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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없는세대 (막9:14-24)

본문

요새 와서 유달리 논어의 한 구절이 자꾸만 생각이 납니다. 논어 안연(顔淵)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제자 자공이 스승 되는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서 여쭈어 보았습니다. 스승 되는 공자는 아주 간단하게 명료하게 대답했습니다. 나라가 바로 설려면 식량이 넉넉하고 군비가 충실하고 그리고 신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중국말은 함축성 있게 표현됩니다. 족식족병 민신지의(足食足兵 民信之矣)라고 말했습니다. 제자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 세 가지 중에 부득이 하나가 빠져야 한다면 무엇을 뺄 수 있겠습니까그럼 군비를 빼야지" 했습니다. 여기서 군비란 국방문제를 말하고, 식량이란 경제문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제자는 또 물었습니다. "그러면 나머지 둘 중에 또 뺄 수밖에 없다면 무엇을 뺄 수 있겠습니까그럼 식량을 빼야지" 국방문제 아무리 중요하지만 경제문제가 우선이요, 국방보다 경제요. 경제보다 더 중요한 게 신의(信義)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주를 달았습니다. 사람은 어차피 한번 죽는 거야. 다 아무리 경제가 좋아도 언젠가는 다 죽는 거니까 중요한 것은, 사는 동안에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백성의 믿음을 잃어버리면 국가와 정치는 무너진다 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믿을 수 있습니까 저는 서글프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 점입니다. 나라에서 무슨 말을 해도 백성들이 믿으려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는 것이 바보라고 생각합니다. 안 믿는 것이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다시 이야기하고 발표하고 성명을 내도 안 믿겠다는 겁니다. 안 믿기로 마치 결심한 거 같아요.
그렇다면 이 나라는 어떻게 설 수 있는 것입니까.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라고 하는 사람이 'TRUST'라고 하는 유명한 책을 썼습니다. 거기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한 국가의 복지와 경쟁력은 하나의 지배적인 문화특성, 즉 한 사회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신뢰의 수준에 의해서 결정된다." 한 나라가 설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믿음의 문제다. 경제, 정치, 이런 문제가 아니고 문제는 문화 속에 깊이 뿌리 잡은 신의, 얼마나 믿을 수 있느냐, 거기에 달렸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무엇을 믿고 삽니까 누구를 믿고 있습니까 어느 정도 믿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자신의 신의(信義) 지수는 얼마입니까 내가 무슨 말을 할 때 내 자식이 믿어줍니까 내가 내 가까운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얼마나 믿고 있습니까 내 자식을 얼마나 믿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얼마만의 믿음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공산주의의 특징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믿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비밀경찰이 있는 겁니다. 무슨 말을 하고, 명령한 다음에 그의 감시자를 세우고, 감시자 뒤에 또 감시자를 세우고, 공산주의 세계에서는 아무도 못 믿습니다. 마누라도 못 믿습니다. 자식도 못 믿습니다. 아무도 못 믿습니다. 그래서 능력이 없어졌고 그래서 쇠잔했고 그래서 망한 거예요. 비밀이 많아요. 전부다 비밀이요. 그리고 서로서로 믿지 못합니다. 그러면 오늘 이 현대 사회에 가장 특징 중에 하나가 뭐냐하면 투명성이라는 겁니다. 이제 비밀은 없습니다. 비밀이 지켜지리라고 생각도 하지 마세요. 투명성이 있고 그리고 믿음이 있는 것이올시다. 진실이 있을 때 거기에 믿음이 있습니다. 참이 있을 때 거기에 믿음이 있는 것이올시다. 중요한 것은 믿음을 근거로 지식도, 능력도, 권력도 형성되는 것이올시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참 한탄하시듯이, 마치 탄식하시듯이 하신 말씀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겠느냐. 내가 얼마나 더 참아야 하겠느냐" 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한 절의 말씀 속에 믿음이 무엇이냐, 그 속성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아주 명료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믿음을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바른 믿음, 믿음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은 주어지는 것이요, 믿음은 지켜 가는 것이요, 믿음을 키워 가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참아야 되겠느냐, 얼마나 더 함께 있어야 너희들이 믿음의 사람이 되겠느냐.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그 믿음이 무엇인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올라가서 세 제자와 더불어 하룻밤을 신비로운 경험 속에서 지냅니다. 그날 밤에 아홉 제자는 산밑에서 거기서 그대로 머물러 있었고 잠을 잤던 거 같습니다. 아침이 되면서 예수님을 만날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데 그 중에 특별히 어린아이가 귀신들린 아버지, 이 아이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여기저기 헤매다가 모름지기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아이를 데리고 왔다 그 말이요. 전 여기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 만나러 왔으니깐 제자들이 점잖게 "잠깐만 기다리세요.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올 때가 됐습니다. 잠깐만 기다리면 뭐 그까짓 귀신들린 거 문제없습니다.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세요" 이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요.
