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좇는 사람들 (호11:12-12:6)
본문
호세아서를 살피면서 쓸데없는 생각을 하나 해보았습니다. 그것은 남편과 아내가 해어졌다면 남편이 아내를 버린 것인가 아니면 아내가 남편을 버린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느 쪽이라 생각하십니까 아마 정황에 따 라 그 답이 다르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어느 쪽이 떠나갔느냐에 따라서 한 쪽은 버린 쪽이 되고 한 쪽은 버림을 당한 쪽이 되지 않을까 생각되어 집니다. 만약 남편이 떠나갔다면 아내가 버림을 받은 것이며, 아내가 떠나갔다면 남 편이 버림을 당한 것이겠지요 대게 버림을 당한 사람은 버린 사람보다 더 처량하기 마련입니다. 가엽고 측은합니다. 그래서 동정이 더 가고 불쌍하게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가 지금 살펴보고 있는 호세아서 에서는 하나님을 남편으로 이스라엘 백성 들을 아내로 묘사를 하고 있는데 이 관계를 조금 전에 말씀을 드린 것에 대입해 본다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이 이 스라엘을 버린 것이 되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린 것이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린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고 떠나가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 이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간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호세아서는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하나님 의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이 말은 얼토당토 않는 말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버림을 당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버림받았다는 말을 하나님께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우주를 주관 하시고 운행하시는 그 하나님, 만군의 왕이시며 만왕의 왕이신 그 하나님에게 버림을 당했다는 말이 어울릴 수 있겠 습니까 오히려 이런 하나님께서 버리셨다면 이해가 될 법한 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바로 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 바로 그분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버림을 받을 만한 분이십니까 아닙니다. 그분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보 나, 그분의 지위를 보나, 그분의 사랑을 보나, 그분은 버림을 받기에 합당한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호세아서 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사랑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곳곳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헌신 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셨고 저들을 아끼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헌신짝 버리듯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 엄청난 일을, 이 불가능한 일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행하고 만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하나님이라면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의 얼굴에 침을 뱉고 떠나 버린 이들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단숨에 없애 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 지 않으셨습니다. 그래도 저들을 사랑하시겠다 말씀하십니다. 호세아서는 바로 이러한 일에 대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반응하시는가 하는 이야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그래도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품겠다는 것이죠 사랑의 책 호세아
그런데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살펴 온 호세아서는 보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습니까 심 판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습니까 그렇습니다. 심판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습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호세아서는 축복 과 징계의 비율이 10분의 1 밖에 안된다고 말합니다. 심판이 10이면 축복이 1입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생깁니다. 무 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호세아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씀을 드린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죠 어 떻게 심판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은데 호세아서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죠. 어떻 게 심판하겠다. 보응하겠다. 하는 이야기들을 놓고 사랑의 책이라 말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는 여 기 심판하겠다 보응하겠다 하는 이 말씀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면 아 그래 호세아서는 하나님의 사랑 을 이야기하는 책이야 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게 뭐죠 그렇습니다. 심판하겠다. 보응하겠다는 말은 사 실 돌아 오라. 사랑한다. 너는 나의 전부야 하는 이야기죠. 그래서 호세아서는 돌아오라는 말과 보응하겠다는 말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호세아서를 읽을 때는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심판과 보응, 이런 말들을 읽을 때도 그 속 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읽어 내야 합니다. 이렇게 읽다 보면 호세아서만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강하 게 이야기하는 책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치 구약의 복음서와도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 던 그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이 호세아서에 발견이 됩니다. 바로 그 사랑에 대해서 지난 시간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었죠 그렇습니다. 긍 휼이 불붙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불타는 사랑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자신을 버리고 떠나 버린 이스라 엘 백성들에 대한 사랑 그것이 바로 이 불타는 사랑이었습니다. 이 불타는 사랑이 바로 저와 여러분 앞에도 있습니다. 이 사랑이 불타 올라서 여러분의 가슴을 녹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을 따뜻하게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하나님의 사랑 불로 나오십시오. 좀 더 가까이 나오십시오. 그렇게 멀찌감치 있지 마시고 가까이 나오셔서 그 사랑의 온기를 느껴 보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도 바로 이런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심판이라는 주제와 사랑이라는 주제가 서로 섞여 있습니다. 12:2절을 보십시오. 예, 거기 벌주고 보응하는 이야기가 있 죠 그러나 6절을 보십시오. 예, 거기에는 돌아오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제 이렇게 섞 여 있는 이 두 주제를 함께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함께 느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혹 여러분들 가운데는 왜 12:1절부터 말씀을 살피지 않고 11:12절 부터 말씀을 살피는 가고 의아해 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언젠가 말씀을 드렸죠. 성경을 살필 때는 장절을 무시하고 살펴야 한다고요.
