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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씨를 뿌리자 (삼상21:10-15)

본문

사람의 일생은 높음도 있고 낮음도 있습니다. 씨줄도 있고 날줄 도 있습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습니다. 풍부의 시기 가 있으면 빈곤의 시기도 있습니다. 기쁨의 시기가 있는가 하면 눈물의 시기도 있지요. 고통과 눈물의 시기, 오르막 보다는 내리 막의 때에 한 인간의 자세가 어떠냐에 따라 믿음의 사람과 불신 앙의 사람이 드러납니다. 눈물의 시기에, 믿음의 씨를 뿌리느냐 불신의 씨를 뿌리느냐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 옵니다. 일평생을 보내면서 필연적으로 고통과 눈물과 빈곤과 슬픔의 때는 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기를 어떻게 대면하느냐 하는 것은 일평생 신앙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입니다. 다윗은 일생 중 화려한 오르막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양치기로 서 왕으로 기름 부음받던 일,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블레셋을 격 파해 이스라엘을 외국의 침략에서 구하던 일, 그래서 '사울은 천 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는 환호를 듣던 일, 드디어 유다왕으로 등극하던 일, 사울의 집안과의 오랜 갈등을 해결하고 예루살렘에 서 전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던 일,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 기고 궁전을 완공하던 일, 이웃 나라를 평정하고 국토를 크게 넓 혀 온 민족의 환호를 받던 때, 이런 시기는 전부 다윗의 생애 중 화려한 상승의 시기입니다. 기쁨의 시기입니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다윗은 고통스런 침몰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보통 인간이 당할 수 없는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하던 눈 물과 고난이 겹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참으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시기입니다. 결정적인 것은 두 시기인데, 하나는 시 험의 시기이고 하나는 징벌의 시기입니다. 사울에게 겨 다니던 시기는 시험의 시기였습니다. 고난을 당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습니다. 요셉처럼, 욥 처럼 시험의 시기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에게 반역당하던 일은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나서입니다. "칼이 네 집에서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삼하12:10) 이런 하나님의 저주가 있고 나서의 사건입니다. 징벌의 시기입니다.
그 중의 한 사건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사울의 모함으로 계 속 수세에 몰리던 일, 적국의 나라 블레셋으로 까지 흘러들어 한 몸을 보존해 보려고 미치광이 행세를 해야 하는 때입니다. 사울은 이미 성큼 커서 정적이 되어 버린 다윗을 두 번이나 창 으로 찔러 죽이려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결국은 목숨을 부지 하기 위해 먼먼 도피의 길을 떠나게 됩니다. 사울왕의 정적이 되 어 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라마에서 높으로, 블레셋땅 가드 로, 아둘람 굴로, 모압으로, 유다광야로, 엔게디 요새굴로, 십광 야 하길라 산으로, 다시 블레셋으로 이렇게 수 없는 도피와 피난 의 시절을 보냅니다. 이렇게 도피의 세월에 접어든 다윗은 사면 초가입니다. 모두들 다윗을 보기만 하면 돈과 명예가 탐이나서 밀고를 하려고 합니다. 아니면 다윗을 도와준 아히멜렉의 제사장집과 높땅 사람들 처럼 가문이 몰살당하지 않으려고 어디를 가나 다윗을 고발하려는 눈이 있습니다. 지명수배를 다니는 도망자의 신분이 얼마나 눈물과 고난의 세월이겠습니까 아마 지금 감옥을 탈출하고 신출귀몰한다는 신창원씨가 절실히 겪고 있을 것입니다. 추격하고 구경하는 사람들에게는 신출귀몰 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본인은 극도의 긴장감과 불안 신 경과민증으로 매순간 자살하고 싶을 것입니다.