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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롬4:1-25)

본문

오늘 본문의 말씀은 믿음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일러주시는 말씀이다. 그 아브라함은 육신으로 히브리 민족의 조상이다(본문1절). 그뿐만 아니라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본문11절) 곧 믿음의 조상이기도 하다. 본문 3절/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이 말씀은 창15:6절의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시는 말씀을 가리킨다. 성경에서 “믿는다”는 단어가 여기에서 처음 사용되어진다. 물론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선진(先進)들 곧 아벨, 에녹, 노아, 등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다. 그러나, 아브라함 이전의 사람들은 택한 백성 이스라엘과 이방인으로 나누어지지 않은 시대의 사람들이다.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이루어진다. 이 선민 이스라엘은 이방인과는 달리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리며 살게 된다. 택한 백성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의 확실한 “차별화”를 보여 주어서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의 대열에 서기를 원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기를 원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여기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은 것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것이다(창15:5). 이때 당시의 아브라함은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고, 네 이름을 창대케 하고, 너를 복의 근원으로 삼겠다(창12:2)”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 가나안에 거하다가 흉년으로 애굽에 내려갔다가 아내를 잃을 뻔한 어려움을 겪고 다시 올라와 헤브론에 거하는 상태이다(창13:18).
창세기 13:16-17절/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하나님의 약속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라, 너로 큰 민족을 이루리라,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고 하시나 현실은 아들 하나 주시지 않은 상태이다. 창세기 16:16절/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 륙세이었더라/ “이스마엘을 낳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 륙세이었더라” 이 말씀을 근거로 역산(逆算)을 하면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창15:3절)”고 무자함을 호소하던 때가 85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갈대아 우르를 떠난 후 10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10년 세월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약속의 말씀을 믿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지 10년이란 세월이 흘러갔어도 그 약속의 말씀대로 큰 민족을 이루기는 커녕 자식 하나 없는 아브라함이다. 창세기 15:2절/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당신께서 약속하신 후 10년이 흘렀건만 내게 주신 게 무엇입니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하고 아브라함은 자신의 종인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자신의 상속자로 하나님께 고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때의 아브라함은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지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타향살이 10년에 자식 하나 얻지 못한 아브라함 “내게 무엇을 주시려나이까” 반문하며 허탈해 하는 아브라함 다메섹 엘리에셀이 내 상속자라고 자식은 이제 바라지도 않는다고 하는 아브라함이다.
창세기 15:4-5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 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지만 자식 하나 주시지 않아 엘리에셀을 자신의 상속자로 고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그가 상속자가 아니라고 하신다.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다. 10년 전과 같이 하늘의 뭇별을 셀 수 있나 보아라 그 별처럼 네 자손이 셀 수 없이 많으리라고 하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아브라함의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은 믿음입니다.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 이름을 창대케 하고, 너로 복의 근원이 되게 하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지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타향살이 10년 세월에 자식 하나 얻지 못한 아브라함입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타향살이 10년에 자식 하나 얻지 못하여 또 무엇을 주시려나이까 엘리에셀이 내 상속자라고 푸념하는 아브라함에게 “네 몸에서 난 자가 네 후손이다. 네 자손이 하늘의 뭇별처럼 많으리라”는 약 속의 말씀을 다시 들려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아브라함은 참으로 하늘의 뭇별은 고사하고 자식 하나도 바랄 수 없는 상태에서 그래도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기에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하여 살펴 보고져 합니다. 무엇보다도 아브라함의 상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 자신이 현재 처해 있는 상태를 아브라함과 비교하며 나의 믿음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나의 믿음이 아브라함처럼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고 믿는 믿음인지, 바랄 수 있을 때에 믿는 믿음인지 이 시간 한 번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1.아브라함의 믿음의 대상-(어떤 하나님)-본문 17절/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은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이시다. 타향살이 10년에 자식 하나 주시지 않으셨던 하나님이시지만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그런 푸념을 잠재울 수 있는 하나님이시다.
