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를 걷는 베드로 (마14:22-33)
본문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걷는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거리낌이 되어 왔습니다. 있을수 없는 일이다. 완전히 조작이다. 상식 밖이다하고 자기 이성대로 생각을 하고 일축해 버리는 것이 지금까지 지성인들 세계에 퍼져 있던 풍조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한 우화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일반적으로 해석을 합니다. 저는 그래요. 이 사건을 신화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벌써 성경을 불에 집어 던졌고 제가 이 자리에 서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성의 판단으로,또 사람의 경험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는 많은 이론을 제가 접해 보았고, 많은 인간의 교만한 소리를 제가 들었지만, 이제 남은 것은 진절머리가 난다. 하는 것 뿐입니다. 도대체 그런 이론이 우리에게 무슨 만족을 주었습니까 어떤 이론이 우리의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었나요 많은 사람,많은 천재들이 각가지 이론과 각가지 지혜를 짜서 이것이 옳다고 말하고 성경이 틀렸다고 주장해 왔습니다만, 도대체 그들이 우리게게 준 두움이 무엇이었습니까 문제 한가지도 풀지를 못하고,모두가 만 남기고 떠났고, 역사는 역사대로 계속되고, 철학은 철학대로 계속되고,과학은 과학대로 계속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만약에 이 땅 위에 자연의 법칙을 초월하는 존재, 우리 이성에 판단하는 존재, 우리의 상식을 벗어나서 존재 하는 하나님이라는 절대자가 계시지 않았다고 한다면, 나이를 먹어 가면서 점점 더 절실히 느끼게 되는 인생의 허무! 생에 대한 모순! 부조리! 그야말로 견딜수 없는 고통! 여기에 대한 해답을 어디에서 찾을까 만약에 해답을 찾지 않고,그 날 그 날을 살아간다면,도대체 나는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는 것일까 생각만 해도 아찔해요 해가 진다음에 다시는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잘못된 말을 믿고 고민하는 사람과 흡사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약에 없다면,과학이론이나 자연질서를 벗어 나는 능력을 행할 수 있는 분이 계시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인생은 태양없는 밤과 같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를 걸어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배를 타고 밤바다를 건너고 있는 중입니다. 풍랑이 몹시 일었습니다.예수님께서 산에서 기도하시다가 너무나 제자들이 풍랑 때문에 고생하시는 것을 보시고 바다를 걸어서 사경에 놓인 제자들에게 찾아가셨습니다. 제자들은 유령이 오는가해서 혼이 빠졌습니다. 소리를 질렀습니다. 배안에 12명 이상의 장년들이 타고 있으니까 어지간한 일로는 소리를 지르고,아우성을 칠 정도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칠흑같은 밤바다,풍랑이 이 이는 속에 나타난 예수님은 물위에 떠서 걸어 오시고 계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공포를 느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럴때에 예수님께서 내니 두려워 말라 말씀하시니까, 베드로가 가로되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해서 바다 위로 걸어 오게 하소서, 예수님은 오라 베드로가 예수님의 명령을 받고는 배에서 내려 물 속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그 내리는 장면을 우리가 영화로 사진이나,영화로 촬영을 했다면 얼마나 멋있었겠씁니까 어떤 배우도 연기할수 없는 멋진 장면이지 않을까요 예수님 앞으로 걸어 갑니다. 바람이 하도 심하게 불고, 불결이 몸을 치고 출렁이는 바람에 기우뚱 거렸습니다. 그러니까 또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이 물 속으로 빠져 들어 갑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오 주여! 나를 건져 주시옵소서! 예수님이 가까이 오셔서 손을 내미시고 믿음이 적은자여 왜 의심하느냐하시고는 붙잡아 건져서 배에 같이 타셨습니다. 배에 있던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의 무릎 앞으로 닥아와서 오! 예수님, 당신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두번 다시 반복되지 아니하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계실 동안만 한 번 있었던 사건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왜 성경에 이 말씀을 기록해 놓았을까 하나님의 아들이 바다 위를 걸었다. 참 놀라운 기적이다!는 하나의 사건을 알려 주기 위해서 기록했을까 그렇다면 너무나 생명이 없는 말씀입니다. 이런 종류의 사건은 예수님 이후에 한번도 다시 반복되지 않았고, 지금도 우리 눈 앞에서 반복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이 주는 영적 교훈은 대단히 풍부합니다. 대단히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세상에 산다는 것은 폭풍 만난 바닷가 에서 노를 젓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항구를 떠날 때에는 순풍을 만나 어려움이 없이 출발을 했던 많은 사람도 얼마 안가서는 폭풍을 만나서 생사를 놓고 필사적인 싸움을 하는 예들을 우리 주변에서 많이 봅니다. 이런 예를 들자면 몇시간을 해도 한이 없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건너 가라고 명령에 복종해서 가는 데도 풍랑이 일었습니다. 그래요 예수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고 하는데도 풍랑이 일어 납니다.절대로 순탄한 길만이 연속되는 것만이 아닙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요나와 같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해 가지고 도망치다가 풍랑을 만나는 경우도 있어요. 하여튼 우리가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이상, 어디를 가든지 풍랑은 항상 오게 마련입니다. 저는 10여년 동안 여름 휴가를 꼭 바닷가에서 보내었는데, 밤바다의 풍랑이 얼마나 무섭고, 엄청난 것인지 잘 압니다. 어떤 때는 텐트 안에 들어 갈수도 없어서 급히 등산용 줄을 구해다가 몇겹으로 묶어 놓고도 날라갈까봐 그 줄을 붙잡고 밤을 새우기도 해보았습니다. 그 바다를 손바닥 만한 배 위에서 헤쳐 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아요. 