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권면 (행28:23-24)
본문
누가복음19장에 열므나의 비유가 있다. 거기에 보면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므나를 주며 가로되 내가 돌아 오기까지 장사를 하라 고 했다. 그 오랜 후에 넘 나라로 왕위를 받으러 떠났던 분이 왕이 되어서 돌아 왔다. 그가 떠날때 열므나를 나누어 주었던 그의 종들도 모여 왔다. 첫번째 온 종은 한므나를 가지고 열므나를 남겼고 두번째 온 종은 한므나로 다섯므나를 남겼고 또 다른 한 종은 한므나를 같이 받았는데 아무것도 남긴 것이 없이 본전만 가지고 달랑달랑 왕 앞에 나타났다. 그때 왕은 그 종을 악한 종이라 하시면서 끌어 내다가 죽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 주님의 비유에서 열므나를 또 다섯므나를 남겼다는 것이 무었을 말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것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전체적인 내용을 살펴 볼때 주님께서 무었인가를 일을 주시고 분부를 내렸을 때 얼마나 충성을 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열므나를 남긴 종은 열므나만큼 그의 최선을 다했고 다섯므나를 남긴 종은 다섯므나만큼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던 것이다. 우리 모두는 다같이 열므나를 나누어 받았던 왕의 종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는 다 므나를 받은 종들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주신 므나로 어떤이는 열므나를 또 어떤이는 다섯므나를 남기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럼 우리들이 어떻게 하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이 최선을 다하는 것인지를 우리의 믿음의 대 선배이신 사도 바울의 삶을 통해서 배우고자 한다. 오늘 본문에 많은 것을 남길 수 있었던 사도 바울의 놀라운 비결이 실려 잇다.
1,사도 바울의 열심 사실 사도 바울은 시한부 인생이나 다름 없었다. 오늘이 아니 내일이 그의 마지막 날이 될른지 아므도 예측을 할 수 없는 그런 삶을 바울이 살았다. 우리들 주위에도 이런 시한부 인생들이 더러 있다. 선천적인 병으로 인한 것도 있고 또 후천적인 질병으로 인하여 병원으로부터 날짜가 없는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이 있다. 아무런 낙이 없다. 만사가 귀찬을 뿐이다. 그저 종일 수심에 찬 얽굴을 하고 땅만 내려다 보면서 살고 있다.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도 로마에 사로잡혀 와 있는 몸으로 언제 그에게 사형이 집행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 시한부 인생이었던 사도 바울의 위대함을 보라! 23절에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고 했다. 참으로 대단한 열심이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고전4장에서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그리고 딤후4;6-8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햇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 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에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고 했다. 사람들은 일이 생겼을 때 또 어떤 일을 계획할 때 이런 것들을 계산한다. 이일을 통해서 내게 어던 유익이 돌아 올것인가 이일을 하게됨으로 내가 어떤 명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사도 바울은 내가 이일을 하게 됨으로 주님께 어떤 영광이 돌아 갈 것인가를 생각했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여 그일에 충성을 했었다.
2,사도 바울의 권면 23절 마지막에 "권하더라"란 말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원래의 말보다는 좀 약하게 표현된 말이다. 원어에는 권하다는 말보다는 "설득하다"란 말로 되어 있다. 이 설득하다란 말에서처럼 사도 바울은 자기가 우거하는 곳에 온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권하는 정도가 아니고 예수는 꼭 믿어야 하는 것임을 열심을 다하여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예수를 소개할 때 어떤식으로 하고 있는가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에수를 권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설득을 하는 사람인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그저께 노태우 대통령께서 부처님 오신날 기념 봉축행사에 참에하여 까까중들과 함께 합장하고 서 있었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그 합장한 모습을 보면서 여분들은 어떤 감정을 느꼈는가 여러가지 색갈의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불교의 나라도 아닌데 나라의 원수가 백성들 앞에 전런 모습을 보여 주어도 되는 것인가. 이런 감정을 누구나 다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렇게 합장 하고 있는 그분들이 지금 가고 있는 곳이 어디인가 천당인가 지옥인가 여러분들은 나라의 원수가 예수 믿기를 위하여 얼마나 기도를 하고 있는가 정말 사도 바울처럼 설득하는 심정으로 기도하고 있는가 24절에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라고 했다. 우리말 성경에는 24절에 믿는다는 말이 두번이나 나온다.
