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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행28,1-10)

본문

1,곤경의 때의 비울
2,신으로 추앙을 받을 때의 바울
3,바울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 나라에 복음이 처음으로 들어 올때의 일이다. 토마스라는 이름을 가진 선교사 한 분이 대동강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겠다고 작은 배를 타고 들어 왔을 때 우리들의 조상들은 그 선교사를 어떻게 대접을 했었는가 머나먼 이국 만리길을 와서 새 생명의 복음의 소식을 전해 주겠다고 찾아 온 토마스 선교사를 어떻게 영접을 했었는가 우리들의 조상은 토마스 선교사를 비참하게 살해하고 말았다.
그런데도 이 밀레도 사람들은 이 낫선 사람들에게 그렇게 친절할 수가 없다. 우리들의 조상들은 불과 100여년 전인데도 그렇게 무지했었는데 이 멜레 데의 토인들은 말만 야만인이지 2000년 전에 벌써 복음을 가진 자를 영접할 줄 알았다.
1,곤경의 때의 바울 사도 바울만큼 예수 믿는 일때문에 곤경을 만난 사람도 드물 것이다. 이 시간에 바울이 당한 곤경을 다 열거 할 수는 없고 몇가지만을 통해서 사도 바울이 그 곤경들을 대처해 왔는가를 보고자 한다. 행16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복음 전하는 일로 인하여 무수한 매를 맞게 된다. 옷을 벗기고 매로 때렸다고 했다. 그리고 캄캄한 옥에다 가두어 버렸다. 이런 경험을 해 보신 분이면 어느정도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매를 심하게 맞을 때도 그 앞픔이 대단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상처의 앞픔은 쑤씨듯이 온 몸을 마구 찔러 온다. 아마도 사도 바울이 매를 맞은 때는 밝을 때 였을 것이다. 이제 시간이 지나 한 밤이 되었다. 그 맞은 상처로 인한 앞픔이 얼마나 심했겠나 참으로 억울한 생각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그 시간에 캄캄한 밤에 실라와 함께 참송을 불렀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행18장에 보면 많은 유대인들이 바울을 훼방하고 대적 할 때도 바울은 낙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힘있게 복음을 증거했다. 또 유라굴로 풍랑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사람들이 풍랑으로 인하여 죽을 상이 되었을 때도 사도 바울은 침착 하게 하나님 앞에 엎드리어 기도를 했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절망가운데 있을 때 바울은 그들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소망을 주었다. 그때에도 잊지 않고 전했던 것은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안전하게 보호하실 것입니다"라고 하나님을 전했엇다. 바울은 아무리 힘들고 배고프고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즐거워 했고, 아울러 다른이들에게 기쁨을 주었다. 빌립보 교회를 향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빌4;11-13절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라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 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 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 했다.
2,신으로 충앙 받을 때의 바울 3절 이하에 바울이 나무를 불에 넣을 때 사나운 독사가 뛰쳐나와 사도 바울의 손을 물었다. 그때 바울은 손을 물고 있는 독사를 불에 떨어 버렸다. 그러나 이를 지켜 보았던 토인들은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는가 하고 매 순간을 긴장속에 살피고 있었따. 즉 독사가 물었던 자리가 갑자기 부어 오르든지 아니면 갑자기 엎드러져 죽든지 무슨 큰 사건이 발생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기를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바울의 신변에는 아므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6절에 "그가 붓든지 혹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줄로 저희가 기다렸으나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려 생각하여 말하되 신이라 하더라" 고 했다. 졸지에 바울은 뱀 사건으로 이곳 토인들에게 신으로 높임을 받게 되었다. 이 뱀은 토인들이 알고 있었던 것처럼 아주 사나운 독을 가진 뱀이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바울이 아므런 해를 당하지 않았을까 바울에게 므슨 신통한 비방이 있었단 말인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 밀레도에 바울을 통하여 뭔가를 하실 일이 있었기에 바울에게 기적적인 은혜를 베프신 것 뿐이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전도자들의 가는 길에 능력을 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기적으로, 때로는 물질로 다양하게 역사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럴때 사람들은 오늘의 본문의 사건처럼 신기하게 여겨서 신처럼 바라 볼때가 많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뭐 신이나 된 것처럼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럴때 사람들은 더욱 조심을 해야하고 더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한다. 남들이 받지 못하는 그 어떤 영적인 체험을 하게 될 때 상당한 조심이 필요하다. 남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어떤 직분도 마찬가지이다. 남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어떤 축복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사도 바울은 지금 밀레도에서 초자연적인 방법을 통하여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 있는 것 뿐이다. 이는 지금까지 사도 바울이 온갓 곤경을 믿음으로 잘견디어 왔기에 그의 가는 남은 사역의 길을 더 효과 있게 감당하게 하기 위하여 은혜를 주고 있었음이었다. 하나님은 최선을 다하여 힘써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을 언제고 돕고 계심을 보여 주심이다.