바다란 정말 믿을수 없는 대상입니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흔들립니다.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모릅니다. 세상 만사가 다 바다 같아요. 여러분 한가지라도 믿고 사는 것 있어요. 무엇을 믿고 삽니까 당신을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하고 질문한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할까요 남편, 자신, 아무도 이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하지 못하더라는 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믿고 살만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적어도 세상을 30-40년만 살아 보았다면 이것 하나만은 철저하게 터득을 합니다. 10대,20대에는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다 좋다고 하지요. 그렇던 가요 믿을 것이 없는 세상이다. 한 때 세상을 지배하던 로마도 무너져 내렸습니다. 어느 국가를 우리는 영원하다고 말할수 없습니다. 인간권력의 뼈아픈 허무함을 우리는 벌써 절실히 느끼고 체험하고 있습니다. 재벌이 세상을 떠났을 때에 그 참 초라하게 관속에 누워있는 모습을 상상만해도 인생이 무엇인가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수 있어요. 쌓아 놓은 재물이 절대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아요. 저는 요즈음 세계 정세를 저 나름대로 보면서, 또 우리 한국의 어려운 형편을 보면서 정말, 바다 같구나!하는 참 믿을 수가 없구나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 런지 도무지 예측을 할 수가 없구나 그래서 집에 들어오면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켭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들어오는 뉴스를 죽 살펴 보구 나서야 아무 일도 없었구나안심을 합니다. 아침에 신문을 보았어도 점심 때에 궁금해지고 안심할 수 없는 게 우리의 삶입니다. 하나님이 아시겠지요. 모든 문제를., 도대체 이제 어떤 것에도 마음을 주고 싶지를 않아요. 어떤 인기있는 사람의 말에도, 신문쪼각에도., 믿을 것이 없어요. 바깥 세상만 바다가 아닙니다. 우리 마음도 바답니다. 항상 쉴사이 없이 풍랑이 오고 갑니다.믿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지요. 불안의 밤이 연속됩니다. 욕심의 바람이 온통 흔들어 놓습니다. 증오와 적대의 바람이 평안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내 마음도 바다요.
2. 풍랑을 헤치고 주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베드로는 주여! 하고 불렀습니다. 나중에 배 위에 올라오셨을 때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당신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고 고백을 했기 때문에 그 분은 주님입니다. 여러분,꼭 기억 하세요. 우리가 세상을 살 동안 주여!하고 부를수 있는 대상은 한분 뿐입니다. 하나님이 한분 뿐이라고 성서에서 가르쳤어요. 주여라고 하는 말은 영어로 lord라고 하는 말로 왕을 부르는 단업니다. 주인이요, 나의 지배자요, 나의 권력잡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요,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질서의 대원인입니다. 그 분이 안계시면 질서도 질서일 수 없고,법칙도 법칙일수 없습니다. 그의 앞에서는 자연도 굴복하게 되고, 바다도 잔잔하게 되고, 모든 인간의 마음이 굴복하게 되고, 모든 인간의 권세가 그 앞에서는 굴복하게 됩니다. 그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모든 악의 세력을 정복하신 승리잡니다. 죄가 예수 앞에서 허리를 걲였습니다. 죽음이 그의 앞에서 산산히 흩어졌습니다. 하늘에 있는 자들이나,땅에 있는 자들이나, 땅 아래 있는 자들이 다 그 앞에서 굴복했습니다. 경배해야 합니다.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한번 열면 닫을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알파와 오매갑니다. 한번 시작하시면 끝을 맺는 분입니다. 모든 역사의 시작이요,모든 역사의 끝입니다. 여러분 이런 분을 아시나요. 이런 분을 아세요 왜 오늘날, 미국을 비롯해서 캠퍼스(대학교)를 기독교가 장악하고 있는지 아세요!! 유명한 사람 하나가 한 말이 저는 적중했다고 봅니다. 왜 많은 젊은이들이 성경을 붙들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 오는지 아세요. 불신의 시대,반항하는 히피와 오랜지족의 타락한 풍조를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 오는지 아세요. 내가 생을 걸고 믿을 수 있는 한분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젊은이들은 이 이론도 좋고,저 이론도 좋으니 네 마음대로 택하라 하더 시대는 지났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던 낭만의 학창시절을 이야기하던 시대가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택하고,그렇게 살아 놓고 보니까 남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내 마음에 평안이 없어요! 그렇게 이성대로 이리저리 방황하다 보니까 속는 것 밖에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니 이래가지고는 안되겠다. 우리가 생을 살기 위해서는 절대불변의 진리라고 주장하는 그 분을 찾아야지! 해서 돌아오는 것이 젊은이들의 경향입니다. 우리의 주님이 누굽니까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 분만이 우리가 믿고 의지할수 있는 분입니다. 예수님의 그 분이 가지고 있는 그의 신분 때문에 만 우리의 주님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이 주는 멧세지가 우리의 멧세지가 우리의 주님이 될 만합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마음의 풍랑이 일어 잠을 이루지 못하던 어떤 사람도 이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 그 마음에 평화가 옵니다. 여러분 경험해 보셨어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 하시니라 히브리서 13:8 그래요. 변하지 않는 분, 흔들리지 않는 분,영원토록 의지해도 괜찮은 분, 항상 내게 찿아와서 안심하라.내니 두려워 말라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곳에는 공포가 사라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곳에는 바다가 잔잔해 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차지하시는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그를 지배합니다. 