왜냐하면 성경이 처음 기록될 때는 장절 구분이 없었다고요. 바로 이 본문이 여기에 대한 대표적인 예입니다. 성경은 원 저자가 기록한 원본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원본은 이 지구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현존하는 원어 성경은 다 이 원본은 베껴 쓴 것인데 이 사본은 조금씩 차이가 납니다. 바로 여기 이 부분, 우리 성경 11:12절을 어떤 성경은 11장 12절에 포함 시키기도 하고 어떤 성경은 12:1절에 포함시키기도 합니다. 어느 것이 맞느냐 말할 수는 없지만 제가 보기에는 12:1 절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전체적인 문맥을 볼 때 11:11절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끝이 나고 다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장절을 의식하지 말고 본문을 살피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이죠. 거짓과 궤휼로 아무튼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죠. 11:12절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무엇으 로 에워쌌다고 말하죠 그렇습니다. 거짓과 궤휼로 에워쌌다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께 나가면서 수많은 거짓으로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나아갈 때 신령과 진정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정직함으로 나아 가야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사였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저들은 오 히려 거짓으로 나아갔습니다. 저들이 하나님께 드린 제물은 거짓을 행함으로 얻은 것으로 준비된 것이었습니다. 악을 행함으로 얻은 것들이었습니다. 저들이 드린 제물들을 보십시다. 송아지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린양도 있었을 것입니다. 비둘기도 있었을 것이며, 곡식 가루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제단에 수북히 쌓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거짓과 괘휼을 행한 결과로 얻어진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거짓으로 에워쌌던 것입니다. 그래서 온통 거짓 것들이 난무합니다. 어느 것을 들고 정밀 조사를 해 보아도 다 거짓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맙니다. 바로 이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지적을 하시는 것입니다. 온통 거짓으로 에워싼 이 현실을 바라보시며 하나님께서는 탄식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의 문제를 생각해 보십시다. 오늘 여러분들은 무엇으로 하나님께 나아 오셨습니까 아마 여러분들도 이 시간 하나님께 많은 것들을 드릴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시간을 어떤 사람은 헌물을 어떤 사람은 자신의 몸을 이 모양 저 모양의 것들을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드릴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거기에는 무엇이라 쓰여 있습 니까 여러분들이 드린 여러분들의 시간에는 무엇이라 쓰여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드린 여러분 자신에는 무엇이라 쓰 여 있습니까 오늘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드린 것들을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면서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탄식했 던 것처럼 그런 탄식을 하시지 않으실 까요 바람을 먹는 이스라엘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 말씀 을 통해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으로 배를 채웠으며 무엇을 쫓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자 보십시오. 무엇 을 먹었다고요 그렇습니다. 바람을 먹었습니다. 또, 무엇을 쫓습니까 그렇습니다. 동풍을 쫓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바람을 먹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여러분 바람을 한 번 먹어 보십시오. 어떤 현상 이 일어납니까 예, 쉽게 배를 채울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여러분들에 어떤 영양분을 공급해 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이 이야기입니다. 쉽게 배부른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것이 무슨 영향을 공급하지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런 저들을 향해서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사 55:1-
2'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 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 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 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왜 이런 말씀을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에 속아서 이것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먹으면 잠시는 배가 부른 것처럼 느껴집니다. 든든 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을 참 만족하게 하지 못합니다. 얼마 못 가서 아하 이것이 아니구나 하고 깨닫 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이 여러분들의 인생을 든든하게 만들던가요 물질입니까 권력입니까 명예입니까 이 중 한 가지라도 그렇다고 생각되시는 분은 실은 속고 계시는 것입니다. 마치 바람을 먹고는 아 배부르다고 말하는 것과 같 은 것입니다. 얼마 못 가서 이것이 여러분들의 인생을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사랑 하는 여러분 여기에 속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은 잠시 배부르게 하는 것들에 속지 마십시오. 혹 지금 여러분들을 배부 르게 하는 것이 있다면 한 번 따져 보십시오. 이것은 나를 잠시 배부르게 하는 것인가 아니면 영원히 배부르게 하는 것인가 광풍을 쫓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잠시 배부르게 하는 것에 속아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또 무엇이라고요 그렇습니다. 광풍을 쫓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광풍을 쫓았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정함이 없는 것을 쫓는 다는 것입니다. 바람은 어디서부터 와 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정함이 없다는 것이지요. 이런 것은 쫓음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좇는 다면 우왕좌왕하다가 끝나 버릴 것입니다. 