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저편으로 건너가자 (막4:35-41)
본문
오늘 우리는 민족적으로 경제위기라는 매우 어려운 시기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미국에도 경제 대공황의 시기를 지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 유명한 루즈벨트 대통령은 미국 국민들에게 이런 스피치를 남겼습니다. "미국 국민 여러분, 우리가 이 시점에서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이 있다면 두려워한다는 사실 그 자체 하나뿐입니다." 그는 경제위기나 정치 위기보다도 두려움이란 심리적 상태를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 말은 옳습니다.
왜냐하면 두려워하게 되면 우리는 판단이 흐려지게 되고 행동이 마비가 됩니다. 뭘 해야 될지 모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갈릴리 동편에 가셔서 예수께서 안식도 취하시고 새로운 일을 시작 하고저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건너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무시고 있었는데 풍랑이 일어납니다. 물결이 배에 부딪칩니다. 배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물이 배를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겁에 질린 제자들은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깨웁니다. 예수님이 일어나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두려움을 경계하라고 주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두려움에 사로 잡히게 되면 모든 것이 두려워집니다.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익명의 공포, 미지의 공포, 대상도 알 수 없는 두려움속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요즈음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유우머 시리즈 가운데 무서워 시리즈가 다 생겼어요. 아마 이 얘기를 하면 50대 이상은 하나도 웃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늙었는가를 진단해 볼 수가 있지요. 예를 들어서 공포의 대상 가운데 하나가 자기 자신입니다. 그래서 '무섭나'-내가 무섭다는 뜻이지요 '무서워유' 당신이 내 공포의 대상이 될 수가 있다는 뜻이지요. 남자들은 여자를 두려워합니다. '무서운걸' 그런 것도 있어요. 아직도 못 깨달아 지신 분이 있어요. 여자들은 남자가 두려워집니다. 그래서 '무섭군' 합니다. 요즈음 어떤 사람들은 하두 살 맛이 나지 않으니까 생의 무력증에 시달린 나머지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 사는 것이 너무 공포스러운 나머지 아침에 일어나면 '무섭데이' 그럽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수지로 이사 온 다음에 제일 걱정이 뭐냐하면 비 오는 것이 걱정입니다. 주차할 때 우리 교인들이 고생하지 않을까. 어제도 비가 온다고 예보가 되었거든요. 오늘 정상적으로 하면 비가 와야 되는 겁니다. 그지요 그래서 저는 '무섭지비' 그러고 삽니다. 50대 이상은 한참 생각하고 웃어요. 참 재미있어요. 제가 이런 얘기를 하니까 1부 예배에 참석하신 어떤 분이 목사님 하나 빠졌어요 그래요. 뭐 빠졌습니까 그러니까 모든 것이 무서운 것을 뭐라고 그러는 줄 아세요 '무섭다'래요. 우리가 공포에 사로 잡힌 그러한 시대를 살아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일어나시자 마자 파도와 바다를 잠잠하게 하십니다. 드디어 제자들은 풍랑을 극복하고 예수님과 함께 바다 저 편으로 건너갑니다. 오늘 이 시대의 풍랑, 민족적인 풍랑, 가정적인 풍랑, 이 풍랑을 극복하고 우리가 우리의 꿈이 기다리는 저 편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오늘 본문은 이 풍랑이라는 과정을 직면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렇게 가르칩니다. 풍랑을 직면할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본문의 텍스트를 읽어가면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이런 것입니다. 자, 큰 광풍이 일어났습니다. 물결이 배에 부딪칩니다. 배가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자, 뱃전에 물이 스며들기 시작했고, 심지어 배에 가득하게 되었는데 아직도 예수는 주무시고 있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상황속에서 예수께서는 잠을 청할 수가 있었을까요, 정말 예수님이 주무셨을까 저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처음에는 피곤하니까 주무셨겠지만 자, 광풍이 몰아 부치고 배가 흔들리고, 자, 얼굴에 막 비가 뿌리기 시작하고 물이 들어오고 뱃전에 아우성인데 아직도 주무시고 있었거든요, 저는 예수님이 처음에는 주무셨지만 어느 한 시점에서는 깨어나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주무시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주무시는 것처럼 가만히 계셨을 거예요, 틀림없이. 그럼 왜 일어나지 않으셨나 예수님에게는 한 가지 중요한 의도가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어떻게 이 물결속에, 이 파도에 반응하는가 그것을 보시고 싶어했던 것이예요. 상당히 의도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사건이 '시험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test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test한 사건이다. 이 풍랑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고 싶어하셨던 것입니다. 왜 이런 시험을 하셨을까요 인생의 바다에는 풍랑이 끊이지 않습니다. 하나가 지나가면 또 다른 풍랑이 다가옵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은 경제적인 풍랑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은 인간 관계의 풍랑, 관계가 단절되어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밤을 잘 수 없는 고통의 가슴앓이를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갑자기 한 순간 건강이 꺾여 버린 그런 풍랑을 겪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거대한 풍랑 하나를 겪고 나면 다른 풍랑에는 상당히 자신이 있거든요. 풍랑을 겪을 줄 아는 마음의 준비,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예수께서 이 풍랑을 허용하지 않으셨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이번 경제위기가 왔을 때 기성세대들은 상당히 느긋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6.25와 비슷한 민족사의 풍랑을 겪은 경험이 있습니다. 저는 이번 경제위기가 결코 먼 안목으로 볼 때 우리 민족에게 유해한 결과만을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특별히 젊은 세대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신세대, 제가 지난 주일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information이 많고 똑똑하고 유능하고 유망합니다.
