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사람 (민13:25-33)
본문
1999년 12월 31일자 타임지 커버에는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큰 얼굴이 독특한 그의 얼굴이 거기에 실렸습니다. 그리고 '펄슨 오브 더 센츄리(Person of the Century)'라고 타이틀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25페이지에 달하는 긴 논문으로 아인슈타인에 대해서 기록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선정되었던 겁니다. 20세기를 그 많은 사건을 요약하면 세 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고 그렇게 타임지는 설명합니다. '더 센츄리 오브 데모크라시(The Century of Democracy)' 민주주의의 승리.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우고 투쟁하고 애쓴 그러한 백년이었다. 또 '더 센츄리 오브 시빌 라이트(The Century of Civil Right)' 소위 인권의 문제, 개인의 문제 이런 문제로 세계는 소득을 얻었고 얼마간의 발전을 본 그러한 백년이었다. 세번째는 '더 센츄리 오브 사이언스 앤 테크놀로지(The Century of Science and Technology)' 과학과 기술의 세기였다 라고 모든 사상을 집약했습니다. 그래서 인문분야에 생각할 때에는 인권문제에 있어서는 인도의 간디가 선정이 되고 정치분야에서는 루즈벨트 대통령이 여기에 뽑혔고 과학기술분야에 있어서는 아인슈타인이 여기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로 지명이 됩니다. 그리고 다시 많은 사람들의 여론, 연구를 집약해서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가장 큰 인물이 누굴까 한 사람만, 한 사람만 뽑아보자 한 결과 앨버트 아인슈타인이 여기에 뽑힌 것이올시다. 그는 과학분야에만 아닙니다.
정치, 문학, 예술 그리고 도덕, 종교 심지어는 신학에까지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여러분 잘 아는 그의 '띠오리 오브 릴레이티비티(Theory of Relativity)', 소위 상대성 원리, 상대성 원리라고 하는 것은 소위 '앱솔루트 레스트(Absolute Rest)' 절대 마진과, 여백과 그리고 '앱솔루트 타임(Absolute Time)' 절대 시간을 폐기 처분하게 됩니다. 알거나 모르거나 우리는 그의 상대성 원리에 많은 영향을 받고 그 속에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적인 것은 없고 상대적인 것만 존재한다. 깊은 철학의 세계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과학의 기초는 진리이다. 과학하는 자세는 믿음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유명한 그의 명언입니다. 모든 거짓과 불신이 사라져갈 때 비로소 진리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되고 믿음을 가질 때 거기서 힘을 얻게되고 능력을 얻게되고 지혜와 평화도 얻게되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다행히 저는 프린스톤 신학과 인연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인슈타인이 살던 집, 제가 공부할 때 그 가까이를, 바로 옆에 있었으니까요. 그는 새벽마다 기도를 했는지 명상을 했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프린스톤 채플에 나가서 기도하고 나오는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보았고 특별히 그 주변에 아인슈타인에 대한 여러 일화가 많이 남아 있어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얼마 전에 프린스톤에 가서 아인슈타인 박사의 그 연구실, 소위 아인슈타인 인스티튜트(Einstein Institute)라고 하는 데를 둘러보았는데 누가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그 분이 조금 더 살아계셨더라면 교회와 우리 신학계를 위해서도 크게 공헌할 수 있을 뻔했다.
