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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힘 (빌4:13)

본문

믿음이 무엇인가 성경은 믿음에 관해서 엄청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믿음은 본래 하나님 속에만 있었다. 그것으로 하나님은 엄청난 일을 하신 것이다. 믿음은 창조한다.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아름다 운 자연을 보시고 모든 피조물들을 보셨다. 그리고 믿음으로 그는 명령하 셨다. 그리하여 無는 존재를 만들었고 혼돈은 질서를 주었다. 믿음은 생명을 준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만들었다. 지구뿐 아니라 화성에도 산과 골짜기는 있다. 목성에는 여러 달이 있고 이 거대한 별을 감싼 신비한 띠도 있다. 그러나 생명은 없다. 하나님은 이러한 황량한 자 연에 생명을 불어넣으셨다. 같은 믿음이 죽은 자를 일으킨다. 나사로를 무덤에서 부르고 사라진 인간들의 영혼을 불러 부활을 일으키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타락한 뒤에도 하나님은 계속 믿음을 발휘 하셨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믿도록 믿음을 선물로 주셨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삶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고 하나님의 믿음에 참여하도록 돕고 계신다. 우리가 여기 있는 것도 바로 이 믿음의 덕분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 자녀의 삶을 절대로 살지 못한다. 그저 자기의 힘으로만 살뿐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했다.(히11:6) 또한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라고 했다.(롬 14:23) 믿음은 더 큰 믿음으로 자 라게 한다. 마치 돈 많은 기업이 더욱 돈을 많이 버는 것과 같다. 우리는 믿음이 엄청난 것임을 잘 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절대로 신자의 삶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믿음이 없는 삶은 동물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더 큰 믿음을 갖기 원하신다. 그래서 믿음을 도우신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어떠한 행동도 없어지는게 우리의 목표이다. 모든 행동이 믿음으로 이루어질 때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살게 된다. 고린도 교인들은 기쁨이 충만했었다. 믿음에 섰기 때문이었다.(고후 1:24) 믿음은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준다. 우리가 믿음에 있는가 항상 스스로를 시험하라고 하였다.(13:5) 우리는 믿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 게 그 믿음으로 살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믿음을 더하는 방법도 분명 히 해야 한다. 이 자리를 떠날 때 그만큼 강한 믿음의 사람이 될 것이다. 믿음이 무엇인가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이다.
첫째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안다는 것이요,
둘째 그가 나와 무슨 관계 있는지 아는 것이다. 하나님은 정신적인 대상이 아니다. 그는 실체요 전능의 신이시다. 그는 자기를 믿으라고 명하신다. 이 하나님이 신자들에게는 아버지가 되신다. 언제든지 그의 지극히 거룩한 성소에 들어갈 특권을 가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의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본래 믿음이 없다. 세상 은 험하고 사람들은 악하다. 우리들은 약하다.
그러므로 아무 것에도 믿음이 있을 수 없다. 이미 사회나 세상이나 인간에 대한 믿음은 사라졌다. 겨우 가족만이 연약하기만한 믿음줄로 서로를 지탱할뿐이다. 하나님을 떠 나, 믿음의 샘물을 없어지고 한 컵의 물로 목을 축일뿐이다. 이러한 불신은 하나님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순식간에 이 신앙은 없어져 버린다. 마음에 의심이 들어오면 믿음 을 버린다. 조금만 바쁜 일이 생기거나 주일날 피곤하면 교회를 안나온다. 고통스런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이 존재하는가하고 불평한다. 사고를 당한 뒤에 하나님을 버린 사람들도 많다. 마귀가 우리를 망하게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믿음을 없애 버린다. 가 족 간에 친구 간에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게 만든다. 믿음 이란건 연약한 정신활동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단지 자기 암시요 최 면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득한다. 거기에 말려들 때 사람들은 믿음을 버린다. 사회와 가족과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포기한다. 비참해 진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사람들은 믿음을 잊는다. 그리고 세상의 방법을 따라서 뛰어다닌다. 그 결과는 신자가 아닌 세상 사람으로 바뀌고 만다. 불안해 하고 두려워 한다. 연주회장에 기도해주러 가는 경우가 많다. 믿음의 사람은 흥분 속에도 안정을 유지한다. 하지만 믿음이 없는 신자는 그저 세상 사람과 똑같이 불안에 떨며 신경질적인 태도를 보인다. 하나님의 믿음의 신이시다. 그는 절대로 자신의 확신을 흔들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타락한 인간이다.
