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시작과 풍성한 열매 (욥8:1-12)
본문
본문전개 빌닷의 처음 충고 역시 엘리바스처럼 욥의 자녀들이 죽은 것은 죄 때문 이라며 욥을 고발합니다. 그는 고통의 원인을 죄 때문이라고 하는 전통적 인 입장을 주장하면서 계속 욥에게 그 사실을 인식시키려 합니다. 빌닷은 하나님은 의로우심으로 의로운 자에게는 보상을 내리시고 악한 자에게는 벌 하시는 분임을 주장합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1-7절) 하나님께 대해 무척 경외하는 태도를 지닌 빌닷은 욥의 항변을 듣고는 경악합니다.
그러므로 욥의 말이 광풍과 같다고 꾸중합니다
(1) 빌닷의 하나님관을 정리하면
첫째로 하나님은 심판과 공의를 굽게 하시는 분이 아니다(3).
둘째, 하나님을 부지런히 찾고 빌어야 한다(5).
셋째, 하나님은 청결하고 정직한 사람을 돌아보시는 분이시다(6).
그리고 결국은 형통케 한다는 것입니다. 조상의 지혜를 구하라 (8-12절) 빌닷은 욥에게 옛사람에게 물으며 열조의 터득한 일을 배우라고 합니다. 이 말은 이전 사람들이 가진바 경건하고 현명한 지혜를 배우라는 말입니다. 이 말처럼 때때로 우리는 옛사람에게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예전 문화에만 집착하여 가장 옳은 것인양 착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더욱 불교나 토속종료를 믿는 사람들은 민족종교라는 이름 아래 기독교를 외래종교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옛사람에게서 귀중한 문화와 정신유산을 받았음을 기억해야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히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야기 풀이 인과 응보라는 말은 일반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고 있고 어느 특정 종교 가 전유물처럼 사용하기도 합니다만 이 말에는 상당한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하여 "사람이 무엇이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가르쳤는데 이것 역시 이 진리에 근거한 것입니다. 또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난다'는 우리 속담도 같은 의미를 가지 고있습니다.
그런데 이점에서 한 가지 우리가 크게 각성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목적이 선하면 수단과 방법이야 어떠해도 괜찮다는 논리를 앞세우면 서, 불법을 하는 일을 더러 봅니다. 하지만 이런 일에도 심는 대로 거둔다는 천리는 냉엄한 결과를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깊이 통찰해야 합니다. 그러면 무슨 일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고 거기에서 얻어지는 것이 바람직한 결과는 어떤 것일까요
1.미약하더라도 시작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일을 거창하게 시작하고 거창하게 벌이려는 욕구와 야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의 입신과 명예에 관련되는 일이면 이러한 욕구와 야망은 더욱 크게 작용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을 이렇듯 세속적인 입장에서 시작하고 벌인다면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는 결과에 못지 않게 그 동기와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하는 말씀은 깊이 상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이 말씀에 하나님의 일은 어떤 것이나 무조건 미약하게 시 작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은 것은 아닙니다. 앞에 언급된 구절을 유의하여 읽어야 바른 해석을 하게 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5,6절)이라는 조건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바른 태도만 가지고 일을 시작하면 그것이 아무 리 미약하게 보이더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는 그 시작이 거창하며 화려하냐 하는 점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그 시작이 하나님의 뜻과 얼마나 일치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가령 어떤 계획을 세울 때에 처음부터 거대한 계획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추진이 불가능하다면 그처럼 우매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그 시작이 아무리 미약하더라도 바른 신앙과 일치되어야 한 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2.시작이 바르면 결과는 창대하게 되어집니다. 