열심히 쫓기는 좇았는데 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허비해 버린 채 끝나 버릴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오늘 본문은 이 바람을 어떤 바람이라 소개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동풍으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여기서 소개되고 있는 이 동풍은 팔레스틴 지방에 부는 특별한 바람의 이름으로 이 것은 종종 여행자들에 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이 바람이 공포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바람이 세기도 세지만 이 바람과 함께 동 반된 뜨거운 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행자들은 이 바람이 불기 시작을 하면 지형 지물을 이용해서 움푹 패인 곳에 엎드려 이 바람이 다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만큼 이 바람의 위력은 파괴적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런 바람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쫓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이 바람으로 인해 오히려 어려움과 곤경에 처할 것이라는 것이죠. 앗수르와 애굽
그렇다면 이들이 좇았던 바람은 어떤 것일까요 1절은 그것에 대해서 앗수르와 애굽이라고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정황을 좀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강대국 틈에 끼여 있었습니다. 남으로는 애굽 북으로는 앗수르라고 하는 거대한 나라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이런 강대국 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처세술입니다. 애굽과 앗수르 사이에서 상황을 잘 판단해서 자 신들의 입장을 정리하지 아니하면 곤경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강대국들의 눈치를 잘 살피는 것이 필요 했습니다. 서로에게 섭섭하지 않도록 잘하는 것이 필요했죠. 바로 이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애굽으로 기름을 보내고 양다리를 걸치는 것이죠. 그래서 여차 하면 이쪽에 붙었다가 여차하면 저쪽에 붙는 것입니다. 바로 이 사실에 대해서 동풍을 쫓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동풍을 쫓는다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말씀 을 드렸죠 그렇습니다. 정함이 없는 것이라 말씀을 드렸죠.
그렇다면 무엇을 쫓아야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 을 좇아야 했습니다. 아무리 주변에 강대국들이 버티고 있어도 저들을 쫓으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고 살아간다면 이들은 그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승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 하나님을 바라보 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양다리 걸치기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디로 포로로 잡혀 가죠 그렇습니다. 더러는 애굽으로 더러는 앗수르고 잡혀가고 맙니다. 정함이 없는 것을 쫓다가 결국 그것에 망해 버리고 말지 않습니까 동풍을 쫓는 다는 것은 바로 이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정함이 없는 것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들을 어렵게 하고 곤경에 빠뜨립니다. 정함이 없는 것을 쫓다가 그것이 잘 못된 것인 줄 알고 돌아서려 할 때 그것으로 끝나 버리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치 동풍과 같이 그것이 우리들을 곤경에 밀어 넣기도 하고 어려움을 주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삼손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의 인생이 왜 곤경에 빠졌습니까 그렇습니다. 정함이 없는 동풍을 쫓았 기 때문입니다. 그는 드릴라라고 하는 동풍을 쫓다가 신세를 망친 사람입니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데마에 대해서도 잘 아실 것입니다. 이 사람은 어떤 동풍을 쫓았습니까 딤후 4:10을 보면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세상이라는 동풍을 쫓았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데마는 데살로니가로 돌아가서 어떤 절의 중이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세상을 사랑하다가 자신의 영혼 마져도 망쳐 버린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동풍의 위력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 도 혹 이런 동풍을 쫓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동풍을 쫓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절에 어떻게 하시겠다고요 예, 쟁변하시고 소행대로 갑아 주시겠다 말씀하십니다. 자
그렇다면 여기 보응하시겠다는 이 말에서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속 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어떤 말씀이라고 요 그렇습니다. 돌아오라는 말씀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뒤꿈치를 잡은 야곱 이것은 3절 이하에 있는 말씀에서 분명해 집니다. 자 이제 3절을 살펴 보도록 하죠. 자 누가 소개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야곱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야곱은 현대인의 모델이라고요 혹 기억이 나십니까 자 어떤 면에 있어서 현대임의 모델이라고 말씀을 드렸죠 그렇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바로 이 야곱이죠.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도 이렇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형도 배반하고 아버지도 속일 수 있는 사람이 야곱이었습니다. 삼촌도 속이고 하나님과도 씨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야곱이었습니다. 자 이 야곱이 갑자기 소개되고 있습니다. 무슨 연유에서일까요 말씀을 살피면서 그 이유를 생각해 보죠. 먼저 야곱의 인생에 대해서 단적으로 말해 주는 이야기가 먼저 소개되고 있죠 무엇이라고요 그렇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형의 발 뒤꿈치를 잡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대단한 욕심입니다. 여기 발 뒤꿈치를 잡았다는 말은 속이다 등 뒤에서 공격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속이는 일에 능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이름에서도 이 의미는 살아 있습니다. 여러분 왜 야곱의 이름을 야곱이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예, 발 뒤꿈치를 잡았다고 해서 야곱이라 붙였습니다. 그러니 이름부터 가 속이는 자였습니다. 이런 야곱이 무엇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예, 장년에 하나님과 힘을 겨루었다고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 장년에라는 말은 인간적인 힘으로 라는 뜻을 가지는 말이에요.
