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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적은 자들아 (마8:23-27)

본문

성경을 꺼내어 손에 들고 마태복음 8장 5절에서 13절을 보십시요. 여기 한 백부장이 나옵니다. 그의 믿음을 우리 주님이 마음껏 칭찬 하 십니다. 백부장은 백명의 군대를 거느리는 치안대장입니다. 당시로는 하늘을 호령하고 땅을 울릴만한 권세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의 간청하는 내용이 자신이나 식구들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하 인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일부러 예수님을 채아 온 것입니다. 우리 주 님은 그의 마음 속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10절 하반절은 이렇게 기록 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주님이 이렇게 칭찬 하셨으니 얼마나 훌륭한 믿음입니까. 11절과 12 절의 내용은 이방인의 믿음이 하나님의 본 자손들의 믿음을 참으로 부 끄럽게 한것입니다.
성경을 넘겨서 마태복음 15장 21절에서 28절을 읽으시지요. 흉악한 귀신들려 고생하는 딸을 가진 여인의 믿음이 있습니다. 주님께 딸의 고침을 호소한 이 사람은 수로보니게 여인입니다. 수로보니게는 이방 땅입니다. 예수님이 성장하신 후로 처음 밟아 보신 이방 땅입니다. 어인 일인 지 주님 자신까지도 이 여인을 개취급 하십니다. 당시 선민임을 자긍 하는 유대인들은 사실 이방인을 개취급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마저 그리하신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이방여인의 믿음을 시험하신 것입니다. 그 여인의 믿음은 인정을 받았습니다. 아니 크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말씀 하십니다.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백부장의 믿음은 비교를 불허하는 '이만한 믿음' 이였습니다. 수로 보니게 여인의 믿음은 '큰 믿음' 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크다는 말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세례요한보다 더 큰 이가 없다' 말씀 하 셨던 그런 큰 믿음입니다. 얼마나 훌륭한 믿음들입니까. 성경 시대에 이방인 중에서 이런 믿음의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신기할 정도로 대단한 일입니다. 유대인 중에서도 좋은 믿음 큰 믿음을 채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9장1절에서 8절을 보십시요. 중풍병이 든 친구를 침상채 메고 주님 앞으로 온 친구들의 믿음입니다. 주님은 당사자가 아닌 그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7장 11절에서 19절에는 열사람의 문둥병자들의 믿음을 보 시고 그들을 고쳐 주십니다. 이것은 떼 믿음, 무리 믿음입니다.
또 누가복음 7장 36절에서 50절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믿음도 나옵니다. 예수님의 머리 위에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은 여인의 믿음입니다. 그 여인은 한많은 여인입니다. 죄를 감출 수 없어 천대 받은 여인 입니다. 그는 주님을 생각 하면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씻었습니다. 그 죄 많은 여자에게 주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십니다. 죄의 용서함을 받은 믿음, 구원을 받은 믿음이었으니 얼마나 훌륭한 믿음입니까. 마가복음 10장 46절에서 52절에는 한 소경의 믿음이 나옵니다. 앞을 못보는 소경, 그러나 믿음으로 보는 소경. 얼마나 훌륭한 믿음입니까. 그래서 주님은 소경에게 말씀 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느니라" 성경에는 이런 류의 믿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믿음들 이 우리의 본은 아닙니다. 참으로 우리 믿음의 본은 사도들에게서 채 아야 합니다. 사도들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주님 살 아 생전에 사도들은 꾸중만 듣는 믿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으로 정한 마태복음 8장 23절에서 27절에 보면 주님 은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십니다.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는 마가복음 4장 35절에서 41절의 말씀 중에서는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백부장의 믿음에 대한 칭찬이 있은 후 하신 꾸중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제자들의 믿음이 더 적어 보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믿음에 대하여 적을 뿐만 아니라 아예 없다고 까지 하셨습니다. 과연 제자들의 믿음이 이렇게 보잘 것 없었습니까. 본문을 보십시다. 갈릴리 바다 가에서 주님은 가르치고 계십니다. 