그런데 우리 젊은 세대의 약점중의 하나는 이 어려운 환경을 부딪치는 거센 용기가 좀 부족합니다. 만약 이 풍랑을 지나간다면 우리의 신세대도 저는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습니다. 그런가하면 문제는 뭐냐하면 이 풍랑이 어떤 때는 전혀 예고없이 다가온다는데 우리를 당황시키는 요인이 있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풍랑, 사실 인생의 많은 풍랑은 이런 것들입니다. 갑자기 다가와서 상처를 남기고 홀연히 이 풍랑은 떠나갑니다. 갈릴리 바다의 풍랑이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성지순례를 해 보시면 이 갈릴리라는 이 바다, 갈릴리 바다는요 사방이 산으로 둘러 싸여있어요. 그리고요 저기 앞에 보시면 헬몬산이 보입니다. 아주 높은 산입니다. 이 헬몬산은 해발 2760m, 굉장히 높은 산이지요 그리고 이렇게 보면 항상 눈이 덮여 있어요. 헬몬산에서 차가운 물이 좁은 협곡을 타고 내려와 갈릴리 바다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 갈릴리 바다는 아열대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상당히 덥습니다. 이 찬물이 헬몬산에서부터 내려오면서 이 아열대성의 더운 갈릴리 바다의 표면의 물과 부딪치면서 갈릴리 바다는 예고하지 않았던 급작스런 풍랑을 일으킵니다. 갑작스런 파도가 일어나요. 저는 이 갈릴리 바다야말로 우리 인생에 대한 적절한 심볼, 상징일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이 의외성의 풍랑, 이 환란, 그래서 우리는 더 당황하고 더 불안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시는 여러분! 이런 풍랑은 인생에서 쉴새없이 다가올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준비하라고 주님은 가르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 믿고 신앙을 가졌다는 사실 때문에 풍랑이 면제된다-이렇게 가르치신 적이 없어요.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이 세상에서는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느라' 풍랑의 면제를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풍랑은 오지만 풍랑을 뚫고 나아갈 수가 있다. 마지막 승리자가 될 수가 있다. 여러분 이 약속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너희가 이 세상에서는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느라' 사도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기쁘게 여기라' 여러가지 시험이라는 말을 원어 성경에서 보시면 여러가지 색깔이라는 말입니다. 인생은 형형색색의 시험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시험을 대비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만약 불시험을 당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아라' 우리는 평범한 시험도 있지만 어떤 시험은 불같은 시험,
그런데 이런 불같은 시험을 경험할 때라도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말라 이렇게 성경은 가르칩니다. 사실 본문에 나타난 갈릴리 바다의 풍랑, 제자들이 경험했던 이 풍랑은 오늘 성경에 보시면 큰 광풍이라고 그랬습니다. 희랍어 성경에 보시면 이 '큰'이란 형용사, 수식어가 '메갈레'라는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메가톤급의 풍랑이예요. 거대한 풍랑. 내 삶의 근저를 흔들어 버리는 풍랑, 그리고 내 삶의 존재를 위협할 수 있는 풍랑, 이 거센 풍랑이 덮친 것입니다. 주님은 그러나 이 풍랑만 겪어갈 수 있다면 우리는 인생의 어떤 풍랑에도 승리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풍랑을 허용하신 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가 거센 풍랑이 일고 있는 이 바다를 지나가 우리의 꿈의 언덕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풍랑은 있을 수가 있다. 시련은 있을 수가 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풍랑을 넘어서서 저 바다 건너편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두 번째로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자, 40절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깨어 일어나면서 풍랑이 일어나고 있는 바다를 향해서 명하십니다. 바다야 잠잠하라 그리고 바다는 유리알처럼 투명한 고요한 바다로 변화되었습니다. 자, 이 사건 직후에 예수께서 두 마디 말씀을 하세요. 하나는 너희가 어찌하여 무서워 하느냐, 그리고 또 하나는 뭐에요. 40절에 보시면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이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사랑하시는 여러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전혀 믿음이 없었다 그렇게는 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어부의 직업 포기하고 예수님 좇아 나섰을 때 예수께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예수님이 메시야다, 구세주다, 저 분 따라가면 인생이 변한다, 우리 인생이 희망을 얻을 수가 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신뢰하고 따라 나선 것입니다.
그런데 이 풍랑이 일어났을 때, 이 순간 이 현장 속에서만은 제자들이 흔들리기 시작한 거에요. 저는 이것을 신앙인의 불신앙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의 사람들도 어느 한 순간, 인생의 어느 한 사건 앞에서, 어떤 특수한 한 현장에서만은 전혀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항상 있는 것이지요. 저는 제자들의 입장이 그런 입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자들은 당황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을 흔들어 깨웁니다. 선생님, 선생님 일어나셔 야죠. 우리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어째서 잠만 주무십니까 일어나서 뭔가를 좀 하십시오. 하십시오. 당황하니까 예수님 보고 지시하고 있어요. 예수님 보고 막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런 인생의 에피소드는 언제나 일어 날 수가 있습니다. 한번은 미국의 유명한 헐리우드의 여배우가 비행기를 탔어요. 비행기 타는데 옆에 아주 노신사 한 분이, 멋있게 생긴 노신사 한 분이 있더래요.
그런데 그 분이 자꾸만 기침을 하는 거에요. 콱 콱 하고 계속 기침을 해대는 거에요. 안쓰러워진 여배우가 자기가 마셔야 할 차를, 주스를 드리면서 선생님 감기에는 주스가 최고예요. 주스 많이 마시세요, 물 많이 마시구요, 그리구요, 선생님 제가 마침 약이 하나 있어요. 타이레놀 아스피린 비슷한 약을 드리면서 이 약 잡수세요. 그리고 담요를 내어드리면서 제 담요 푹 한번 싸 보세요, 땀을 내세요, 물 많이 마시고, 담요 싸고 한 잠 주무시고 나면 퍽 괜찮을 거에요. 너무너무 감사해서 이 신사가 죄송하지만 누구십니까. 좀 특별한 여자 같거든요. 저는 헐리우드의 여배우 빌리 벌크라고 합니다. 유명한 사람이래요. 나는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이 노신사가 아 그러냐고 그러면서 손을 내밀면서 나는요 저 메이요크리닉의 닥터 메이욥니다. 그러더래요. 네, 저 유명한 메이요크리닉의 파운더인 닥터 메이요. 공자님 앞에서 문자 쓴 거죠. 우리가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예수님 이렇게 좀 해 주십시오 하고 예수님께 막 지시할 때가 많아요. 자,
