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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앞에 선 인생길 (마14:22-33)

본문

세례요한이 순교한 이후에 예수니의 복음사역은 본격화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게서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가지시고 오천명의 남 자를 먹이고도 열두광주리를 남긴 사건 이후의 내요입니다. 오처녕의 많은 무리를 먹이신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제자들에게 먼저 바다를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다를 건너가던 그들이 한밤중에 큰 시련의 풍랑을 만나게 되고, 찾아오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본 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두가지 삶의 요소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첫째는 예수믿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 문 22절에 보면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여 예수께서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녀편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제자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남보다 앞서 건너가야 할 사명이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 세상에 편안한 삶의 만족에 안주하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들과는 달라야 합니다. 먼저 신앙에 앞서 갈 뿐 아니라 생활의 모든 면에서도 앞장서가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역경도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24절에 보 면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몹시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 하여 고난을당하더라"고 했습니다.오늘날 이 시대 속에서 예수 믿고, 복음 안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은 이미 바람 앞에 선 인생입니다. 다시 말해 이 시대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 자체가 이 시대적인 유혹과 바람에 역행하는 것 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25절에 보면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 니"고 했습니다. 시련을 만난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아주적절한 시간에 적 절한 방법으로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가장 어두운 암흑의 시기에, 가장 바람에 시달리는 고통 속에 있을 때에, 바다를 걸어서 이적의 방법으로 찾아오신 예수님을 유령으로 생각했습니다. 거기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확실치 않은 믿음으로 검푸른 바다에 뛰어 들어 예수님께로 가다가 바다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바다에 빠져 절망 하는 베드로의 모습을 통해 오늘 말씀의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1. 만용은 실패를 가져온다. 본문 28-30절을 보면 예수께서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유령이라 고 생각한 베드로가 믿음과 확신이 없이 "주여 만일 주시오던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며 바다 위로 뛰어 들었습니다. 이는 확실치 않은 신앙으로 검푸른 바다에 뛰어들었던 베드로의 만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만용은 숙고함이 없는 충동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오늘날 현실의 바다에도 확실한 신앙이 없이 베드로와 같이 뛰어드는 사람 들이 있습니다. 확실한 신앙아과 확실한 신뢰와 믿음이 업이 그저 성급한 마음으로 , 남보다 앞서가려는 생각만으로 현실의 바다에 뛰어 듭니다. 그러나 물에 빠진 베드로를 보십시오. 결국 확신없는 만용의 신앙은 실패를 가져옵니다. 이와 같은 비유로 만용을 피운 개구리의 최후를 풍자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욕심많은 개구리가 하루는 하늘을 쳐다보다가 자기도 저 기러기처럼 하 늘을 높이 날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는 기러기에게 어떻게 하면 공중을 날아 볼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그러나 기러기는 긴막대기 하나를 부리에다 물고 그 끝을 개구리에게 물렸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 습니다. 하늘을 나르자 개구리는 너무나 좋았고 그 모습을 본 다른 개구리 들은 부러워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만용에 찬 개구리는 "내가 생각했지"라고 말하다 그만 떨어져 죽었습니다. 개구리의 만용은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이와 같이 만용은 실패를 가져옵니다. 또한 만용적 신앙은 진정한 신앙이 아닙니다.용기도 좋지만 그 용기가 진정한 신앙에 바탕을 둔 용기가 아닐 때 결국은 불행과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의 베드로도 분명 뜨거운 열망은 마음 속에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20 장에 보면, 베드로는 '주님' 이라는 말씀을 듣고서 예수님을 향해서 겉옷을 두르고 그 어느 제자들보다 먼저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그의 이러한 행동 은 신앙의 뜨거운 열정을 보여주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열정은 확 실한 신앙이 없는 만용의 행동이었습니다. 