왜냐하면은 그는 말년에 더 깊은 신앙을 얻었고 그리고 모든 힘을 한데로 모으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고 그리고 하나님의 세계, 영원한 세계, 신학의 세계를 향해서 생각하고 많은 글을 쓰다가 결국은 글을 마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미국에는 재미있는 학문이 많이 나타나는 중에 성공학 이론이라는 학문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성공하나 그 성공 자체를 연구하는 그런 많은 연구논문, 연구 책들이 나오는데 성공학 이론을 가장 성공적으로 보급하는 출판사가 있습니다. 나이팅게일 콘란트라고 하는 나이팅게일 콘란트 코퍼레이션이라고 하는 회사인데 이 두 분에게 물었습니다. "그 많은 책, 그 많은 이론 다 종합해서 성공의 비결을 간단히 말하면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애티튜드 앤 고울(Attitude and Goal)이라고 했습니다. 자세! 삶의 자세와 그리고 목표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환경을 말합니다. 그러나 환경이 성공을 만들어 주는 건 아닙니다. 환경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어려운 환경은 성공의 지름길이 되는 것이올시다. 또 성공의 계기가 되는 겁니다. 그런고로 주변환경을 탓하는 사람은 영영 구제불능입니다. 문제는 그 모든 환경과 사건에 대하는 내 자세, 나 자신의 문제래요. 내가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고 두 번째는 목표입니다. 그가 세운 뚜렷한 추상적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지향하는 구체적 목표가 분명해야한다 이렇게 말합니다. 다시 묻습니다. 두 가지로 얘기하니까 복잡하니까 하나만 하나로 종합하면 그 성공의 비결은 뭐겠는가 그것은 믿음입니다. 확신이 없는 어떤 성공도 기대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슬퍼하는 것도 믿음이 없기 때문이고 믿을 수 없기 때문이고 믿음이 점점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믿음! 거기에 성공의 길이 있고 삶의 힘이 있고 능력이 함께 하는 것이다. 이걸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으로 지향하는 그 출애굽 역사라고 하는 것은 계시적 역사요 상징적 역사요 그리고 그 속에 무궁무진한 살아있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 속에 구원론이 있고 교회론이 있고 성령론이 있고 그리고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는 사건들이 거기에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시대에 바로 그 자리에 있다고 생각을 하고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그런 여러 가지로 많은 것을 생각하는 중에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참으로 믿음은 귀한 것이요 믿음을 얻기가 어렵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자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열가지 재앙을 겪었습니다.
그 40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희한하고 놀라운 능력 열가지 재앙 내리시는 것을 보고, 또 조그마한 믿음을 얻어 가지고 다시 홍해로 나와서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보고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기적도 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사건들을 보고 이를 통해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만 믿는 믿음을 주시려고 했는데 참 믿음 얻기 어려웠습니다. 힘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보십시다. 예수님과 3년 동안 동행할 때 성경에는 대표적인 사건 몇 가지만 기록합니다만은 얼마나 많은 이적, 얼마나 많은 말씀 들었겠습니까 희한하고 놀라운 것 기적을 많이 보고 보고 보았는데도 또한다는 소리가 "믿음을 더하소서" 주님 앞에 이렇게 간구합니다. 죄송하지만 내가 그 위치라면은 제자들을 꾸짖겠습니다. 이 한심한 사람들아. 안 그렇습니까 이 많은 사건을 보고도 아직도 믿음을 얻지 못했느냐 바른 믿음을 갖지 못했느냐고. 그렇지 않습니까 굳이 이스라엘뿐입니까. 우리가 지금 얼마나 많은 사건을 겪었습니까.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 그리고도 아직도 믿음을 갖지 못했습니다. 바른 믿음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이 얼마나 슬픈 얘기고 얼마나 어려운 얘기입니까. 믿음보다 귀한 일이 없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소중한 선물입니다. 사건을 통해서 기적을 통해서 믿음이 생기지는 않는거 같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엔돌핀이라는 것이 뭔대요. 인터 몰핀입니다. 