그런데 예수님은 잠 들어 있었다 말이죠. 제자들은 주님의 침묵을 견디지 못해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침묵, 혹은 예수님의 평안을, 예수님의 무관심, 예수도 이런 상황, 나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하늘도 무심하다, 하나님도 나에게는 관심이 없다 이렇게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시는 여러분 예수님은 무관심 상태에 있지 않았습니다. 자는 척 하면서 제자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거에요. 그러나 제자들은 그 믿음을 적용시키는일에 실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어떻게 우리가 이런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가진 자가 될 수가 있을까요 여러분, 우리가 제대로 믿음 가지려면 환경만 보아서는 안 되요. 환경만 보아서는 안됩니다. 현실이란 거대한 파도 앞에서 제자들의 믿음은 위축되고 있었고 그 믿음은 고사 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 그 현실에만 우리 인생의 시선을 고정시키면 우리는 위축당합니다. 우리는 낙심합니다. 우리는 좌절합니다. 그럴 때는 여러분, 보려고만 하지 말고 들으려고 하세요 들으려고. 무얼 들어야 하는가 주님의 음성을 들으세요. 그 음성은 작은 음성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나에게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이 고통의 현장, 이 낙심과 불안의 환경, 시련의 역경의 현장 속에서도 주님은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을까 주님의 음성을 들어 보세요. 고요히 말씀하시는 그 분의 음성을 들어 보세요. 두려워 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지 아니 한가. 사랑하시는 여러분. 그 음성 들으면 힘이 나요. 그 믿음은 말씀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그것이 믿음을 일으키는, 그 믿음을 생성시키는, 그 믿음을 성장시키는 원천입니다. 여러분, 저는 성경과 멀리 하면서 신앙 생활 제대로 하는 사람을 본 일이 없어요 여러분, 이런 역경이야말로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열 시간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통해서 주께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음성을 들어 보세요. 이 말씀은 믿음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만 가지면 이길 것입니다. 우리는 재기할 것입니다.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가 풍랑의 바다 건너가려면 주께 대한 믿음, 이 믿음 가지시기 바랍니다. 세번째로, 우리가 이 풍랑의 바다를 건너 저 바다 건너편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세번째로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확신해야합니다. 사실 예수님을 믿으려면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확신 할 수 있어야죠. 자, 오늘 본문에서 보면 예수께서 이제 풍랑이 일고있는 바다를 향해서 명령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바람을, 바다에 일고 있는 바람을 예수님이 꾸짖으셨다 그럤습니다. 꾸짖으셨다 이런 특이한 단어가 사용됩니다. 바람을 꾸짖으셨다. 본래 이 꾸짖는다는 단어는 복음서에 읽어 보시면 예수께서 악령들을, 귀신들을 꾸짖을 때 사용되는 독특한 표현입니다. 그것이 바람을 꾸짖는다 여기에 사용되었어요. 그래서 한 성서 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풍랑의 배후에는 어쩌면 악한 세력, 사단의 역사함이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고통이 악마 때문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고통은 사탄 때문에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나를 좌절시키고, 나를 낙망시키고, 나를 주저앉게 만드는 일의 배후에는 악한 영들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일어나 예수님 처럼 예수님의 권세를 의지하고 꾸짖으셔야합니다. 파도야, 잠잠하라. 고통아, 사라져라. 문제야, 극복될지어다. 예수님의 권세를 갖고 나아가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고통은 극복될 수가 있습니다. 자, 파도와 바람이 잠잠해 졌어요. 이 놀라운 광경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오늘 본문의 마지막에 보면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자, 41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자,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저분이 누구신가 바람과 파도도 잠잠케 하시는 저분은 누구일까 이 질문을 던졌어요.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 신앙 생활의 초기에 우리가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이 있다면 '무엇'이라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무엇을 해줄 수가 있는가 우리는 이런 차원에서 신앙을 접근합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 수가 있을까 이 신앙이 나에게 어떤 유익이 있을까 우리는 이런 실용주의적 차원에서 신앙을 접근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제대로 된 신앙의 사람이 되려면 참된 예수의 제자가 되려면 무엇이라는 질문에서 '누구'라는 질문으로 바뀌어야되요.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그 확신이 없이, 예수가 누구인가에 대한 진정한 신앙의 고백이 없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저분은 누구일까 바람과 파도도 복종하시는 저분은 누구일까 제자들은 어느새 깨닫고 있는 것이예요. 무엇을 깨달았을 까요 바람을 잠잠케 하시는 저분은 바람을 지으신 분이 아닐까 파도를 잠잠케 하시는 저분은 파도를 지으신 분이 아닐까 한순간 그들은 인간 예수의 사실에서 부터 그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이십니다. "Jejus is God" 예수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도 이 고백을 넘어서지 못하고 진정한 크리스챤이 될 수가 없어요. 예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창조자이십니다. 창조자일뿐만 아니라 그는 만믈을 다스리고, 통치하는 섭리자이십니다. 풍랑을 잠잠하게하고 평안을 줄 수가 있는 분, 인간의 내면의 내 마음 속에 있는 풍랑도 잠잠하게 하고, 나를 평화로 인도할 수가 있는 분, 나를 구원할 수가 있는 분, 예수는 구원자. 믿으십니까 예수는 창조자 그리고 예수는 섭리자, 예수는 통치자 그리고 예수는 구원자. 한순간 그들은 신앙의 놀라운 발견 앞에 도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시면, 41절에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본문의 이 텍스트를 잘 공부해 보시면 놀라운 사실은 제자들이 처음에 무서워 했지요
그런데 무서워 한다는 단어하고 41절에 그들이 뭔가를 깨달으면서 두려워했다. 이 두려움의 단어는 다른 단어예요. 다른 단어가 쓰여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의 한 번역에 보면, 이것이 희랍어 원문 번역에 가까운 것인데 영어 번역에 R.S.V. 라는 번역이 있습니다. 'Revised Standard Version'이 있습니다. 그 번역에 보면 41절에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이 낱말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저희가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으로 가득찾다. 영어로 'filled with awe' 'awe' 라는 단어는 우리말의 '어!' 하고 비슷해요. 이것은 아주 놀라움입니다. 경이로움, 한순간 그들은 놀라운 경이 속에 들어가고 있었어요. 그는 예수님을 아마 훌륭한 인간이라고 생각했을지 몰라요. 그러나 한 순간 그들은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한 것입니다. 하나님, 아! 파도와 바람을 잠잠케 하시는 분, 그 순간 그들의 인생은 달라집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다. 예수님이 함께한다. 예수님이 함께한다, 뭐 좋지. 그러나 내가 함께하시는 예수님이 하나님이다. 그러면 문제가 달라지는 거예요. 창조주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전지하신 하나님,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그러면 끝난 것 아니예요 풍랑이 일고 있지만 창조주 하나님,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풍랑이 문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행복은 뭘까요 안정은 뭘까요 그것은 풍랑이 없다. 