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근심을 내게도 주옵소서! (롬9:1-5)
본문
지난주에 염려하지 말라고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나도 바울과 같이 근심하라'고 설교를 합니다. 말씀에 은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원래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을 때에는 자기 동족이 아닌 이방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특별한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면 도 항상 그의 마음에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바울의 형제, 골육 친척이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동족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항상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 고 있었습니다. 유대민족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거부하며, 핍박하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 자의 수가 늘 어나면 늘어날수록, 바울은 자기 동족을 생각하며 마음이 편치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늘 근심했던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바울이 자신의 골육친척의 불신앙으로 근심했던 것을 살펴보면서 함 께 은혜를 나눌 때, 여러분에게도 바울처럼, 골육친척이 믿지 않기 때문에 그 에 대한 애절한 근심, 창자가 끊어지는 근심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9장의 바울의 심정을 통해서 도전을 받고, 깨달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1. 구원의 확신과 기쁨에는 반드시 고통이 수반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나타난 사도 바울의 신앙의 모습은 자신에 차서 큰소리로 외치는 당 당하고 확신에 찬 모습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 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 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롬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롬8: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 이시니 롬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 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롬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 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 기느니라 롬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 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는가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겠는가 아무도 그리스도의 손에 빼앗아 갈 자가 없다. 나는 구원받았다.
그러므로 나는 기쁘다. 감격 스럽다' 하는 바울의 모습을 우리는 로마서 8장에서 봅니다. 바울의 이 고백을 보면, 바울만큼 세상에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바울처럼 구원의 기쁨을 간직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구원 의 기쁨이 크면 클수록, 구원의 확신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하나님의 사랑이 깊이 느껴지면 느껴질수록, 마음 중심에서 큰 고통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큰 근심이 불일 듯 일어나는 것입니다. 바울이 왜 그토록 믿음의 확신과 구원 의 기쁨 을 가지고 있으면서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의 근심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곧 골육친척의 불신 때문에 오는 근심이었습니다.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구원의 확신과 기쁨이 큰 사람일수록, 구원받지 못한 형 제 때문에 오는 큰 고통과 괴로움을 마음에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저는 이 말씀 을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만약에 나는 구원받고, 기쁘고 감사한데, 다른 불신 의 골육친척, 부모, 자식, 이웃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면, 그것은 성경적이 아 니요, 하나님이 기뻐하는 심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물으십니다. '네 가정에, 네 이웃에 죽어 가는 영혼들을 놓 고 네 마음에 고통이 없느냐' 여러분 마음에 끊임없이 찌르는 고통이 있습니까 정말 구원의 확신과 기쁨을 간 직하고 사는 사람은 반드시 이 고통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구원받은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바울은 '내 마음에 끝이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은 내 양 심이 성령님 안에서 증거 한다'고 말합니다. 이 고통이 있어야 정상입니다. 이 고통이 없으면 문제입니다.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을 보아도 안타까운 마음도 별로 없고, 안일한 생각에 푹 빠져 있다면 이것은 심각한 영적인 중병입니다. 로마서 9장 1절에 '내가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님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 하노라'고 했습니다. 