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바의 인격 (행11:22-26)
본문
여러분, 바나바가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그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어떤 제자 못지않게 일한 사람입니다. 그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집사 못지않게 일한 사람입니다. 그는 감독이나 장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떤 감독이나 장로 못지않게 일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가 어떤 사람입니까 성경을 좀 공부한 사람은 "아, 예수님 대신 자유함을 얻은 살인자"라고 대답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실 때 빌라도는 "예수과 바라바 두 사람 가운데서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주랴" 고 묻자 사람들은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바라바는 살인강도로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의 이름은 바라바요 바나바가 아닙니다.
1.위로의 사람 바나바 사도행전 4:36-37에 보면 처음으로 바나바의 이름이 나옵니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 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고 하였습니다. 지중해 가운데 있는 작은 섬 구브로라는 섬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레위 족속에 속한 사람으로 그 원래 이름은 요셉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에서 일한 사람이었는데 사도들이 그의 별명을 지어주었습니다. 바나바라고, 그 이름의 뜻은 권위자. 혹은 위로자라는 뜻입니다. 위로한다는 말은 슬픔을 당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낙심된 사람을 격려하여 주고,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더 일을 잘하도록 칭찬하여 주는 일을 말합니다.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사람의 말로 위로하는 길이 있고, 사람의 행위로 위로하는 길이 있습니다. 살전4:18에 보면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말에는 창조적인 힘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로 사람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기도 하고 사람의 마음에 큰 위로와 힘을 주기도 합니다. 말 한마디로 사람의 기를 살리기도 하고 기를 죽이기도 합니다. 남을 비난하는 말을 힘쓰는 사람이 있고, 남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힘쓰는 자도 있습니다. 말에 독이 있는 사람이 있고, 말에 약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나바는 말로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칭찬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위로자가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이러한 위로자가 되어야 합니다. 고전16:15 이하에 보면 스데바나의 집에서 물질로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준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사도행전 4:32 이하에 보면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서도 성도들 사이에 물질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여 준 기록이 있습니다. 바나바는 바로 물질로 위로하고 격려하였습니다. 이런 위로자가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이러한 위로자가 되어야 합니다.
2.화목의 사람 바나바 행9:26-27에 있는 말씀을 보면 바나바가 화목의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과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의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다메섹으로 가서 아나니아라는 선지자에게 기도를 받는 동안 눈에 있던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그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에는 예루살렘에 와서 사도들을 만자고자 하였지만 전에 예수믿는 사람들을 핍박하였던 자인줄 아는 사도들은 그를 만나기를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자 예수믿게 된 것을 믿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때 바나바는 바울이 거듭나 새 사람이 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도들에게 바울의 새사람이 된 모든 과정을 상세하게 말해줌으로서 바울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에도 보면 바나바의 이러한 면을 볼 수 있습니다. 안디옥에 예수믿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게 되면서 그 사람들을 돌볼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 교회에 파송하였습니다. 지도자로 세웠습니다. 바나바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자 교회는 더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일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때 자기보다 능력이 많은 유능한 일군이 생각났습니다. 그가 바로 바울이었습니다.
본문 25-26절에 보면 "바나바가 사울울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 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들은 그를 사울을 믿지 않고 두려워하고 있을 때 바나바는 그를 인정하고 사도들에게 소개하여 줄 뿐 아니라 자기와 함께 일하는 동역자로 그를 불러 함께 일했습니다. 바울은 어떤 점에서 성격이 좀 과격한 사람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를 불러다가 함께 일년간 열심히 일했습니다. 행13장 이하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는 그 후에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로 안수받고 두 사람이 함께 전도여행을 떠나 부지런히 복음을 증거한 것이 사도행전 15장 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소위 바울의 제1차 전도여행때 바나바와 바울을 함께 일했습니다. 그리고 바나바와 바울이 함께 제2차 전도여행을 떠나려 하다가 두 사람 사이에 의견이 갈리게 되었습니다. 행15:37-41에 있는 말씀을 보면 그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를 타고 구르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 바나바는 한 때 실수 했던 마가를 다시 데리고 그를 인정하여 함께 선교의 일을 하게 하였습니다. 만일 이 때 바울의 생각대로 마가를 완전히 버렸다고 하면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와 같은 인물은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화목의 사람 바나바는 사람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넓은 마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화목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착한 사람 바나바 본문 24절에 보면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님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착한 사람으로 기록된 사람은 바나바 한 사람입니다. 착하다는 말은 선하다는 말과 같습니다. 착한 것(선한 것)은 다음가 같은 이유에서 중요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입니다.(막10:18)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이가 없느니라"
둘째 하나님의 말씀이 선하기 때문입니다.(히6:5) "하나님의 선한 말씀"
셋째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착한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행4:9)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넷째 거듭난 사람은 선할 일을 위해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엡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심을 받은 자니" 다섯째 착한 행실은 빛의 자녀들이 맺는 열매이기 때문입니다.(엡5:9)"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여섯째 착한 일은 어두운 세상에 빛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일곱째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롬2:10)"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그러면 어떻게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1)착한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딤전1:19에 보면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벧전3:16 에 보면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2)마음에 선을 쌓아야 합니다. 마12:35에 보면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3)선을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선한 마음을 행동으로 옮겨야 선행이 됩니다. 빌1:6에 보면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눅19:17에 "주인에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고 하였습니다. 위로의 사람 바나바, 화목의 사람 바나바, 그리고 착한 사람 바나바는 우리에게 모범적인 인격자로 나타납니다. 목사가 되기 전에 사람이 되라는 교훈을 신학교때 많이 들었습니다. 신앙이 이전에 바른 인격을 소유한다는 것이 이처럼 중요합니다. 바나바의 인격은 우리가 닮아야 할 인격이라고 생각합니다.