확신한 신앙이 없는 만용의 사람은 시각이 항상 옳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 30절에 보면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가는지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것이 신앙인데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다 가, 바람을 보다가 했던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 주님을 보다가 현실을 보다 가 하는 이중적인 시각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오직 예수, 오직 신앙, 오직 주만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2. 주님은 시련 중에 함께 하신다. 본문에서 중요한 사실은 만용을 부리며 사는 우리들이지만 실패와 시련에 빠질 때에 주님은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30,31절에 보면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말씀하 십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바로 옆에 계셨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확실 치 않은신앙으로 물에 뛰어들고, 물 속에 빠져 허덕이는 절박한 시련 가운 데서도 베드로 가까이에서 그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건져주셨 습니다. 20세기 기독교 철학자 프란시스 쉐퍼는 성경말씀의 가장 핵심 메시지를 그 어떤 말씀보다 "하나님이 계시다"는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어린 아이가 9개월을 다 채우지 못하고 7개월, 8개월 만에 태어날 때는 인 큐베이터라는 유리관 안에 넣고, 세균에 감염되지 않게 알맞은 온도와 공 기, 습도를 맞추어 영양분을 공급하며, 아기를 양육하게 됩니다. 이와같이 불완전한 우리들을 우리들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이라는 인큐 베이터 안에서 우리를 보호하고, 시련에 빠질 때 즉각 건져주시고, 우리가 넘어질 때 일으켜주십니다. 시련 앞에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고 항상 우리 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일본 책 중에 '침묵'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침묵'은 일본에 복음전파 될 때 있었던 역사적 비극을 소개한 것입니다.일본 사람들이 처음에 예수믿 을 때 일본정부에 의해 예수믿으면 죽음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정부에서 예수믿는 사람들을 어떻게 죽였는가 하면 바다에 썰 물이 빠져 나가고 나면 그 해변가에 십자가를 세워놓고 거기다가 사람들을 묶어놓았습니다. 다음날 밀물이 밀려들어올때 물이 가슴에 오고, 목 위에 오고, 숨을 못쉬게 하여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때 예수 안 믿겠다고 하면 풀어줘도 예수 믿겠다고 하면 점점 물에 빠져 죽게하는 십자가의 형틀이었 습니다. 그때 죽어가는 그리스도인들을 보면서 폴튜캅 신부가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살려주십시오. 저 그리스도인들을 살려주십시 오. 왜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십니까"라고 소리지를 때 하나님께서 "폴튜캅 신부야 나는 침묵하고 있는 것이 아니란다. 나는 저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 고 있단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속상하고, 답답하고, 문제가 복잡하고 어려움에 직면할 때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신 것이아니라 우리가 맛보는 그 고통에 함께 참여 하시며, 그 고통을 함께 나누며, 그 고통을 함께 이겨가고 계십니다.
3.시련은 신앙의 성장을 가져온다. 여기서 중요산 사실은 이렇게 맛본 시련은 우리의 신앙성장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본문 33절에 보면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고 말씀합니다. 요한 칼빈은 말하기를 고통이 없이 형통하기만 하고, 근심과 걱정거리가 없으면 믿음은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믿음은 어려운 시련 속에서 더 견고해 지는 것입니다. 시련을 통해 제자들은 신앙의모습이 변했습니다. 먼저 제자들은 예수님께 절하는 신앙이 되었습니다. 절한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경배하는 신앙 의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은 시련을 통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경배의 신앙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도 편안한 사람들은 교회에 잘 안나옵니다. 신앙생활을 게을리 합니다. 그러나 시련을 통하여, 역경을 통하여 믿음이 성장한 사람은 경베하는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주일이면 빠지지 않고 예배에 참석합니다. 또한 말씀을 사모합니다. 경배하는 신앙, 예배하는신앙, 성경중심의 신앙,이것은 바로 시련이 가져다주는 선물인 것입니다. 또한 시련을 통해 제자들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는 고백의 신앙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의 아 들이라는 신앙의 신성적 고백이 바로 시련을 통해 생긴 것입니다. 이와같이 시련은 우리에게 있어서 금같은 믿음을 주는 축복입니다. 만용은 시련을 가져오지만 시련 중에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그리고 그 시련을 통해 우리의 신앙은 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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