이 몰핀 맞은 것처럼 마음이 평안해지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이 생기는 거죠. 이런 일이 있어도 저런 일이 있어도 당황하지 않습니다. 이런 엔돌핀이 팍팍 솟아오르는 거 같은 그런, 그런 상태에 살면 남이 뭐라고 하던 말던 나는 나대로 조용한 믿음에 살아갈 수 있는 거예요. 몸도 마음도. 제가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결혼주례를 늘 많이 하는데 그 결혼주례를 할 때에 제가 주례사를 하는데 교인들이 제게 주문을 합니다. 여러 결혼식 하는 걸 참석 했댔으니까. 그래 제가 좀 달리 해 보려고 이렇게 해 보았더니 차별대우한다고 싫어하더라고요. 똑같이 해 달래요 똑같이. 그리고 딱 한마디를 주문을 하는 게 있어요. 그건 우리 이미 결혼한 사람들에게도 많은 은혜가 되니까 그 말씀은 꼭 추가해 주세요 그런다구요. 그래 주문이 뭐냐 그러니까 내가 늘 얘기하잖아요. 신부에게 신랑이 저녁에 늦게 들어와도 왜 늦었느냐고 묻지 마라 그러거든요. 그 말을 꼭 해 달래요. 이게 꼭 필요하대요. 왜 그런지 아십니까 자 저녁에 늦거든 딴에는 사랑한답시고 어디 갔댔냐, 왜 늦었냐, 전화도 없었냐, 뭘 했냐 뭘했냐. 이렇게 형사 취조하듯이 물어보면요 이 취조 당하는 이쪽은 영 믿음이 없어져요. 그때는 절대로 미인이 없습니다. 예쁜 여자 없습니다 그 다음에는요. 그렇게 의심받으면서 내가 이 집에 들어와야 되나 이렇게 된데요. 믿음밖에 없어요. 전적으로 믿어둬. 믿으면 편안하고 좋은걸 이걸 의심해 가지고. 그래 뭘 어쩌자는 거예요. 여러분이 의심이라는 것은 무서운 바이러스예요. 이것이 들어가면 다 망쳐요. 나도 불행해지고 저도 불행해지고 잘못하면 다 죽는 거예요 아주. 믿음. 어리석을 정도로, 어린아이들이 부모님을 믿듯이 말이에요 깨끗하게 믿어두면 그렇게 좋을 걸.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에 대한 믿음을 우리 인간이 갖도록 하시기 위해서 백방으로 갖은 방법으로 이렇게 역사하십니다 믿음을 가지라고. 그런데 그 믿음을 얻기가 이렇게 어려웠다는 얘기고요. 또 하나는 믿음을 가졌을 때 아, 위대한 역사를 나타내세요. 믿음으로 출애굽 했고 믿음으로 홍해를 갈랐고.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홍해가 갈라져서 이렇게 절벽으로 이루었을 때 그 안으로 들어가는게 이 보통 믿음입니까. 이거 물 속으로 들어간 다음에 물이 딱 합치면 어떡하나 이거 보통 믿음이 아니죠 이것만도. 사건마다, 믿음이 있을 때마다 용기가 있고 평화가 있고 찬양이 있었어요. 그건 놀라운 역사예요. 믿음으로 모든 역사를 이길 수 있었어요. 또 하나는 이 믿음을 지켜가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런 모처럼 믿음을 가지고 큰 역사를 이루었다가도 조금 어려운 일 당하면 또 원망하고 또 의심하고 그렇게 그렇게 엎치락뒤치락 한 것이 출애굽의 역사입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본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온통, 그야말로 감사, 찬송, 축제로 바꾸어졌지요. 믿음으로 충만했지요. 그러나 가만히 계산해 보면 열나흘만에 원망을 합니다. 조금 어려운 일이 있고 뭐 물이 마음에 안 들고 또. 원점으로 다시 돌아가는 거예요. 그래 원망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참 믿음 가지기도 어렵고 키워가기도 어렵고 지키기도 어렵다 하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바네아까지 왔지요. 이제 요단강만 건너가면 되는데 바로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의 믿음이 자격미달이요. 믿음 없어요. 믿음 부족해요. 결국은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방향을 돌려서 다시 광야로 돌려보냅니다. 그 행적을 자세히 연구해 보면요 다시 광야로 들여 몰아쳐서 거기서 40년 동안을 훈련을 받고 그 다음에야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은 가데스바네아에 왔을 때에 이 사람들이 열두사람 대표를 보내서 저 가나안 땅을 탐지하게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두 맥락이 있습니다. 본문 민수기에는 탐지라고 되어 있습니다 탐지. 탐지하기 위해서 열두사람을 보내라 그랬고요 신명기 1장 22절에는 정탐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여기선 또. 정탐과 탐지는 다릅니다. 정탐, 탐지라고 하는 것은 단어가 달라요. 이 히브리 원어에 보면은 투어르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 말은 알아보고 또한번 가 본다, 구경한다는 그런 뜻이에요. 한번 알아보는 정도요 이런 게. 그러나 정탐이라는 것은 여기선 뤼가르라고 하는 말은 이것은 갈 수 있을까 없을까 전략을 세우는 거예요. 의심을 가지고 보는 거예요. 할 수 있을까 없을까 이길 수 있을까 이기지 못할까 탐지는 우리가 갈 곳이니까 얼마나 좋은 땅인가 보자 이걸 생각하고 믿음으로 보는 거예요. 전혀 다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탐지하라고 했는데 이 사람들은 가서 정탐하고 왔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보세요. 여기에 정탐하고 온 사람들은 회보하면서 열 대표가 하는 말이요. 악평을 합니다. 그 땅, 거기는 삼키는 땅이요. 사람을 삼키는 땅이요. 못 살 곳입니다. 아낙자손이 있고 장부가 있고 그리고 본래 이 유대사람들이 좀 키가 좀 작지요.