1.아브라함을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우신 하나님.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그로 큰 민족을 이루고,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우고, 그의 이름을 창대케 하고, 그로 복의 근원을 삼아 주신다는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시다. 민족을 이루고, 이름을 창대케 하고, 더욱이 복의 근원을 삼을 수 있는 그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무 신이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역사를 주관하시고, 참된 복을 주관하시는 분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2.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 “죽은 자를 살리시며”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전능의 하나님이시다. 아브라함이 구십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나타나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하셨다(창17:1). 아브라함을 열국의 아비로, 사라를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기 위하여 아들을 낳게 하리니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고 명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사라가 듣고서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하고 속으로 웃을 때 “사라가 왜 웃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고 하시던 전능의 하나님이시다(창18:12-14). 히브리 11:12절/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믿음의 사람들을 일러주시는 히브리 11장에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가리켜 “죽은 자와 방불하다”고 했다.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던(창17:17)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레와 같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주신 것은 죽은 자를 살리시어 자식을 주셨다는 것이다.
3.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다고 했다(사40:26).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언약을 세우리라” 하신다(창17:21).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하신다(창18:14).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내가 내 언약을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이삭과 세우리라고 하신다(창17:21). 명년(明年) 곧 내년(來年)에 사라가 네게 낳아 줄 네 아들 이삭과 내 언약을 세우리라고 하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아브라함이 믿은바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시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고 믿었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내가 믿는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2.아브라함의 믿음의 내용-(무엇을 믿었나)-본문 18절/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고 무엇을 믿었는가 아브라함의 믿음의 내용을 살펴 보며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아야 하겠다.
1.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믿음이다.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운다고 하셨다. 그 언약의 내용이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는 것이다(창17:4). 타향살이 10년 아니 이 시점은 그의 나이 75세에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99세가 된 타향살이 24년이 된다(창17:1). 그 타향살이 24년에 열국의 아비는 고사하고 아직도 후사로 세울 약속의 아들 하나 얻지 못한 상태이다. 이스마엘이라는 서자를 하나 얻었을 뿐이다. 돌아보니 약속의 말씀을 믿고 고향인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도 어언 24년이다.
그런데, 또다시 “열국의 아비가 되리라”는 하나님의 언약이라니 창세기 17:18절/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지금 아브라함의 심경은 하나님! 열국의 아비도 좋지만 그보다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하는 것이다. 창세기 17:19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신다. 네 아내 사라가 정녕 아들을 낳으리라고 하신다. 뿐만 아니라 “이삭”이라는 이름도 주신다. 그 이삭과 내가 언약을 세우리라고 하신다.
2.확신하는 믿음이다. 본문 21절/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비록 타향살이 24년에 아직도 열국의 아비가 되리라는 말씀이지만 아브라함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확신에 넘쳤다(본문19절). 약속의 말씀을 믿고 본향을 떠나 타향살이 24년 생각하면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고 원망과 불평을 할만도 한데 오히려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했다(본문20절).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시리라는 확신을 고백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을 끝까지 굳게 붙잡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무엇을 생각하게 되는지 자신을 한 번 돌아봅시다. 24년 타향살이에 얻어진 것이라고는 서자 이스마엘 하나 뿐 결국 아무 것도 없는데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는 말씀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아브라함을 바라보며 확신에 넘쳐 있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무엇을 생각하게 되는지 자신을 한 번 돌아봅시다.
3.아브라함의 믿음의 결과-(믿음으로 얻은 것)-본문 22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고 믿은 결과 그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서 그 믿음의 결과는 무엇일까 이 부분은 우리 성도들 모두가 잘 아는 바이다. 그래서, 간단히 살펴 보고져 한다.
1.의롭다 하심을 받음(본문3절)
2.약속의 자녀 이삭을 얻음(창211-3; 갈4:23)
3.선민 이스라엘의 조상이요, 믿음의 조상이 됨(본문11, 12절)
4.복의 근원이 됨(갈3:16; 창22:17-18; 롬9:7)-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오늘 우리는 아브라함의 그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은 믿음을 살펴 보았습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고 믿었기에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기에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게 아닙니다(창26:5).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고 믿었기에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입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여기서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 자신은 정말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고 믿는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약속의 말씀을 믿고 본향을 떠난지 24년 약속하신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주어지지 않고, 더욱이 열국의 아비는 커녕 약속의 자녀 하나 주시지 않은 타향살이 24년 응답은 주셨으나 그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는 24년이란 세월입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본향을 떠나 타향살이 24년 지치고 쓰러져 포기할 수도 있는 아브라함입니다. 아니 우리 같았으면 벌-써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그 믿음이 연약하여지지 아니하고 오히려 확신에 차고 넘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곧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고 믿은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믿음 갖게 하소서” 우리의 기도 제목이요, 믿음 생활의 목표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믿음 가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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