한분 만이 가능합니다. 그리스도 한분 만이. 믿어 보셔야 압니다. 믿지 못하면 몰라요! 믿으세요!! 의지할 것도 없으면서 그렇게 고집을 세우면 어떻게 해요! 자신감이 있을 때에 고집이지,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고집이에요. 자기 자신도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고집이 그렇게 세나요. 저는 분명히 말씀 드립니다. 가장 지혜로운 방법은 이 주님에게 찾아 오는 겁니다. 아니 풍랑에 허덕이는 우리들을 찾아 오시는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는 것입니다.그리고 그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극장에서 암살 되었습니다. 그 소식은 전 미국을 혼란 속에 빠트렸습니다. 뉴욕에 있는 많은 시민들이 정신 나간 것처럼 멍해 가지고는 큰 거리에 뫃여 들었습니다.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될런지 몰라서 혼란 속에 빠져들었습니다. 그 때에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더니 발코니에 미국 국기를 게양했습니다. 그리고 가필드 장군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여러분, 어두운 구름이 우리를 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지배 하시는 분은 여전히 계십니다. 바로 우리 하나님 입니다.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이 진정을 하고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믿을까요 대한민국의 혼란 속에서 우리의 장래를 점칠수 없는 불안감 속에서 누구를 만나야 됩니까 역사의 주인 되신 그리스도를 만나야 하니다. 주님, 당신은 이 나라를 어떻게 하실렵니까 국가는 변해도 정권은 바뀌어도 모든 정치체제가 수없이 요동을 해도 변함없이 이 나라를 지키시는 분이 계신다면 갈릴리 바다를 찾아 왔던 예수 그리스돕니다. 오늘 그 분이 살아 계세요.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어떤 문제보다도 크신 분입니다. 하난님은 우리가 가진 어떤 문제보다도 크신 분인 것을 믿으세요!
3.믿음은 바다 위를 걷는 기적을 가져다 줍니다. 베드로는 바다 위에 서 있는 분이 주님 인줄 알자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여 물 위로 오라 하소서고 기뻐서 말했습니다. 한가지 분명히 알아 두세요. 신앙은 모험적인 성격을 가집니다. 전투적인 왕자처럼 당당하게 걸어 보자는 기질이 있습니다. 예외없이 모든 사람들은 땅 위를 걸어 다닙니다. 이것이 상식이고,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우리는 바다 위를 걷게 만듭니다. 다른 사람이 두려워 하는 것을 대담하게 도전해 봅니다. 다른 사람은 실패하는 자리에서 믿음은 해 냅니다. 하나님을 믿으라.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워 다다에 던지우라하면 그 말한 것이 이룰줄 알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믿음은 큰 일을 다루기를 좋아합니다. 인간 능력 이상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아요. 저나 여러분이나 마찬가지에요. 도대체 우리 이성으로 판단해도 못할 것,도대체 사람들의 힘으로 못할것, 그것을 믿음으로 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이요. 그것을 하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어요. 내가 무엇이나 할수 있다고 하는 그 사람의 마음에는 믿음은 존재할 만한 자리가 없습니다. 한치의 땅도 없습니다. 스펄전이 아주 재미있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구름이 아닐까 생각되는 곳에 믿음의 발을 가만히 디디고 서면 그 구름 속에 하나님이 큰 바위 하나를 놓아 내 발을 받아 주시는 것을 발견한다. 이것은 경험을 해보지 아니하면 안됩니다. 베드로가 바다에 내려 설 때,뛰어 내렸을 까요. 가많히 내려 섰을까요 아마 가만히 내려왔을 것 같아요. 빠질까 안 빠질까 우리가 어떤 암담한 일을 만납니다. 그야말로 내가 발을 잘못 디디면 빠질 것 같고 인간의 힘으로는 도무지 이 문제 해결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암담한 처지, 마치 구름이 가리워진 것처럼 골짜기에 구름이 가리워서 한번 발을 헛디디면 저 벼랑으로 떨어질 것 같은 어려운 처지에 믿음을 가지고 가만히 발을 한번 내디뎌 보면, 하나님께서 큰 바위 하나를 준비하셔서 내가 받쳐 준다.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믿음이 있는 사람 만이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베드로가 했습니다. 그도 물 위에 섰습니다. 걸었습니다. 신앙은 베드로를 예수님과 같이 만들어 주었습니다. 바다를 정복한 것입니다. 풍랑을 딛고 일어선 것입니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믿음은 나를 예수님과 같은 기적의 사람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나를 믿으라.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었어요! 베드로도 바다 위로 걸었어요. 예수님이 하는 일을 베드로도 했어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믿음으로 가능했습니다. 예수님은 가난보다 큰 분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가난도 예수님을 걲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어떤 가난도 우리를 이기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유혹과 영화를 충분히 이기신 분입니다. 예수님이 그와같이 이기셨다면 우리도 충분히 이길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두려워 하지 않는 용기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고 믿음을 가진다면 용기의 사람이 될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충분히 지고도 남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내 앞에 어떤 십자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다면 서슴치 말고 질수 있는 용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우리를 예수님처럼 만들어 주는 기적을 낳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바다와 같다고 하더라도 믿음은 그 바다를 발로 밟고 걷게 합니다. 아무리 우리 마음이 바다와 같다고 하더라도 그 마음은 믿음 앞에 잠잠해 집니다. 교회 안에서 보면, 어떤 사람은 작은 믿음을 가졌습니다. 