그런데 이렇게 큰 사람들을 보니까 그 사람들 앞에 우리는 메뚜기 같습디다 메뚜기. 자기 자신을 비하시킵니다 아주 그 축소시킵니다. 바로 이 시간에는 과거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에 대한 믿음 하나도 없어요. 기적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믿음이 전혀 없는 겁니다. 그리고 보니까 이렇게 두려워하게 됐고 또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도 없어요. 하나님 믿는 마음, 하나님 말씀을 믿는 마음,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신앙이 한푼어치도 없어요. 그래서 그들은 원망을 하게 됩니다. 이 사회심리학에는 원인귀속이라고 하는 용어가 있습니다. 그 말은 어떤 사건에 대한 원인을 어디로 돌리느냐는 거죠. 내게로 돌리느냐 사회로 돌리느냐 세상으로 돌리느냐. 이 사람들 여기까지 와서 이제 이 어려움을 당하게 될 때 원인을 모세에게 돌립니다. 왜 여기까지 우리를 인도했냐 모세를 죽이겠다고 합니다.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원망, 불평입니다요.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 없는 사람의 모습이요. 그리고 절망하게 됐습니다. 심지어는 죽었더면 좋았을 걸 그럽니다. 그래서 민수기 14장에 보면은 하나님께서 대답을 해주십니다. "오 죽고싶다니까 죽여주마" 그럽니다요. 이런 응답이 나옵니다. "내 귀에 들리는 데로 행하리라" 아, 무서운 말씀입니다. 그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많이 광야에 엎드려집니다. 왜 믿음이 없어서. 믿음이 없어서. 그런가하면 믿음 있는 사람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렇지 않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거기에 포도 한 송이를 둘이 매고 와서 보라고 하고 자랑을 합니다. 제가요 어렸을 때 성경을 읽으면서 포도가 얼마나 크면 한 송이를 둘이 매고 왔나. 이건 좀 과장이다 이거는 좀. 좀 과장이다 생각했습니다 제가. 생각했는데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제가 농촌출신이라서 그 언젠가 한번 그 농산물, 농산물 전시회 하는 걸 제가 보러 갔어요. 아 깜짝 놀랐습니다. 포도 한 송이가 얼마나 큰지 이만해요. 포도 한 알이 이렇게 밤톨보다도 큰데 이런걸 보고서 아 이 정도라면 포도 한 송이 둘이 매고 왔겠다 생각을 하고 그 때부터 내가 믿었어요. 요새 뭐 거봉같은 거 꽤 크기도 하지만 아주 큰 포도. 이런 아름다운 땅입니다. 그런 좋은 것만 본 거예요. 이건 우리가 들어가 살 땅이니까. 그리고 이기리라. 또한 가지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 그래요 밥. 이제 밥상 차려 봤으니까 먹으면 된다 이거요. 이게 믿음이요. 얼마나 놀라운 얘기입니까. 이런 믿음이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저 땅은 우리의 것이다. 축제하자 기뻐하자 감사하자! 이게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이요.