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오죽하면 두 번씩이나 적국의 나라 블레셋 으로 숨어들기 까지 했겠습니까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절박 한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블레셋은 어떤 나라입니까 다윗과는 악연중의 악연의 관계입니다. 다 이긴 전투에 나타나 물맷돌로 천하명장 골리앗을 살해 한 다윗이 아닙니까 그래서 수만은 블레셋 군사들이 죽임을 당 하는 대패를 안겨다준 블레셋의 국가적 원수, 그가 바로 그 다윗 이 아닙니까 그래서 "사울의 죽인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 로다" 이게 그 당시 이스라엘과 블레셋에서 유행하던 노래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다윗을 찬양하는 노래이지만, 블레셋에서는 다윗에게 이를 가는 원한의 노래입니다. 그런 다윗이 오늘 본문 에 보니 블레셋 땅으로 첫 번째 망명을 하는 것입니다. 철천지 원수 다윗이 이제 호랑이 굴로 제발로 들어온 것입니다. 먹이가 되서 호랑이 굴로 들어간 다윗의 처량함입니다. 살기 위해 황망 히 몸을 던진 곳이 호랑이 굴이 되 버린 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목숨을 부지 하기 위해 미치광이 행세를 합니다.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고, 성문짝에 글자를 되는 대로 써 갈기고, 수염에 침을 질질 흘리며 혀자라기 말을 합니다. 그러자 블레셋 왕 아기스는 "미친 놈이 모자라서 여기 까지 끌고오느냐 끌고 나가라" 합니다. 그래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게 된 다윗은 황급히 아둘람 굴로 피신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겨 다니던 다윗에게 재일우의 기회, 결정적 인 기회가 왔습니다. 엔게디 요새에서와 십광야 하길라 산에서 두 번이나 사울을 살해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잡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 마다 다윗은 고뇌에찬 믿음의 결정을 합니다. 누워자는 사울의 겉옷 자락만 베어 나옵니다. 군영에 진입해 서는 잠에 빠진 사울을 급습하고서도 사울의 목 대신 창이나 물 병만 집어 나옵니다. 사울에게 경고를 주었을 뿐입니다. 왜요 기름부은 자를 치시는 자도 여호와시요, 기름 부은자를 살리시는 자도 여호와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주위 신하들이 채금을 해 댑니다. 즉시 사울의 목을 치고 이 지긋지긋한 도피생활을 마 감하자고. 그리고 화려하게 왕으로 등극을 하시라고. 그러나 다 윗은 하나님의 처분 이상을 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된 것도 하나님의 뜻이 있고, 지금 이순간에도 하나님은 지켜보고 계시 다!'이런 신앙입니다. "여화와께서는 왕과 나 사이를 판단하사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 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삼상 24:12)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삼상24:6)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절대 놓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처분 보 다 앞서가지 않았고, 믿음의 방식 보다 추월하지 않았습니다. 이 것은 대단한 믿음입니다. 고난을 한 방에 끝낼 수 있는 데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특히 고난 의 시기에 그러했습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한 도망자의 신분으로 그러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슬픔의 시기에 그러했습니다. 아브 라함을 실수를 보면 이런 믿음의 행동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99세에 단산의 시기에 불신 앙을 심다가 이스마엘을 낳고, 인류 역사에 불행의 씨앗을 유산 으로 안겨주게 됩니다. 이렇듯 깜깜 절벽 불투명의 시기에는 믿음의 씨를 심기가 얼마나 힘든지요.그러나 다윗은 눈물과 환란의 순간에도 믿음의 씨를 뿌리는 것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농사가 어렵고 흉년이 들면 농부들은 종자를 더욱 소중히 간직 한다고 합니다. 굶어 죽더라도 종자만큼은 보존을 한다고 합니다. 왜요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내년의 풍성을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사람 들은 외양간에 소가 없고, 포도밭에 소출이 없을 지라도, 눈물과 한숨의 생활이 이어지더라도 믿음의 씨앗 만큼은 간직해야 합니다. 눈물로서 믿음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보면 다윗은 참으로 억울합니다.