남이 아닌 골육의 불신에 대한 솔직한 고통을 표시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이 더 확실해질수록 골육친척의 구원이 긴요한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구원이 희미한 신자는 불신자에 대해서 근심으로 보지 않습니다. 자기 신앙도 잘 보장 못하는 사람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이 아니라 골육친척과 동족이 같이 믿어야 근심이 없어지고 믿어야 평안한 것을 발견한다고 하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장 14절에서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고 말씀한 것을 봅니다. 금전의 채무를 진 것처 럼 복음을 전해서 갚아야 될 빚을 아직 못 갚았다는 말씀입니다. 빚을 저 본 사람은 그 채무감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체험하게 됩니다. 자나깨나 그 빚을 못 갚은 것을 생각하면 괴로움이 떠나지 않고 기쁜 일을 보아도 기쁨을 느끼지 못합니다. 온 세상 사람에게 복음의 빚을 졌다고 괴로워하는 경우는 특별하지만, 적어도 내 가족과 사랑하는 이웃에게 진장리 주민에게 복음의 채무감을 갖고 괴로워함은 마땅한 것입니다. 이 복음은 채무의식은 상대방을 얼마나 사랑하는가에 따라 더 하기도 덜하기도 합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가족이나 이웃이라면 볼 때마다. 생각할 때마다 전도하지 못한 채무감에 고통을 받게 됩니다. 만약 이런 느낌이 없다면 둘 중에 하나로서 내가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못했거 나, 그를 사랑하지 않는 증거입니다. 이렇게 마음에 채무의식으로 고통을 느끼는 성도는 눈물로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이라면 그들의 구원 문제 때문에 항상 마음으로 부채감을 갖고 괴로워하며 눈물의 기도가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눈물의 기도를 보시고 저들을 버 리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2. 믿지 않으면 멸망 받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바울은 근심을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안식일이면 동족이 모이는 회당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에게 박해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전에는 극렬한 바리새인 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바리새인들에게 매를 맞고 옥에 투옥되고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미워 할 수도 없었습니다. 영적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불신의 결과가 멸망이라는 것 을 생각할 때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과 근심과 불쌍한 마음을 느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8-9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 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고 했습니다. 불신으로 멸망당할 것을 생각하니 차마 그냥 모른 척 하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물에 빠져 죽어 가는 사람을 바라보고 누가 가만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살려내기 위해서 고함치고, 줄을 던지고, 물에 뛰어들고, 야단법석을 떨어 도 시원찮습니다. 바로 바울이 골육친척을 바라볼 때 그런 심정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예수 믿어도 그만 ,안 믿어도 그만'이라면 괴로울 것도 없습니다. 예수 안 믿는다고 바울처럼 근심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지 않 으면 영원한 지옥 형벌을 면할 수 없으니, 그것을 생각할 때 괴로움이 사무치는 것입니다. 지옥은 너무도 고통스럽고 죽고 싶어도 영원히 죽을 수 없는 불못입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애간장이 타는 근심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남편의 사업과 건강을 위해서는 눈물로 기도하면서 그의 구원을 위해서는 어째서 괴로움을 느끼지 못합니까 사랑하는 자녀의 진학과 직장을 위해서는 노심초사하며 기도할 때마다 눈물로 간구하는데, 왜 그 자녀의 영혼을 위해 서는 염려와 기도를 하지 못합니까 물질의 손해를 보면 눈물로 도움을 요청하 며 기도하는데, 왜 죽어 가는 인생들의 '영혼의 실패'를 바라보면서는 무덤덤 합니까 내 남편이, 내 자식이, 내 부모가, 내 이웃이 지옥 가든 말든 내 상관 할 바 아니란 말입니까 내 남편을 봐도, 내 가족을 봐도 영혼이 불쌍한 마음이 안 들면 '주님 제게 영혼 을 사랑할 마음 주세요!' 하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3. 바울의 목숨을 건 필사적 소원은 골육친척의 구원이었습니다. 로마서 9:3에 보면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바라는 것은 막연히 바라는 것이 아니라 골육친척을 살리기 위해서 내 몸을 내어 주는 것을 말합니다. 골육친척의 장래를 위하는 마음과 그 민족이 그리스도에게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바울에게 최고의 고통이요 최대의 소원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기의 죽 음까지도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바울이 자기 민족을 사랑했고 애타는 구령의 열정으로 그 민족의 구원을 바라고 또 힘썼던 것입니다. 그는 이방으로 다니면서 전도하면서도 골육친척을 한시도 잊지를 못했습니다. 죄 를 짓고도 회개치 못한 골육친척, 율법적인 교만 때문에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완악한 골육친척을 생각할 때, 어찌 나만 구원 얻는 것으로 만족하겠습니 까 그 근심은 주님을 믿지 않는 친척을 위한 근심이요, 드디어 필사적 소원으 로 발전된 것입니다. 