그런데 백성들은 여호수아와 갈렙 즉, 믿음의 사람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걸 생각해야 합니다. 긍정적이고 소망적이고 적극적입니다. 믿고 보면 이렇게 희한한 세상을 볼 수가 있어요. 여러분 이 세상에 문제가 많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문제가 많아요. 무엇이 문제입니까 믿음이 문제요. 또 하나는 그 믿음이 주는 신용이 문제요. 하나님을 믿을 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거든요. 오늘 우리가 무얼 걱정하는 겁니까 도대체 믿을 수가 없어서 걱정이 아닙니까. 누구를 믿어요 믿을만한 일이 하나도 없는거 같아서 그래서 낙심이에요. 자 이제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약속, 이것을 믿게 될 때 과거에 역사하신 하나님, 나와 함께 계시고 또 미래에 함께 하실 하나님의 역사를 그 능력 그 약속을 믿을 때 평안합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능력 안에서 생각하고 보게 될 때 나 자신도 소중합니다. 나를 통해서 큰 역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에 가능함이 있고 여기에 오직 형통함이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 그를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불신앙으로 그 때문에 멸망이 될 때 믿음의 사람 이 두 사람만이 믿어서 구원에 이르렀습니다. 요단강을 건너가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여러분 믿음을 새롭게 하고 여호수아의 뒤를 따라 믿음으로 저 앞에 있는 가나안을 바라보세요. 저 땅은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미래를 보는 자는 오늘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정치, 문학, 예술 그리고 도덕, 종교 심지어는 신학에까지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여러분 잘 아는 그의 '띠오리 오브 릴레이티비티(Theory of Relativity)', 소위 상대성 원리, 상대성 원리라고 하는 것은 소위 '앱솔루트 레스트(Absolute Rest)' 절대 마진과, 여백과 그리고 '앱솔루트 타임(Absolute Time)' 절대 시간을 폐기 처분하게 됩니다. 알거나 모르거나 우리는 그의 상대성 원리에 많은 영향을 받고 그 속에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적인 것은 없고 상대적인 것만 존재한다. 깊은 철학의 세계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과학의 기초는 진리이다. 과학하는 자세는 믿음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유명한 그의 명언입니다. 모든 거짓과 불신이 사라져갈 때 비로소 진리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되고 믿음을 가질 때 거기서 힘을 얻게되고 능력을 얻게되고 지혜와 평화도 얻게되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다행히 저는 프린스톤 신학과 인연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인슈타인이 살던 집, 제가 공부할 때 그 가까이를, 바로 옆에 있었으니까요. 그는 새벽마다 기도를 했는지 명상을 했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프린스톤 채플에 나가서 기도하고 나오는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보았고 특별히 그 주변에 아인슈타인에 대한 여러 일화가 많이 남아 있어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얼마 전에 프린스톤에 가서 아인슈타인 박사의 그 연구실, 소위 아인슈타인 인스티튜트(Einstein Institute)라고 하는 데를 둘러보았는데 누가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그 분이 조금 더 살아계셨더라면 교회와 우리 신학계를 위해서도 크게 공헌할 수 있을 뻔했다.
왜냐하면은 그는 말년에 더 깊은 신앙을 얻었고 그리고 모든 힘을 한데로 모으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고 그리고 하나님의 세계, 영원한 세계, 신학의 세계를 향해서 생각하고 많은 글을 쓰다가 결국은 글을 마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미국에는 재미있는 학문이 많이 나타나는 중에 성공학 이론이라는 학문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성공하나 그 성공 자체를 연구하는 그런 많은 연구논문, 연구 책들이 나오는데 성공학 이론을 가장 성공적으로 보급하는 출판사가 있습니다. 나이팅게일 콘란트라고 하는 나이팅게일 콘란트 코퍼레이션이라고 하는 회사인데 이 두 분에게 물었습니다. "그 많은 책, 그 많은 이론 다 종합해서 성공의 비결을 간단히 말하면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애티튜드 앤 고울(Attitude and Goal)이라고 했습니다. 자세! 삶의 자세와 그리고 목표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환경을 말합니다. 그러나 환경이 성공을 만들어 주는 건 아닙니다. 환경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어려운 환경은 성공의 지름길이 되는 것이올시다. 또 성공의 계기가 되는 겁니다. 그런고로 주변환경을 탓하는 사람은 영영 구제불능입니다. 문제는 그 모든 환경과 사건에 대하는 내 자세, 나 자신의 문제래요. 내가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고 두 번째는 목표입니다. 그가 세운 뚜렷한 추상적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지향하는 구체적 목표가 분명해야한다 이렇게 말합니다. 다시 묻습니다. 두 가지로 얘기하니까 복잡하니까 하나만 하나로 종합하면 그 성공의 비결은 뭐겠는가 그것은 믿음입니다. 확신이 없는 어떤 성공도 기대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슬퍼하는 것도 믿음이 없기 때문이고 믿을 수 없기 때문이고 믿음이 점점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믿음! 거기에 성공의 길이 있고 삶의 힘이 있고 능력이 함께 하는 것이다. 이걸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으로 지향하는 그 출애굽 역사라고 하는 것은 계시적 역사요 상징적 역사요 그리고 그 속에 무궁무진한 살아있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 속에 구원론이 있고 교회론이 있고 성령론이 있고 그리고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는 사건들이 거기에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시대에 바로 그 자리에 있다고 생각을 하고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그런 여러 가지로 많은 것을 생각하는 중에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참으로 믿음은 귀한 것이요 믿음을 얻기가 어렵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자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열가지 재앙을 겪었습니다.