그것이 안정이 아니예요. 예수가 함께 하신다. 이것이 행복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가 함께 하신다. 이것이 안정이예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이것이 승리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 그밖에 아무 것도 필요없어요. 지금으로부터 약 65년전에 유고슬라비아에 한 딸이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틴 에이저 소녀가 되었습니다. 틴 에이저 시절에 그가 성경의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 속에 불타는 갈망이 생겼습니다. 그는 선교사를 자원했습니다. 카톨릭이었기 때문에 카톨릭 수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도의 캘커타에 왔습니다. 그가 온지 얼마 안되어서 그는 거리를 지나다가 한 병든 여인을 발견합니다. 병들어서 엎어져 있는데 오래된 모양이예요.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어요. 몸의 한쪽은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쥐들이 와서 파먹고 있었습니다. 이 참담한 모습을 바라보고 그는 지나가다가 발걸음을 멈춥니다. 어떻게 할까 그 순간 마음 속에서 이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이 힘없는 연약한 여자가, 아녀자가 무엇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지나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뭐가 당겨요. 마음에서 뭐가 당겨요. '네가 도와야한다.' 그는 순간적으로 이런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저는 못해요.' 그때 이런 음성을 듣습니다. '내가 도와도 못하겠느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가능하겠죠. 그는 돌아 가려던 발걸음을 돌이켜, 가서 이 여인을 들쳐 엎습니다. 자기 집으로 옵니다. 그리고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한사람이 두사람, 세사람 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그 도시에 행정 관리를 찾아가서 마침 그가 머물고 있었던 숙소 곁에 있었던 빈 힌두 템플 하나가 있어서 그 템플을 빌려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클리닉으로 만들었어요. 숫자가 늘어갑니다. 여러분 수년전 이 여인이 세상을 떠나 갔죠 모든 종교를 초월해서 현대의 이 세상을 살아가던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삶의 감동을 남기고 떠나간 마더 테레사의 이야기입니다. 수년 전에 이 여자가 죽기 전에 이 분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영국 BBC 뉴스에 크리스챤 언론인이었던 멀컴 머코리치라는 분이 이 캘커타를 방문해서 이 테레사의 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만 해도 거동이 가능하고, 대화가 가능했기 때문에 테레사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어요. 그가 가만히 병원에서 관찰해 보니까 사람들이 병원에서 봉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행복한 모습이란 말이죠. 그래서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테레사 수녀님에게 '힘들지 않으십니까' 하는 질문을 던졌더니 이런 흥미있는 대답을 했어요. '힘들지요, 힘들지요, 그러나 즐겁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제일 중요한 거예요. 저는 신앙 생활의 요체를 이 간단한 세 마디가 다 요약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힘들지요, 우리가 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힘든게 없어진 것은 아니예요. 힘든건 힘들어요. 힘들지요. 그러나 즐겁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힘들거예요. 이 시기를 지나는 것이 힘들거예요.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즐거울 수가 있습니다. 만약 주님이 함께 하신다. 이 확신만 가질 수 있다면.
왜냐하면 우리가 타고있는 배에 주님이 함께 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믿으십니까 여러분, 본문이 시작되는 맨 처음에 보면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자, 오늘 본문의 시작에는 이런 말씀이 있어요. '그날 저물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그 항해를 제안하신 분이 누구예요 예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그분이 계획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 바다를 건너가자. 제안한 분이 그분이십니다. 그는 이 바다를 건너갈 계획을 갖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풍랑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어요. 우리에게 항해를 제안하신 분, 그리고 이 항해 속에 함께 하시는 저분, 저분이 항해를 계획하셨다면, 이 풍랑도 하나님의 계획의 한 부분일 수가 있습니다. 고난은 뜻이 있습니다. 풍랑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주님만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이 풍랑도 우리에게 플라스를 가져 올 것입니다. 우리가 이 믿음만 있다면, 우리는 바다 저편을 향해서 우리는 다시 용기있게 일어나 우리는 비젼의 항해를 시작할 수가 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야말로 이 파도를 극복하고 인생의 위대한 새로운 창조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우리의 신앙의 고백의 시작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이 위대한 고백을 붙잡으십시요.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즐거울 수가 있습니다. 왜요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이 배에 주님이 함께 타고 계십니다. 그 주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우리 중에 많은 사람들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련과 역경을 경험하고 있는 형제와 자매들이 있습니다. 힘들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여기서 끝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재기할 수가 있고 또 우리는 앞을 향해서 나갈 수가 있습니다. 만약 이 풍랑이 일고 있는 바다, 이 작은 배 그 안에 예수님이 타신 것만 볼 수가 있다면, 상상을 해보세요.
이 시간 여러분 기도의 깊은 묵상 가운데서 갈릴리 바다의 작은 일엽편주의 배를 타고있는 당신의 모습을 그려 보십시요. 당신과 친구들, 가족들이 함께 당황하고 있습니다.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배 한편에, 저 뒷편에 주무시고 있는 예수님이 보이십니까 그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 풍랑 속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고 있습니다. 그분은 조용히 일어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 내가 함께 하고 있지 아니하냐 그는 잠시 후 일어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파도여, 잠잠할 지어다.' 이 주님만 함께 하신다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그 주님 붙잡으세요. 그 주님 의지하세요. 주님! 함께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도와 주세요. 그 주님만이 내 신앙의 새로운 재기의 동력이고 내가 바다 저편을 향해서 승리의 항해를 마침내 이룰 수 있다는 우리의 고백의 근거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 함께하시는 주님 붙잡겠사오니 도와 주시옵소서. 