그러므로 계속적으로 그 믿음을 받 아야 한다. 즉 믿음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언제나 하나님을 향해서 주파수를 마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한다. 예배에 열심을 다하고 찬양한다. 다른 사람들을 신앙으로 인도한다. 하지만 기도하는 행위나 금식이나 선행 그 자체는 믿음을 주지 못한다. 율법은 믿음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갈 3:12) 기도원에 살고 교회 에 가서 사는 사람도 전혀 불신앙인일 수 있다. 몸은 거룩한 곳에 있지만 여전히 세상적인 인간일뿐이다. 행동 자체만으론 절대로 신앙이 아니다. 하지만 믿음의 기도, 믿음의 행위, 믿음의 금식은 놀라운 힘이 있다. 즉 복음의 지식을 가지고 하는 행동이어야 믿음을 준다. 복음에는 하나님 의 능력이 나타나서 믿음을 준다. 그것만이 사람의 영혼을 변화시킨다. 하나님을 신뢰하게 한다. 믿음을 가지게 한다. 그리고 더 큰 믿음으로 자 라나게 한다. 복음의 지식이 우리를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은 정보를 받아 세상을 판단하고 그것으로 자기의 나갈 길을 결정 한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날 한 사람이 접근해 왔다. 대단히 부정적인 사람이었다. 하는 일은 없이 남 비판만하는 사람이었다. 그를 통해서 들어온 정보는 온통 부정적인 것이었다. 얼마 못가 이 높은 사람은 불안 속에 날을 보내게 된다. 모두 그를 싫어한다고 믿은 것이다. 하나님이 주려고 하는 것은 부정적인 소식이 아니다. 믿음의 말씀이다. 그는 우리를 근본적으로 변하게 했다. 우리 속에 새로운 사람을 재창조하기 위해서 생명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의 능력 을 가지고 살게 하겠다는 것이다. 하나님 스스로가 우리의 보호자요 우리 의 인도자가 되시겠다는 선언이다. 이 복음을 믿을 내용인 것이다. 신자가 되어서까지 사람들은 믿음의 사고에 익숙하지 못하다. 오히려 옛사람의 사고에 익숙해 있다. 그래서 그것을 믿음의 내용으로 가지고 있다. 자신의 약한 경험, 자신의 실패, 부끄러움, 죄책감이 깊은 무의식까 지 사로잡고 있다. 오래 예수를 믿었어도 도무지 믿음이 확실하지 않다. 무엇을 믿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믿음의 삶이 나올리가 없는 것이다. 복음을 듣고 믿음의 지식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에 성경은 말한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 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 라."(호 6:3) 하나님을 알면 그의 믿음을 받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믿음이다.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자들은 이 믿음을 유지하지 못한다. 우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다. 그가 전능하신 분이요 실재하시는 신임을 믿지 못한다. 또한 그가 내 아버지로서 나를 보호하시는 분임을 믿지 못한다. 그러니 자신에 대해서 무슨 믿음이 생기겠는가
그러므로 늘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반석같은 평안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음이 없다.
그러므로 이 믿음을 훈련해야 한다. 먼저 무의식 깊숙히 깔린 불신앙을 몰아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래서 이 복음으로 믿음이 우리의 무의식까지 지배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기도를 하고, 찬양을 하는 것이다. 기도란 행동이 믿음을 주는게 아니라 복음의 지식이 믿어져 영혼을 일으키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가 믿음의 언어를 말하고 믿음의 행동을 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무 의식도 따라서 움직인다. 불신앙이나 악한 언어 행동을 하면 반대로 움직 여 나간다.
