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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의 삶 (사53:10요12: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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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예루살렘 입성과 최후의 만찬사이에서 일어난 사건중 하나로 서 헬라 출신 이방인들이 예수께 찾아온 장면을 소개하고 있다. 예루살 렘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배격했지만 온 세계의 이방인들은 예수님을 환영하게 될 것이라는 세계복음화의 비젼을 제시해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예루살렘 입성당시 호산나를 외쳤던 무리들은 후일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또한 외쳤다. 이것은 예수를 이해함에 있어 예수 의 근본 의의를 모르는데서 비롯된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며 섬기는 자 가 되겠노라 하면서도 얼마나 나의 것을 챙기며 움켜쥐었는가 오늘의 나에게서 하나의 밀알처럼 자아가 죽어지는 모습을 발견하는가 오늘 우리는 도처에 교회의 굵은 십자가 네온사인이 홍수를 이루고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수많은 행렬과 그리고 신앙의 홍수시대를 맞 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교회와 수많은 교인들이 있음에도 세상은 더욱 어두워져만가고 또 교회는 세상앞에서 빛된 역할을 그렇게 힘있게 수행 하지 못하고 있음을 본다.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이 왜 일어나야만 되는 가 예수의 제자라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처럼 살지 못하고 그저 우리자신의 개인적인 욕망과 욕심을 쫓아 살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같은 그릇된 삶을 청산하고 예수님을 깊게 넓게 이해하고 예수께서 친히 보여주신 삶의 보범을 따라서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썩어 많은 열매를 맺듯 주님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피와 눈물과 땀을 쏟는 아낌없는 희생과 헌신을 바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각자 자기에게 맡겨진 십자가를 지고 앞서가신 예수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한다. 예수는 진리를 가르치면서 온인류를 구원할 당신의 죽음이 지닌 성 격을 먼저 말씀하신다.
즉 예수님은 한알의 밀이 많은 열매를 맺기위해 땅에 떨어져 반드시 죽어야 하듯 당신께서 십자가에서 반드시 피를 흘 리시고 죽어야지만 죽음으로 치닫고 있던 모든 인루를 구원할 수 있음 을 가르쳐 주었다. 이말씀은 오래전 이사야선지자가 예언한바 "그 영혼 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되며"라는 말씀이 마 침내 응했음을 알려준다. 진실로 아무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거룩한 대속의 죽음은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죽음의 은혜아래 있는 모든 믿는자들에 게 영생이라는 귀한 열매를 창출해 내었다. 한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만민에게 부활과 영생을 준다는 이 희생의 원리는 그분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가야할 삶의 원리를 가르쳐준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 들로서 더 이상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이기심과 자기 생명만을 보존하 려는 안전욕에서 탈피해야 한다. 어느 구도자가 여러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그들에게 산다는 것의 대답 을 구했다. 그가 얻은 산다는 것의 해답은 대략이러했다. 철학자는 대 답하기를 바로 사고(思考)하는 것이 참되게 사는 것이라고 했다. 종교 가는 옳게 믿는것이 바르게 사는 것이라고 했다. 시인은 바로 느끼고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윤리학자는 바른행동을 하는 것이 참되게 사는 것이라고 했으며, 공자는 우리가 생(生)도 모르는데 어찌하여 사(死)를 알겠느냐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곧 산다는 것은 바로 죽는 것이 참사는 것이라고 대 답한다. 이로서 바울은 사는것은 물론이요 죽는것도 유익한것이 된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우리몸에서 죽음으로서 사는 생명의 변화가 시시각각으로 일 어나고 있음을 동위원소(同位元素)를 연구하는 의학자들에 의해서 증명 되었다. 