날이 저물었습니다. 가르치시기를 마치신 주님은 바다 저편으로 가시고자 했습니다. 주님과 제자들은 배를 탔습니다. 배는 순풍을 타고 항해 했습니다. 피 곤하신 주님은 고물을 베고 잠이 드셨습니다. 바다 한가운데서 그만 일진 광풍이 일었습니다. 갈리리 바다에서 이런 일은 종종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어부들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날은 여늬 때와 달랐습니다. 대부분이 어부 출신인 제자들까지도 꼼짝할 수 없는 없는 광풍 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최선을 다하여 배를 건지려 했지만 가망이 없어 보입니다. 파선 지경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제자들은 잠들어 계시는 주님을 깨웠습니다. 주님이 일어 나셨습니다. 제자들의 모든 상황을 간파 하셨습니다. 주님은 바람을 꾸짖었습니다. 바다더러 잔잔하라 하셨습니다. 일시에 광풍이 멎고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어안이 벙벙한 제자들에게 주님은 꾸짖어 말씀 하십니다. '왜 무서 워 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믿음이 없는 자들아' 제자들은 믿음이 없었을까요. 백부장 보다도, 가나안 여자보다도 믿음이 적었을까요. 여기서 믿음이 없다는 것은 과연 무슨 뜻일까요. 배 가 파손하지 않도록 막지 못했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바다를 잔잔하게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까. 문제는 이렇습니다. 제자들은 바람을 멎게 한다든가, 바다를 잔잔하 게 한다는 것은 아예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파손이나 면하고 목 숨이나 구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방법은 제자들의 생각과는 전연 달랐습니다. 주님은 바람을 멎게 했습니다. 파도를 잠재우신 것입니다. 주님은 상황을 변화 시키 셨습니다. 상황을 변화 시킨다는 것은 상황에 도전하라는 말도 될것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서 요구하시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상황을 변 화 시키는 도전 입니다. 적극적인 믿음입니다. 사실 제자들의 믿음은 훌륭했습니다. 백부장이나 가나안 여인 따위는 감히 따라 올 수 없는 위대한 믿음이었습니다. 같은 유대인들과도 견줄 수 없는 훌륭한 믿음이었습니다.
첫째. 제자들의 믿음은 희생적이었습니다. 생계의 수단인 배와 아버 지까지 버린 제자들입니다. 마태는 세무서 자리를 버렸습니다. 나다나 엘은 무화과 나무 밑에서 기도로 메시아를 구하다가 주님을 만난 믿음 입니다. 위대한 믿음들입니다.
둘째. 끝까지 주님만을 따르겠다는 결심의 믿음이었습니다. 죽는 데 까지 주님을 따르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희생했습니다. 다 가올 어떤 고난과 희생도 감수할 결심의 믿음이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나라를 건국할 믿음이었습니다. 제자들은 한사람도 자신의 몸보신이나 하고 생활의 방편을 채아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로마의 학정을 몰아내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야망을 가진 위대한 꿈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향하여 믿고, 육신으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믿음을 가 지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의 믿음이야 말로 대의적 믿음이요 대국적 믿음으로 참으로 훌륭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왜 이런 제자들의 믿음을 나 무라셨을까요. 주님이 바라시는 믿음의 대상이 각기 달랐습니다. 백부장이나 가나 안 여인, 다른 유대인들에게서는 하나의 믿음을 바라셨는데, 제자들에 게는 천의 믿음을 기대하신 것입니다. 하나의 믿음로도 만족할 백부장 이나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은 그 이상을 나타냈기에 주님은 칭찬하 신 것입니다. 그러나 천의 믿음을 기대하는 제자들에게서는 그 이상의 믿음을 채 아 볼 수 없기에 주님은 꾸중하신 것입니다. 사실 복음서에 나타난 어떤 믿음도 제자들의 믿음을 능가 하지는 못합니다. 만약 저들의 믿음이 제자들의 믿음과 비교할 수 있었다면 주님의 방 법은 달라 지셨을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다. 또는 없 다고 몰아 세우면서도 제자들을 내쫓거나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는 유다까지도 끝까지 용납하시면서 그의 회개를 기다리셨습니다. 주님께로부터 믿음의 칭찬을 받았으면서도 끝까지 주님을 쫓거 나 주님을 위하여 순교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꾸중을 받 은 제자들은 주님을 위하여 모두 순교 했습니다. 믿음의 질이 달랐다는 말씀입니다. 칭찬 받은 믿음과 꾸중 받은 믿음에 어떤 차이가 보입니까. 그러나 그 차이는 엄청나게 큽니다. 백부장이나 많은 유대인들의 믿음은 소아 적 믿음이었습니다. 병이나 고치고 자식 장래나 희망하는 소극적 믿음 이었습니다. 