이 말씀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항해가 너무 힘들고, 너무 고달프고,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생각되는 그런 형제와 자매들이 계시죠 조용히 같이 기도할 때 여러분의 가슴에 손을 얹어 보세요. 그리고 함께 기도해 보세요. 주님! 여기 나 혼자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 때문에 가슴이 찢어지고, 가슴이 무거운 형제와 자매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이들을 사랑하시기에 그곁에 다가와 그와 함께 더불어 있기를 즐겨하시는 주님! 저들이 주님이 사랑하시는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딸이 아닙니까 참새 한 마리도 그대로 떨어지기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던 주님, 너희가 참새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던 주님, 저들을 사랑하신다면 그대로 오래 버려두지 말아 주시옵소서. 그곁에 다가와 주시옵소서. 이제 저들의 가슴 속에 그 고통의 풍랑을 진정시켜 주시옵소서. 파도와 물결이 잠자게 도와 주시옵소서. 주님, 능력으로 임하시사 저들의 고통 떠나게 도와 주시옵소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모든 고통과 풍랑은 떠날지어다. 주님 능력으로 임하시사 새로운 용기, 새로운 비젼을 주시사 일어나 주님 손 붙들고, 하나님, 이 항해를 승리롭게 완수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주님 함께 하시니 일어나겠습니다. 능력의 성령님으로 임하여 오시옵소서. 평화를 주시옵소서. 믿음을 더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왜냐하면 두려워하게 되면 우리는 판단이 흐려지게 되고 행동이 마비가 됩니다. 뭘 해야 될지 모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갈릴리 동편에 가셔서 예수께서 안식도 취하시고 새로운 일을 시작 하고저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건너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무시고 있었는데 풍랑이 일어납니다. 물결이 배에 부딪칩니다. 배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물이 배를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겁에 질린 제자들은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깨웁니다. 예수님이 일어나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두려움을 경계하라고 주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두려움에 사로 잡히게 되면 모든 것이 두려워집니다.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익명의 공포, 미지의 공포, 대상도 알 수 없는 두려움속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요즈음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유우머 시리즈 가운데 무서워 시리즈가 다 생겼어요. 아마 이 얘기를 하면 50대 이상은 하나도 웃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늙었는가를 진단해 볼 수가 있지요. 예를 들어서 공포의 대상 가운데 하나가 자기 자신입니다. 그래서 '무섭나'-내가 무섭다는 뜻이지요 '무서워유' 당신이 내 공포의 대상이 될 수가 있다는 뜻이지요. 남자들은 여자를 두려워합니다. '무서운걸' 그런 것도 있어요. 아직도 못 깨달아 지신 분이 있어요. 여자들은 남자가 두려워집니다. 그래서 '무섭군' 합니다. 요즈음 어떤 사람들은 하두 살 맛이 나지 않으니까 생의 무력증에 시달린 나머지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 사는 것이 너무 공포스러운 나머지 아침에 일어나면 '무섭데이' 그럽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수지로 이사 온 다음에 제일 걱정이 뭐냐하면 비 오는 것이 걱정입니다. 주차할 때 우리 교인들이 고생하지 않을까. 어제도 비가 온다고 예보가 되었거든요. 오늘 정상적으로 하면 비가 와야 되는 겁니다. 그지요 그래서 저는 '무섭지비' 그러고 삽니다. 50대 이상은 한참 생각하고 웃어요. 참 재미있어요. 제가 이런 얘기를 하니까 1부 예배에 참석하신 어떤 분이 목사님 하나 빠졌어요 그래요. 뭐 빠졌습니까 그러니까 모든 것이 무서운 것을 뭐라고 그러는 줄 아세요 '무섭다'래요. 우리가 공포에 사로 잡힌 그러한 시대를 살아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일어나시자 마자 파도와 바다를 잠잠하게 하십니다. 드디어 제자들은 풍랑을 극복하고 예수님과 함께 바다 저 편으로 건너갑니다. 오늘 이 시대의 풍랑, 민족적인 풍랑, 가정적인 풍랑, 이 풍랑을 극복하고 우리가 우리의 꿈이 기다리는 저 편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오늘 본문은 이 풍랑이라는 과정을 직면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렇게 가르칩니다. 풍랑을 직면할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본문의 텍스트를 읽어가면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이런 것입니다. 자, 큰 광풍이 일어났습니다. 물결이 배에 부딪칩니다. 배가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자, 뱃전에 물이 스며들기 시작했고, 심지어 배에 가득하게 되었는데 아직도 예수는 주무시고 있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상황속에서 예수께서는 잠을 청할 수가 있었을까요, 정말 예수님이 주무셨을까 저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처음에는 피곤하니까 주무셨겠지만 자, 광풍이 몰아 부치고 배가 흔들리고, 자, 얼굴에 막 비가 뿌리기 시작하고 물이 들어오고 뱃전에 아우성인데 아직도 주무시고 있었거든요, 저는 예수님이 처음에는 주무셨지만 어느 한 시점에서는 깨어나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주무시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주무시는 것처럼 가만히 계셨을 거예요, 틀림없이. 그럼 왜 일어나지 않으셨나 예수님에게는 한 가지 중요한 의도가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어떻게 이 물결속에, 이 파도에 반응하는가 그것을 보시고 싶어했던 것이예요. 상당히 의도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사건이 '시험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test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test한 사건이다. 이 풍랑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고 싶어하셨던 것입니다. 왜 이런 시험을 하셨을까요 인생의 바다에는 풍랑이 끊이지 않습니다. 하나가 지나가면 또 다른 풍랑이 다가옵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은 경제적인 풍랑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은 인간 관계의 풍랑, 관계가 단절되어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밤을 잘 수 없는 고통의 가슴앓이를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갑자기 한 순간 건강이 꺾여 버린 그런 풍랑을 겪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거대한 풍랑 하나를 겪고 나면 다른 풍랑에는 상당히 자신이 있거든요. 풍랑을 겪을 줄 아는 마음의 준비,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예수께서 이 풍랑을 허용하지 않으셨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이번 경제위기가 왔을 때 기성세대들은 상당히 느긋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6.25와 비슷한 민족사의 풍랑을 겪은 경험이 있습니다. 저는 이번 경제위기가 결코 먼 안목으로 볼 때 우리 민족에게 유해한 결과만을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특별히 젊은 세대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신세대, 제가 지난 주일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information이 많고 똑똑하고 유능하고 유망합니다.
