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의 꿈과 요셉의 등극 (창41:1)
본문
요셉의 감옥 생활은 만 이년이 지나도록 계속 되었습니다. 그 동안 요셉은 모두에 게 잊혀진 존재가 되었습니다. 요셉의 가장 큰 고통은 하나님으로 부터 잊혀진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이 시련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순종을 가지도록 연단 받았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자기의 택한 백성을 이루시려는 섭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그 일환으로 요셉은 애굽에 보내어졌으며 감옥 에서의 연단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이 일을 깨우치도록 하나님은 요셉에게 계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자기 집(아버 지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에 벌써 주어졌던 일입니다. 요셉은 꿈이라는 특 수한 계시의 전달방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자기 형제들과 부모들을 다스리는 자로 서게 될 것을 계시하셨습니다. 이제 이와 같 은 계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위한 섭리 때문에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그저 단순하게 요셉의 영화와 영광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세상 구원을 위하여 섭 리하신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비좁은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생성되기에는 적당하지 못했습니다. 가나안 땅의 적은 소출로는 그 백성의 생존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애굽의 풍부한 곡창으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끌어 들이시려고 섭리하셨습니다. 또 하나는 당시 세계문화의 중심지였던 애굽에서 장차 한 나라를 이루게 될 이스라엘이 국가 제도와 법도를 바로 세우도록 하기 위한 예비적 단계이기도 했습니다. 그 백성 이스라엘은 이 땅에서 한 국가로서 갖춰야 할 문화와 법도를 배워야 했던 것입니다. 이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섭리는 요셉에게서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일은 정해진 때가 있습니다. 비록 그 때가 지 체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결국은 오고 말 것입니다. 요셉의 석방에 전기가 될 일이 애굽의 왕 바로에게서 발생합니다. 바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한 꿈을 꾸 게 되었습니다. 바로는 거듭된 두 번의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神託)가 온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당시 고대세계에서는 꿈은 일종의 神의 계시로 여겨졌 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꿈을 명확하게 해석하는 술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당시의 술사들은 종교적으로 제사장의 역활과 궁중에서의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는 지혜자 로서의 역활을 하는 궁중의 귀족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해 볼 때 바로가 꾼 꿈의 내용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닌듯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굽의 많은 술사들이 해석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 습니다. 그것은 나중에 요셉이 꿈을 해석하므로 그 어려운(술사들도 해몽하지 못한) 꿈을 해석한 데 대하여 더 큰 찬사를 받게 하려는 뜻도 있었습니다. 바로가 꿈을 꾸고 해몽할 자가 없어 근심하고 있을 때에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고 요셉을 바로에게 추천하였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자기의 과거 감옥에 갇혔을 때에 일어났던 일을 바로에게 말하고 자기의 꿈을 해석했던 요셉을 바로에게 소개하였습니다.
만일 술 맡은 관원장이 처음부터 요셉을 석방시키는 일에 관심을 가졌더라면 요셉 은 아마도 석방되자 마자 뼈에 사무치게 그리던 "히브리 땅"으로 다시 돌아갔을 것 입니다. 그랬다면 요셉 자신이 훗날 고백했던 것처럼 그렇게 축복을 받지도 못했을 것이고 또 그 백성을 키우시려는 하나님의 뜻에도 순종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결 국 바로의 꿈을 해석하기 위하여 감옥에서 2년을 더 있다가 이제야 비로소 풀려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은 가장 적절한 시기였고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바로 앞에 선 요셉은 자기가 꿈을 해몽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제 바로의 꿈이 요셉에 의해서 해석되었습니다. 그것은 7년 풍년과 뒤따라 오는 7년 흉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애굽에 끌어 들이였습니다. 요셉은 바로에게 풍년이 드는 7년동안 곡식을 저장하였 다가 7년 기근에 대비할 것을 조언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관장할 사람을 둘 것 을 권고하였습니다. 그 때 바로는 누구보다도 요셉이 적임자임을 선언하였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이었고 명철하고 지혜있는 사람이었음을 바로는 알아봤던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일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있었습니다. 바로는 요셉을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등용하였습니다. 이 때가 역사적으로 보면 애굽의 힉소스 왕조 때 입니다. 힉소스 왕조는 본래 애 굽의 함 족속이 아니고 셈 족속이었습니다. 즉 애굽에 이주해온 셈 족속 가운데 애 굽의 왕이 일어났고 따라서 셈 족속인 요셉을 쉽게 등용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애굽에 셈 족속이 일어난 것은 참으로 특이한 일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특별하신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요셉의 가정을 받아들이기 쉽도록 같은 종족으로 왕을 세워두고 그 모든 섭리를 하나님께서 이루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이렇게 높은 자리에 오르지 아니하면 자기 백성을 쉽게 애굽으로 불러들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키우시기 위하여 섭리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구원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실려고 애굽으로 보 내셨습니다. 