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설교 (행13:16-41)
본문
할례자의사도라고 하는 베드로를 고넬료 가정에 보내어 이방인 에게도 복음이 개방되어 있다는 사실을 사도행전 문맥이 보여주고 있다. 교회 역사에 이런 점에서 순수하게 이방인 교회라고 볼 수 있는 안디옥 교회가 생겼다. 이것이 선교 의 거점이 되었다. 바나바는 바울을 불러 함께 사역하게 되었다. 둘이 선교를 출발하였다. 바울의 전도하는 말을 듣고 유대인이 비방할 때(13:45) 너희가 복음을 받기를 합당 치 않게 자처하므로 이방인에게로 향한다고 했다. 이는 장차 교회사의 흐름에 대한 한 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구약신학에서의 관심은 이 설교가 구약 백성을 향한 것이므로 구약과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발견하는 것이다. 23절 약속을 따라, 약속이란 삼하 7장의 영원한 왕조의 약속을 말하는 것이다. 삼하 7:12 이하 "너를 위해 집을 세우겠다" (베트; 집)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 대상이 왕일 경우 왕조를 뜻한다. 이 말은 다윗 한 사람이 아 니라 자손 대대로 왕권을 이어나갈 것을 말한다. 7:15 그가 범죄하여 그를 징계할 때에라도 사울처럼 그 왕권의 약속을 거두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 약속이 무효화되는 듯하더니 오늘 본문에 의하면 이 사람의 후손 중에 예수를 세우셨다(13:23). 이 한마디 속에 매우 깊은 구약의 배경이 들어있는 것이다. 특히 예수님을 가리켜 라고 부른다. (소테르; 구원자 모쉬아 예수아) 여호수아라는 이름도 바로 이것이다. 사사들도 이 이름으로 불리웠다.
사사시대의 주된 관심이 무엇인가 여호수아가 지도자 지명 없이 죽자 온 이스라엘이 모여 누가 먼저 올라가서 정복할 것인지 물었다. 하나님은 '유 다'라고 말하신다. 사사시대 마지막 기브아 사건에서도 온 이스라엘이 모여 또 하나님께 묻는다. 이 때도 누가 먼저 베냐민을 치러 올라갈 것인지를 물 었다. 물론 이때의 전쟁은 교회 내부 정화를 위한 것이다. 이 모임에서도 역 시 유다지파가 먼저라고 응답하신다. 유다지파가 부각되는 것과 '그 때에 왕 이 없으므로…'를 보면 유다지파에 치리자의 지팡이가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창세기의 예언을 성취해 나간다. 즉, 사사시대의 역사는 왕권 확립의 과 정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이것을 확인하는 것은 룻기이다. 룻의 가정은 사 사시대의 축소판이다. 나오미가 말한 "풍부한 가운데 나가서 빈궁한 가운데 돌아왔다"는 것은 사사시대 모습의 요약이다. 그 후 고엘 언급을 통하여 다 윗 혈통을 암시하고 룻기가 끝난다. 어쨌던 여기는 사사시대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우리는 이방인이 었으므로 구원자를 인류 창조, 타락 역사로 직접 투사하게 되는데 그런 신학 은 건전하지 못하다. 우리 이방인은 이스라엘에 접붙임 받은 것이므로 우리 에게도 이스라엘은 의미를 가진다. 24절 구약의 다윗에게 사무엘이 있었다면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세례 요한 이 있었다. 오실 그분의 신발 끈도 풀 자격이 없다고 하면서 무릎을 꿇어야 할 신분의 사람임을 하나님이 증거케 하였다. 26절 이 구원의 말씀이 우리에게 보내어진 방식에 우리는 유의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그 다음 말씀이 중요하다. 27절 매 주일 마다 읽히우는 바 선 지자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의 말을 응하게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여기 서 안식일마다 읽히우는 선지자의 말을 왜 (포네; 음성) 즉, 음성 또는 육성이라고 했을까 예수님 당시 예수님을 죽인 것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배 척의 역사의 절정이었다. 이는 스데반도 언급하였다. 메시야가 오시리라고 예언한 선지자마다 죽여왔다. 28절 죽일 죄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은 큰 의의를 가진다. 