이는 골육친척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그들을 구원하고 자 신은 지옥에 떨어진다고 해도 감수할 필사의 결단이요 용단입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근심 없이는 전도의 사명을 감당키 어렵고 죽어 가는 영혼을 바 라볼 때 바울과 같은 근심이 없이는 기도를 간절히 드리지 못하며, 불신자를 보고도 근심이 되지 않으면 희생을 무릅쓰고 전도하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16세기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자 '존 낙스'는 주여! 나에게 스코틀랜드를 주옵소 서.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강력하게) 이 시간 주님은 우리에게 질문을 하십니다. '너의 형제, 너의 동족을 위한 눈물이 있느냐 네 부모, 네 남편, 네 자식, 네 이웃을 위한 눈물이 있느냐' 이 주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애절하게) '예 주님! 내 골육친적의 불신앙으로 내 맘이 근심됩니다. 내 애간장이 타들어 갑니다. 그들을 구원해 주세요. 예수 믿게 인도해 주세요-!' (쉬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도 내 식구가, 이웃이, 골육친척이 예수를 믿지 않아도 마음에 아무런 근심 이 없습니까 아직도 내가 교회를 몇십년을 다녔는데 예수 믿지 않는 불신자들 을 바라보아도 저들이 구원받지 못하고 죽으면 멸망 받을 텐데. 하는 안타까 움과 영혼이 불쌍해서 느껴지는 애끓는 근심이 없습니까 (강력하게) '주님, 이 시간에 안 믿는 내 남편, 내 자녀, 내 부모, 나의 형제, 직장의 동료를 보면서도 얼음장처럼 굳어져서 고통이 없고, 눈물이 없는 내 마음을 녹여 주세 요!'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함께 뜨거운 구령의 열정을 가지고 찬송을 부르겠습니다.-''269장'' 1 웬일인가 내 형제여 아니 믿다가 죄 값으로 지옥 형벌 너도 받겠구나 2 웬일인가 내 형제여 마귀만 좇다가 저 마귀들 지옥갈 때 너도 가겠구나 3 웬일인가 내 형제여 재물만 취하다 세상 물건 불탈 때에 너도 타겠구나 4 웬일인가 내 형제여 죄악에 매여서 한없이 고생하는 것 참 못 보겠구나 5 여보시오 내 동포여 주께로 오시오 십자가에 못 박힌 주 너를 사랑하네 '
'결론'':결론입니다. 바울의 소원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로마서 9:3에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 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 라' 곧 형제, 골육친척'이 모두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이 이런 심정을 가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바울에게 가장 많은 피해를 끼치고 괴롭힌 사람은 자기 동족이었습니다. 돌로 친 사람도 자기 동족이요, 옥에 가둔 사람도 자기 동족이요, 태장을 친 사람도 자기 동족이요, 자기를 죽이려고 온갖 음모를 꾸민 사람들도 자기 동족 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갈면서 미워할 수밖에 없는 원수였지만, 바울은 그 들의 영혼을 바라볼 때 도리어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영혼을 바라볼 때 미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마다 이스라엘을 구원해 달라고 간구했고, 하나님께 눈을 감을 때마다 자기 동족을 버리지 말라고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10장 1절을 보면,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구하는 바, 그것은 이스라엘 을 위하는 것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려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골육친척이 예수 믿고 구원을 받을 수만 있다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도 괜찮다'는 심정입니다. 동족이 모두 구원만 받을 수 있다면 자신의 저주는 문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 이토록 골육친척의 구원을 애타하고 목말라 했겠습니까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바울은 구원의 확신에 찬 사람입니다. 삼천층을 본 사람 입니다. 천국을 알고 지옥을 생생하게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지 않으면 당하게 될 불행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을 빤 히 알고도 어떻게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 에 가는데, 그 지옥의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 것이며, 그 지옥의 고통이 얼마나 처참한 것이며, 그 지옥의 영벌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것인데. 그것을 빤히 알고도 내 골육친척을 그곳에 가도록 내 버려 둔단 말인가 도저히 그저 볼 수가 없었습니다. 자식이 물에 빠져 죽어간다면 그것을 그저 바라만 볼 수가 없는 부모의 심정처 럼, 지옥 갈 영혼을 살려야 하겠기에 이토록 핍박과 고통을 당하고 제 목숨을 바꾸고서라도 자신의 골육친척을 살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 마음 불타오르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의 형제와 골육친척의 구원을 얼마나 원하고 있습니까 그들을 위해 서 얼마나 애통해 하고 있습니까 예수 믿지 않으면 내 골육친척이 당하게 될 불행을 여러분은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 형제들이 모두 다 구원을 받는다면 나는 어찌 되어도 좋다는 각오로 전도하고 기도하고 주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그래서 나 혼자 구원받은 것으로 족하지 않고 내 골육친척을 구원하여 인가귀도를 이루는 우리 진장교회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두손들고 통성으로 기도합니다.
1. 바울의 근심을 내게도 주옵소서!
2. 구령의 열정에 불타게 하옵소서!