우리가 출생되는 것 자체가 은혜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우리의 구원을 이룰 수 없음을 알게 하실려고 애굽 사건을 이루셨습니다. 시편 105:16을 보면 "하나님께서 기근을 불띵 가나안 땅에 임하게 하여 야곱이 의 뢰하는 양식을 다 끊으셨다"고 말합니다. 야곱의 가정을 애굽에 끌어들이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그 땅에 기근을 내리셨습니다. 야곱이 식량이 있으면 어떻게 애굽에 가 려고 할 것입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의뢰하는 양식을 끊으셨습니다. 이러한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혜를 찬송하는 백성을 두시려고 작정 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으로 하여금 자기를 찬송케 하시려고 작정하셨 습니다. 즉 이스라엘이 모든 목표가 아니라 전 세계로 하여금 찬송하게 하실려고 목 표하셨습니다. 이제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집의 염려를 벗었습니다. 바로는 요셉에게 사브낫바네아란 이름을 주었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세상의 구원 자이며 생명의 보존자" 입니다. 요셉은 앞으로 애굽 뿐 아니라 아버지 가족들의 생 명도 보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는 요셉에게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 스낫을 아내로 주었습니다. 당시의 애굽의 제사장은 상당한 권력과 부를 누리고 있 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애굽에서도 '온'땅의 제사장은 가장 높은 지위에 속하는 귀족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요셉은 애굽에서 가장 존귀한 그룹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요셉에게 큰 영광이었고 명예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을 통해 서 하나님은 세상 구원을 위한 섭리를 진행 시키셨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집을 떠난지 13년동안 아버지 집을 잊어버리지 않고 사모했습니다. 이제 그러한 고통을 어느정도 참을 수 있게 되었음을 두 아들을 낳고 이름을 지은 사실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에브라임"의 뜻은 "창성함"이며, "므낫세"의 뜻은 "잊어버림" 입니다. 이렇게 이름 지은 것을 보면 요셉이 애굽에서 창성함으로, 아버 지 집에 돌아갈 수 없어 고통하던 일이 어느정도 위로를 받아 잊을 수 있게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여전히 이방의 나그네였습니다. 아버지 집을 사모하는 마음이 그에게 사무쳤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성도들이 나그네와 같은 인생 에서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는 일에 대한 예표를 볼 수도 있습니다. 요셉은 애굽에서의 풍년과 흉년을 통한 계시의 성취에 따라서 자기의 직무를 성실 하게 수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일에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애굽의 모든 백성과 치리자들은 요셉에게 완전히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애굽에 부르시기 위한 전초였습니다. 이 일은 결국에는 온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 만을 예배하는 백성을 만들어 내시기 위하여 세상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출생하는 일을 위하여 준비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큰일을 야곱 가정의 작은 일에서 부터 이루어 내셨습니다. 오늘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일들을 통해서 크고 놀라운 하나님 나라 의 일을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감사의 내용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애굽의 풍부한 곡창으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끌어 들이시려고 섭리하셨습니다. 또 하나는 당시 세계문화의 중심지였던 애굽에서 장차 한 나라를 이루게 될 이스라엘이 국가 제도와 법도를 바로 세우도록 하기 위한 예비적 단계이기도 했습니다. 그 백성 이스라엘은 이 땅에서 한 국가로서 갖춰야 할 문화와 법도를 배워야 했던 것입니다. 이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섭리는 요셉에게서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일은 정해진 때가 있습니다. 비록 그 때가 지 체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결국은 오고 말 것입니다. 요셉의 석방에 전기가 될 일이 애굽의 왕 바로에게서 발생합니다. 바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한 꿈을 꾸 게 되었습니다. 바로는 거듭된 두 번의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神託)가 온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당시 고대세계에서는 꿈은 일종의 神의 계시로 여겨졌 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꿈을 명확하게 해석하는 술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당시의 술사들은 종교적으로 제사장의 역활과 궁중에서의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는 지혜자 로서의 역활을 하는 궁중의 귀족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해 볼 때 바로가 꾼 꿈의 내용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닌듯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굽의 많은 술사들이 해석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 습니다. 그것은 나중에 요셉이 꿈을 해석하므로 그 어려운(술사들도 해몽하지 못한) 꿈을 해석한 데 대하여 더 큰 찬사를 받게 하려는 뜻도 있었습니다. 바로가 꿈을 꾸고 해몽할 자가 없어 근심하고 있을 때에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고 요셉을 바로에게 추천하였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자기의 과거 감옥에 갇혔을 때에 일어났던 일을 바로에게 말하고 자기의 꿈을 해석했던 요셉을 바로에게 소개하였습니다.
