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바울같이 전도합시다 (고전9:16-23)

본문

전도는 주님의 지상명령입니다. 복음은 서진하고 있습니다. 세계 복음주의 협의회 국제 총무였던 어거스틴 벤서 박사에 의하면 제3세계는 매일 7만명씩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있는데 반해 서구에서는 매주 5만3천명씩 교회를 떠난다 고 합니다. 이는 이천여년 전에 바울을 통해서 복음의 수례바퀴가 서진하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섭리입니다. 바울의 제2차 전도 여행때 그는 본래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이를 허락지 않고 그를 드로아 지역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사도행전 16:9)고 했습니다. 그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마게도냐로 가는 배를 탓던 것입니다. 세계적인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 박사는 바울이 타고 가는 이 배를 보고 인류 문명을 담아 나르는 배 라고 했습니다. 맡습니다. 복음에는 모든 좋은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습니다. 이제 우리는 영적인 안목을 열어서 복음의 축이 어디로 기울고 있는지를 잘 보아야 합니다. 복음이 왕성했던 시대가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받은 개인과 민족과 국가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특별한 그릇입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사도행전 9:15)고 했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정상과 고지를 정복한 자들은 남이 보지 못한 안목을 가지고 계십니다. 바울은 전도와 선교에 대가입니다. 그가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고난 이후에는 복음전파에 복음을 걸었습니다.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다 변화되었고 그가 가는 곳이면 주님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신약의 서신서는 바울이 세운 교회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가 전도한 비결을 배우고자 합니다.
첫째:전도는 마땅히 할 일입니다. 읽을말씀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덕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16) 본문에서 전도는 “부득불 할 일”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부득불(compelled-NASB)이란 말을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억지로 라는 말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긍정적인 용어로 바꾸면 당연히 라는 말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가 전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삶은 덤으로 사는 은혜의 삶입니다. 은혜를 입은 자가 은혜를 베푸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에스겔 선지자는 좋은 해답을 주십니다. “인자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군을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 길에서 떠나게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를 너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에스겔 33:7-9)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도는 해도 되고 않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은 자는 그 순간부터 전도자입니다. 아직 복음을 받지 못한 자들은 다 전도의 대상자입니다. 전도에는 특별한 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전 영역에서 전해야 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디모데후서 4:2)고 했습니다. 금년에는 반드시 한 사람이 한 영혼씩 건져 냅시다.
둘째:전도는 사명감으로 해야 합니다. 읽을말씀 “내가 내 임의로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17) 여기 “임의로”라고 했습니다. 임의로(voluntarily-NASB)란 말은 자발적 이란 말입니다. 마땅히 할 일을 억지로 하면 마음에 평강도 없고, 상급도 없습니다. 그러나 마땅히 할 일을 알아서 자원하여 행하면 심령에 기쁨도 넘치고, 예비된 상급도 받습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2:19-20)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를 위해 우리가 ‘직분을 맡았노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받은 모든 직분은 복음을 전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구약의 제사장과 선지자도 영혼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신약의 사도와 전도자도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주님의 이름으로 주신 모든 직분은 선교와 전도를 위한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 전파를 위해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은 그릇입니다(사도행전 9:15).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사도행전 20:24)고 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고백에 걸맞게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복음 때문에 죽을 고비를 수없이 많이 넘겼습니다(고린도후서 11:23-27). 그래서 그는 최후에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디모데후서 4:7-8)고 했습니다.
셋째:전도는 값없이 전하는 것입니다. 읽을말씀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18) 여기 “값없이 전하고”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받은 복음은 값없이 받은 은혜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거져 받았으니 거져 베풀어야 합니다.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에베소서 2:8-9)고 했습니다. 이사야는 복음의 원리를 바르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이사야 55:1)고 했습니다. 여기 하신 말씀은 어찌보면 모순이 되는 것 같이 보입니다. 우리가 마셔야 할 영원한 생수를 사서 마셔라 고 합니다.
그런데 돈 없이 값없이 사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생수를 얻기 위해서 지불할 돈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서 먹을 수 있는가 우리의 부족함을 아시고 주님이 대신해서 갈보리에서 자신의 몸을 팔아서 단번에 지불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이름으로 마시기만 하면 됩니다. 이 땅 위에 목마른 인생들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에서 그 갈증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이 땅 위에는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할 생수가 없습니다. 여리고의 삭개오는 돈이 자신과 직장에 평강을 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영접한 순간에 참 평안을 얻었습니다(누가복음 19:9). 바리새인중에 한 사람인 니고데모는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서 밤중에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물과 성령님으로 거듭날 때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요한복음 3:5). 수가성의 한 여인은 다섯 남편을 갈아치우는 팔자가 거센 여인입니다. 그러나 그 여인이 우물가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에 엣적 과거를 청산하고 주님을 증거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요한복음 4:28-29).
넷째:전도는 섬기는 종의 자세로 해야 합니다. 읽을말씀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을 구원코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19-23) 본문에서 “얻고자 함이라”라는 말이 다섯 번이나 나옵니다. 영혼과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값비싼 대가라도 치루어야 합니다. 성질과 감정을 죽여야 합니다. 위신과 체면을 벗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의 종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종과 같이 섬기는 자세로 그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이끌어야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는 삶입니다. 이것이 제자도-弟子道 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태복음 16:24-25)고 했습니다. 복음전파의 최후 목적은 영혼구원입니다. 바울은 무엇까지 포기했는가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난 의라”(빌립뽀서 3:7-9)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유익하게 하던 모든 것을 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로 여길 뿐 아니라 배설물 같이 버렸습니다. 다시말해 미련없이 버렸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너무도 고상한 지식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포기해야 그리스도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육체를 신뢰할만한 모든 것을 다 버렸습니다. 가정도 가문도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베냐민 지파도 버리고 결혼도 포기했습니다. 지위와 학문도 포기했습니다. 가말리엘에서 배운 율법과 바리새 사상도 다 버렸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만 바라보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류 문화의 주체는 복음입니다. 역사는 인간의 지각에서 비롯된 것 같지만 그것을 이끌어 가는 주체가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분명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그대로 성취되어 왔던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이 사실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은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창세기 9:26-27)고 했습니다. 야벳이 창대함은 셈의 장막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장막 안에 인류의 문명이 있는 것입니다. 전도와 선교로 이 도성과 세계를 살립시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543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