그 40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희한하고 놀라운 능력 열가지 재앙 내리시는 것을 보고, 또 조그마한 믿음을 얻어 가지고 다시 홍해로 나와서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보고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기적도 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사건들을 보고 이를 통해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만 믿는 믿음을 주시려고 했는데 참 믿음 얻기 어려웠습니다. 힘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보십시다. 예수님과 3년 동안 동행할 때 성경에는 대표적인 사건 몇 가지만 기록합니다만은 얼마나 많은 이적, 얼마나 많은 말씀 들었겠습니까 희한하고 놀라운 것 기적을 많이 보고 보고 보았는데도 또한다는 소리가 "믿음을 더하소서" 주님 앞에 이렇게 간구합니다. 죄송하지만 내가 그 위치라면은 제자들을 꾸짖겠습니다. 이 한심한 사람들아. 안 그렇습니까 이 많은 사건을 보고도 아직도 믿음을 얻지 못했느냐 바른 믿음을 갖지 못했느냐고. 그렇지 않습니까 굳이 이스라엘뿐입니까. 우리가 지금 얼마나 많은 사건을 겪었습니까.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 그리고도 아직도 믿음을 갖지 못했습니다. 바른 믿음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이 얼마나 슬픈 얘기고 얼마나 어려운 얘기입니까. 믿음보다 귀한 일이 없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소중한 선물입니다. 사건을 통해서 기적을 통해서 믿음이 생기지는 않는거 같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엔돌핀이라는 것이 뭔대요. 인터 몰핀입니다. 이 몰핀 맞은 것처럼 마음이 평안해지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이 생기는 거죠. 이런 일이 있어도 저런 일이 있어도 당황하지 않습니다. 이런 엔돌핀이 팍팍 솟아오르는 거 같은 그런, 그런 상태에 살면 남이 뭐라고 하던 말던 나는 나대로 조용한 믿음에 살아갈 수 있는 거예요. 몸도 마음도. 제가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결혼주례를 늘 많이 하는데 그 결혼주례를 할 때에 제가 주례사를 하는데 교인들이 제게 주문을 합니다. 여러 결혼식 하는 걸 참석 했댔으니까. 그래 제가 좀 달리 해 보려고 이렇게 해 보았더니 차별대우한다고 싫어하더라고요. 똑같이 해 달래요 똑같이. 그리고 딱 한마디를 주문을 하는 게 있어요. 그건 우리 이미 결혼한 사람들에게도 많은 은혜가 되니까 그 말씀은 꼭 추가해 주세요 그런다구요. 그래 주문이 뭐냐 그러니까 내가 늘 얘기하잖아요. 신부에게 신랑이 저녁에 늦게 들어와도 왜 늦었느냐고 묻지 마라 그러거든요. 그 말을 꼭 해 달래요. 이게 꼭 필요하대요. 왜 그런지 아십니까 자 저녁에 늦거든 딴에는 사랑한답시고 어디 갔댔냐, 왜 늦었냐, 전화도 없었냐, 뭘 했냐 뭘했냐. 이렇게 형사 취조하듯이 물어보면요 이 취조 당하는 이쪽은 영 믿음이 없어져요. 그때는 절대로 미인이 없습니다. 예쁜 여자 없습니다 그 다음에는요. 그렇게 의심받으면서 내가 이 집에 들어와야 되나 이렇게 된데요. 믿음밖에 없어요. 전적으로 믿어둬. 믿으면 편안하고 좋은걸 이걸 의심해 가지고. 그래 뭘 어쩌자는 거예요. 여러분이 의심이라는 것은 무서운 바이러스예요. 이것이 들어가면 다 망쳐요. 나도 불행해지고 저도 불행해지고 잘못하면 다 죽는 거예요 아주. 믿음. 어리석을 정도로, 어린아이들이 부모님을 믿듯이 말이에요 깨끗하게 믿어두면 그렇게 좋을 걸.