만일 술 맡은 관원장이 처음부터 요셉을 석방시키는 일에 관심을 가졌더라면 요셉 은 아마도 석방되자 마자 뼈에 사무치게 그리던 "히브리 땅"으로 다시 돌아갔을 것 입니다. 그랬다면 요셉 자신이 훗날 고백했던 것처럼 그렇게 축복을 받지도 못했을 것이고 또 그 백성을 키우시려는 하나님의 뜻에도 순종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결 국 바로의 꿈을 해석하기 위하여 감옥에서 2년을 더 있다가 이제야 비로소 풀려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은 가장 적절한 시기였고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바로 앞에 선 요셉은 자기가 꿈을 해몽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제 바로의 꿈이 요셉에 의해서 해석되었습니다. 그것은 7년 풍년과 뒤따라 오는 7년 흉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애굽에 끌어 들이였습니다. 요셉은 바로에게 풍년이 드는 7년동안 곡식을 저장하였 다가 7년 기근에 대비할 것을 조언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관장할 사람을 둘 것 을 권고하였습니다. 그 때 바로는 누구보다도 요셉이 적임자임을 선언하였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이었고 명철하고 지혜있는 사람이었음을 바로는 알아봤던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일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있었습니다. 바로는 요셉을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등용하였습니다. 이 때가 역사적으로 보면 애굽의 힉소스 왕조 때 입니다. 힉소스 왕조는 본래 애 굽의 함 족속이 아니고 셈 족속이었습니다. 즉 애굽에 이주해온 셈 족속 가운데 애 굽의 왕이 일어났고 따라서 셈 족속인 요셉을 쉽게 등용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애굽에 셈 족속이 일어난 것은 참으로 특이한 일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특별하신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요셉의 가정을 받아들이기 쉽도록 같은 종족으로 왕을 세워두고 그 모든 섭리를 하나님께서 이루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이렇게 높은 자리에 오르지 아니하면 자기 백성을 쉽게 애굽으로 불러들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키우시기 위하여 섭리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구원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실려고 애굽으로 보 내셨습니다. 우리가 출생되는 것 자체가 은혜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우리의 구원을 이룰 수 없음을 알게 하실려고 애굽 사건을 이루셨습니다. 시편 105:16을 보면 "하나님께서 기근을 불띵 가나안 땅에 임하게 하여 야곱이 의 뢰하는 양식을 다 끊으셨다"고 말합니다. 야곱의 가정을 애굽에 끌어들이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그 땅에 기근을 내리셨습니다. 야곱이 식량이 있으면 어떻게 애굽에 가 려고 할 것입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의뢰하는 양식을 끊으셨습니다. 이러한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혜를 찬송하는 백성을 두시려고 작정 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으로 하여금 자기를 찬송케 하시려고 작정하셨 습니다. 즉 이스라엘이 모든 목표가 아니라 전 세계로 하여금 찬송하게 하실려고 목 표하셨습니다. 이제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집의 염려를 벗었습니다. 바로는 요셉에게 사브낫바네아란 이름을 주었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세상의 구원 자이며 생명의 보존자" 입니다. 요셉은 앞으로 애굽 뿐 아니라 아버지 가족들의 생 명도 보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는 요셉에게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 스낫을 아내로 주었습니다. 당시의 애굽의 제사장은 상당한 권력과 부를 누리고 있 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애굽에서도 '온'땅의 제사장은 가장 높은 지위에 속하는 귀족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요셉은 애굽에서 가장 존귀한 그룹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요셉에게 큰 영광이었고 명예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을 통해 서 하나님은 세상 구원을 위한 섭리를 진행 시키셨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집을 떠난지 13년동안 아버지 집을 잊어버리지 않고 사모했습니다. 이제 그러한 고통을 어느정도 참을 수 있게 되었음을 두 아들을 낳고 이름을 지은 사실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에브라임"의 뜻은 "창성함"이며, "므낫세"의 뜻은 "잊어버림" 입니다. 이렇게 이름 지은 것을 보면 요셉이 애굽에서 창성함으로, 아버 지 집에 돌아갈 수 없어 고통하던 일이 어느정도 위로를 받아 잊을 수 있게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여전히 이방의 나그네였습니다. 아버지 집을 사모하는 마음이 그에게 사무쳤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성도들이 나그네와 같은 인생 에서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는 일에 대한 예표를 볼 수도 있습니다. 요셉은 애굽에서의 풍년과 흉년을 통한 계시의 성취에 따라서 자기의 직무를 성실 하게 수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일에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애굽의 모든 백성과 치리자들은 요셉에게 완전히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애굽에 부르시기 위한 전초였습니다. 이 일은 결국에는 온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 만을 예배하는 백성을 만들어 내시기 위하여 세상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출생하는 일을 위하여 준비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큰일을 야곱 가정의 작은 일에서 부터 이루어 내셨습니다. 오늘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일들을 통해서 크고 놀라운 하나님 나라 의 일을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감사의 내용이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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