천당 가기까지 그 믿음이 밧데리가 나가지 않고 잘 견딜지 모르지만, 한번씩 부흥회에 가서 충전을 시켜기는 해도 힘듭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이 고작한다는 것이 자기로 하여금,고상한 인격 성품을 유지하는데 적당하게 쓰이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 좋아하시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절대로 할수 없는 것을 해내는 믿음입니다. 다시말하면 바다 위로 한번 걸어 보는 믿음입니다. 불가능한 일을 믿음으로 해내는 믿음입니다. 우리 교회도 이런 모험을 해내야 될 것 같아요. 여러분의 가정들도 이런 모험이 을 해내야합니다. 그래서 우리 앞에 있는 이런 고난이 유익합니다. 여러분, 미국은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도 없고,고난도 별로 당하지 않고, 정권이 무너지고 일어서는 이런 위기도 안당하니까 참 좋겠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에게는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는 아주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사람처럼 흐리멍텅한 사람들이 없다고 그래요.
그런데 한국사람 보세요. 이와같은 고난의 연속 속에서 살기 때문에 믿음이 자라요.굉장히 담력이 있습니다. 불가능한 것을 보아도 우리가 해내겠다고 하는 믿음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더욱 크게 쓰시기 위해서 계속해서 믿음을 연단하시는 줄 모릅니다. 이제는 개혁을 통해서 또 하나의 시련을 주시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기독교가 우리 한국에서 꽃피운 것은 아주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의 불굴의 의지력과 잘 맞아요. 우리 교회에도 여러가지 시련이 닥치는 것도 하나님이 단련해서 더 크게 쓰시려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시련을 맞아서 물 위를 걸어 보는 경험을 해야 신앙생활하는 맛이 나는 것 같습니다. 위기를 당했을 때, 온 가족이 기도하고,힘을 합해서 이겨나가 보세요 신앙이 부쩍 자랍니다. 큰 기쁨과 보람이 있습니다. 우리의 가슴에 하나님의 능력이 살아 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은 약점을 가지고 있는 믿음도 보시고 오라고 하십니다. 완전한 믿음 만을 보시고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의심을 가지고 있는 약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향해서도 오라고 하십니다. 멋있어요. 공포가 좀 마음에 있어도 예수님은 오라고 하십니다. 괜찮아요. 비정상이 아니에요. 영적 나그네의 길은 가시밭과 같습니다. 잘 빠집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믿음을 가지고 물위를 몇미터를 걸어 갔다고 하더라도 빠집니다. 오늘날 예수 믿고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내가 중생 받고 은혜 받았으니까 내 믿음의 길은 평탄한 길을 걷겠다 하겠지만, 천만에요. 가시밭길입니다. 하루 아침에는 하얀옷을 입고 계시는 변화산상의 예수님을 만날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은 절망가운데서 허덕이는 좌절의 골짜기에서 울부짖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이에요. 어느날 우리가 자인언트처럼 우리에게 모든 것이 가능하고 불가능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다음날은 어린아이와 같이 나약해져서 조그만한 세상 낙에도 매달려서 칭얼대는 가련한 사람이 될수가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이와같이 빠지는 경우가 자주자주 옵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은 사람이라도 넘어지고 빠집니다. 주님이 그것을 너무나 잘 알지요.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멀리 안가고 늘 우리의 가까이 계세요! 베드로가 빠질 때 옆에 누가 계셨나요 주님이 계셔서 손을 내밀어 붙잡아 주셨어요. 우리의 믿음이 별것인가요. 이런 거에요. 빠지려면 주님이 내미는 손을 붙잡으면 돼요.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공적으로 많이 귀하게 사용하고 많은 사람에게 그 명성을 떨치게 하는 사람에게라고 개인적으로는 가끔 매우 깊은 비천을 체험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많은 사람 앞에서는 화려합니다. 저 사람이야말로 신앙의 어떤 몸부림도 없을 것 같고, 실패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끔 그런 사람들을 문 뒤로 가만히 불러서 그 사람의 가슴 속에 뭍혀 있고, 생활 속에 뭍혀 있는 많은 구역질 나는 것들을 보여 줍니다. 이런 것을 통해서 겸손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왜 나는 이럴까 어제까지 괜찮았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추하고 어리석고 보잘 것 없을까 나는 할 수 없는 놈이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럴 때마다 주님이 여러분을 특별히 관리한다고 생각을 하세요. 보통 때보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관심을 가지고 특별히 다루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4. 우리가 빠질 때 예수님은 이미 손을 내밀고 계신다는 것을 잊어버리지 마십시요. 아무리 예수님처럼 기적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빠집니다. 그럴때는 주님이 손을 내밉니다. 여러분에게 질문을 합니다. 믿음의 본질은 물 위를 걷는 기적의 사람을 만드는데 있습니까 아니면 내가 물에 빠질 때 주여! 나를 건져 주소서 하고 부르짖는 기도에 있습니까 어느 쪽에 있습니까 그러므로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도 기도할 줄 모르면, 그 사람의 믿음은 알아 주어야 합니다. 오늘 이 본문을 가지고 몇가지 부탁을 드렸는데 기억 하시기 바랍니다. 때가 어려울수록 우리가 의지할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바다와 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믿고 바라볼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오늘에 눈물이 있다면 내일은 웃음이 올 것입니다. 오늘 땀흘 흘린다면 시원한 가을 바람 속에서 즐거움과 만족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웃고 지내는 사람에게는 내일 반드시 이를 가는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만약에 없다면,과학이론이나 자연질서를 벗어 나는 능력을 행할 수 있는 분이 계시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인생은 태양없는 밤과 같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를 걸어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배를 타고 밤바다를 건너고 있는 중입니다. 