그렇다면 보십시다. 인간적인 힘으로 하나님과 힘 겨루기를 했다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는 얍복강의 사건을 잘못 알고있어요. 우리는 얍복강의 사건이 야곱이 회계를 하고 돌아선 것이라 생각을 하고는 우리들도 얍봅강에서 처럼 하나님과 씨름을 해야 한다고 생각 을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말씀을 잘 살펴보면 얍복강의 사건은 야곱의 자아와 하나님께서 힘 겨루기를 해서 야곱이 이겼다는 이야기이거든요.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그만큼 야곱의 자아가 강했다는 것이에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하나님과 힘 겨루기를 하지 마세요. 야곱이 얍복강의 사건이 있고난 후 변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자 신의 계획대로 자신의 일을 진행시키지요. 형 에서를 만나서 먼저 가면 자신이 뒤따라가겠노라고 해 놓고 자신은 형 을 따라가지 않아요.
왜냐하면 아직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 자신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요.
그런데 이런 야곱이 언제 회계를 하는고 하면 야곱의 딸인 디나가 욕을 가나안의 원주민들에게 욕을 보이고 이로 인 해서 야곱의 아들들과 가나안 족속들과 전쟁이 일어나는 위기 상황으로 치닫죠. 이런 일련의 일들을 보면서 자신의 얼마나 약하고 초라한 존재인가를 깨닫고는 벧엘로 돌아가죠. 거기서 회계를 하고 눈물을 흘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오늘 본문을 보면 아마 그런 것 같아요.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그렇습니다. 다시 만나 주신 것이죠. 다시 야곱을 복주신 것이에요.
그렇다면 이런 야곱의 이야기가 갑자기 왜 등장을 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죠 욀까요 자 이를 위해서 4절을 좀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여기 한 가지 이상한 것이 있죠 무엇인고 하면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이 우리들에게 한 말이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렇게 말씀하시는 의도가 무엇일까요
그렇다면 여기서 잠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셨던 말씀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죠 창 35:9-15절입니다.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고쳐 주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 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라 말씀하시죠. 자
그런데 보십시오. 이 말씀대로 이루어 졌습니 까 그렇습니다. 그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메시지 던지고 있습 니까 그렇습니다. 야곱도 회계하고 돌아오면 용서하시고 선대 하신다. 하는 메시지죠.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는 말이 바로 이 말입니다. 이 야곱의 사건은 대대로 이런 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 교훈이 된다는 말이죠. 그러니 너희들도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 헛된 것을 쫓지 않고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한 번 하나님을 믿고 그 품에 안겨 보라는 것입니다. 기념칭호 오늘 본문은 이 부분을 얼마나 간절하게 설명을 하는지 모릅니다. 5절에 있는 말씀을 보십시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쉽게 말하면 여호와라는 이름이 기념이 되는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그 렇다면 이 여호와라는 이름이 어떤 면에서 기념이 되는 이름일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출애굽기 3:13-15 말씀을 살 펴보아야 합니다. 한 번 보죠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이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 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 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 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삭의 하나님,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 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자 이 말씀을 잘 보십시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게 무엇을 상기시켜야 합니까 예, 하나님께서 여호와라는 말을 상기시켜야 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 여호와라는 말이 어떤 말들과 관계가 있습니까 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이 하나님이라는 말고 관계가 있습니다. 무슨 말이죠 그렇습니다. 바로 이들과 이렇게 약속하고 그대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즉, 내가 이제 너희들의 조상과 맺은 그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너를 보냈다고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라는 이름은 어떤 면에서 기념이 되는 이름입니까 그렇습니다.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라는 면에서 기념이 되는 이름이 죠.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이름을 대면서 까지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믿고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떠나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간곡하게 손을 벌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지난 시간 살펴 본 것처럼 불붙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선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6절에 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 그런즉 이란 무슨 뜻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하나님이니 하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런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돌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헛된 바람을 바라보고 살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고 있 으니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렇다면 이런 사랑은 야곱에게만 넘치는 것일까요 호세아 시대에만 넘치는 것일까요 아 닙니다.