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에 대한 믿음을 우리 인간이 갖도록 하시기 위해서 백방으로 갖은 방법으로 이렇게 역사하십니다 믿음을 가지라고. 그런데 그 믿음을 얻기가 이렇게 어려웠다는 얘기고요. 또 하나는 믿음을 가졌을 때 아, 위대한 역사를 나타내세요. 믿음으로 출애굽 했고 믿음으로 홍해를 갈랐고.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홍해가 갈라져서 이렇게 절벽으로 이루었을 때 그 안으로 들어가는게 이 보통 믿음입니까. 이거 물 속으로 들어간 다음에 물이 딱 합치면 어떡하나 이거 보통 믿음이 아니죠 이것만도. 사건마다, 믿음이 있을 때마다 용기가 있고 평화가 있고 찬양이 있었어요. 그건 놀라운 역사예요. 믿음으로 모든 역사를 이길 수 있었어요. 또 하나는 이 믿음을 지켜가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런 모처럼 믿음을 가지고 큰 역사를 이루었다가도 조금 어려운 일 당하면 또 원망하고 또 의심하고 그렇게 그렇게 엎치락뒤치락 한 것이 출애굽의 역사입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본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온통, 그야말로 감사, 찬송, 축제로 바꾸어졌지요. 믿음으로 충만했지요. 그러나 가만히 계산해 보면 열나흘만에 원망을 합니다. 조금 어려운 일이 있고 뭐 물이 마음에 안 들고 또. 원점으로 다시 돌아가는 거예요. 그래 원망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참 믿음 가지기도 어렵고 키워가기도 어렵고 지키기도 어렵다 하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바네아까지 왔지요. 이제 요단강만 건너가면 되는데 바로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의 믿음이 자격미달이요. 믿음 없어요. 믿음 부족해요. 결국은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방향을 돌려서 다시 광야로 돌려보냅니다. 그 행적을 자세히 연구해 보면요 다시 광야로 들여 몰아쳐서 거기서 40년 동안을 훈련을 받고 그 다음에야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은 가데스바네아에 왔을 때에 이 사람들이 열두사람 대표를 보내서 저 가나안 땅을 탐지하게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두 맥락이 있습니다. 본문 민수기에는 탐지라고 되어 있습니다 탐지. 탐지하기 위해서 열두사람을 보내라 그랬고요 신명기 1장 22절에는 정탐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여기선 또. 정탐과 탐지는 다릅니다. 정탐, 탐지라고 하는 것은 단어가 달라요. 이 히브리 원어에 보면은 투어르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 말은 알아보고 또한번 가 본다, 구경한다는 그런 뜻이에요. 한번 알아보는 정도요 이런 게. 그러나 정탐이라는 것은 여기선 뤼가르라고 하는 말은 이것은 갈 수 있을까 없을까 전략을 세우는 거예요. 의심을 가지고 보는 거예요. 할 수 있을까 없을까 이길 수 있을까 이기지 못할까 탐지는 우리가 갈 곳이니까 얼마나 좋은 땅인가 보자 이걸 생각하고 믿음으로 보는 거예요. 전혀 다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탐지하라고 했는데 이 사람들은 가서 정탐하고 왔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보세요. 여기에 정탐하고 온 사람들은 회보하면서 열 대표가 하는 말이요. 악평을 합니다. 그 땅, 거기는 삼키는 땅이요. 사람을 삼키는 땅이요. 못 살 곳입니다. 아낙자손이 있고 장부가 있고 그리고 본래 이 유대사람들이 좀 키가 좀 작지요.