풍랑이 몹시 일었습니다.예수님께서 산에서 기도하시다가 너무나 제자들이 풍랑 때문에 고생하시는 것을 보시고 바다를 걸어서 사경에 놓인 제자들에게 찾아가셨습니다. 제자들은 유령이 오는가해서 혼이 빠졌습니다. 소리를 질렀습니다. 배안에 12명 이상의 장년들이 타고 있으니까 어지간한 일로는 소리를 지르고,아우성을 칠 정도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칠흑같은 밤바다,풍랑이 이 이는 속에 나타난 예수님은 물위에 떠서 걸어 오시고 계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공포를 느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럴때에 예수님께서 내니 두려워 말라 말씀하시니까, 베드로가 가로되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해서 바다 위로 걸어 오게 하소서, 예수님은 오라 베드로가 예수님의 명령을 받고는 배에서 내려 물 속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그 내리는 장면을 우리가 영화로 사진이나,영화로 촬영을 했다면 얼마나 멋있었겠씁니까 어떤 배우도 연기할수 없는 멋진 장면이지 않을까요 예수님 앞으로 걸어 갑니다. 바람이 하도 심하게 불고, 불결이 몸을 치고 출렁이는 바람에 기우뚱 거렸습니다. 그러니까 또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이 물 속으로 빠져 들어 갑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오 주여! 나를 건져 주시옵소서! 예수님이 가까이 오셔서 손을 내미시고 믿음이 적은자여 왜 의심하느냐하시고는 붙잡아 건져서 배에 같이 타셨습니다. 배에 있던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의 무릎 앞으로 닥아와서 오! 예수님, 당신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두번 다시 반복되지 아니하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계실 동안만 한 번 있었던 사건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왜 성경에 이 말씀을 기록해 놓았을까 하나님의 아들이 바다 위를 걸었다. 참 놀라운 기적이다!는 하나의 사건을 알려 주기 위해서 기록했을까 그렇다면 너무나 생명이 없는 말씀입니다. 이런 종류의 사건은 예수님 이후에 한번도 다시 반복되지 않았고, 지금도 우리 눈 앞에서 반복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이 주는 영적 교훈은 대단히 풍부합니다. 대단히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세상에 산다는 것은 폭풍 만난 바닷가 에서 노를 젓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항구를 떠날 때에는 순풍을 만나 어려움이 없이 출발을 했던 많은 사람도 얼마 안가서는 폭풍을 만나서 생사를 놓고 필사적인 싸움을 하는 예들을 우리 주변에서 많이 봅니다. 이런 예를 들자면 몇시간을 해도 한이 없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건너 가라고 명령에 복종해서 가는 데도 풍랑이 일었습니다. 그래요 예수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고 하는데도 풍랑이 일어 납니다.절대로 순탄한 길만이 연속되는 것만이 아닙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요나와 같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해 가지고 도망치다가 풍랑을 만나는 경우도 있어요. 하여튼 우리가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이상, 어디를 가든지 풍랑은 항상 오게 마련입니다. 저는 10여년 동안 여름 휴가를 꼭 바닷가에서 보내었는데, 밤바다의 풍랑이 얼마나 무섭고, 엄청난 것인지 잘 압니다. 어떤 때는 텐트 안에 들어 갈수도 없어서 급히 등산용 줄을 구해다가 몇겹으로 묶어 놓고도 날라갈까봐 그 줄을 붙잡고 밤을 새우기도 해보았습니다. 그 바다를 손바닥 만한 배 위에서 헤쳐 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아요. 바다란 정말 믿을수 없는 대상입니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흔들립니다.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모릅니다. 세상 만사가 다 바다 같아요. 여러분 한가지라도 믿고 사는 것 있어요. 무엇을 믿고 삽니까 당신을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하고 질문한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할까요 남편, 자신, 아무도 이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하지 못하더라는 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믿고 살만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적어도 세상을 30-40년만 살아 보았다면 이것 하나만은 철저하게 터득을 합니다. 10대,20대에는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다 좋다고 하지요. 그렇던 가요 믿을 것이 없는 세상이다. 한 때 세상을 지배하던 로마도 무너져 내렸습니다. 어느 국가를 우리는 영원하다고 말할수 없습니다. 인간권력의 뼈아픈 허무함을 우리는 벌써 절실히 느끼고 체험하고 있습니다. 재벌이 세상을 떠났을 때에 그 참 초라하게 관속에 누워있는 모습을 상상만해도 인생이 무엇인가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수 있어요. 쌓아 놓은 재물이 절대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아요. 저는 요즈음 세계 정세를 저 나름대로 보면서, 또 우리 한국의 어려운 형편을 보면서 정말, 바다 같구나!하는 참 믿을 수가 없구나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 런지 도무지 예측을 할 수가 없구나 그래서 집에 들어오면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켭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들어오는 뉴스를 죽 살펴 보구 나서야 아무 일도 없었구나안심을 합니다. 아침에 신문을 보았어도 점심 때에 궁금해지고 안심할 수 없는 게 우리의 삶입니다. 하나님이 아시겠지요. 모든 문제를., 도대체 이제 어떤 것에도 마음을 주고 싶지를 않아요. 어떤 인기있는 사람의 말에도, 신문쪼각에도., 믿을 것이 없어요. 바깥 세상만 바다가 아닙니다. 우리 마음도 바답니다. 항상 쉴사이 없이 풍랑이 오고 갑니다.믿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지요. 불안의 밤이 연속됩니다. 욕심의 바람이 온통 흔들어 놓습니다. 증오와 적대의 바람이 평안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내 마음도 바다요.