3.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주옵소서!
그런데 오늘은 '나도 바울과 같이 근심하라'고 설교를 합니다. 말씀에 은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원래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을 때에는 자기 동족이 아닌 이방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특별한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면 도 항상 그의 마음에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바울의 형제, 골육 친척이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동족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항상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 고 있었습니다. 유대민족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거부하며, 핍박하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 자의 수가 늘 어나면 늘어날수록, 바울은 자기 동족을 생각하며 마음이 편치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늘 근심했던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바울이 자신의 골육친척의 불신앙으로 근심했던 것을 살펴보면서 함 께 은혜를 나눌 때, 여러분에게도 바울처럼, 골육친척이 믿지 않기 때문에 그 에 대한 애절한 근심, 창자가 끊어지는 근심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9장의 바울의 심정을 통해서 도전을 받고, 깨달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1. 구원의 확신과 기쁨에는 반드시 고통이 수반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나타난 사도 바울의 신앙의 모습은 자신에 차서 큰소리로 외치는 당 당하고 확신에 찬 모습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 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 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롬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롬8: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 이시니 롬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 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롬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 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 기느니라 롬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 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는가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겠는가 아무도 그리스도의 손에 빼앗아 갈 자가 없다. 나는 구원받았다.
그러므로 나는 기쁘다. 감격 스럽다' 하는 바울의 모습을 우리는 로마서 8장에서 봅니다. 바울의 이 고백을 보면, 바울만큼 세상에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바울처럼 구원의 기쁨을 간직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구원 의 기쁨이 크면 클수록, 구원의 확신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하나님의 사랑이 깊이 느껴지면 느껴질수록, 마음 중심에서 큰 고통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큰 근심이 불일 듯 일어나는 것입니다. 바울이 왜 그토록 믿음의 확신과 구원 의 기쁨 을 가지고 있으면서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의 근심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곧 골육친척의 불신 때문에 오는 근심이었습니다.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구원의 확신과 기쁨이 큰 사람일수록, 구원받지 못한 형 제 때문에 오는 큰 고통과 괴로움을 마음에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저는 이 말씀 을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만약에 나는 구원받고, 기쁘고 감사한데, 다른 불신 의 골육친척, 부모, 자식, 이웃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면, 그것은 성경적이 아 니요, 하나님이 기뻐하는 심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물으십니다. '네 가정에, 네 이웃에 죽어 가는 영혼들을 놓 고 네 마음에 고통이 없느냐' 여러분 마음에 끊임없이 찌르는 고통이 있습니까 정말 구원의 확신과 기쁨을 간 직하고 사는 사람은 반드시 이 고통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구원받은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바울은 '내 마음에 끝이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은 내 양 심이 성령님 안에서 증거 한다'고 말합니다. 이 고통이 있어야 정상입니다. 이 고통이 없으면 문제입니다.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을 보아도 안타까운 마음도 별로 없고, 안일한 생각에 푹 빠져 있다면 이것은 심각한 영적인 중병입니다. 로마서 9장 1절에 '내가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님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 하노라'고 했습니다. 남이 아닌 골육의 불신에 대한 솔직한 고통을 표시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이 더 확실해질수록 골육친척의 구원이 긴요한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구원이 희미한 신자는 불신자에 대해서 근심으로 보지 않습니다. 