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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창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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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지구 전체를 뜨겁게 달구는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가난한 나라든 부자 나라든, 한국과 같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고통 속에 있는 나라들도 '98프랑스월드컵 축구대회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한국은 월드컵에서 16강에 오르기 위해 많은 국민들의 성원을 입고 경기에 임했으나 같은 E조에 속한 멕시코와 네덜란드에 연이어 패하므로 16강의 꿈은 좌절되고 실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벨기에와의 마지막 경기는 월드컵 본선에서 1승을 올린다는 목표를 정했지만 그도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대다수의 국민들이 월드컵으로 위안을 삼고 싶었지만, 기술축구를 구사하는 나라들에게 한국의 축구의 한계를 실감케 하였습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마지막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보여준 한국 선수들의 투혼에 있었다고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습니다. 월드컵에 직접 참가하여 운동장에서 경기를 하는 선수들 못지 않게 주목을 받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월드컵 응원단입니다. 사람에 따라 이들을 "붉은 악마"로 아니면 "붉은 전사"로 지칭하였지만 정확한 이들의 명칭은 "붉은 악마"였습니다. 아시아지역 예선 때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이들은 한국 대표팀의 주 유니폼인 붉은 색의 옷을 입고 얼굴에는 여러 가지 모양의 그림을 그리고 열정적인 응원을 하였습니다. 하필이면 "악마"일까라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또한 가지의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북한의 잠수정이 동해에 침투하여 꽁치 잡이 하던 그물에 걸려 어부에게 발견되었고, 한국 해군에 의해 인양되었지만, 그 안에 있던 9명의 북한 사람들이 모두 총에 의해 죽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저지르고 있고, 공공연히 사단을 자칭하고 있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세상에 태어난 사람의 목숨을 쉽게 빼앗고 있습니다. 사람이 만든 정치이념이 사람들로 하여금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게 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 인간의 목숨을 인간이 만든 정치적인 이념 때문에 고의적으로 죽이는 것은 인간의 교만입니다. 인간의 계획과 행동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을 무시하는 것 그것이 교만이며, 인간의 교만은 범죄의 시작입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인간들의 범죄는 좀더 자의적이고 다양해졌으며, 더욱 악해졌습니다. 우리는 지난 6개월 동안 계속해서 인간의 범죄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개인적인 범죄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만 창세기 11:1-9에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에 있어서 집단적으로 행동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데, 바로 바벨탑을 쌓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앞서 창세기 10장은 노아 후손들의 족보를 기록하면서 그들이 세상을 향해 어떻게 퍼져나갔는지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교만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였던 언어를 혼잡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10:5, 20, 31-32을 보십시오. "각기 족속과 방언과 지방과 나라대로 나누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세기 11:1-9절이 말하는 바벨탑 사건 이후 인간들이 온 땅에 편만 하게 퍼져 나가게 된 결과를 창세기 10장에 기록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창세기 11:1-9의 바벨탑 사건의 결과에 대하여 창세기 10장에서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벨탑을 쌓은 이유 노아의 후손들은 아라랏산에서 내려와 동방으로 옮겨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말과 언어가 하나였습니다(창 11:1). 그리고 한 족속일 때였습니다(창 11:6). 마침 시날 평지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고 성과 대를 쌓아 하늘을 향해 높이 탑을 쌓아갔습니다. 그 시기와 주동자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는 내용이 창세기 10:8-10과 25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10:8-10에서 함의 손자인 니므롯은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고 말합니다. '영걸(rBoG
II gibbor 기보르)'이란 '반역하다'라는 의미와 '지배자' '정복자'라는 뜻으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니므롯은 또한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었습니다. 이것은 '공공연히 하나님의 면전에서 하나님을 거역하며 사람들을 사냥한 폭군'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10). 그리고 창세기 10:25에 보면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벨렉(gl,P, peleg)이 '나누다', '쪼개다'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고, 에벨이 자기 아들의 이름을 통해 세상이 나뉘었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함의 손자 니므롯과 셈의 증손인 에벨은 거의 동시대의 사람으로 추정할 수 있으므로 니므롯이 주동자가 되어 바벨탑을 쌓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바벨탑을 쌓은 첫 번째 이유는 니므롯을 비롯한 당시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내기 위해 바벨탑을 쌓았습니다(창 11:4).