2. 풍랑을 헤치고 주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베드로는 주여! 하고 불렀습니다. 나중에 배 위에 올라오셨을 때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당신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고 고백을 했기 때문에 그 분은 주님입니다. 여러분,꼭 기억 하세요. 우리가 세상을 살 동안 주여!하고 부를수 있는 대상은 한분 뿐입니다. 하나님이 한분 뿐이라고 성서에서 가르쳤어요. 주여라고 하는 말은 영어로 lord라고 하는 말로 왕을 부르는 단업니다. 주인이요, 나의 지배자요, 나의 권력잡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요,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질서의 대원인입니다. 그 분이 안계시면 질서도 질서일 수 없고,법칙도 법칙일수 없습니다. 그의 앞에서는 자연도 굴복하게 되고, 바다도 잔잔하게 되고, 모든 인간의 마음이 굴복하게 되고, 모든 인간의 권세가 그 앞에서는 굴복하게 됩니다. 그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모든 악의 세력을 정복하신 승리잡니다. 죄가 예수 앞에서 허리를 걲였습니다. 죽음이 그의 앞에서 산산히 흩어졌습니다. 하늘에 있는 자들이나,땅에 있는 자들이나, 땅 아래 있는 자들이 다 그 앞에서 굴복했습니다. 경배해야 합니다.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한번 열면 닫을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알파와 오매갑니다. 한번 시작하시면 끝을 맺는 분입니다. 모든 역사의 시작이요,모든 역사의 끝입니다. 여러분 이런 분을 아시나요. 이런 분을 아세요 왜 오늘날, 미국을 비롯해서 캠퍼스(대학교)를 기독교가 장악하고 있는지 아세요!! 유명한 사람 하나가 한 말이 저는 적중했다고 봅니다. 왜 많은 젊은이들이 성경을 붙들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 오는지 아세요. 불신의 시대,반항하는 히피와 오랜지족의 타락한 풍조를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 오는지 아세요. 내가 생을 걸고 믿을 수 있는 한분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젊은이들은 이 이론도 좋고,저 이론도 좋으니 네 마음대로 택하라 하더 시대는 지났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던 낭만의 학창시절을 이야기하던 시대가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택하고,그렇게 살아 놓고 보니까 남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내 마음에 평안이 없어요! 그렇게 이성대로 이리저리 방황하다 보니까 속는 것 밖에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니 이래가지고는 안되겠다. 우리가 생을 살기 위해서는 절대불변의 진리라고 주장하는 그 분을 찾아야지! 해서 돌아오는 것이 젊은이들의 경향입니다. 우리의 주님이 누굽니까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 분만이 우리가 믿고 의지할수 있는 분입니다. 예수님의 그 분이 가지고 있는 그의 신분 때문에 만 우리의 주님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이 주는 멧세지가 우리의 멧세지가 우리의 주님이 될 만합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마음의 풍랑이 일어 잠을 이루지 못하던 어떤 사람도 이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 그 마음에 평화가 옵니다. 여러분 경험해 보셨어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 하시니라 히브리서 13:8 그래요. 변하지 않는 분, 흔들리지 않는 분,영원토록 의지해도 괜찮은 분, 항상 내게 찿아와서 안심하라.내니 두려워 말라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곳에는 공포가 사라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곳에는 바다가 잔잔해 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차지하시는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그를 지배합니다. 한분 만이 가능합니다. 그리스도 한분 만이. 믿어 보셔야 압니다. 믿지 못하면 몰라요! 믿으세요!! 의지할 것도 없으면서 그렇게 고집을 세우면 어떻게 해요! 자신감이 있을 때에 고집이지,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고집이에요. 자기 자신도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고집이 그렇게 세나요. 저는 분명히 말씀 드립니다. 가장 지혜로운 방법은 이 주님에게 찾아 오는 겁니다. 아니 풍랑에 허덕이는 우리들을 찾아 오시는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는 것입니다.그리고 그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극장에서 암살 되었습니다. 그 소식은 전 미국을 혼란 속에 빠트렸습니다. 뉴욕에 있는 많은 시민들이 정신 나간 것처럼 멍해 가지고는 큰 거리에 뫃여 들었습니다.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될런지 몰라서 혼란 속에 빠져들었습니다. 그 때에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더니 발코니에 미국 국기를 게양했습니다. 그리고 가필드 장군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여러분, 어두운 구름이 우리를 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지배 하시는 분은 여전히 계십니다. 바로 우리 하나님 입니다.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이 진정을 하고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믿을까요 대한민국의 혼란 속에서 우리의 장래를 점칠수 없는 불안감 속에서 누구를 만나야 됩니까 역사의 주인 되신 그리스도를 만나야 하니다. 주님, 당신은 이 나라를 어떻게 하실렵니까 국가는 변해도 정권은 바뀌어도 모든 정치체제가 수없이 요동을 해도 변함없이 이 나라를 지키시는 분이 계신다면 갈릴리 바다를 찾아 왔던 예수 그리스돕니다. 오늘 그 분이 살아 계세요.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어떤 문제보다도 크신 분입니다. 하난님은 우리가 가진 어떤 문제보다도 크신 분인 것을 믿으세요!