3,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바울 "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위하여 힘쓰는 종들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로 부르시는 그 순간까지 살아 계심의 역사로 함께 하심을 보여 주심이다. 7절에 "이 섬에 제일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 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유숙하게 하더니 " 멜리데 섬에 처음 당도 했을 때 따뜻하게 불을 피워주면서 영접을 했던 이들이었는데 이제 또 자기집에까지 모시고 가서 대접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이다. 8절 "보불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8절을 다시 세분해서 살펴보자
첫째 ; 열병과 이질에 걸린 환자가 있었다.
둘째 ; 바울이 들어가서"라고 했다. 이는 바울이 열정적인 헌신의 사람임을 말해주는 증거이다. 얼마전 불을 피울때에도 나무를 장만해 왔던 바울이다. 지금도 자진해서 환자를 찾아가고 있는 바울이다. 요즘은 모르겠으나 이 "이질병"은 한때 법정 전염병이었다. 이질은 큰 전염병 중에 속한다.
그런데도 바울이 스스로 차자가고 환자를 찾아간 것은 한 마디로 예수님으로 말씀으로 성령님으로 완전한 무장이 되어 있음의 증거이다. 또 봉사할 기회를 늘 찾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줌이다.
세째 ; 기도하여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이는 성령님의 인도와 지시였다. 바울은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환자를 찾아 방으로 들어 갔다. 그리고 손을 언고 기도를 했다. 그랬더니 보블리오의 부친의 열과 이질병이 깨끝하게 낳았다. 멜레데의 제일 높은 보블리오가 사도 바울의 일행을 집으로 영접한 것은 단순한 인정에서 였지 그 어떤 댓가를 기대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 댓가로 부친의 병을 고침받고자 했던 것은 더 더욱 아니었다. 그러나 결과는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선사하는 결과의 축복이 일어 났던 것이다. 보블리오의 부친의 열병과 이질병을 바울을 통하여 깨끝하게 고침을 받는 은혜를 입는다. 아브라함과 롯도 부지불식간에 영접을 했었는데 그분들이 하나님의 사자인 천사들이었고 또 축복도 받았다. 보블리오가 많은 축복을 받았다. 9벌에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기적의 많은 역사가 바울과 함께 했었다. 사도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무었을 하든지 무슨 일을 만나든지 언제나 하나님꼐서 함께 하시는 분임을 볼 수 있다. 폭풍 속에서도 하나님은 사도 바울과 함께 하시었다. 낫선 멜레데 섬의 토인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바울과 함께 하시었다. 기적의 역사를 통하여 멜레데에 삼개월을 머무는 동안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었다. 10절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것을 배에 올렸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에겐 자신의 사생활이 없는 사람이었다. 사생활이 없었다고함은 자기 자신을 위해 어떤 일을 한 일이 없는 사람이란 말이다. 사도 바울은 갈2;20절에서 이런 고백을 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젠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고 했다. 바울의 삶이 전적으로 그리스도만의 삶이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전적 으로 사도 바울을 책임져 주시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바울이 간데마다 함께 가셨다. 하나님은 바울이 하는 일마다 함께 하시었다. 하나님은 바울과 매 순간 순간을 함께 호흡하시고 지켜 주셨던 것이다. 여러분들도 다 바울처럼 하나님을 위하여 사시는 사람들이 되시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만을 위하여 사실려고 힘쓰시는 여려분과 함께 바울을 동행했던 것처럼 동행하시는 은혜가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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