이 속에 대속과 부활까지도 내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32절 우리들도 우리 조상에게 주신 약속을 복음으로 전한다. 이 약속을 그 들의 자손들인 우리들에게 이루셨다. 이 때까지의 역사는 미완성의 역사이다. 즉, 예수의 부활이 약속 성취의 절정이다. 바울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문제를 어떻게 말하는가를 다루보자. (토이스 테크노이스 '아우톤' 헤민) 가장 중요 한 사본들이 으로 되어있다. 우리 조상들에게는 약속이었던 것이 우리에 게 이루어졌다. 그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로 통해 이루어졌다. 약속의 완전한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관계있다. 11:13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구속사의 완성임을 설명하기 위해 시 2편을 인용하고 있다. 시 2편의 내용은 무엇인가 세상의 모든 권력이 하나님께 반 역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 대해 하나님은 '내 왕을 시온산에 세우리라'고 하신다. 그 말이 바로 "너는 내 아들이다"이다. 아들은 하나님의 모 든 것을 상속 받는다. 그가 능력으로 세계의 통치자가 되고 반역한 세상에 대해 '너는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고 명하신다. 그렇지 않으면 망한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는 신약의 여러 곳에 암시되고 있는데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관된다. 롬 1:4에서는 부활함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고 한다. 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것을 두고 '내가 너를 낳 았다'고 표현하시는가 그 전에는 아들이 아닌가 예수님은 아들이다. 하나님에게서 영원히 발생하신다. 이 낳으심은 영원적 발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오늘" 너를 낳았다고 한다. 이 낳으심은 독특한 낳으심이다. 이 낳으심의 의미가 무엇이든 신약 저자들이 항상 부활과 관련시키는 이유가 이해할 만하다. 롬 1:4의 의미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할 것인가 그가 이 땅에 육신으로 오시기 전에도 존재하셨고 영으로 계신 때에도 세상의 통치에 개입하셨다. 성육신은 왜 독특한가 성육신은 참 하나님이 참 사람이 되신 것이다. 참 사람으로써 부활하심은 독특한 것이다. 13:34 부활의 의미를 썩음을 당하지 않을 영원성을 말하는데 이 영원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하심과 같은 것으로 본다. 다윗에게 내가 네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고 하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다윗언약의 궁극적 성취라는 의미를 갖는다. 즉, 왕권 확립의 의미이다. 36절 다윗은 그의 당대에 하나님을 섬기다가 죽어 썩었다. 즉, 그는 완전 한 왕이 아니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예표였다. 그러나 그는 예표만은 아니었다. 그 시대에 있어서는 충성되이 하나님의 뜻을 실행한 그리스도였다. 이것은 구약신학의 제 3의 원리이다. 구약-신약 관계는 1)연속성, 2)불연속성, 3)지나버린 역사는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당시에는 완전했고 각 시대는 나 름대로의 자체의 긍정적 의미가 있다. 38절 그리스도의 부활로 죄사함이 전해지고 있다. 부활로 말미암아 성취된 핵심이 "죄 사함"이라고 하는 것이다. "죄사함"이란 어떤 것인가 39절 마지 막으로 Mosaic System을 언급한다. 이는 다윗 언약이 모세 언약과 단절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왜 모든 아브라함 약속의 성취라고 했는가 그의 죽으심 과 부활하심은 모든 이스라엘 역사가 다 포함되어 있다.