시작이 미약한데 어떻게 결과가 창대하게 되어 진단 말입니까 대개의 사람들은 이러한 의문을 나타내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은 결 과가 창대하려면 시작도 거창해야 한다는 세속적 사고 방식에 깊이 젖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많은 자본을 들여야만 사업이 크게 융성할 수 있다는 상식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일에 있어서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뜻과 일치하는 진실한 일만을 크게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서 시작한 일은 그것이 아무리 미약해도 그 결과는 창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들려 주신 겨자씨 비유는 지극히 작은 것이 자란 후에는 어떤 것 보다 크게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는 옥스포드 대학교 안에서 동생 챨스 웨슬레등 몇 사람과 더불어 성경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그 모임은 그 규모가 극히 미미한 채 수년 동안 계속되었고 그나마도 중간에서 한 차례 중단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미미한 모임이 터가 되어 오늘날 전세계에 뻗혀 감리교라는 교단 을 이룩하였습니다. 또한 나폴레옹이 임종 직전에 했다는 말을 우리는 기 억하고 있습니다. '나는 칼로써 전 유럽을 제패해 보려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는데 십자가에서 죽어간 예수는 오늘날 온 세상을 제패하고 있다'는 말이 그것입니다. 또한 과정도 중용합니다. 힘써 노력하지 않으면 결과는 달라집니다. '예화' 어느 마을에 한 게으름뱅이가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얼마나 게을렀던지 누가 음식을 차려 주면 먹고 차려 주는 사람이 없으면 굶어 죽는 쪽을 선택할 정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즉, 그는 일하는 것을 죽는 것보다 싫어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하루 종일 굶은지라 너무나 배가 고팠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 상태로 가다가는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만 할까봐 겁이 난 나머지 그냥 죽은 척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일을 하느니 차라리 땅에 평안 히 묻히고 말지.' 중얼거렸다. 몸이 바짝 야윈 채 침대에 누어 있는 그를 발견한 이웃집 사람은 그가 죽을 줄로만 생각하고 신부님들을 불러 장례을 치르기로 했다. 마을 사람 들은 게으름뱅이의 시체를 메고 걸었는데 그를 본 한 노파가 동정어린 눈초 리로 이렇게 말했다. "쯧쯧, 불쌍도 하지 배가 고파 죽은 것이 분명해! 이럴 줄 알았 으면 어제 감자라도 갖다 주는 건데…" 관 속에 누어 있던 게으름뱅이는 이 말을 듣자 눈을 번쩍 뜨고 몸을 일 으키더니 노파에게 물었다. "찐 감잔가요아.아니요. 안 찐 감자요." 당연히 죽은 줄로만 알았던 사람이 일어나자 노파는 너무 놀란 나머지 더듬 거리며 대답했다. "에이,
그렇다면 신부님들 장례곡을 읊으세요." 게으름뱅이는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관 속에 눕더니 눈을 꼭 감았다. 그는 감자를 찌는 수고를 하느니 차라리 산 채 땅에 묻히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과연 이런 자의 길이 형통할 수 있을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면 그 시작이 아무리 미약해 도 결과는 창대하게 됩니다. 그 일을 이룩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마무리 성도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일에서 가치와 보람을 창출하려고 노력하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절대로 나무랄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런 욕구와 야망이 빗나 가거나 어떤 일이나 시작부터 거창하게 벌이다가 나중엔 자기가 파놓은 함 정에 빠져 버리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 가운데서도 더러는 그런 빗나간 길을 밟으려고 하는 경우 가 있습니다. 이런 일에 비추어 우리는 오히려 미약하게 시작한 일이 나 중에 창대케 된다는 말씀을 깊이 유념해야 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자는 여호와시기 때문입니다.(잠 16:9)
그러므로 욥의 말이 광풍과 같다고 꾸중합니다
(1) 빌닷의 하나님관을 정리하면
첫째로 하나님은 심판과 공의를 굽게 하시는 분이 아니다(3).
둘째, 하나님을 부지런히 찾고 빌어야 한다(5).
셋째, 하나님은 청결하고 정직한 사람을 돌아보시는 분이시다(6).
그리고 결국은 형통케 한다는 것입니다. 조상의 지혜를 구하라 (8-12절) 빌닷은 욥에게 옛사람에게 물으며 열조의 터득한 일을 배우라고 합니다. 이 말은 이전 사람들이 가진바 경건하고 현명한 지혜를 배우라는 말입니다. 이 말처럼 때때로 우리는 옛사람에게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예전 문화에만 집착하여 가장 옳은 것인양 착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더욱 불교나 토속종료를 믿는 사람들은 민족종교라는 이름 아래 기독교를 외래종교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옛사람에게서 귀중한 문화와 정신유산을 받았음을 기억해야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히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야기 풀이 인과 응보라는 말은 일반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고 있고 어느 특정 종교 가 전유물처럼 사용하기도 합니다만 이 말에는 상당한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하여 "사람이 무엇이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가르쳤는데 이것 역시 이 진리에 근거한 것입니다. 또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난다'는 우리 속담도 같은 의미를 가지 고있습니다.