그런데 우리 젊은 세대의 약점중의 하나는 이 어려운 환경을 부딪치는 거센 용기가 좀 부족합니다. 만약 이 풍랑을 지나간다면 우리의 신세대도 저는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습니다. 그런가하면 문제는 뭐냐하면 이 풍랑이 어떤 때는 전혀 예고없이 다가온다는데 우리를 당황시키는 요인이 있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풍랑, 사실 인생의 많은 풍랑은 이런 것들입니다. 갑자기 다가와서 상처를 남기고 홀연히 이 풍랑은 떠나갑니다. 갈릴리 바다의 풍랑이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성지순례를 해 보시면 이 갈릴리라는 이 바다, 갈릴리 바다는요 사방이 산으로 둘러 싸여있어요. 그리고요 저기 앞에 보시면 헬몬산이 보입니다. 아주 높은 산입니다. 이 헬몬산은 해발 2760m, 굉장히 높은 산이지요 그리고 이렇게 보면 항상 눈이 덮여 있어요. 헬몬산에서 차가운 물이 좁은 협곡을 타고 내려와 갈릴리 바다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 갈릴리 바다는 아열대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상당히 덥습니다. 이 찬물이 헬몬산에서부터 내려오면서 이 아열대성의 더운 갈릴리 바다의 표면의 물과 부딪치면서 갈릴리 바다는 예고하지 않았던 급작스런 풍랑을 일으킵니다. 갑작스런 파도가 일어나요. 저는 이 갈릴리 바다야말로 우리 인생에 대한 적절한 심볼, 상징일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이 의외성의 풍랑, 이 환란, 그래서 우리는 더 당황하고 더 불안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시는 여러분! 이런 풍랑은 인생에서 쉴새없이 다가올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준비하라고 주님은 가르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 믿고 신앙을 가졌다는 사실 때문에 풍랑이 면제된다-이렇게 가르치신 적이 없어요.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이 세상에서는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느라' 풍랑의 면제를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풍랑은 오지만 풍랑을 뚫고 나아갈 수가 있다. 마지막 승리자가 될 수가 있다. 여러분 이 약속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너희가 이 세상에서는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느라' 사도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기쁘게 여기라' 여러가지 시험이라는 말을 원어 성경에서 보시면 여러가지 색깔이라는 말입니다. 인생은 형형색색의 시험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시험을 대비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만약 불시험을 당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아라' 우리는 평범한 시험도 있지만 어떤 시험은 불같은 시험,
그런데 이런 불같은 시험을 경험할 때라도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말라 이렇게 성경은 가르칩니다. 사실 본문에 나타난 갈릴리 바다의 풍랑, 제자들이 경험했던 이 풍랑은 오늘 성경에 보시면 큰 광풍이라고 그랬습니다. 희랍어 성경에 보시면 이 '큰'이란 형용사, 수식어가 '메갈레'라는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메가톤급의 풍랑이예요. 거대한 풍랑. 내 삶의 근저를 흔들어 버리는 풍랑, 그리고 내 삶의 존재를 위협할 수 있는 풍랑, 이 거센 풍랑이 덮친 것입니다. 주님은 그러나 이 풍랑만 겪어갈 수 있다면 우리는 인생의 어떤 풍랑에도 승리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풍랑을 허용하신 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가 거센 풍랑이 일고 있는 이 바다를 지나가 우리의 꿈의 언덕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풍랑은 있을 수가 있다. 시련은 있을 수가 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풍랑을 넘어서서 저 바다 건너편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두 번째로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자, 40절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깨어 일어나면서 풍랑이 일어나고 있는 바다를 향해서 명하십니다. 바다야 잠잠하라 그리고 바다는 유리알처럼 투명한 고요한 바다로 변화되었습니다. 자, 이 사건 직후에 예수께서 두 마디 말씀을 하세요. 하나는 너희가 어찌하여 무서워 하느냐, 그리고 또 하나는 뭐에요. 40절에 보시면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이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사랑하시는 여러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전혀 믿음이 없었다 그렇게는 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어부의 직업 포기하고 예수님 좇아 나섰을 때 예수께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예수님이 메시야다, 구세주다, 저 분 따라가면 인생이 변한다, 우리 인생이 희망을 얻을 수가 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신뢰하고 따라 나선 것입니다.
그런데 이 풍랑이 일어났을 때, 이 순간 이 현장 속에서만은 제자들이 흔들리기 시작한 거에요. 저는 이것을 신앙인의 불신앙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의 사람들도 어느 한 순간, 인생의 어느 한 사건 앞에서, 어떤 특수한 한 현장에서만은 전혀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항상 있는 것이지요. 저는 제자들의 입장이 그런 입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자들은 당황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을 흔들어 깨웁니다. 선생님, 선생님 일어나셔 야죠. 우리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어째서 잠만 주무십니까 일어나서 뭔가를 좀 하십시오. 하십시오. 당황하니까 예수님 보고 지시하고 있어요. 예수님 보고 막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런 인생의 에피소드는 언제나 일어 날 수가 있습니다. 한번은 미국의 유명한 헐리우드의 여배우가 비행기를 탔어요. 비행기 타는데 옆에 아주 노신사 한 분이, 멋있게 생긴 노신사 한 분이 있더래요.
그런데 그 분이 자꾸만 기침을 하는 거에요. 콱 콱 하고 계속 기침을 해대는 거에요. 안쓰러워진 여배우가 자기가 마셔야 할 차를, 주스를 드리면서 선생님 감기에는 주스가 최고예요. 주스 많이 마시세요, 물 많이 마시구요, 그리구요, 선생님 제가 마침 약이 하나 있어요. 타이레놀 아스피린 비슷한 약을 드리면서 이 약 잡수세요. 그리고 담요를 내어드리면서 제 담요 푹 한번 싸 보세요, 땀을 내세요, 물 많이 마시고, 담요 싸고 한 잠 주무시고 나면 퍽 괜찮을 거에요. 너무너무 감사해서 이 신사가 죄송하지만 누구십니까. 좀 특별한 여자 같거든요. 저는 헐리우드의 여배우 빌리 벌크라고 합니다. 유명한 사람이래요. 나는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이 노신사가 아 그러냐고 그러면서 손을 내밀면서 나는요 저 메이요크리닉의 닥터 메이욥니다. 그러더래요. 네, 저 유명한 메이요크리닉의 파운더인 닥터 메이요. 공자님 앞에서 문자 쓴 거죠. 우리가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예수님 이렇게 좀 해 주십시오 하고 예수님께 막 지시할 때가 많아요. 자,