둘째로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기 위하여 바벨을 쌓았습니다. 지난주에 이미 살펴 본 대로 대홍수 후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창 9:7) 그러나 인생들은 하나님의 명령과 복에 대하여 깨닫지 못했습니다. 홍수 후에 사시사철이 계속되었고, 하늘에는 무지개도 자주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인생들은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기억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과 복을 내리신대로 세상의 모든 곳에 퍼져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죄의 심판을 까마득히 잊고 교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그들은 높은 탑을 쌓아 흩어지지 말자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역이었습니다.
셋째, 바벨은 그들의 우상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후에 밝혀진 일이지만 바벨탑은 바벨론 종교의 본거지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바벨론 종교의 주신(主神)인 마르둑(Marduk)을 섬기기 위해 쌓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맨 꼭대기에 제단을 만들고 거기에는 침대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거기서 밤마다 하늘에서 내려온 마르둑 신과 동침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바벨탑의 모든 벽돌에는 마르둑 신의 형상이 기록되어 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바벨에 대한 진노와 민족의 이동 하나님은 바벨탑을 쌓던 인간들에게 진노하시고 언어를 혼잡케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흩으신 결과 세계 곳곳에 노아의 후손들이 나뉘어 살게 된 것입니다. 인간의 교만이 없었던들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바벨탑을 쌓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곳에 강림하셨습니다. 그리고 교만이 극에 달하여 성과 대를 쌓아 하늘에 닿으려고 하던 인간들을 흩으신 것입니다.
노아의 셋째 아들인 야벳의 후손들(창 10:2-5)은 주로 유럽을 중심으로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이들 가운데 고멜은 킴메르족으로 후에 게르만 민족의 조상이 되었고, 마곡은 북부 시리아의 칼케미쉬 지역에 거주하던 고대의 스구디아족의 조상이 되었으며, 마대는 앗수르의 동편으로 이란의 북서쪽 지역을 이루는 산간지역과 카스피해 남단까지 이르는 방대한 영토에서 살았던 메대인들의 조상으로 후에 페르시아에 흡수되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또한 메섹은 소아시아와 앗수르 북쪽에 거주하던 무스크족의 조상으로, 디라스는 북아탈리아에 거주하던 에트루리아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이미 노아로부터 축복을 받았습니다(창 9:27). 노아는 야벳을 창대케 하시도록 축복하였습니다. 창대케 한다는 문자적으로는 '야벳에게 넓은 공간을 주사'라는 뜻이지만, 이 말은 비단 야벳 족속의 영토와 인구 뿐 아니라 문명, 문화에도 관계된 것으로 유럽의 문화와 과학, 희랍의 철학과 로마의 법정신 등이 바로 야벳의 후손들에 의하여 이룩되었습니다.
노아의 둘째 아들인 함의 후손들(창 10:6-20)은 주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거주하고 살았습니다. 이들 가운데 구스는 애굽 남방의 누비아 사막지역에 살던 무어인들의 조상이었고, 가나안은 레바논으로부터 애굽 경계까지 이르는 지중해 연안에 살던 가나안족의 조상이었습니다. 노아는 자신의 실수와 관련하여 함의 후손들을 저주하였는데(창 9:25), 역사 속에서 그대로 성취되어 가나안 족속은 여호수아 시대에 셈족인 이스라엘인들에 의해 가장 비천한 종의 형태로 전락되었고(수 9:23), 그 나머지는 솔로몬 시대에 완전 정복당했습니다(왕상 9:20, 21). 그후에도 칼타고인이나 애굽인들과 같은 가나안 족속들은 페르샤인, 마게도냐인, 로마인 등과 같은 야벳 족속들에 의해 계속 철저히 정복당하고 말았습니다.
