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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감사 (살전2:13-16)

본문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인물들의 공통점은 항상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서신입니다 바울은 본서 1장2절에서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고 본문에서는 "쉬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감사의 특징입니다. 바울 사도의 서신은 감사 와 기쁨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세상에서 바울 사도만큼 불행스러운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에 그처럼 감사 제목이 없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에게 우리처럼 자식이 있습니까! 부인도, 집도, 세상 권세도, 명예도, 그리고 건강도 그에겐 없었습니다. 늘 초라한 모습에, 안질과 신경통과 또는 간질 로 말이 아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복음 때문에 핍박과 사방의 위험으로 위기 속 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항상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쉬지 않고 하나님 께 감사했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깊은 감옥에서 매를 맞고 피를 흘리 며 갇혔을 때도 감사하고 찬미했습니다.(행16:21) 때로는 동역 자들에게 배신을 당 하였을 때도 그는 감사를 잃지 않았습니다. 감사의 생활을 봐서 세 종류의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무리 좋 은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는 불 신앙의 사람이요,
둘째는 좋은 일 이 생길 때만 감사하는 사람이요,
셋째는 좋은 일이 생기거나 나쁜 일이 생기거 나 전천후 감사하는 믿음의 사람이 있습니다. 가장 깊은 은혜의 사람은 괴로우나 즐거우나 성공 할 때나 실패 할 때나 부요 할 때나 가난 할 때나 언제든지 감사 하는 사람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합3:17에서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 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 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하는 신앙의 사람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발견한 사람은 세상의 것이 다 떠나가도 하나님 한 분만 떠나가 지 않으면 그것 하나만으로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고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없어져 도 하나님 한 분만 함께 계시면 얼마든지 감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비록 가진 것이 없다고 해도 바울 사도보다는, 하박국 선지자보다는 가진 것이 많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런 사람도 쉬지 않고 감사 하고 항상 감사하며 살았다고 했습니다. "쉬지 않고 감사했다."라고 하는 말씀은 " 끊임없이 계속적으로 감사했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우리는 더욱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절 이하에 보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 의 모습을 세 가지로 말씀 하셨는데 그것은 " 항상 기뻐하."는 모습이요, "쉬지 말고 기도하."는 모습이요, "범사에 감사하"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반대로 생각해 보면 마귀의 뜻에 맞는 생활이 무엇인가도 알게 해 줍니다. "항상 슬퍼하고 우울하게 살고, 쉬지 않고 원망하고 비난하고, 범사에 불평만 하면서 사는 생활"인데 이것은 우리를 향한 사탄의 뜻대로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바울은 그의 몸은 옥중에 갇혀 있고 손과 발은 쇠고랑이 채워졌고 죽음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때에도 빌립보 성도들에게 권하기를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 하니라,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1-4) 라고 감사하며 기뻐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참 신앙의 사람은 불행스러운 어떤 환경에서도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유명한 성경 주석가 메튜 헨리는 어느 날 강도를 만나 가 졌던 돈 다 빼앗기고 돌아와서는 무릎을 끊고 하나님께 세 가지로 감사 기도를 드 렸습니다.
(1)물건은 빼앗겼으나 생명을 빼앗기지 않아서 감사했고,(2)강도를 만 난 사람이 되고 강도가 되지 않아 감사했고,(3)오늘 강도를 만났지만 지금까지 보 호 해주심을 감사했습니다. 얼마나 훌륭한 신앙입니까 이렇게 신앙의 사람들은 항상 범사에 쉬지 않고 감사했는데 그 비결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 사죄의 은총과 천국의 확신이 있어야 범사에 감사 할 수 있습니다. 일곱 귀신이 들려서 창녀 노릇하던 마리아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은 후 너무 감사해서 그 비싼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부어 드리고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 드린 것입니다. 영원히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마땅한 죄인이 예수를 믿어 십자가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천국의 자녀가 된 확신이 있다면, 안개와 같은 세상의 것이 있었다 없었다한다고 감사를 잃어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바울이 모든 일에 감사 할 수 있었던 것은 그토록 예수를 핍박하고 그리스도인 을 결박하려고 살기가 등등하여 다메섹으로 향하던 자신을 주님이 불러 주셔서 죄 사함을 받게 해 주신 은혜에 대한 감격과 천국에 대한 소망이 바울을 범사에 감사 하는 사람이 되게 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바울만 그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똑 같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지옥을 면하고, 천국의 시민이 된 것! 이 한가지만 가지고도 영원히 감사 찬송을 못 다할 존재입니다. 오늘 내 생명을 불러 가셔도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 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심을 믿는 사람입니다. 부모가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은 그 이상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다는 것과 우리를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을 때! 우리는 감사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모두가 은혜요 축복으로 받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또 이것이 사실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것은 성공이든 실패든 역경 이든 축복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알고 보면 모두다 우리에게 유익이 됩니다. 나에 게 가장 적당하고 꼭 필요한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사람은 늘 감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롬8:28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 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아버지의 사랑을 특별히 받던 요셉이 형들의 시기로 장사꾼들 에게 팔려 갈 때 밧줄에 손이 묶인 채, 약대의 뒤를 따라가며 얼마나 울며 살려 달라고 애원했겠습니까! 얼마나 억울했겠습니까!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가정 총무 로 제반 살림을 다 맡아 할 때에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아 그것을 단호히 거 절하였더니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세상 적인 눈으로 보면 요셉이야말로 억세게 재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경 에 보면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형통하였더라"고 종종 기록되었습니다. 요 셉은 그 감옥살이하면서 정치범들에게 정치와 기타 필요한 지식을 습득했습니다. 마침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고 요셉을 팔아먹은 형들이 요셉 앞에 무릎을 끊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이때 요셉은 형들에게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 리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했으나 하나님은 그를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하게 하려 하셨습니다"라고 위로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모든 화가 변하여 복이 되게 하시고 결국에 가서는 유익하 게 해주심으로 모든 일에 무조건 감사 할 수밖에 없습니다. . 말씀 안에 사는 사람이 범사에 감사 할 수 있습니다. 말씀 안에 사는 사람은 영원한 차원에서 살기 때문에 세상에 일시적인 것에 동요 되거나 사람의 말에 의하여 좌절하지 않고 모든 일에 감사 할 수 있습니다. 