그런데 예수님은 잠 들어 있었다 말이죠. 제자들은 주님의 침묵을 견디지 못해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침묵, 혹은 예수님의 평안을, 예수님의 무관심, 예수도 이런 상황, 나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하늘도 무심하다, 하나님도 나에게는 관심이 없다 이렇게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시는 여러분 예수님은 무관심 상태에 있지 않았습니다. 자는 척 하면서 제자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거에요. 그러나 제자들은 그 믿음을 적용시키는일에 실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어떻게 우리가 이런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가진 자가 될 수가 있을까요 여러분, 우리가 제대로 믿음 가지려면 환경만 보아서는 안 되요. 환경만 보아서는 안됩니다. 현실이란 거대한 파도 앞에서 제자들의 믿음은 위축되고 있었고 그 믿음은 고사 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 그 현실에만 우리 인생의 시선을 고정시키면 우리는 위축당합니다. 우리는 낙심합니다. 우리는 좌절합니다. 그럴 때는 여러분, 보려고만 하지 말고 들으려고 하세요 들으려고. 무얼 들어야 하는가 주님의 음성을 들으세요. 그 음성은 작은 음성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나에게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이 고통의 현장, 이 낙심과 불안의 환경, 시련의 역경의 현장 속에서도 주님은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을까 주님의 음성을 들어 보세요. 고요히 말씀하시는 그 분의 음성을 들어 보세요. 두려워 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지 아니 한가. 사랑하시는 여러분. 그 음성 들으면 힘이 나요. 그 믿음은 말씀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그것이 믿음을 일으키는, 그 믿음을 생성시키는, 그 믿음을 성장시키는 원천입니다. 여러분, 저는 성경과 멀리 하면서 신앙 생활 제대로 하는 사람을 본 일이 없어요 여러분, 이런 역경이야말로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열 시간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통해서 주께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음성을 들어 보세요. 이 말씀은 믿음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만 가지면 이길 것입니다. 우리는 재기할 것입니다.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가 풍랑의 바다 건너가려면 주께 대한 믿음, 이 믿음 가지시기 바랍니다. 세번째로, 우리가 이 풍랑의 바다를 건너 저 바다 건너편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세번째로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확신해야합니다. 사실 예수님을 믿으려면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확신 할 수 있어야죠. 자, 오늘 본문에서 보면 예수께서 이제 풍랑이 일고있는 바다를 향해서 명령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바람을, 바다에 일고 있는 바람을 예수님이 꾸짖으셨다 그럤습니다. 꾸짖으셨다 이런 특이한 단어가 사용됩니다. 바람을 꾸짖으셨다. 본래 이 꾸짖는다는 단어는 복음서에 읽어 보시면 예수께서 악령들을, 귀신들을 꾸짖을 때 사용되는 독특한 표현입니다. 그것이 바람을 꾸짖는다 여기에 사용되었어요. 그래서 한 성서 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풍랑의 배후에는 어쩌면 악한 세력, 사단의 역사함이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고통이 악마 때문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고통은 사탄 때문에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나를 좌절시키고, 나를 낙망시키고, 나를 주저앉게 만드는 일의 배후에는 악한 영들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일어나 예수님 처럼 예수님의 권세를 의지하고 꾸짖으셔야합니다. 파도야, 잠잠하라. 고통아, 사라져라. 문제야, 극복될지어다. 예수님의 권세를 갖고 나아가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고통은 극복될 수가 있습니다. 자, 파도와 바람이 잠잠해 졌어요. 이 놀라운 광경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오늘 본문의 마지막에 보면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자, 41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자,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저분이 누구신가 바람과 파도도 잠잠케 하시는 저분은 누구일까 이 질문을 던졌어요.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 신앙 생활의 초기에 우리가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이 있다면 '무엇'이라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무엇을 해줄 수가 있는가 우리는 이런 차원에서 신앙을 접근합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 수가 있을까 이 신앙이 나에게 어떤 유익이 있을까 우리는 이런 실용주의적 차원에서 신앙을 접근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제대로 된 신앙의 사람이 되려면 참된 예수의 제자가 되려면 무엇이라는 질문에서 '누구'라는 질문으로 바뀌어야되요.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그 확신이 없이, 예수가 누구인가에 대한 진정한 신앙의 고백이 없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저분은 누구일까 바람과 파도도 복종하시는 저분은 누구일까 제자들은 어느새 깨닫고 있는 것이예요. 무엇을 깨달았을 까요 바람을 잠잠케 하시는 저분은 바람을 지으신 분이 아닐까 파도를 잠잠케 하시는 저분은 파도를 지으신 분이 아닐까 한순간 그들은 인간 예수의 사실에서 부터 그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이십니다. "Jejus is God" 예수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도 이 고백을 넘어서지 못하고 진정한 크리스챤이 될 수가 없어요. 예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창조자이십니다. 창조자일뿐만 아니라 그는 만믈을 다스리고, 통치하는 섭리자이십니다. 풍랑을 잠잠하게하고 평안을 줄 수가 있는 분, 인간의 내면의 내 마음 속에 있는 풍랑도 잠잠하게 하고, 나를 평화로 인도할 수가 있는 분, 나를 구원할 수가 있는 분, 예수는 구원자. 믿으십니까 예수는 창조자 그리고 예수는 섭리자, 예수는 통치자 그리고 예수는 구원자. 한순간 그들은 신앙의 놀라운 발견 앞에 도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시면, 41절에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본문의 이 텍스트를 잘 공부해 보시면 놀라운 사실은 제자들이 처음에 무서워 했지요
그런데 무서워 한다는 단어하고 41절에 그들이 뭔가를 깨달으면서 두려워했다. 이 두려움의 단어는 다른 단어예요. 다른 단어가 쓰여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의 한 번역에 보면, 이것이 희랍어 원문 번역에 가까운 것인데 영어 번역에 R.S.V. 라는 번역이 있습니다. 'Revised Standard Version'이 있습니다. 그 번역에 보면 41절에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이 낱말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저희가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으로 가득찾다. 영어로 'filled with awe' 'awe' 라는 단어는 우리말의 '어!' 하고 비슷해요. 이것은 아주 놀라움입니다. 경이로움, 한순간 그들은 놀라운 경이 속에 들어가고 있었어요. 그는 예수님을 아마 훌륭한 인간이라고 생각했을지 몰라요. 그러나 한 순간 그들은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한 것입니다. 하나님, 아! 파도와 바람을 잠잠케 하시는 분, 그 순간 그들의 인생은 달라집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다. 예수님이 함께한다. 예수님이 함께한다, 뭐 좋지. 그러나 내가 함께하시는 예수님이 하나님이다. 그러면 문제가 달라지는 거예요. 창조주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전지하신 하나님,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그러면 끝난 것 아니예요 풍랑이 일고 있지만 창조주 하나님,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풍랑이 문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행복은 뭘까요 안정은 뭘까요 그것은 풍랑이 없다. 그것이 안정이 아니예요. 예수가 함께 하신다. 이것이 행복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가 함께 하신다. 이것이 안정이예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이것이 승리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 그밖에 아무 것도 필요없어요. 지금으로부터 약 65년전에 유고슬라비아에 한 딸이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틴 에이저 소녀가 되었습니다. 틴 에이저 시절에 그가 성경의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 속에 불타는 갈망이 생겼습니다. 그는 선교사를 자원했습니다. 카톨릭이었기 때문에 카톨릭 수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도의 캘커타에 왔습니다. 그가 온지 얼마 안되어서 그는 거리를 지나다가 한 병든 여인을 발견합니다. 병들어서 엎어져 있는데 오래된 모양이예요.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어요. 