첫 것을 거부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반드시 두 번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 육체 (15장 39절) 바울은 과학의 발견을 이용해서 각 동물은 각각 다른 세포를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동물의 세포, 물고기의 세포, 사람의 세포가 전혀 다른 것처럼 부활 때에도 우리 몸과 전혀 다른 몸을 가지게 됩니다. 3 하늘의 문 (15장 40절부터) 땅에 속한 몸이 있고 하늘에 속한 몸이 있는데 이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천국에서 영광의 몸을 입게 되지만 그 영광이 각각 다릅니다. 모든 컵이 가득 채워지지만, 컵의 크기가 각각 다른 것과 같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지옥에 합당한 몸을 주어지며 어두움과 고통 중에 영원히 지내게 됩니다. (마태복음 25장 41-42절, 데살로니가후서 1장 7-10절, 요한계시록 20장 11-15절) 구원받은 사람은 고린도후서 5장 11절에서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명심하고 속히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도록 해야 하며 불신자들은 늦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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