자기 신앙도 잘 보장 못하는 사람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이 아니라 골육친척과 동족이 같이 믿어야 근심이 없어지고 믿어야 평안한 것을 발견한다고 하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장 14절에서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고 말씀한 것을 봅니다. 금전의 채무를 진 것처 럼 복음을 전해서 갚아야 될 빚을 아직 못 갚았다는 말씀입니다. 빚을 저 본 사람은 그 채무감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체험하게 됩니다. 자나깨나 그 빚을 못 갚은 것을 생각하면 괴로움이 떠나지 않고 기쁜 일을 보아도 기쁨을 느끼지 못합니다. 온 세상 사람에게 복음의 빚을 졌다고 괴로워하는 경우는 특별하지만, 적어도 내 가족과 사랑하는 이웃에게 진장리 주민에게 복음의 채무감을 갖고 괴로워함은 마땅한 것입니다. 이 복음은 채무의식은 상대방을 얼마나 사랑하는가에 따라 더 하기도 덜하기도 합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가족이나 이웃이라면 볼 때마다. 생각할 때마다 전도하지 못한 채무감에 고통을 받게 됩니다. 만약 이런 느낌이 없다면 둘 중에 하나로서 내가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못했거 나, 그를 사랑하지 않는 증거입니다. 이렇게 마음에 채무의식으로 고통을 느끼는 성도는 눈물로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이라면 그들의 구원 문제 때문에 항상 마음으로 부채감을 갖고 괴로워하며 눈물의 기도가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눈물의 기도를 보시고 저들을 버 리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2. 믿지 않으면 멸망 받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바울은 근심을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안식일이면 동족이 모이는 회당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에게 박해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전에는 극렬한 바리새인 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바리새인들에게 매를 맞고 옥에 투옥되고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미워 할 수도 없었습니다. 영적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불신의 결과가 멸망이라는 것 을 생각할 때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과 근심과 불쌍한 마음을 느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8-9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 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고 했습니다. 불신으로 멸망당할 것을 생각하니 차마 그냥 모른 척 하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물에 빠져 죽어 가는 사람을 바라보고 누가 가만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살려내기 위해서 고함치고, 줄을 던지고, 물에 뛰어들고, 야단법석을 떨어 도 시원찮습니다. 바로 바울이 골육친척을 바라볼 때 그런 심정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예수 믿어도 그만 ,안 믿어도 그만'이라면 괴로울 것도 없습니다. 예수 안 믿는다고 바울처럼 근심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지 않 으면 영원한 지옥 형벌을 면할 수 없으니, 그것을 생각할 때 괴로움이 사무치는 것입니다. 지옥은 너무도 고통스럽고 죽고 싶어도 영원히 죽을 수 없는 불못입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애간장이 타는 근심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남편의 사업과 건강을 위해서는 눈물로 기도하면서 그의 구원을 위해서는 어째서 괴로움을 느끼지 못합니까 사랑하는 자녀의 진학과 직장을 위해서는 노심초사하며 기도할 때마다 눈물로 간구하는데, 왜 그 자녀의 영혼을 위해 서는 염려와 기도를 하지 못합니까 물질의 손해를 보면 눈물로 도움을 요청하 며 기도하는데, 왜 죽어 가는 인생들의 '영혼의 실패'를 바라보면서는 무덤덤 합니까 내 남편이, 내 자식이, 내 부모가, 내 이웃이 지옥 가든 말든 내 상관 할 바 아니란 말입니까 내 남편을 봐도, 내 가족을 봐도 영혼이 불쌍한 마음이 안 들면 '주님 제게 영혼 을 사랑할 마음 주세요!' 하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3. 바울의 목숨을 건 필사적 소원은 골육친척의 구원이었습니다. 로마서 9:3에 보면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바라는 것은 막연히 바라는 것이 아니라 골육친척을 살리기 위해서 내 몸을 내어 주는 것을 말합니다. 골육친척의 장래를 위하는 마음과 그 민족이 그리스도에게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바울에게 최고의 고통이요 최대의 소원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기의 죽 음까지도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바울이 자기 민족을 사랑했고 애타는 구령의 열정으로 그 민족의 구원을 바라고 또 힘썼던 것입니다. 그는 이방으로 다니면서 전도하면서도 골육친척을 한시도 잊지를 못했습니다. 죄 를 짓고도 회개치 못한 골육친척, 율법적인 교만 때문에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완악한 골육친척을 생각할 때, 어찌 나만 구원 얻는 것으로 만족하겠습니 까 그 근심은 주님을 믿지 않는 친척을 위한 근심이요, 드디어 필사적 소원으 로 발전된 것입니다. 