벧전 1:24-25에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 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세상의 모든 부귀 영화란 것들이 풀의 꽃과 같이 잠깐 사이에 시들어 떨어지고 인간의 육체 자체가 풀과 같이 시들어 버리고 말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영원한 차원에서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세상 환경에 따라 변하지 않고 영원히 감사 할뿐입니다. 요일2:15-16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 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고 하셨으니" . 자기의 부족을 깨닫는 사람입니다. 전도서를 기록한 솔로몬은 인생이 헛됨과 인간의 욕구가 끝이 없음을 바다 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 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지나가며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던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전1:3-7) 인간의 욕구는 족한 줄을 모르는 악한 모습이 있습니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름이 없고 가져도, 가져도 족함이 없는 인생이 바로 타락한 증거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감사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윗은 많은 전공을 세우고 왕이 된 후에도 "나 같은 것이 무엇이기에 왕의 자 리에 않게 하여 주십니까" 하고 자신이 이새의 막내아들이라는 것과 목동 출신이 라는 것을 늘 잊지 않고 겸손 했습니다. 신32:7에서 너는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 의 연대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복 받은 사람은 복 받기 전을 생각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높은 지위를 얻은 분들 은 자기가 낮은 자리에 있을 때를 기억하며 겸손함을 잃지 않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섰다 할 때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약4:6에 경고하시기를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 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 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4:6)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감사 생활로 하나님 앞에서 살 때! 그 사람은 늘 은혜를 받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시116:12) 그리고 기도할 때마다 응답을 받게 될 것입니다.(빌4:6,약1:2) 요나는 비록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고기 뱃속까지 들어가는 징계를 받았지만 그러나 고기 뱃속에서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님께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고기를 명 하사 육지에 토하게 하시는 구원의 응답을 받게 되었습니다.(욘2:9,10) 그리고 감사 하는 마음은 축복의 그릇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 생활은 승리의 삶을 보장해 줍니다. 원망 불평으로 사는 사람은 이미 패배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감사 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은 무적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무엇 때문에 감사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 13절에 말씀을 받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것을 보고 감사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 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 하느니라."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은 바울이 설교 할 때에 그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아 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두려워하였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 입니까! 오늘날 우리 성도가 이러한 자세를 가져야 바른 신앙이라고 할 수 있고, 잘 믿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 듣는 자세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어떤 자세로 듣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람 의 말은 듣든지 말든지 내 자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받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드리지 아니하면 우리믿음이 죽습니다. 그리고 멸망합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성도가 사람의 말은 사람의 말로 받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드리지 않 고 사람의 말을 듣는 것처럼 받았습니다. 그리고 순종치 않았습니다. 이것이 패망 의 원리입니다. 삼상15:26을 보겠습니다.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라" 하였습니다. 슥7:11에 "그들이 청종하기를 싫어하여 등으로 향하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 며 그 마음이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신으로 이런 선지 자를 빙자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노가 나 만군의 여호와에게 서 나왔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금강석 같다고 합니다. 마음이 굳어도 받아드리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왜 순종치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 로 받지 아니하고 사람의 말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면 어떻게 무서워서라도 불순종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처럼 듣기 때문에 불순종합니다. 이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버리고 무시하는 죄인 고로 은혜 못 받는 것은 고사하고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멸망하는 것입니다. 소 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롯의 사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엇으로 여겼습니까 창19:14에 "여호와께서 이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을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마음에 자세만 되면 성경을 읽 어주기만 해도 은혜를 받습니다.
느혜미야 8장 5절 이하에 에스라가 율법 책을 가 지고 새벽부터 오정까지 알아들을 만한 사람들을 모두 모아놓고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때에 그 말씀을 읽어 깨닫게 하니 백성 들이 "그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느8:9) 읽어주기만 해도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설교 시간에 자세를 바로 하고, 특별히 마음의 자 세를 사람의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진지한 자세를 취하 여야 합니다. 얼굴을 들고 경청하여야 합니다. 설교 시간에 묵상을 한다든지! 밑을 쳐다보고 있는 다든지 하는 것은 설교 듣는 태도 중에 제일 안 좋은 태도입니다. 그것은 예배를 방해하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내 맘에 드는 사람이 설교하면 열심 히 아멘 하면서 듣고 그렇지 않으면 듣지도 않는다고 하면 그것은 인본주의적 신 앙이고, 철없는 어린 아이 신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런 습관은 속히 고쳐야 신앙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어쨌든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바울이 설교 할 때 그것을 사람의 말로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이것을 바울은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사실 설교자로서는 설교를 잘 들어주는 것 보다 더 고마운 것이 없습니다. 설교자를 대접해 드리는 것 중에 하나는 말씀을 잘 들어주는 것입니다. 은혜 받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야 합니다. 딤후3:15-16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 설교자들이 교훈 하는 말씀들이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 지고 설교하는 것이기 때문에 경청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대선 교회 성도들은 이런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과 같은 그런 아름 다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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