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마지막 권면 (빌4:1-9)
본문
우리는 빌립보서를 묵상하면서 큰 은혜를 받고 있는 동시에 커다란 도전을 느끼게 됩니다. 그들은 감옥 안에 있으면서도 예수의 이름 하나로 기뻐하고 기뻐했습니다. 그런 고난 속에서도 예수의 이름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도 기뻐하게 할 수 있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빌립보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그의 마음 속에 있던 것을 다시 한번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바울의 권면을 받아 새롭게 자신을 돌아보는 하루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첫째,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고 말씀합니다(빌 4:1). 베드로 사도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의 대적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벧전 5:8).그래서 우리 대적 마귀는 항상 우리의 신앙을 흔들리게 하려고 발악합니다.우리의 신앙이 왜 흔들립니까?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세우는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아서 비가 내리고 창수가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함은 그 집을 반석 위에 세웠음이요”(마7:24) 어떤 어려운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넘어지지 않고, 혹시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주 안에 서있어야 합니다.
둘째, “주 안에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말씀합니다(빌 4:2). 빌립보교회는 여러가지로 모범적인 교회 중의 하나였지만 유오디아와 순두게 사이에 불협화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 사도는 “내가 권하노니”라는 단어를 두 번이나 사용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내 주장과 너의 주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입니다. 헬라인들은 이 우주를 코스모스(Cosmos)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질서와 조화를 의미합니다. 그렇게 복잡한 삼라만상의 대우주도 정연한 질서를 가지고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셋째,“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권면합니다(빌 4:4).예수 믿는 성도들도 믿지 않는 사람이 겪는 어려움을 그대로 겪고,때로는 예수를 믿기 때문에 오히려 더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까? 더욱 초대교회는 그토록 큰 핍박이 있었는데 어떻게 기뻐할 수 있었을까요? 이것이 지금까지 묵상해 왔던 빌립보서의 주제요 핵심입니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빌 3:9)
넷째,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합니다(빌 4:6). 염려와 근심 걱정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오직 좋으신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 모든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음을 기독인들은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나의 한계 나의 무능력을 알았을 때가 바로 전능하신 주님의 손길을 바라보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이렇게 행할 때 성도의 신앙은 쑥쑥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빌립보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그의 마음 속에 있던 것을 다시 한번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바울의 권면을 받아 새롭게 자신을 돌아보는 하루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첫째,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고 말씀합니다(빌 4:1). 베드로 사도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의 대적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벧전 5:8).그래서 우리 대적 마귀는 항상 우리의 신앙을 흔들리게 하려고 발악합니다.우리의 신앙이 왜 흔들립니까?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세우는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아서 비가 내리고 창수가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함은 그 집을 반석 위에 세웠음이요”(마7:24) 어떤 어려운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넘어지지 않고, 혹시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주 안에 서있어야 합니다.
둘째, “주 안에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말씀합니다(빌 4:2). 빌립보교회는 여러가지로 모범적인 교회 중의 하나였지만 유오디아와 순두게 사이에 불협화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 사도는 “내가 권하노니”라는 단어를 두 번이나 사용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내 주장과 너의 주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입니다. 헬라인들은 이 우주를 코스모스(Cosmos)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질서와 조화를 의미합니다. 그렇게 복잡한 삼라만상의 대우주도 정연한 질서를 가지고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셋째,“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권면합니다(빌 4:4).예수 믿는 성도들도 믿지 않는 사람이 겪는 어려움을 그대로 겪고,때로는 예수를 믿기 때문에 오히려 더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까? 더욱 초대교회는 그토록 큰 핍박이 있었는데 어떻게 기뻐할 수 있었을까요? 이것이 지금까지 묵상해 왔던 빌립보서의 주제요 핵심입니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빌 3:9)
넷째,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합니다(빌 4:6). 염려와 근심 걱정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오직 좋으신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 모든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음을 기독인들은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나의 한계 나의 무능력을 알았을 때가 바로 전능하신 주님의 손길을 바라보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이렇게 행할 때 성도의 신앙은 쑥쑥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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