이는 골육친척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그들을 구원하고 자 신은 지옥에 떨어진다고 해도 감수할 필사의 결단이요 용단입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근심 없이는 전도의 사명을 감당키 어렵고 죽어 가는 영혼을 바 라볼 때 바울과 같은 근심이 없이는 기도를 간절히 드리지 못하며, 불신자를 보고도 근심이 되지 않으면 희생을 무릅쓰고 전도하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16세기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자 '존 낙스'는 주여! 나에게 스코틀랜드를 주옵소 서.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강력하게) 이 시간 주님은 우리에게 질문을 하십니다. '너의 형제, 너의 동족을 위한 눈물이 있느냐 네 부모, 네 남편, 네 자식, 네 이웃을 위한 눈물이 있느냐' 이 주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애절하게) '예 주님! 내 골육친적의 불신앙으로 내 맘이 근심됩니다. 내 애간장이 타들어 갑니다. 그들을 구원해 주세요. 예수 믿게 인도해 주세요-!' (쉬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도 내 식구가, 이웃이, 골육친척이 예수를 믿지 않아도 마음에 아무런 근심 이 없습니까 아직도 내가 교회를 몇십년을 다녔는데 예수 믿지 않는 불신자들 을 바라보아도 저들이 구원받지 못하고 죽으면 멸망 받을 텐데. 하는 안타까 움과 영혼이 불쌍해서 느껴지는 애끓는 근심이 없습니까 (강력하게) '주님, 이 시간에 안 믿는 내 남편, 내 자녀, 내 부모, 나의 형제, 직장의 동료를 보면서도 얼음장처럼 굳어져서 고통이 없고, 눈물이 없는 내 마음을 녹여 주세 요!'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함께 뜨거운 구령의 열정을 가지고 찬송을 부르겠습니다.-''269장'' 1 웬일인가 내 형제여 아니 믿다가 죄 값으로 지옥 형벌 너도 받겠구나 2 웬일인가 내 형제여 마귀만 좇다가 저 마귀들 지옥갈 때 너도 가겠구나 3 웬일인가 내 형제여 재물만 취하다 세상 물건 불탈 때에 너도 타겠구나 4 웬일인가 내 형제여 죄악에 매여서 한없이 고생하는 것 참 못 보겠구나 5 여보시오 내 동포여 주께로 오시오 십자가에 못 박힌 주 너를 사랑하네 '
'결론'':결론입니다. 바울의 소원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로마서 9:3에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 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 라' 곧 형제, 골육친척'이 모두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이 이런 심정을 가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바울에게 가장 많은 피해를 끼치고 괴롭힌 사람은 자기 동족이었습니다. 돌로 친 사람도 자기 동족이요, 옥에 가둔 사람도 자기 동족이요, 태장을 친 사람도 자기 동족이요, 자기를 죽이려고 온갖 음모를 꾸민 사람들도 자기 동족 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갈면서 미워할 수밖에 없는 원수였지만, 바울은 그 들의 영혼을 바라볼 때 도리어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영혼을 바라볼 때 미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마다 이스라엘을 구원해 달라고 간구했고, 하나님께 눈을 감을 때마다 자기 동족을 버리지 말라고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10장 1절을 보면,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구하는 바, 그것은 이스라엘 을 위하는 것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려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골육친척이 예수 믿고 구원을 받을 수만 있다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도 괜찮다'는 심정입니다. 동족이 모두 구원만 받을 수 있다면 자신의 저주는 문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 이토록 골육친척의 구원을 애타하고 목말라 했겠습니까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바울은 구원의 확신에 찬 사람입니다. 삼천층을 본 사람 입니다. 천국을 알고 지옥을 생생하게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지 않으면 당하게 될 불행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을 빤 히 알고도 어떻게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 에 가는데, 그 지옥의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 것이며, 그 지옥의 고통이 얼마나 처참한 것이며, 그 지옥의 영벌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것인데. 그것을 빤히 알고도 내 골육친척을 그곳에 가도록 내 버려 둔단 말인가 도저히 그저 볼 수가 없었습니다. 자식이 물에 빠져 죽어간다면 그것을 그저 바라만 볼 수가 없는 부모의 심정처 럼, 지옥 갈 영혼을 살려야 하겠기에 이토록 핍박과 고통을 당하고 제 목숨을 바꾸고서라도 자신의 골육친척을 살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 마음 불타오르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의 형제와 골육친척의 구원을 얼마나 원하고 있습니까 그들을 위해 서 얼마나 애통해 하고 있습니까 예수 믿지 않으면 내 골육친척이 당하게 될 불행을 여러분은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 형제들이 모두 다 구원을 받는다면 나는 어찌 되어도 좋다는 각오로 전도하고 기도하고 주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그래서 나 혼자 구원받은 것으로 족하지 않고 내 골육친척을 구원하여 인가귀도를 이루는 우리 진장교회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두손들고 통성으로 기도합니다.
1. 바울의 근심을 내게도 주옵소서!
2. 구령의 열정에 불타게 하옵소서!
3.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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