그런데 이 서툰 제자들이 바로 며칠전에 예수님의 명령을 받아서 둘씩둘씩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귀신을 내어쫓고 병 고친 경험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 과거 경험을 생각하면서 오늘 이까짓 거 못하겠나 해서 저마다 귀신을 내쫓느라고 해 보았어요. 이 아홉 제자가 몽땅 해 본 거예요. 뭐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나니 일어나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나니 나가라, 뭐 별 방법을 다했는데 나가지 않아요. 점점 아이는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이건 기막힌 겁니다 여러분. 여러분 이런 경험해 보셨어요 이 교역자는 종종 이런 경험을 많이 합니다. 귀신들린 사람, 아 그저 내가 기도한 다음에 나가지는 않더라도 소리라도 안 질렀으면 좋겠어요. 안 그래요 이 기도한 다음에 발악을 하고 소리를 지르는 날이면 이거는 정말 힘든 일입니다. 안 그래요
그런데 이 제자들이 이렇게 해 보았는데 다 안된 거예요. 제 경험에도 언젠가 한 번 밤 10시, 10시 반이나 됐는데 제가 밤에 집에 들어갔더니 급한 전화가 왔어요. 부목사님의 다급한 목소리예요. 지금 어떤 집에 귀신들린 사람이 하나 있는데 아, 찾아가서 기도했는데 점점 더 소리를 지른다는 거예요. "이거 큰일 났습니다. 그러니 목사님 좀 도와……귀신들린 사람 그거 뭐 죽지 않아. 내일 아침에 가도 되겠구만. 천천히 가자" 그랬더니, 아니라고 그래요. 그래 가 보았는데 정말 난장판이더라구요. 여러분 오늘 이 본문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예 이 무능한 제자, 이 능력 없는 제자, 이거 망신살이 뻗쳤지. 이런 부끄러운 일이 어디에 있어요. 아홉 명이 대들어 가지고 하나의 귀신들린 어린아이 하나를 제어하지 못했단 말이에요. 부끄러워졌지요. 아주 무능한, 바로 그런 시간에 예수님께서 지금 말씀하시는 겁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겠느냐 얼마나 참아야 되겠냐"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믿음과 능력, 아주 중요한 관계에 있습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무능하고 믿음이 없기 때문에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는 얘기죠. 이 어린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나와서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도와주세요." 이 말은 예수님께 대해서는 큰 모독입니다. 어찌 감히 예수님께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있거든……. 그래 예수님은 아주 단호하게 책망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무슨 희미한 소리냐 이렇게 책망하십니다. 생각해 보세요. 이 아버지가 왜 이랬을 거 같아요. 왜 이럴 수밖에 없었어요 많은 의사들에게 찾아갔다가 못 고쳤습니다. 많은 무당하는 사람들, 무슨 능력 나타낸 사람들 다 찾아 다녔지만 안됐습니다. 