3.믿음은 바다 위를 걷는 기적을 가져다 줍니다. 베드로는 바다 위에 서 있는 분이 주님 인줄 알자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여 물 위로 오라 하소서고 기뻐서 말했습니다. 한가지 분명히 알아 두세요. 신앙은 모험적인 성격을 가집니다. 전투적인 왕자처럼 당당하게 걸어 보자는 기질이 있습니다. 예외없이 모든 사람들은 땅 위를 걸어 다닙니다. 이것이 상식이고,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우리는 바다 위를 걷게 만듭니다. 다른 사람이 두려워 하는 것을 대담하게 도전해 봅니다. 다른 사람은 실패하는 자리에서 믿음은 해 냅니다. 하나님을 믿으라.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워 다다에 던지우라하면 그 말한 것이 이룰줄 알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믿음은 큰 일을 다루기를 좋아합니다. 인간 능력 이상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아요. 저나 여러분이나 마찬가지에요. 도대체 우리 이성으로 판단해도 못할 것,도대체 사람들의 힘으로 못할것, 그것을 믿음으로 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이요. 그것을 하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어요. 내가 무엇이나 할수 있다고 하는 그 사람의 마음에는 믿음은 존재할 만한 자리가 없습니다. 한치의 땅도 없습니다. 스펄전이 아주 재미있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구름이 아닐까 생각되는 곳에 믿음의 발을 가만히 디디고 서면 그 구름 속에 하나님이 큰 바위 하나를 놓아 내 발을 받아 주시는 것을 발견한다. 이것은 경험을 해보지 아니하면 안됩니다. 베드로가 바다에 내려 설 때,뛰어 내렸을 까요. 가많히 내려 섰을까요 아마 가만히 내려왔을 것 같아요. 빠질까 안 빠질까 우리가 어떤 암담한 일을 만납니다. 그야말로 내가 발을 잘못 디디면 빠질 것 같고 인간의 힘으로는 도무지 이 문제 해결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암담한 처지, 마치 구름이 가리워진 것처럼 골짜기에 구름이 가리워서 한번 발을 헛디디면 저 벼랑으로 떨어질 것 같은 어려운 처지에 믿음을 가지고 가만히 발을 한번 내디뎌 보면, 하나님께서 큰 바위 하나를 준비하셔서 내가 받쳐 준다.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믿음이 있는 사람 만이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베드로가 했습니다. 그도 물 위에 섰습니다. 걸었습니다. 신앙은 베드로를 예수님과 같이 만들어 주었습니다. 바다를 정복한 것입니다. 풍랑을 딛고 일어선 것입니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믿음은 나를 예수님과 같은 기적의 사람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나를 믿으라.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었어요! 베드로도 바다 위로 걸었어요. 예수님이 하는 일을 베드로도 했어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믿음으로 가능했습니다. 예수님은 가난보다 큰 분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가난도 예수님을 걲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어떤 가난도 우리를 이기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유혹과 영화를 충분히 이기신 분입니다. 예수님이 그와같이 이기셨다면 우리도 충분히 이길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두려워 하지 않는 용기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고 믿음을 가진다면 용기의 사람이 될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충분히 지고도 남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내 앞에 어떤 십자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다면 서슴치 말고 질수 있는 용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우리를 예수님처럼 만들어 주는 기적을 낳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바다와 같다고 하더라도 믿음은 그 바다를 발로 밟고 걷게 합니다. 아무리 우리 마음이 바다와 같다고 하더라도 그 마음은 믿음 앞에 잠잠해 집니다. 교회 안에서 보면, 어떤 사람은 작은 믿음을 가졌습니다. 천당 가기까지 그 믿음이 밧데리가 나가지 않고 잘 견딜지 모르지만, 한번씩 부흥회에 가서 충전을 시켜기는 해도 힘듭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이 고작한다는 것이 자기로 하여금,고상한 인격 성품을 유지하는데 적당하게 쓰이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 좋아하시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절대로 할수 없는 것을 해내는 믿음입니다. 다시말하면 바다 위로 한번 걸어 보는 믿음입니다. 불가능한 일을 믿음으로 해내는 믿음입니다. 우리 교회도 이런 모험을 해내야 될 것 같아요. 여러분의 가정들도 이런 모험이 을 해내야합니다. 그래서 우리 앞에 있는 이런 고난이 유익합니다. 여러분, 미국은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도 없고,고난도 별로 당하지 않고, 정권이 무너지고 일어서는 이런 위기도 안당하니까 참 좋겠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에게는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는 아주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사람처럼 흐리멍텅한 사람들이 없다고 그래요.