노아의첫째 아들인 셈의 후손들(창 10:21-31; 11:10-32)은 주로 아라비아와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거주하였습니다. 셈의 후손을 통해 아브라함이 태어나고, 하나님은 그를 선택하셨습니다. 바벨의 교훈 바벨(lb,B' babel)이란 헬라어 바벨론(Babylon)의 히브리어 표현으로,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약 32km 거리에 있는 유브라데강 동쪽에 위치한 고대 성읍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또한 바벨(lb,B' babel)은 "하나님의 문"을 의미하는 말로 "혼란시키다"라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창세기 11:1-9에서 저자는 인간의 우매함을 더욱 자세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히브리어의 특징인 교차 대조를 통해 인간 중심의 생각과 하나님의 뜻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첫째, 1절과 9절에 '온 땅의 언어'가 있는데 1절에서는 하나인 온 땅의 언어를 말하지만 9절은 이미 혼잡케 된 온 땅의 언어를 말합니다.
둘째, 2절과 8절에는 '거기'가 있는데, 2절에서는 흩어지기 전 시날 평지를 말하지만, 8절의 거기는 흩어지기 시작한 시날 땅 거기를 말합니다.
셋째, 3절은 사람들은 '서로 말하자'하지만 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넷째, 3절에서 사람들은 벽돌을 견고히 '굽자'하지만 7절에서 하나님은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섯째, 4절에서는 사람들이 쌓기로 한 '성과 대'를 말하지만, 5절의 '성과 대'는 하나님께서 인생들이 쌓은 것을 강림하셔서 보신 '성과 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벨은 하나님을 향해 반역하는 인간의 죄를 지적하고 하나님에 대한 저항과 도전, 명령에 대하여 불복종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인간의 교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2장은 세상의 창조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것은 인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천지 창조의 사건은 하나님의 전능성과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3-11장에서는 창조된 세상에서의 비참한 인생들의 타락의 모습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생들에게 대홍수로 대응하셨고 노아와 그 가족 7명을 제외한 모든 인생들을 멸절 시켰습니다.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바로 노아의 후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대홍수 심판을 기억하기는커녕 오히려 바벨탑을 쌓고 하나님을 대적하려는 교만을 떨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인생들의 대응이었습니다. 이렇게 창세기 3장부터 11장까지는 인간의 뿌리깊은 죄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대홍수 이후에도 인간의 죄는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속성을 보면 우리는 절망할 수밖에 없고, 그리고 바벨탑 사건으로 창세기가 끝났다면 우리가 소망을 가질 수가 없었으나, 창세기는 그렇게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바벨탑 사건 뒤에 바로 셈의 후예들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죄성을 지니고 있는 인생 모두에 대한 여명(黎明)입니다. 하나님 구원의 여명입니다.
왜냐하면 그 족보의 마지막에 데라의 일가를 기록하면서 아브람을 등장시켜, 보잘것없는 인생과 절망할 수밖에 없는 인생을 다루어 가시며 조각하시는 하나님, 인생들의 배후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후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씨인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하시고 인류 구원의 의지를 구체화 시켰습니다. 오늘도 바벨은 계속 우리 인생들의 삶 속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날리기 위하여 각종 단체를 조직하고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우며 정열을 바칩니다. 인간사랑이나 인간의 행복과 복지 향상을 부르짖지만, 하나님의 이름은 없습니다. 극히 인간 중심의 단체들입니다. 인간의 공명심을 위한 행동은 분명 교만한 행동이요 하나님은 진노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중심이 되지 않는 단체나 운동은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훼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이 아닌 정치이념이나 경제적인 부요함, 과학과 교육에 대한 인간들의 경쟁은 결국 하나님과 대항하고자하는 인간들의 교만입니다. 천지 창조 이후 인간이 세상에 살면서부터 지금까지 인간은 끊임없이 바벨탑을 쌓아 하나님을 대적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로는 전쟁으로, 때로는 지진으로, 그리고 화산과 각종 재앙을 통해, 바벨을 파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바벨을 찾아내십시오. 여러분의 개인과 가정, 그리고 교회에 바벨탑이 쌓아지지 않도록 하십시오. 우리의 이름은 하늘나라에 기록된 것으로 만족해야합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들에게 가장 큰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헌신과 봉사를 통해 우리의 이름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하여 저항하거나 도전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우리의 바벨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있어서 우상을 만들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것이 아니거나 하나님보다 우선하면 그 어떤 것도 우상이 될 수 있으며 그것이 바벨이기 때문입니다. 자녀에 대한 지나친 애정, 세상적 부(富)에 대한 애착, 그것을 하나님께서 질투하시면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은 바벨탑을 파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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