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넘치고 있는 사랑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삶을 살 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늘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을 바라보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가 지금 살펴보고 있는 호세아서 에서는 하나님을 남편으로 이스라엘 백성 들을 아내로 묘사를 하고 있는데 이 관계를 조금 전에 말씀을 드린 것에 대입해 본다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이 이 스라엘을 버린 것이 되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린 것이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린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고 떠나가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 이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간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호세아서는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하나님 의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이 말은 얼토당토 않는 말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버림을 당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버림받았다는 말을 하나님께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우주를 주관 하시고 운행하시는 그 하나님, 만군의 왕이시며 만왕의 왕이신 그 하나님에게 버림을 당했다는 말이 어울릴 수 있겠 습니까 오히려 이런 하나님께서 버리셨다면 이해가 될 법한 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바로 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 바로 그분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버림을 받을 만한 분이십니까 아닙니다. 그분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보 나, 그분의 지위를 보나, 그분의 사랑을 보나, 그분은 버림을 받기에 합당한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호세아서 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사랑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곳곳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헌신 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셨고 저들을 아끼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헌신짝 버리듯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 엄청난 일을, 이 불가능한 일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행하고 만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하나님이라면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의 얼굴에 침을 뱉고 떠나 버린 이들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단숨에 없애 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 지 않으셨습니다. 그래도 저들을 사랑하시겠다 말씀하십니다. 호세아서는 바로 이러한 일에 대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반응하시는가 하는 이야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그래도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품겠다는 것이죠 사랑의 책 호세아
그런데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살펴 온 호세아서는 보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습니까 심 판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습니까 그렇습니다. 심판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습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호세아서는 축복 과 징계의 비율이 10분의 1 밖에 안된다고 말합니다. 심판이 10이면 축복이 1입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생깁니다. 무 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호세아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씀을 드린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죠 어 떻게 심판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은데 호세아서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죠. 어떻 게 심판하겠다. 보응하겠다. 하는 이야기들을 놓고 사랑의 책이라 말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는 여 기 심판하겠다 보응하겠다 하는 이 말씀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면 아 그래 호세아서는 하나님의 사랑 을 이야기하는 책이야 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게 뭐죠 그렇습니다. 심판하겠다. 보응하겠다는 말은 사 실 돌아 오라. 사랑한다. 너는 나의 전부야 하는 이야기죠. 그래서 호세아서는 돌아오라는 말과 보응하겠다는 말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호세아서를 읽을 때는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심판과 보응, 이런 말들을 읽을 때도 그 속 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읽어 내야 합니다. 이렇게 읽다 보면 호세아서만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강하 게 이야기하는 책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치 구약의 복음서와도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 던 그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이 호세아서에 발견이 됩니다. 바로 그 사랑에 대해서 지난 시간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었죠 그렇습니다. 긍 휼이 불붙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불타는 사랑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자신을 버리고 떠나 버린 이스라 엘 백성들에 대한 사랑 그것이 바로 이 불타는 사랑이었습니다. 이 불타는 사랑이 바로 저와 여러분 앞에도 있습니다. 이 사랑이 불타 올라서 여러분의 가슴을 녹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을 따뜻하게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하나님의 사랑 불로 나오십시오. 좀 더 가까이 나오십시오. 그렇게 멀찌감치 있지 마시고 가까이 나오셔서 그 사랑의 온기를 느껴 보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도 바로 이런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심판이라는 주제와 사랑이라는 주제가 서로 섞여 있습니다. 12:2절을 보십시오. 예, 거기 벌주고 보응하는 이야기가 있 죠 그러나 6절을 보십시오. 예, 거기에는 돌아오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제 이렇게 섞 여 있는 이 두 주제를 함께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함께 느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혹 여러분들 가운데는 왜 12:1절부터 말씀을 살피지 않고 11:12절 부터 말씀을 살피는 가고 의아해 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언젠가 말씀을 드렸죠. 성경을 살필 때는 장절을 무시하고 살펴야 한다고요.