모처럼 예수님께 나왔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또 귀신을 내쫓지 못했습니다. 사람에게 이렇게 실망하고,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그리고 이제 예수님 앞에 나와서 예수님도 못 믿는 거예요. 그래서 할 수 있거든, 이라는 희미한, 예수님 대해서는 모독적인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의심, 이 의심이 속에 파고들면 능력이 무너집니다. 모든 관계가 깨집니다. 오늘 여기 보면 그런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고목나무가 하나 있는데 고목나무 위에는 매가 새끼 둥지를 틀고 새끼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목나무 밑에는 멧돼지가 또한 가족이 살았습니다. 이 가끔 이 위에 있는 매가 그 열매를 먹고, 따먹고는 그것을 가끔 떨어뜨리기도 해요. 그러면 밑에 있는 멧돼지가 그것을 주워먹고, 또 멧돼지가 또 이렇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뭘 파서 먹고 또 그리고 부스러기를 남기면은 또 이 매가 내려와서 주워먹고, 이러면서 상부상조하게 재미있게 살았답니다. 이 사이좋게 사는걸 보고 여우라는 놈이 질투를 하고 이간을 붙였어요. 매한테 하는 말이 "너 조심해라. 너 사냥 나가고 없을 때 이 멧돼지가 이 나무를 한번 흔들어 놓으면 저 위에 둥지에 있는 새끼가 땅에 떨어질 거다. 그러면 주워먹고 말 거다." 또 멧돼지에게 말하기를 "너 조심해라. 저 매가 보통 매냐. 너희들 여기서 멀리 사냥 나가면 그 새끼들 다 잡아먹어 버리고 말 거다" 이랬단 말이예요. 듣고 나니까 그럴 거 같거든요. 서로서로 의심을 하기 시작하는데요 결국은 그 집을 나갈 수가 없어요. 멧돼지와 매가 둘 다 굶어 죽었답니다. 의심하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가장 불쾌한 것이 의심받는다는 거죠. 의심하고 의심받고, 이것은 참으로 이건 마지막 심판입니다 이거는요. 그건 망조올시다.
그런데 여러분 믿음이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닙니다. 오늘 내가 누구에게 말하기를 나를 믿어달라고 한다고 믿어줄 수 있습니까 어떻게 믿습니까 믿음이란 점점 키워 가는 것이에요. 그 어디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키워나가서 훌륭한 믿음에 도달하는 것이지 하루아침에 믿어달란다고 뭐 마이크에다 대고 소리를 지른다고 그걸 누가 믿나요. 그걸 어떻게 믿어요. 신의라는 것은 축적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특별히 믿음 있는 자로부터 배우고, 본받고 이렇게 조금씩 키워 가는 겁니다. 그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요새 제가 'CEO가 되는 길' 이라고 하는 책을 하나 읽었습니다. 그 중에 제일 감동 준 부분이 이런 게 있습니다. General Electric, 아주 유명한 미국의 큰 회사에 회장 되는 분입니다. 현재 회장으로 있는 잭 웰치 라고 하는 분이 있는데, 그런 자신이 박사요, 학자요, 그리고 또 이렇게 사업을 잘 경영해서 또 세계적으로 유명한 CEO가 된 그런 분입니다.