1.위로의 사람 바나바 사도행전 4:36-37에 보면 처음으로 바나바의 이름이 나옵니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 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고 하였습니다. 지중해 가운데 있는 작은 섬 구브로라는 섬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레위 족속에 속한 사람으로 그 원래 이름은 요셉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에서 일한 사람이었는데 사도들이 그의 별명을 지어주었습니다. 바나바라고, 그 이름의 뜻은 권위자. 혹은 위로자라는 뜻입니다. 위로한다는 말은 슬픔을 당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낙심된 사람을 격려하여 주고,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더 일을 잘하도록 칭찬하여 주는 일을 말합니다.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사람의 말로 위로하는 길이 있고, 사람의 행위로 위로하는 길이 있습니다. 살전4:18에 보면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말에는 창조적인 힘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로 사람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기도 하고 사람의 마음에 큰 위로와 힘을 주기도 합니다. 말 한마디로 사람의 기를 살리기도 하고 기를 죽이기도 합니다. 남을 비난하는 말을 힘쓰는 사람이 있고, 남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힘쓰는 자도 있습니다. 말에 독이 있는 사람이 있고, 말에 약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나바는 말로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칭찬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위로자가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이러한 위로자가 되어야 합니다. 고전16:15 이하에 보면 스데바나의 집에서 물질로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준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사도행전 4:32 이하에 보면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서도 성도들 사이에 물질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여 준 기록이 있습니다. 바나바는 바로 물질로 위로하고 격려하였습니다. 이런 위로자가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이러한 위로자가 되어야 합니다.
2.화목의 사람 바나바 행9:26-27에 있는 말씀을 보면 바나바가 화목의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과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의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다메섹으로 가서 아나니아라는 선지자에게 기도를 받는 동안 눈에 있던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그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에는 예루살렘에 와서 사도들을 만자고자 하였지만 전에 예수믿는 사람들을 핍박하였던 자인줄 아는 사도들은 그를 만나기를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자 예수믿게 된 것을 믿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때 바나바는 바울이 거듭나 새 사람이 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도들에게 바울의 새사람이 된 모든 과정을 상세하게 말해줌으로서 바울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에도 보면 바나바의 이러한 면을 볼 수 있습니다. 안디옥에 예수믿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게 되면서 그 사람들을 돌볼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 교회에 파송하였습니다. 지도자로 세웠습니다. 바나바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자 교회는 더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일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때 자기보다 능력이 많은 유능한 일군이 생각났습니다. 그가 바로 바울이었습니다.
본문 25-26절에 보면 "바나바가 사울울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 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들은 그를 사울을 믿지 않고 두려워하고 있을 때 바나바는 그를 인정하고 사도들에게 소개하여 줄 뿐 아니라 자기와 함께 일하는 동역자로 그를 불러 함께 일했습니다. 바울은 어떤 점에서 성격이 좀 과격한 사람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를 불러다가 함께 일년간 열심히 일했습니다. 행13장 이하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는 그 후에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로 안수받고 두 사람이 함께 전도여행을 떠나 부지런히 복음을 증거한 것이 사도행전 15장 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소위 바울의 제1차 전도여행때 바나바와 바울을 함께 일했습니다. 그리고 바나바와 바울이 함께 제2차 전도여행을 떠나려 하다가 두 사람 사이에 의견이 갈리게 되었습니다. 행15:37-41에 있는 말씀을 보면 그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를 타고 구르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 바나바는 한 때 실수 했던 마가를 다시 데리고 그를 인정하여 함께 선교의 일을 하게 하였습니다. 만일 이 때 바울의 생각대로 마가를 완전히 버렸다고 하면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와 같은 인물은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화목의 사람 바나바는 사람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넓은 마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화목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착한 사람 바나바 본문 24절에 보면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님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착한 사람으로 기록된 사람은 바나바 한 사람입니다. 착하다는 말은 선하다는 말과 같습니다. 착한 것(선한 것)은 다음가 같은 이유에서 중요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입니다.(막10:18)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이가 없느니라"
둘째 하나님의 말씀이 선하기 때문입니다.(히6:5) "하나님의 선한 말씀"
셋째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착한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행4:9)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넷째 거듭난 사람은 선할 일을 위해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엡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심을 받은 자니" 다섯째 착한 행실은 빛의 자녀들이 맺는 열매이기 때문입니다.(엡5:9)"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여섯째 착한 일은 어두운 세상에 빛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일곱째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롬2:10)"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그러면 어떻게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1)착한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딤전1:19에 보면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벧전3:16 에 보면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2)마음에 선을 쌓아야 합니다. 마12:35에 보면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3)선을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선한 마음을 행동으로 옮겨야 선행이 됩니다. 빌1:6에 보면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눅19:17에 "주인에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고 하였습니다. 위로의 사람 바나바, 화목의 사람 바나바, 그리고 착한 사람 바나바는 우리에게 모범적인 인격자로 나타납니다. 목사가 되기 전에 사람이 되라는 교훈을 신학교때 많이 들었습니다. 신앙이 이전에 바른 인격을 소유한다는 것이 이처럼 중요합니다. 바나바의 인격은 우리가 닮아야 할 인격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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