돈이나 잘 벌고 자신만 편하고 행복하면 된다는 소승적 믿음 이었습니다. 이런 믿음은 그릇이 적은 믿음들입니다. 마치 끝이 빨딱 벌어진 사 발과 같은 믿음입니다. 부어 넣기 쉽고 또한 쏟아 내기도 쉬운 그릇과 같습니다. 이런 그릇들은 조금만 부어도 찰찰 넘칩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의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니 이런 믿음을 요구 하고 가르치고 이런 믿음만 아는 신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어쩌면 갈수록 이런 믿음의 경향으로 점점 흘러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손에 만져지는 믿음, 눈에 보이는 믿음, 이런 것들은 기적을 봄으로 서 비로서 믿어지는 믿음인데, 이런 말초적인 믿음들이 마치 믿음이 좋은양 판치고 있는 세상입니다. 돈벌면 하나님의 축복으로 성공 했다 고 합니다. 병고처지면 큰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신 말씀과 같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이요 만져지지 않는 것들을 만지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가 부자되기 위하여 믿는 것은 당연 합니다. 그러나 그것 이 믿음의 목적은 아닙니다. 믿음의 부수적인 결과일 뿐입니다. 병든 자가 주님을 채아 오는 것은 당연 합니다. 그러나 신유의 은사가 복음 을 대신 해서는 안됩니다. 죄인을 구원하는 것은 복음이지 은사가 아 니기 때문입니다. 병을 잘 고치면 위대한 종이되고 축복의 말을 잘해야 신령한 목자가 되는 판단은 어디에 근거해서 믿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이비 믿음들이 기독교의 정통인양 행세하는 세상에 살 고 있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향하여 요구하시던 믿음은 항아리 믿음입니다. 주 둥이는 적지만 부어도 부어도 한없이 채워지는 배가 불둑한 항아리와 같은 믿음입니다. 속 깊은 믿음 입니다. 사발 믿음이 홀짝 거리다가 물이 떨어지면 하늘만 처다 보는 믿음 이라고 한다면 항아리 믿음은 한번 가득 담아 놓으면 비워도 비워도 끄떡없는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닥나지 않는 풍성한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을 저장 믿음이라고도 합니다. 요셉의 믿음입니다. 7년 풍 년동안 요셉은 저장 했습니다. 이방나라 사람들은 먹고 마시자 해버렸 습니다. 7년 흉년이 드니 모든 이방이 논 밭 팔아 돈싸들고 요셉을 채 아 왔습니다. 퍼내고 퍼내어 오는 사람마다 모두 나누어 주었지만 끄 떡이 없었습니다. 바닥이 나지를 않았습니다.
주님은 제자 들에게서 이런 믿음을 요구 하셨기에 제자들에게 믿음 이 적다느니, 믿음이 없다고 꾸중 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3년동안 제자 들에게 이런 믿음을 배양해 주신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충진된 제자 들이기에 세계를 정복하고 만민의 가슴 속 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여 지금도 이 믿음을 부어 주시고 있는 것 입니다. 부어도 부어도 다함이 없는 풍성한 믿음을 제자들은 가졌습니다. 우리는 먼저 구원 얻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내 죄를 대신 짊어지고 돌아 가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머리에 가시관 쓰고 두 손과 두 발에 못박히신 주님의 고난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을 입으로 만이 아니라 가슴으로 생생하게 인정 하면서 믿어 야 합니다. 주님은 죽었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 나셨음도 믿어야 합니다. 지금 주님은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우리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분명하게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 얻는 믿음입니다. 누가 예수를 그렇게 믿지 않는 사람이 있겠느냐고 웃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이 사실을 믿음이 아닌 지식으로만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방송을 청취하시는 자신부터 겸손하게 생각해 보 아야 할것입니다. 또한 예수 믿음을 자기 믿음의 방편으로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소위 보수주의로 자처하는 믿음 좋다는 사람들에게서 더욱 이런 경향 을 채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가져야지 자신을 믿는 믿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자신의 개발이 곧 예수믿음의 능력으로 오 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자신을 미끼로 하는 망상인 것입니다. 오직 우리 주님만을 굳게 믿고 의지하므로 믿음 적은 자들이 되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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