그런데 이 분의 말속에 이런 말이 있어요. "내가 오늘날 내가 된 것은" 하고 제일 그 분이 강조하는 것은 투명성이에요. 진실과 투명, 그것으로 오늘의 회사를 이루었는데 그 뿌리는 어디에 있느냐, 하니까 어머니가 나를 믿어주었다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다 안 믿어줄 때도 어머니만은 "나는 너를 믿는다. 너 하고 싶은대로 해라. 나는 너를 믿는다. 잘 될 거다." 여기서 용기를 얻어 가지고 오늘의 내가 되었다고 합니다. 죄송하지만 어머니들에게 묻습니다. 어머니들 내 자식을 얼마나 믿고 있습니까 "나는 너를 믿는다. 네 판단을 믿는다. 네 생각을 믿는다" 이렇게 말씀해 보셨습니까 어쩌면 꼭 반대로 말하데요. "야 내가 속을 줄 아니 턱도 없다 야. 네 꼭대기에 올라앉았다" 요딴 소리 하다가 아이들 다 망쳐버렸어요. 이걸 알아야 되요. 믿음이 없어요. 여러분 눈치 밥 먹고 산 사람은 한평생 믿음 없는 사람이 됩니다. 믿고 믿는다는 건 얼마나 중요합니까 왜 우리는 이렇게 서로 믿지 못하고 살아야 합니까 그래서 제가 결혼주례 할 때마다 부탁하는 게 있어요. 저녁에 남편이 들어올 때 왜 늦었느냐고 묻지마라 그랬어요. 믿어! 그런 일이 있는가 보다 하고. 뭘 가지고 묻긴 뭘 물어 알아서 뭘 하겠다는 거야.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끝. 설명하지 말아. 구구하게 설명할 거 없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믿어. 이게 제일 예쁜 여자예요. 제일 사랑스러운 여자가 아니겠어요. 여러분의 믿음은 어디에 와 있습니까 지금.
그런데 이 훌륭한 믿음 옆에 있으면 나도 믿음의 사람이 되더라 이거예요. 예수님, 놀라운 믿음이죠. 난 예수님의 믿음 생각하면 가끔 인간적으로 좀 그렇게 생각해 볼 때가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고 하니 예수님의 믿음은 대단하다 그래요. 왜요 죽은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의 무덤, 썩은 지 나흘이나 됐는데 그 무덤 앞에 찾아가서 "돌을 옮겨 놓으라. 나사로야 나오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와 만약에 안 나오면 어떡하지 난 언제나 만일을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예수님은 만일이 없어요 만일이. 그 많은 사람까지 데리고 가서 나사로야 나오라고, 와 놀랍습니다. 이러한 위대한 예수님, 그를 따라다니던 제자, 이제 믿음의 사람이 되야 되겠죠. 믿음을 배우게 되죠. 믿음을 모방하게 되죠. 나도 그런 믿음의 사람이 되는 거죠. 이렇게 기원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오늘 예수님 말씀이 "얼마나 참으리요" 그럽니다요. 믿음 있는 사람이 믿음 없는 사람의 행위에 대해서 참아주어야 됩니다. 기다려 주어야 됩니다. 또 믿음을 도와주어야 됩니다. 서로서로 믿음을 도와줘요. 우리 자녀들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우리가 잘 도와주고 협력해야 되요. 도우미가 되어야 합니다. 처음 믿는 사람들, 비판하기 전에 그 믿음을 도와 주어야됩니다. 특별히 오늘 성경말씀에 보면 은총적인 귀한 말씀이 여기에 있어요. 보세요, 이 아이의 아버지가 "할 수만 있거든 뭘 도와주세요" 라고 하잖아요. 이거 불쾌한 소리요. 나 같으면 이 믿음도 없는 놈아 불쌍하다, 저리 치워, 그래 버리고 말겠어요. 그러나 예수님을 그렇지 않아요. 이 믿음 없는 사람을 놓고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주십니다. 믿음을 도와주십니다. 기적을 통하여 믿음을 다시, 재창조 해 주십니다. 이제부터 믿는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예수님의 그 놀라운 인내함과 그 사랑, 그 긍휼 너무너무 고마워요. 믿음 없다고 책망하지 않고, 책망하시면서도 이 믿음을 도와주었다는 거죠. 예수님이 병 고칠 때마다 손을 대기도 하고 그들을 이렇게 한 이유가 뭡니까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서. 기적으로, 놀라운 기적으로 그들의 믿음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래서 믿음 있는 자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James W. Fowler 라고 하는 교수가 있는데 Weaving the New Creation 이라고 하는 유명한 책을 썼는데요, 그 책의 주제가 이렇습니다. 21세기는 확대된 선택의 시대다. 과잉 선택의 범위에 살고 있다. 여러분 이 정보가 홍수가 났어요. 