그런데 이렇게 큰 사람들을 보니까 그 사람들 앞에 우리는 메뚜기 같습디다 메뚜기. 자기 자신을 비하시킵니다 아주 그 축소시킵니다. 바로 이 시간에는 과거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에 대한 믿음 하나도 없어요. 기적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믿음이 전혀 없는 겁니다. 그리고 보니까 이렇게 두려워하게 됐고 또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도 없어요. 하나님 믿는 마음, 하나님 말씀을 믿는 마음,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신앙이 한푼어치도 없어요. 그래서 그들은 원망을 하게 됩니다. 이 사회심리학에는 원인귀속이라고 하는 용어가 있습니다. 그 말은 어떤 사건에 대한 원인을 어디로 돌리느냐는 거죠. 내게로 돌리느냐 사회로 돌리느냐 세상으로 돌리느냐. 이 사람들 여기까지 와서 이제 이 어려움을 당하게 될 때 원인을 모세에게 돌립니다. 왜 여기까지 우리를 인도했냐 모세를 죽이겠다고 합니다.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원망, 불평입니다요.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 없는 사람의 모습이요. 그리고 절망하게 됐습니다. 심지어는 죽었더면 좋았을 걸 그럽니다. 그래서 민수기 14장에 보면은 하나님께서 대답을 해주십니다. "오 죽고싶다니까 죽여주마" 그럽니다요. 이런 응답이 나옵니다. "내 귀에 들리는 데로 행하리라" 아, 무서운 말씀입니다. 그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많이 광야에 엎드려집니다. 왜 믿음이 없어서. 믿음이 없어서. 그런가하면 믿음 있는 사람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렇지 않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거기에 포도 한 송이를 둘이 매고 와서 보라고 하고 자랑을 합니다. 제가요 어렸을 때 성경을 읽으면서 포도가 얼마나 크면 한 송이를 둘이 매고 왔나. 이건 좀 과장이다 이거는 좀. 좀 과장이다 생각했습니다 제가. 생각했는데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제가 농촌출신이라서 그 언젠가 한번 그 농산물, 농산물 전시회 하는 걸 제가 보러 갔어요. 아 깜짝 놀랐습니다. 포도 한 송이가 얼마나 큰지 이만해요. 포도 한 알이 이렇게 밤톨보다도 큰데 이런걸 보고서 아 이 정도라면 포도 한 송이 둘이 매고 왔겠다 생각을 하고 그 때부터 내가 믿었어요. 요새 뭐 거봉같은 거 꽤 크기도 하지만 아주 큰 포도. 이런 아름다운 땅입니다. 그런 좋은 것만 본 거예요. 이건 우리가 들어가 살 땅이니까. 그리고 이기리라. 또한 가지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 그래요 밥. 이제 밥상 차려 봤으니까 먹으면 된다 이거요. 이게 믿음이요. 얼마나 놀라운 얘기입니까. 이런 믿음이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저 땅은 우리의 것이다. 축제하자 기뻐하자 감사하자! 이게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이요.
그런데 백성들은 여호수아와 갈렙 즉, 믿음의 사람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걸 생각해야 합니다. 긍정적이고 소망적이고 적극적입니다. 믿고 보면 이렇게 희한한 세상을 볼 수가 있어요. 여러분 이 세상에 문제가 많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문제가 많아요. 무엇이 문제입니까 믿음이 문제요. 또 하나는 그 믿음이 주는 신용이 문제요. 하나님을 믿을 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거든요. 오늘 우리가 무얼 걱정하는 겁니까 도대체 믿을 수가 없어서 걱정이 아닙니까. 누구를 믿어요 믿을만한 일이 하나도 없는거 같아서 그래서 낙심이에요. 자 이제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약속, 이것을 믿게 될 때 과거에 역사하신 하나님, 나와 함께 계시고 또 미래에 함께 하실 하나님의 역사를 그 능력 그 약속을 믿을 때 평안합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능력 안에서 생각하고 보게 될 때 나 자신도 소중합니다. 나를 통해서 큰 역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에 가능함이 있고 여기에 오직 형통함이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 그를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불신앙으로 그 때문에 멸망이 될 때 믿음의 사람 이 두 사람만이 믿어서 구원에 이르렀습니다. 요단강을 건너가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여러분 믿음을 새롭게 하고 여호수아의 뒤를 따라 믿음으로 저 앞에 있는 가나안을 바라보세요. 저 땅은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미래를 보는 자는 오늘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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