왜냐하면 성경이 처음 기록될 때는 장절 구분이 없었다고요. 바로 이 본문이 여기에 대한 대표적인 예입니다. 성경은 원 저자가 기록한 원본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원본은 이 지구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현존하는 원어 성경은 다 이 원본은 베껴 쓴 것인데 이 사본은 조금씩 차이가 납니다. 바로 여기 이 부분, 우리 성경 11:12절을 어떤 성경은 11장 12절에 포함 시키기도 하고 어떤 성경은 12:1절에 포함시키기도 합니다. 어느 것이 맞느냐 말할 수는 없지만 제가 보기에는 12:1 절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전체적인 문맥을 볼 때 11:11절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끝이 나고 다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장절을 의식하지 말고 본문을 살피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이죠. 거짓과 궤휼로 아무튼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죠. 11:12절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무엇으 로 에워쌌다고 말하죠 그렇습니다. 거짓과 궤휼로 에워쌌다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께 나가면서 수많은 거짓으로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나아갈 때 신령과 진정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정직함으로 나아 가야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사였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저들은 오 히려 거짓으로 나아갔습니다. 저들이 하나님께 드린 제물은 거짓을 행함으로 얻은 것으로 준비된 것이었습니다. 악을 행함으로 얻은 것들이었습니다. 저들이 드린 제물들을 보십시다. 송아지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린양도 있었을 것입니다. 비둘기도 있었을 것이며, 곡식 가루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제단에 수북히 쌓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거짓과 괘휼을 행한 결과로 얻어진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거짓으로 에워쌌던 것입니다. 그래서 온통 거짓 것들이 난무합니다. 어느 것을 들고 정밀 조사를 해 보아도 다 거짓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맙니다. 바로 이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지적을 하시는 것입니다. 온통 거짓으로 에워싼 이 현실을 바라보시며 하나님께서는 탄식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의 문제를 생각해 보십시다. 오늘 여러분들은 무엇으로 하나님께 나아 오셨습니까 아마 여러분들도 이 시간 하나님께 많은 것들을 드릴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시간을 어떤 사람은 헌물을 어떤 사람은 자신의 몸을 이 모양 저 모양의 것들을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드릴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거기에는 무엇이라 쓰여 있습 니까 여러분들이 드린 여러분들의 시간에는 무엇이라 쓰여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드린 여러분 자신에는 무엇이라 쓰 여 있습니까 오늘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드린 것들을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면서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탄식했 던 것처럼 그런 탄식을 하시지 않으실 까요 바람을 먹는 이스라엘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 말씀 을 통해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으로 배를 채웠으며 무엇을 쫓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자 보십시오. 무엇 을 먹었다고요 그렇습니다. 바람을 먹었습니다. 또, 무엇을 쫓습니까 그렇습니다. 동풍을 쫓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바람을 먹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여러분 바람을 한 번 먹어 보십시오. 어떤 현상 이 일어납니까 예, 쉽게 배를 채울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여러분들에 어떤 영양분을 공급해 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이 이야기입니다. 쉽게 배부른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것이 무슨 영향을 공급하지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런 저들을 향해서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사 55:1-
2'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 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 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 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왜 이런 말씀을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에 속아서 이것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먹으면 잠시는 배가 부른 것처럼 느껴집니다. 든든 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을 참 만족하게 하지 못합니다. 얼마 못 가서 아하 이것이 아니구나 하고 깨닫 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이 여러분들의 인생을 든든하게 만들던가요 물질입니까 권력입니까 명예입니까 이 중 한 가지라도 그렇다고 생각되시는 분은 실은 속고 계시는 것입니다. 마치 바람을 먹고는 아 배부르다고 말하는 것과 같 은 것입니다. 얼마 못 가서 이것이 여러분들의 인생을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사랑 하는 여러분 여기에 속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은 잠시 배부르게 하는 것들에 속지 마십시오. 혹 지금 여러분들을 배부 르게 하는 것이 있다면 한 번 따져 보십시오. 이것은 나를 잠시 배부르게 하는 것인가 아니면 영원히 배부르게 하는 것인가 광풍을 쫓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잠시 배부르게 하는 것에 속아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또 무엇이라고요 그렇습니다. 광풍을 쫓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광풍을 쫓았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정함이 없는 것을 쫓는 다는 것입니다. 바람은 어디서부터 와 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정함이 없다는 것이지요. 이런 것은 쫓음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좇는 다면 우왕좌왕하다가 끝나 버릴 것입니다. 