너무 많은 정보, 신문만 해도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다가 방송에다 테레비다 그 다음은 뭡니까 인터넷이다 해 가지고 정보 홍수요. 너무 많아서 뭘 선택해야 될 지 모르겠어요. 이 과잉선택의 기회로 말미암아 정처 없는 마음이 되었어요. 결국은 마음이 방황하게 되고 아무 것도 믿을 수 없게 돼버렸어요. 이것이 현대가 불안하게 된 이유다 하는 말입니다. 지난 27일은, 6월 27일 그런 온 매스컴, 세계적으로 매스컴을 꽉 채운 것이 Genom Revolution 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유전정보인 지놈을 우리가 해독하게 됐다. 이 결과는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고 어쩌면 장수할 수도 있는 그런 기회가 오게 됐다. 온 세계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사실은 이걸 좀 더 잘 알고 보면은 지난 4월 12일 자에 뉴스위크에 이 지놈 프로덕션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된 때가 있었습니다. 이 지놈 프로덕션을 설명하는 그 주제, 그 타이틀이 뭐냐 하면은 "신체의 암호해독", 하고 "신의 영역을 넘보다" 라고 했어요. 이렇게 되면 신의 영역까지 넘보는 게 아니냐 하는 그런 이론입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세요. 6개국에서 무려 1000명이 넘는 연구원들이 13년동안 열심히 연구해 가지고 오늘 여기에 도달하게 됐습니다.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했지만은 사실은 세계적으로 이걸 주도하는 사람은 두 사람입니다. 두 사람 중에 한 사람만 소개합니다. 미국의 국립인간 지놈 연구소, 소위 NHGR
I 라고 하는 기관에 책임자로 있는 프랜시스 콜린스 박사(Dr. Fransis Collins)가 있습니다. 그는 일주일 동안에 100시간을 일을 합니다. 정신없이 이것만 가지고 연구를 합니다.
그런데 이 분은 본래 철저한 무신론자였습니다. 그가 이 지놈을 연구하면서 하나님의 신비의 시계에 접하게 됩니다. 그 진실함과 그 놀라운 역사를 보면서 그는 하나님을 믿게 되고 하나님은 과연 살아 계시다고 증거하면서 지금 아주 독실한 그리스도인이 됐습니다. 여러분, 과학의 기초는 바로 믿음입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해야 합니다. 과학 세계에서는 거짓말이 없습니다. 그 진실한 세계에서 오히려 진실한 과학자들은 과학 연구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21세기, 이 세기를 바로 해득할 수 있는 미래적 소망은 오직 믿음뿐입니다. 과학도 신학도 우리의 믿음도 다 하나님 앞에 진실할 때 하나님을 만나고 우리 하나 하나가 투명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쟁이 있고, 재난이 있고, 지진이 있습니다. 많은 사건, 이게 뭘 말하는 겁니까 하나님 편에서 보면요 오직 하나, 헛된 믿음을 다 버리게 하고 또 하나는 참 믿음을 가지게 하는 것이요. 여러분 내가 왜 손해 봤다고요 믿음이 잘못돼서 믿음 고쳐주시느라고. 못 믿을 걸 믿고 있고 믿어서는 안될 걸 믿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바른 믿음의 세계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역사는 움직이고 있고 사건은 터지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그리스도를 만나는 그 거룩한 역사 앞에 내 마음을 열고 주님을 만나게 될 때, 주님과의 만남에서 그 믿음을 가지게 될 때, 그리스도의 믿음을 내가 받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나를 믿고 이웃을 믿을 수 있게 됩니다. 이제라도 뒤늦었지만은 조금씩 조금씩 믿음을 심어가야 되겠고 믿음을 키워가야 할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 믿음 없는 것을 용서하시고 믿음이 악한 것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어쩌다 이렇게 우리가 믿을 수 없고 때로는 믿어서는 안되는 그런 세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불쌍히 여겨 주시며 이제 우리에게 참 믿음을 주시고 조용히 다시 믿음을 키워가며 믿음을 심어가며 그리고 믿는 자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능력의 사람들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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