그런데 이점에서 한 가지 우리가 크게 각성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목적이 선하면 수단과 방법이야 어떠해도 괜찮다는 논리를 앞세우면 서, 불법을 하는 일을 더러 봅니다. 하지만 이런 일에도 심는 대로 거둔다는 천리는 냉엄한 결과를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깊이 통찰해야 합니다. 그러면 무슨 일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고 거기에서 얻어지는 것이 바람직한 결과는 어떤 것일까요
1.미약하더라도 시작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일을 거창하게 시작하고 거창하게 벌이려는 욕구와 야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의 입신과 명예에 관련되는 일이면 이러한 욕구와 야망은 더욱 크게 작용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을 이렇듯 세속적인 입장에서 시작하고 벌인다면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는 결과에 못지 않게 그 동기와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하는 말씀은 깊이 상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이 말씀에 하나님의 일은 어떤 것이나 무조건 미약하게 시 작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은 것은 아닙니다. 앞에 언급된 구절을 유의하여 읽어야 바른 해석을 하게 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5,6절)이라는 조건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바른 태도만 가지고 일을 시작하면 그것이 아무 리 미약하게 보이더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는 그 시작이 거창하며 화려하냐 하는 점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그 시작이 하나님의 뜻과 얼마나 일치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가령 어떤 계획을 세울 때에 처음부터 거대한 계획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추진이 불가능하다면 그처럼 우매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그 시작이 아무리 미약하더라도 바른 신앙과 일치되어야 한 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2.시작이 바르면 결과는 창대하게 되어집니다. 시작이 미약한데 어떻게 결과가 창대하게 되어 진단 말입니까 대개의 사람들은 이러한 의문을 나타내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은 결 과가 창대하려면 시작도 거창해야 한다는 세속적 사고 방식에 깊이 젖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많은 자본을 들여야만 사업이 크게 융성할 수 있다는 상식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일에 있어서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뜻과 일치하는 진실한 일만을 크게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서 시작한 일은 그것이 아무리 미약해도 그 결과는 창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들려 주신 겨자씨 비유는 지극히 작은 것이 자란 후에는 어떤 것 보다 크게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는 옥스포드 대학교 안에서 동생 챨스 웨슬레등 몇 사람과 더불어 성경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그 모임은 그 규모가 극히 미미한 채 수년 동안 계속되었고 그나마도 중간에서 한 차례 중단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미미한 모임이 터가 되어 오늘날 전세계에 뻗혀 감리교라는 교단 을 이룩하였습니다. 또한 나폴레옹이 임종 직전에 했다는 말을 우리는 기 억하고 있습니다. '나는 칼로써 전 유럽을 제패해 보려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는데 십자가에서 죽어간 예수는 오늘날 온 세상을 제패하고 있다'는 말이 그것입니다. 또한 과정도 중용합니다. 힘써 노력하지 않으면 결과는 달라집니다. '예화' 어느 마을에 한 게으름뱅이가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얼마나 게을렀던지 누가 음식을 차려 주면 먹고 차려 주는 사람이 없으면 굶어 죽는 쪽을 선택할 정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즉, 그는 일하는 것을 죽는 것보다 싫어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하루 종일 굶은지라 너무나 배가 고팠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 상태로 가다가는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만 할까봐 겁이 난 나머지 그냥 죽은 척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일을 하느니 차라리 땅에 평안 히 묻히고 말지.' 중얼거렸다. 몸이 바짝 야윈 채 침대에 누어 있는 그를 발견한 이웃집 사람은 그가 죽을 줄로만 생각하고 신부님들을 불러 장례을 치르기로 했다. 마을 사람 들은 게으름뱅이의 시체를 메고 걸었는데 그를 본 한 노파가 동정어린 눈초 리로 이렇게 말했다. "쯧쯧, 불쌍도 하지 배가 고파 죽은 것이 분명해! 이럴 줄 알았 으면 어제 감자라도 갖다 주는 건데…" 관 속에 누어 있던 게으름뱅이는 이 말을 듣자 눈을 번쩍 뜨고 몸을 일 으키더니 노파에게 물었다. "찐 감잔가요아.아니요. 안 찐 감자요." 당연히 죽은 줄로만 알았던 사람이 일어나자 노파는 너무 놀란 나머지 더듬 거리며 대답했다. "에이,
그렇다면 신부님들 장례곡을 읊으세요." 게으름뱅이는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관 속에 눕더니 눈을 꼭 감았다. 그는 감자를 찌는 수고를 하느니 차라리 산 채 땅에 묻히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과연 이런 자의 길이 형통할 수 있을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면 그 시작이 아무리 미약해 도 결과는 창대하게 됩니다. 그 일을 이룩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마무리 성도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일에서 가치와 보람을 창출하려고 노력하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절대로 나무랄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런 욕구와 야망이 빗나 가거나 어떤 일이나 시작부터 거창하게 벌이다가 나중엔 자기가 파놓은 함 정에 빠져 버리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 가운데서도 더러는 그런 빗나간 길을 밟으려고 하는 경우 가 있습니다. 이런 일에 비추어 우리는 오히려 미약하게 시작한 일이 나 중에 창대케 된다는 말씀을 깊이 유념해야 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자는 여호와시기 때문입니다.(잠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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