그런데 한국사람 보세요. 이와같은 고난의 연속 속에서 살기 때문에 믿음이 자라요.굉장히 담력이 있습니다. 불가능한 것을 보아도 우리가 해내겠다고 하는 믿음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더욱 크게 쓰시기 위해서 계속해서 믿음을 연단하시는 줄 모릅니다. 이제는 개혁을 통해서 또 하나의 시련을 주시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기독교가 우리 한국에서 꽃피운 것은 아주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의 불굴의 의지력과 잘 맞아요. 우리 교회에도 여러가지 시련이 닥치는 것도 하나님이 단련해서 더 크게 쓰시려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시련을 맞아서 물 위를 걸어 보는 경험을 해야 신앙생활하는 맛이 나는 것 같습니다. 위기를 당했을 때, 온 가족이 기도하고,힘을 합해서 이겨나가 보세요 신앙이 부쩍 자랍니다. 큰 기쁨과 보람이 있습니다. 우리의 가슴에 하나님의 능력이 살아 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은 약점을 가지고 있는 믿음도 보시고 오라고 하십니다. 완전한 믿음 만을 보시고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의심을 가지고 있는 약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향해서도 오라고 하십니다. 멋있어요. 공포가 좀 마음에 있어도 예수님은 오라고 하십니다. 괜찮아요. 비정상이 아니에요. 영적 나그네의 길은 가시밭과 같습니다. 잘 빠집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믿음을 가지고 물위를 몇미터를 걸어 갔다고 하더라도 빠집니다. 오늘날 예수 믿고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내가 중생 받고 은혜 받았으니까 내 믿음의 길은 평탄한 길을 걷겠다 하겠지만, 천만에요. 가시밭길입니다. 하루 아침에는 하얀옷을 입고 계시는 변화산상의 예수님을 만날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은 절망가운데서 허덕이는 좌절의 골짜기에서 울부짖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이에요. 어느날 우리가 자인언트처럼 우리에게 모든 것이 가능하고 불가능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다음날은 어린아이와 같이 나약해져서 조그만한 세상 낙에도 매달려서 칭얼대는 가련한 사람이 될수가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이와같이 빠지는 경우가 자주자주 옵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은 사람이라도 넘어지고 빠집니다. 주님이 그것을 너무나 잘 알지요.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멀리 안가고 늘 우리의 가까이 계세요! 베드로가 빠질 때 옆에 누가 계셨나요 주님이 계셔서 손을 내밀어 붙잡아 주셨어요. 우리의 믿음이 별것인가요. 이런 거에요. 빠지려면 주님이 내미는 손을 붙잡으면 돼요.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공적으로 많이 귀하게 사용하고 많은 사람에게 그 명성을 떨치게 하는 사람에게라고 개인적으로는 가끔 매우 깊은 비천을 체험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많은 사람 앞에서는 화려합니다. 저 사람이야말로 신앙의 어떤 몸부림도 없을 것 같고, 실패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끔 그런 사람들을 문 뒤로 가만히 불러서 그 사람의 가슴 속에 뭍혀 있고, 생활 속에 뭍혀 있는 많은 구역질 나는 것들을 보여 줍니다. 이런 것을 통해서 겸손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왜 나는 이럴까 어제까지 괜찮았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추하고 어리석고 보잘 것 없을까 나는 할 수 없는 놈이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럴 때마다 주님이 여러분을 특별히 관리한다고 생각을 하세요. 보통 때보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관심을 가지고 특별히 다루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4. 우리가 빠질 때 예수님은 이미 손을 내밀고 계신다는 것을 잊어버리지 마십시요. 아무리 예수님처럼 기적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빠집니다. 그럴때는 주님이 손을 내밉니다. 여러분에게 질문을 합니다. 믿음의 본질은 물 위를 걷는 기적의 사람을 만드는데 있습니까 아니면 내가 물에 빠질 때 주여! 나를 건져 주소서 하고 부르짖는 기도에 있습니까 어느 쪽에 있습니까 그러므로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도 기도할 줄 모르면, 그 사람의 믿음은 알아 주어야 합니다. 오늘 이 본문을 가지고 몇가지 부탁을 드렸는데 기억 하시기 바랍니다. 때가 어려울수록 우리가 의지할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바다와 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믿고 바라볼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오늘에 눈물이 있다면 내일은 웃음이 올 것입니다. 오늘 땀흘 흘린다면 시원한 가을 바람 속에서 즐거움과 만족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웃고 지내는 사람에게는 내일 반드시 이를 가는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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