열심히 쫓기는 좇았는데 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허비해 버린 채 끝나 버릴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오늘 본문은 이 바람을 어떤 바람이라 소개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동풍으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여기서 소개되고 있는 이 동풍은 팔레스틴 지방에 부는 특별한 바람의 이름으로 이 것은 종종 여행자들에 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이 바람이 공포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바람이 세기도 세지만 이 바람과 함께 동 반된 뜨거운 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행자들은 이 바람이 불기 시작을 하면 지형 지물을 이용해서 움푹 패인 곳에 엎드려 이 바람이 다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만큼 이 바람의 위력은 파괴적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런 바람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쫓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이 바람으로 인해 오히려 어려움과 곤경에 처할 것이라는 것이죠. 앗수르와 애굽
그렇다면 이들이 좇았던 바람은 어떤 것일까요 1절은 그것에 대해서 앗수르와 애굽이라고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정황을 좀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강대국 틈에 끼여 있었습니다. 남으로는 애굽 북으로는 앗수르라고 하는 거대한 나라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이런 강대국 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처세술입니다. 애굽과 앗수르 사이에서 상황을 잘 판단해서 자 신들의 입장을 정리하지 아니하면 곤경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강대국들의 눈치를 잘 살피는 것이 필요 했습니다. 서로에게 섭섭하지 않도록 잘하는 것이 필요했죠. 바로 이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애굽으로 기름을 보내고 양다리를 걸치는 것이죠. 그래서 여차 하면 이쪽에 붙었다가 여차하면 저쪽에 붙는 것입니다. 바로 이 사실에 대해서 동풍을 쫓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동풍을 쫓는다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말씀 을 드렸죠 그렇습니다. 정함이 없는 것이라 말씀을 드렸죠.
그렇다면 무엇을 쫓아야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 을 좇아야 했습니다. 아무리 주변에 강대국들이 버티고 있어도 저들을 쫓으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고 살아간다면 이들은 그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승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 하나님을 바라보 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양다리 걸치기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디로 포로로 잡혀 가죠 그렇습니다. 더러는 애굽으로 더러는 앗수르고 잡혀가고 맙니다. 정함이 없는 것을 쫓다가 결국 그것에 망해 버리고 말지 않습니까 동풍을 쫓는 다는 것은 바로 이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정함이 없는 것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들을 어렵게 하고 곤경에 빠뜨립니다. 정함이 없는 것을 쫓다가 그것이 잘 못된 것인 줄 알고 돌아서려 할 때 그것으로 끝나 버리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치 동풍과 같이 그것이 우리들을 곤경에 밀어 넣기도 하고 어려움을 주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삼손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의 인생이 왜 곤경에 빠졌습니까 그렇습니다. 정함이 없는 동풍을 쫓았 기 때문입니다. 그는 드릴라라고 하는 동풍을 쫓다가 신세를 망친 사람입니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데마에 대해서도 잘 아실 것입니다. 이 사람은 어떤 동풍을 쫓았습니까 딤후 4:10을 보면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세상이라는 동풍을 쫓았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데마는 데살로니가로 돌아가서 어떤 절의 중이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세상을 사랑하다가 자신의 영혼 마져도 망쳐 버린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동풍의 위력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 도 혹 이런 동풍을 쫓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동풍을 쫓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절에 어떻게 하시겠다고요 예, 쟁변하시고 소행대로 갑아 주시겠다 말씀하십니다. 자
그렇다면 여기 보응하시겠다는 이 말에서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속 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어떤 말씀이라고 요 그렇습니다. 돌아오라는 말씀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뒤꿈치를 잡은 야곱 이것은 3절 이하에 있는 말씀에서 분명해 집니다. 자 이제 3절을 살펴 보도록 하죠. 자 누가 소개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야곱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야곱은 현대인의 모델이라고요 혹 기억이 나십니까 자 어떤 면에 있어서 현대임의 모델이라고 말씀을 드렸죠 그렇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바로 이 야곱이죠.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도 이렇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형도 배반하고 아버지도 속일 수 있는 사람이 야곱이었습니다. 삼촌도 속이고 하나님과도 씨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야곱이었습니다. 자 이 야곱이 갑자기 소개되고 있습니다. 무슨 연유에서일까요 말씀을 살피면서 그 이유를 생각해 보죠. 먼저 야곱의 인생에 대해서 단적으로 말해 주는 이야기가 먼저 소개되고 있죠 무엇이라고요 그렇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형의 발 뒤꿈치를 잡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대단한 욕심입니다. 여기 발 뒤꿈치를 잡았다는 말은 속이다 등 뒤에서 공격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속이는 일에 능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이름에서도 이 의미는 살아 있습니다. 여러분 왜 야곱의 이름을 야곱이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예, 발 뒤꿈치를 잡았다고 해서 야곱이라 붙였습니다. 그러니 이름부터 가 속이는 자였습니다. 이런 야곱이 무엇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예, 장년에 하나님과 힘을 겨루었다고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 장년에라는 말은 인간적인 힘으로 라는 뜻을 가지는 말이에요.