그런데 원문 성경엔 한번은 설득되었다는 말이고 나중은 믿지 않았다는 말로 되어 있다. 그러니 여기에 믿었다는 말은 사도 바울이 설득하고 있는 그 설득에 설득을 당했다는 말이다. 예수를 믿으라고 에수를 소개하는 일과 에수를 믿겠끔 설득을 시키는 일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우리는 예수를 소개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사도 바울처럼 예수를 꼭 믿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겠끔 설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3,권면과 설득의 결과 24절을 다시 본다.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사도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설득을 한 결과가 24절이다. 설득을 당한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들이 아무리 열심히 그리고 최선을 다하여 설득한다 할지라도 결과는 바울의 결과와 같다는 것이다. 설득되어 믿을 사람도 있고 그렇치 못할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전도를 하는 사람이 충성을 하는 사람이 헌신을 하는 사람이 봉사를 하는 사람이 너무 결과만을 생각지 말라는 것이다. 결과는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시는 것이다. 그 결과가 열므나가 되든지 또는 다섯므나가 되었든지 그것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란 말이다. 우리가 해야할 것은 한 므나 그대로 가지고 있었던 악한 종과같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지 말고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다. 내가 생각하고 계획한만큼의 결실이 없다해서 낙심도 하지 말고 계속해서 나의 최선을 하나님께 보여 주어야 한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최선뿐이다. 열심뿐이다. 주님게서 라오디게야 교회를 향하여 하신 말씀도 "열심을 내라"였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주신 므나로 어떤이는 열므나를 또 어떤이는 다섯므나를 남기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럼 우리들이 어떻게 하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이 최선을 다하는 것인지를 우리의 믿음의 대 선배이신 사도 바울의 삶을 통해서 배우고자 한다. 오늘 본문에 많은 것을 남길 수 있었던 사도 바울의 놀라운 비결이 실려 잇다.
1,사도 바울의 열심 사실 사도 바울은 시한부 인생이나 다름 없었다. 오늘이 아니 내일이 그의 마지막 날이 될른지 아므도 예측을 할 수 없는 그런 삶을 바울이 살았다. 우리들 주위에도 이런 시한부 인생들이 더러 있다. 선천적인 병으로 인한 것도 있고 또 후천적인 질병으로 인하여 병원으로부터 날짜가 없는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이 있다. 아무런 낙이 없다. 만사가 귀찬을 뿐이다. 그저 종일 수심에 찬 얽굴을 하고 땅만 내려다 보면서 살고 있다.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도 로마에 사로잡혀 와 있는 몸으로 언제 그에게 사형이 집행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 시한부 인생이었던 사도 바울의 위대함을 보라! 23절에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고 했다. 참으로 대단한 열심이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고전4장에서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그리고 딤후4;6-8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햇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 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에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고 했다. 사람들은 일이 생겼을 때 또 어떤 일을 계획할 때 이런 것들을 계산한다. 이일을 통해서 내게 어던 유익이 돌아 올것인가 이일을 하게됨으로 내가 어떤 명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사도 바울은 내가 이일을 하게 됨으로 주님께 어떤 영광이 돌아 갈 것인가를 생각했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여 그일에 충성을 했었다.
2,사도 바울의 권면 23절 마지막에 "권하더라"란 말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원래의 말보다는 좀 약하게 표현된 말이다. 원어에는 권하다는 말보다는 "설득하다"란 말로 되어 있다. 이 설득하다란 말에서처럼 사도 바울은 자기가 우거하는 곳에 온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권하는 정도가 아니고 예수는 꼭 믿어야 하는 것임을 열심을 다하여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예수를 소개할 때 어떤식으로 하고 있는가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에수를 권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설득을 하는 사람인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그저께 노태우 대통령께서 부처님 오신날 기념 봉축행사에 참에하여 까까중들과 함께 합장하고 서 있었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그 합장한 모습을 보면서 여분들은 어떤 감정을 느꼈는가 여러가지 색갈의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불교의 나라도 아닌데 나라의 원수가 백성들 앞에 전런 모습을 보여 주어도 되는 것인가. 이런 감정을 누구나 다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렇게 합장 하고 있는 그분들이 지금 가고 있는 곳이 어디인가 천당인가 지옥인가 여러분들은 나라의 원수가 예수 믿기를 위하여 얼마나 기도를 하고 있는가 정말 사도 바울처럼 설득하는 심정으로 기도하고 있는가 24절에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라고 했다. 우리말 성경에는 24절에 믿는다는 말이 두번이나 나온다.
그런데 원문 성경엔 한번은 설득되었다는 말이고 나중은 믿지 않았다는 말로 되어 있다. 그러니 여기에 믿었다는 말은 사도 바울이 설득하고 있는 그 설득에 설득을 당했다는 말이다. 예수를 믿으라고 에수를 소개하는 일과 에수를 믿겠끔 설득을 시키는 일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우리는 예수를 소개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사도 바울처럼 예수를 꼭 믿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겠끔 설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3,권면과 설득의 결과 24절을 다시 본다.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사도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설득을 한 결과가 24절이다. 설득을 당한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들이 아무리 열심히 그리고 최선을 다하여 설득한다 할지라도 결과는 바울의 결과와 같다는 것이다. 설득되어 믿을 사람도 있고 그렇치 못할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전도를 하는 사람이 충성을 하는 사람이 헌신을 하는 사람이 봉사를 하는 사람이 너무 결과만을 생각지 말라는 것이다. 결과는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시는 것이다. 그 결과가 열므나가 되든지 또는 다섯므나가 되었든지 그것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란 말이다. 우리가 해야할 것은 한 므나 그대로 가지고 있었던 악한 종과같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지 말고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다. 내가 생각하고 계획한만큼의 결실이 없다해서 낙심도 하지 말고 계속해서 나의 최선을 하나님께 보여 주어야 한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최선뿐이다. 열심뿐이다. 주님게서 라오디게야 교회를 향하여 하신 말씀도 "열심을 내라"였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