과거 재래의 의학자들은 우리가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고 공기 를 호흡하는 것은 인체의 노폐한 부분만을 신진대사 작용으로 바꾸어 내는 것으로 생각하여 왔다. 그러나 오늘의 의학자들의 연구보고에 의 하면 1년동안에 인체조직은 98%가 재생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공기를 호흡하는 동안에 거기에서 섭취한 새 아톰(New Atorm)으로서 낡은 아톰을 대신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생리 적인 육체도 우리가 알든지 모르든지간에 잠시도 쉬지않고 죽고 없어지 고 새로 나고 하는데 그 육체를 지배한다는 우리의 정신이나 마음에 이 런 변화가 없다면 그런 정신이나 마음은 죽은지 오래된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오래 사느냐라는 문제보다도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 한 문제임을 평생토록 생각해야 한다. 아테나이어스가 그의 스승 쏘크 라테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 일이 있다. "사람들은 먹기위해서 살지만 쏘크라테스 자신만은 살기위해 먹는다"고 그의 스승에게 찬사를 보내며 삶의 목적을 고백했다.' 우리는 살기위해 먹는가 먹기위해서 사는가 산다는 것! 어떻게 사는것! 가을과 더불어 생각키운마음으로 이제(시간)와 여기(장소) 앞에 어떻게 죽을 것인가 라고 하는 숙제들을 풀어가야 한다. 우리나라 여성교육의 선구자이요 신앙의 산증인 김활란박사가 1970년 2월 10일 밤 8시 8분, 서울 서대문구 대신동 85-1 자택에서 향년 71세 로 소천했다. 정부에서는 장례식을 사회장으로 결정하고 장례비로 170 만원의 보조금과 우리나라 1등 수교훈장을 추서했다. 김활란박사는 그 당시 이대 총장 김옥길총장에게 유언하기를 내가 세상을 떠나면 장례식 이라 이름하지 말고 영광과 승리의 노래로 환송예배를 드려달라고 당부 했다. 자기의 부동산인 안양집과 골동품, 도서, 가구등을 학교로 돌리 고 액수가 명시되어 있지 않는 현금은 대학원장학기금 그리고 정동교회 건축기금, 다락방전도협회기금, 여성단체 협의회 회관건립비로 써달라 고 당부했다. 그리고 그의 자서전인 "그 빛 속에 작은 생명"이라는 책 끝에 "하나님의 은혜 속에 축복 받았던 한 작은 생명은 이제 안식의 땅 을 찾아 떠난다"고 밝힌다. 그리고 김박사의 "남기는 부탁"이라는 유언 장에 "인간의 생명이란 영원불멸한 것으로 믿으며 심장의 고동이 그친 다고 해서 내가 죽은것은 아니다"고 말하고 있다. 미련없이 자신있게 하나님나라에 갈 수 있는 마지막의 여유있는 죽음 이 얼마나 믿음의 죽음인가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빅톨유고(Victor Hugo)는 "인생삶의 목적에서 오늘의 목적은 싸우는 것이요, 내일의 목적은 이기는 것이요, 그리고 일생의 목절은 잘죽는 것이다"라고 했다. 인간의 죽음은 생에 있어서 아름답다. 내 인생 미련없이 반납하고 하나님의 품에 안김은 영원한 생명의 죽 음이다. 쉐익스피어의 비극 "멕베스"중에서 "생이란 한개의 걸어가는 그림자 이다. 이는 마치 한 서투른 배우가 무대 위에서 자기의 시간을 활보하 고 지나가고서는 다시는 아무소식도 없이 사라지는 그림자와 같다"고 했다. 덴마크의 실존철학자 키엘케고르(Kierkegard)는 기독교 2천년사의 역 사를 3단계로 보았다. 1단계는 초대교회시대로 순교자시대라 했고, 2 단계는 중세교회시대로 수도사의 시대, 3단계는 근세 기독교시대로 신 학교 교수시대로 되었다고 한탄했다. 순교의 피로 진리를 증거하든 기독교가 수도원의 경건의 기독교를 거쳐 신학교와 교수들의 교리, 이론 으로 교만해 있다고 하는 한탄인 것이다. 오늘의 교회가 역사의 고비고비마다에 나타난 순교자들의 죽음으로 자라나고 부흥했다. 순교자의 피가 바로 교회의 씨가 된 것이다. 신앙 선배들이 순교를 각오하지 않았다면 어찌 오늘 우리의 교회들이 이처럼 힘을 얻을 수 있었을까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꺽고 오직 주님위해 자신을 내놓는 그 거룩한 밀알의 희생이 있었기에 수많은 주의 백성들 이 생겨난 것이다. 일찌기 예수께서는 참제자의 길을 말씀하시면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가르친바 있다. 주를 섬기는 주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생명 곧 육적인 삶과 육적인 욕망을 미워하며 세상으로부터의 낭패와 고통을 각 오하고 심지어 죽음까지도 무릅쓰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 단순히 입술 로 주님을 믿는것과 온몸과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며 주님을 따르는 것 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진정 자기자신을 철저히 부인하고 오직 주님 의 십자가의 길을 갈때 하늘의 신령한 복과 은총이 채워질 것이다. 십자가가 없이는 이같은 영광이 결코없다(No Cross, No Crown). 바로 이 것이 밀알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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