그렇다면 보십시다. 인간적인 힘으로 하나님과 힘 겨루기를 했다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는 얍복강의 사건을 잘못 알고있어요. 우리는 얍복강의 사건이 야곱이 회계를 하고 돌아선 것이라 생각을 하고는 우리들도 얍봅강에서 처럼 하나님과 씨름을 해야 한다고 생각 을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말씀을 잘 살펴보면 얍복강의 사건은 야곱의 자아와 하나님께서 힘 겨루기를 해서 야곱이 이겼다는 이야기이거든요.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그만큼 야곱의 자아가 강했다는 것이에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하나님과 힘 겨루기를 하지 마세요. 야곱이 얍복강의 사건이 있고난 후 변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자 신의 계획대로 자신의 일을 진행시키지요. 형 에서를 만나서 먼저 가면 자신이 뒤따라가겠노라고 해 놓고 자신은 형 을 따라가지 않아요.
왜냐하면 아직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 자신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요.
그런데 이런 야곱이 언제 회계를 하는고 하면 야곱의 딸인 디나가 욕을 가나안의 원주민들에게 욕을 보이고 이로 인 해서 야곱의 아들들과 가나안 족속들과 전쟁이 일어나는 위기 상황으로 치닫죠. 이런 일련의 일들을 보면서 자신의 얼마나 약하고 초라한 존재인가를 깨닫고는 벧엘로 돌아가죠. 거기서 회계를 하고 눈물을 흘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오늘 본문을 보면 아마 그런 것 같아요.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그렇습니다. 다시 만나 주신 것이죠. 다시 야곱을 복주신 것이에요.
그렇다면 이런 야곱의 이야기가 갑자기 왜 등장을 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죠 욀까요 자 이를 위해서 4절을 좀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여기 한 가지 이상한 것이 있죠 무엇인고 하면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이 우리들에게 한 말이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렇게 말씀하시는 의도가 무엇일까요
그렇다면 여기서 잠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셨던 말씀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죠 창 35:9-15절입니다.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고쳐 주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 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라 말씀하시죠. 자
그런데 보십시오. 이 말씀대로 이루어 졌습니 까 그렇습니다. 그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메시지 던지고 있습 니까 그렇습니다. 야곱도 회계하고 돌아오면 용서하시고 선대 하신다. 하는 메시지죠.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는 말이 바로 이 말입니다. 이 야곱의 사건은 대대로 이런 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 교훈이 된다는 말이죠. 그러니 너희들도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 헛된 것을 쫓지 않고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한 번 하나님을 믿고 그 품에 안겨 보라는 것입니다. 기념칭호 오늘 본문은 이 부분을 얼마나 간절하게 설명을 하는지 모릅니다. 5절에 있는 말씀을 보십시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쉽게 말하면 여호와라는 이름이 기념이 되는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그 렇다면 이 여호와라는 이름이 어떤 면에서 기념이 되는 이름일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출애굽기 3:13-15 말씀을 살 펴보아야 합니다. 한 번 보죠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이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 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 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 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삭의 하나님,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 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자 이 말씀을 잘 보십시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게 무엇을 상기시켜야 합니까 예, 하나님께서 여호와라는 말을 상기시켜야 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 여호와라는 말이 어떤 말들과 관계가 있습니까 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이 하나님이라는 말고 관계가 있습니다. 무슨 말이죠 그렇습니다. 바로 이들과 이렇게 약속하고 그대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즉, 내가 이제 너희들의 조상과 맺은 그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너를 보냈다고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라는 이름은 어떤 면에서 기념이 되는 이름입니까 그렇습니다.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라는 면에서 기념이 되는 이름이 죠.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이름을 대면서 까지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믿고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떠나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간곡하게 손을 벌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지난 시간 살펴 본 것처럼 불붙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선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6절에 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 그런즉 이란 무슨 뜻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하나님이니 하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런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돌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헛된 바람을 바라보고 살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고 있 으니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렇다면 이런 사랑은 야곱에게만 넘치는 것일까요 호세아 시대에만 넘치는 것일까요 아 닙니다.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넘치고 있는 사랑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삶을 살 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늘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을 바라보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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