그러므로 이단에 가지 말라는 것이다. 잔뜩 경계하고 연구하 려고 갔어도 그들과 함께 박수치고 그 분위기에 잡히면 무의식부터 점령 을 당하게 된다. 결과는 억압이다. 복음의 행동은 언제나 자유를 준다. 어떤 목사가 귀에 병이 들었다. 기도하는 사람이 그 귀에 손을 얹고 말했다. "나는 주께 당신의 고통을 없애달라고 부탁하겠습니다." 목사는 물었다."내가 할일은그저 믿으십시오. 고침받은 자신을 그려보십시 오." 목사는 상대가 기도하는 동안 건강하고 성한 귀를 믿음으로 상상했다. 순식간에 고통은 가벼워졌다. 무의식까지 믿음을 가진 것이다. 많은 신자들이 병 낫기 위해 기도한다. 그러나 믿음을 적용하지 않는다. 단지 아픈 현실만을 보고 믿는다. 무의식적으로 믿지 않고 있다. 돈 에 시달리는 사람도 각종 문제에 잡힌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무의식까지 억압을 받고 있기에 깊은 잠을 들지 못한다.
그러므로 자기의 목표를 이 루고 하나님처럼 자유하기 위해서 믿음의 사고를 연습해야 한다. 한 제자가 있었다. 너무도 실력이 없었다. 그는 자기가 졸업을 해도 막노동 밖에 할 일이 없다고 믿고 있었다. 어느날 내 설교를 듣고 찾아왔다. 나는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를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변화된 자신을 믿으라고 말했다. 무의식에서 그 자신이 일어나도 록 훈련시키라고 했다. 그의 무의식은 저주받은 자신이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원하는 목표를 물었다. 그는 교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교수를 늘 그리고 자신에게 교수가 되라고 말하라 했다. 그렇 게 무의식의 세계까지 믿게 하려는 것이다. 그는 말했다. "저는 너무 늦 었어요. 제 영어실력은 중학생 수준도 않됩니다." 나는 계속 성경의 복음 내용으로 그에게 말해주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라는 것이다. 그는 힘을 얻어서 돌아갔다. 하지만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그는 반 복해 말했다. "아무리 해도 않됩니다. 공부하는게 훈련이 않되었어요. 저는 않됩니다. 나 같은 놈이 무얼하겠습니까" 나는 그에게 처음부터 다시 믿음을 심어줄 수 밖에 없었다. 현실은 아직 믿음을 갖지 못한 것이다. 그러기가 몇 번이고 되풀이 되었다. 얼마 후에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 았다. 졸업한 뒤에 1년쯤 지난 어느날 전화가 왔다. 만나자는 것이다. 조 그만 선물을 들고 나타난 그는 말했다. "너무도 감사합니다. 저는 사흘 후에 워싱톤 주립대학으로 떠납니다." 그는 지금 미시간 대학원에 있다. 결국 믿음의 문에 들어선 것이다. 그리고 그 힘으로 살기 시작한 것이다. 믿음은 회피가 아니다. 아주 적극적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믿음을 도피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나님이 다 해주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아 무 준비도 하지 않는다. 이것은 믿음이 아니다. 믿음은 행동하고 계획한다. 그리고 확실한 목표를 보고 있다. 믿음은 하나님이 자기를 통해서 일 하심을 안다. 그렇게 말하고 행동한다. 그래서 무의식까지도 훈련한다. 반복해 외우라. "하나님의 빛이 나를 비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감싸고 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를 밀어준다. 하나님의 임재가 나 를 지켜 보신다. 어디에 가든지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네." 사랑많고 자비로운 하나님을 그려보라. 어려울 때 복음적 귀절을 외우라. 복음적인 신자와 만나라. 교회에 열심히 나오라. 깊은데서 믿음이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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