몸의 한쪽은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쥐들이 와서 파먹고 있었습니다. 이 참담한 모습을 바라보고 그는 지나가다가 발걸음을 멈춥니다. 어떻게 할까 그 순간 마음 속에서 이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이 힘없는 연약한 여자가, 아녀자가 무엇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지나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뭐가 당겨요. 마음에서 뭐가 당겨요. '네가 도와야한다.' 그는 순간적으로 이런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저는 못해요.' 그때 이런 음성을 듣습니다. '내가 도와도 못하겠느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가능하겠죠. 그는 돌아 가려던 발걸음을 돌이켜, 가서 이 여인을 들쳐 엎습니다. 자기 집으로 옵니다. 그리고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한사람이 두사람, 세사람 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그 도시에 행정 관리를 찾아가서 마침 그가 머물고 있었던 숙소 곁에 있었던 빈 힌두 템플 하나가 있어서 그 템플을 빌려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클리닉으로 만들었어요. 숫자가 늘어갑니다. 여러분 수년전 이 여인이 세상을 떠나 갔죠 모든 종교를 초월해서 현대의 이 세상을 살아가던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삶의 감동을 남기고 떠나간 마더 테레사의 이야기입니다. 수년 전에 이 여자가 죽기 전에 이 분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영국 BBC 뉴스에 크리스챤 언론인이었던 멀컴 머코리치라는 분이 이 캘커타를 방문해서 이 테레사의 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만 해도 거동이 가능하고, 대화가 가능했기 때문에 테레사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어요. 그가 가만히 병원에서 관찰해 보니까 사람들이 병원에서 봉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행복한 모습이란 말이죠. 그래서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테레사 수녀님에게 '힘들지 않으십니까' 하는 질문을 던졌더니 이런 흥미있는 대답을 했어요. '힘들지요, 힘들지요, 그러나 즐겁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제일 중요한 거예요. 저는 신앙 생활의 요체를 이 간단한 세 마디가 다 요약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힘들지요, 우리가 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힘든게 없어진 것은 아니예요. 힘든건 힘들어요. 힘들지요. 그러나 즐겁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힘들거예요. 이 시기를 지나는 것이 힘들거예요.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즐거울 수가 있습니다. 만약 주님이 함께 하신다. 이 확신만 가질 수 있다면.
왜냐하면 우리가 타고있는 배에 주님이 함께 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믿으십니까 여러분, 본문이 시작되는 맨 처음에 보면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자, 오늘 본문의 시작에는 이런 말씀이 있어요. '그날 저물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그 항해를 제안하신 분이 누구예요 예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그분이 계획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 바다를 건너가자. 제안한 분이 그분이십니다. 그는 이 바다를 건너갈 계획을 갖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풍랑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어요. 우리에게 항해를 제안하신 분, 그리고 이 항해 속에 함께 하시는 저분, 저분이 항해를 계획하셨다면, 이 풍랑도 하나님의 계획의 한 부분일 수가 있습니다. 고난은 뜻이 있습니다. 풍랑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주님만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이 풍랑도 우리에게 플라스를 가져 올 것입니다. 우리가 이 믿음만 있다면, 우리는 바다 저편을 향해서 우리는 다시 용기있게 일어나 우리는 비젼의 항해를 시작할 수가 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야말로 이 파도를 극복하고 인생의 위대한 새로운 창조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우리의 신앙의 고백의 시작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이 위대한 고백을 붙잡으십시요.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즐거울 수가 있습니다. 왜요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이 배에 주님이 함께 타고 계십니다. 그 주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우리 중에 많은 사람들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련과 역경을 경험하고 있는 형제와 자매들이 있습니다. 힘들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여기서 끝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재기할 수가 있고 또 우리는 앞을 향해서 나갈 수가 있습니다. 만약 이 풍랑이 일고 있는 바다, 이 작은 배 그 안에 예수님이 타신 것만 볼 수가 있다면, 상상을 해보세요.
이 시간 여러분 기도의 깊은 묵상 가운데서 갈릴리 바다의 작은 일엽편주의 배를 타고있는 당신의 모습을 그려 보십시요. 당신과 친구들, 가족들이 함께 당황하고 있습니다.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배 한편에, 저 뒷편에 주무시고 있는 예수님이 보이십니까 그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 풍랑 속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고 있습니다. 그분은 조용히 일어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 내가 함께 하고 있지 아니하냐 그는 잠시 후 일어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파도여, 잠잠할 지어다.' 이 주님만 함께 하신다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그 주님 붙잡으세요. 그 주님 의지하세요. 주님! 함께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도와 주세요. 그 주님만이 내 신앙의 새로운 재기의 동력이고 내가 바다 저편을 향해서 승리의 항해를 마침내 이룰 수 있다는 우리의 고백의 근거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 함께하시는 주님 붙잡겠사오니 도와 주시옵소서. 이 말씀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항해가 너무 힘들고, 너무 고달프고,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생각되는 그런 형제와 자매들이 계시죠 조용히 같이 기도할 때 여러분의 가슴에 손을 얹어 보세요. 그리고 함께 기도해 보세요. 주님! 여기 나 혼자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 때문에 가슴이 찢어지고, 가슴이 무거운 형제와 자매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이들을 사랑하시기에 그곁에 다가와 그와 함께 더불어 있기를 즐겨하시는 주님! 저들이 주님이 사랑하시는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딸이 아닙니까 참새 한 마리도 그대로 떨어지기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던 주님, 너희가 참새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던 주님, 저들을 사랑하신다면 그대로 오래 버려두지 말아 주시옵소서. 그곁에 다가와 주시옵소서. 이제 저들의 가슴 속에 그 고통의 풍랑을 진정시켜 주시옵소서. 파도와 물결이 잠자게 도와 주시옵소서. 주님, 능력으로 임하시사 저들의 고통 떠나게 도와 주시옵소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모든 고통과 풍랑은 떠날지어다. 주님 능력으로 임하시사 새로운 용기, 새로운 비젼을 주시사 일어나 주님 손 붙들고, 하나님, 이 항해를 승리롭게 완수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주님 함께 하시니 일어나겠습니다. 능력의 성령님으로 임하여 오시옵소서. 평화를 주시옵소서. 믿음을 더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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