사사시대의 주된 관심이 무엇인가 여호수아가 지도자 지명 없이 죽자 온 이스라엘이 모여 누가 먼저 올라가서 정복할 것인지 물었다. 하나님은 '유 다'라고 말하신다. 사사시대 마지막 기브아 사건에서도 온 이스라엘이 모여 또 하나님께 묻는다. 이 때도 누가 먼저 베냐민을 치러 올라갈 것인지를 물 었다. 물론 이때의 전쟁은 교회 내부 정화를 위한 것이다. 이 모임에서도 역 시 유다지파가 먼저라고 응답하신다. 유다지파가 부각되는 것과 '그 때에 왕 이 없으므로…'를 보면 유다지파에 치리자의 지팡이가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창세기의 예언을 성취해 나간다. 즉, 사사시대의 역사는 왕권 확립의 과 정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이것을 확인하는 것은 룻기이다. 룻의 가정은 사 사시대의 축소판이다. 나오미가 말한 "풍부한 가운데 나가서 빈궁한 가운데 돌아왔다"는 것은 사사시대 모습의 요약이다. 그 후 고엘 언급을 통하여 다 윗 혈통을 암시하고 룻기가 끝난다. 어쨌던 여기는 사사시대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우리는 이방인이 었으므로 구원자를 인류 창조, 타락 역사로 직접 투사하게 되는데 그런 신학 은 건전하지 못하다. 우리 이방인은 이스라엘에 접붙임 받은 것이므로 우리 에게도 이스라엘은 의미를 가진다. 24절 구약의 다윗에게 사무엘이 있었다면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세례 요한 이 있었다. 오실 그분의 신발 끈도 풀 자격이 없다고 하면서 무릎을 꿇어야 할 신분의 사람임을 하나님이 증거케 하였다. 26절 이 구원의 말씀이 우리에게 보내어진 방식에 우리는 유의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그 다음 말씀이 중요하다. 27절 매 주일 마다 읽히우는 바 선 지자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의 말을 응하게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여기 서 안식일마다 읽히우는 선지자의 말을 왜 (포네; 음성) 즉, 음성 또는 육성이라고 했을까 예수님 당시 예수님을 죽인 것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배 척의 역사의 절정이었다. 이는 스데반도 언급하였다. 메시야가 오시리라고 예언한 선지자마다 죽여왔다. 28절 죽일 죄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은 큰 의의를 가진다. 이 속에 대속과 부활까지도 내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32절 우리들도 우리 조상에게 주신 약속을 복음으로 전한다. 이 약속을 그 들의 자손들인 우리들에게 이루셨다. 이 때까지의 역사는 미완성의 역사이다. 즉, 예수의 부활이 약속 성취의 절정이다. 바울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문제를 어떻게 말하는가를 다루보자. (토이스 테크노이스 '아우톤' 헤민) 가장 중요 한 사본들이 으로 되어있다. 우리 조상들에게는 약속이었던 것이 우리에 게 이루어졌다. 그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로 통해 이루어졌다. 약속의 완전한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관계있다. 11:13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구속사의 완성임을 설명하기 위해 시 2편을 인용하고 있다. 시 2편의 내용은 무엇인가 세상의 모든 권력이 하나님께 반 역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 대해 하나님은 '내 왕을 시온산에 세우리라'고 하신다. 그 말이 바로 "너는 내 아들이다"이다. 아들은 하나님의 모 든 것을 상속 받는다. 그가 능력으로 세계의 통치자가 되고 반역한 세상에 대해 '너는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고 명하신다. 그렇지 않으면 망한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는 신약의 여러 곳에 암시되고 있는데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관된다. 롬 1:4에서는 부활함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고 한다. 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것을 두고 '내가 너를 낳 았다'고 표현하시는가 그 전에는 아들이 아닌가 예수님은 아들이다. 하나님에게서 영원히 발생하신다. 이 낳으심은 영원적 발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오늘" 너를 낳았다고 한다. 이 낳으심은 독특한 낳으심이다. 이 낳으심의 의미가 무엇이든 신약 저자들이 항상 부활과 관련시키는 이유가 이해할 만하다. 롬 1:4의 의미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할 것인가 그가 이 땅에 육신으로 오시기 전에도 존재하셨고 영으로 계신 때에도 세상의 통치에 개입하셨다. 성육신은 왜 독특한가 성육신은 참 하나님이 참 사람이 되신 것이다. 참 사람으로써 부활하심은 독특한 것이다. 13:34 부활의 의미를 썩음을 당하지 않을 영원성을 말하는데 이 영원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하심과 같은 것으로 본다. 다윗에게 내가 네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고 하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다윗언약의 궁극적 성취라는 의미를 갖는다. 즉, 왕권 확립의 의미이다. 36절 다윗은 그의 당대에 하나님을 섬기다가 죽어 썩었다. 즉, 그는 완전 한 왕이 아니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예표였다. 그러나 그는 예표만은 아니었다. 그 시대에 있어서는 충성되이 하나님의 뜻을 실행한 그리스도였다. 이것은 구약신학의 제 3의 원리이다. 구약-신약 관계는 1)연속성, 2)불연속성, 3)지나버린 역사는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당시에는 완전했고 각 시대는 나 름대로의 자체의 긍정적 의미가 있다. 38절 그리스도의 부활로 죄사함이 전해지고 있다. 부활로 말미암아 성취된 핵심이 "죄 사함"이라고 하는 것이다. "죄사함"이란 어떤 것인가 39절 마지 막으로 Mosaic System을 언급한다. 이는 다윗 언약이 모세 언약과 단절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왜 모든 아브라함 약속의 성취라고 했는가 그의 죽으심 과 부활하심은 모든 이스라엘 역사가 다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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