잘못한 것도 없고, 도리어 하나님을 잘 따르고 순수하게 순종한 것이 오히려 더 나쁜 상황으로 몰리게 되엇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리는 세월 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보복을 하지 않았습니다. 짜증부리지 않 았습니다. 대신 믿음의 씨를 심었습니다. 코너에 몰린 눈물의 시 기에 믿음의 씨를 심는 것은 얼마나 힘드는 일인지요. 그러나 다 윗은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것이다. 이게 믿음이예 요. 이게 고난의 시간에 믿음의 씨를 심는 것입니다. 풍요로울 때 믿음의 씨를 심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눈물의 시기 에 믿음의 씨를 심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입니다. 때문에 폭풍 치는 고난의 시기에 믿음의 씨를 심는자가 진정한 믿음의 농부입니다. 그런까닭에 우리는 선포할 일입니다. 고통의 시기에 믿음 의 씨를 심자! 그렇습니다. 다윗은 사실 처음부터 그랬습니다. 다윗은 골리앗 과의 싸움에서도 믿음의 씨를 뿌렸습니다.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게 가노라"(삼상17:45) 골리앗은 물매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믿음으로 나간 것입니다. 국가 위기의 순간, 개인적 으로도 절대 절명의 순간에 나서면서도 믿음의 씨를 가지고 나선 것입니다.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 리로 알게 하리라"(삼상17:47) 이런 믿음을 다윗은 평생 동안 한 번도 놓치지 않습니다. 특히 고통과 눈물의 시기에 이런 믿음 의 자세는 금강석 처럼 빛이 나고 단단해 집니다. 다윗의 두 번째 인생의 침몰의 시기는, 왕으로 등극해 안정되고 화려한 날들을 보내던 시기에 찾아 왔습니다. 바로 압살롬의 반 역이었습니다. 사울에게 겨 도망다니던 시기도 눈물의 세월이 었지만, 가장 큰 눈물의 시기는 아마 아들의 반란에 겨 맨발로 왕궁을 떠나 기드론 시내를 건너던 이 두 번째 시기였을 것입니다.
 블레셋에서 미치광이 행세를 하면서 목숨을 부지할 때도 그 렇지만, 남도 아닌 아들에게 반란을 당하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 해 맨발로 왕궁을 황망히 떠나는 아버지의 모습은 참으로 기가막 힐 일입니다. 어찌 눈물이 앞을 가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행하고"(삼하15:30) 엎친데 덮친 격으로,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 때문에 울면서 기드 론 시내와 감람산을 넘어 사막으로 피난 가던 때는, 시므이라는 자가 던지는 돌 세례를 맞고 험악한 욕설과 저주를 다 들어야 했 습니다. 수도를 천도해 예루살렘으로 정하고 왕궁을 거대하게 짓고,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에 모시고 온 백성과 함께 웅대 한 축제를 벌리던 그 시절은 다 어디 간 것입니까 주변 나라 를 다 평정해 이스라엘의 땅을 전무후무하게 넓힌 위대한 왕 다 윗은 어디가고, 맨발로 사막으로 겨나 돌팔매질을 당하고 욕설 과 저주를 들어야 합니까 그때의 심정을 다윗은 훗날 시편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6:6) "사람들이 종일 나 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 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시42:3) 이렇듯 믿음의 사람들도 기가막힌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눈물 의 세월 한숨의 시기가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눈물로 보 내는 간난의 세월이 있습니다. 고통과 불안의 시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중요한 것은 그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것 입니다. 믿음의 씨를 뿌리면서 지내느냐, 원망과 불평을 심으면 서 지내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경외의 씨를 뿌리느냐, 불신 앙과 체념의 씨를 뿌리느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화려한 시대에는 오만해지고 눈물의 시기가 오면 연민 에 빠집니다. 풍부의 시기가 오면 내 의가 하늘 만큼 높아지고, 고난의 시기가 오면 원망과 불신이 산만큼 쌓입니다. 불안해 하 고 좌절합니다.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앉으나 서나 눈물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기 연민에 쌓여 있는 것은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연민이 자라 불평이 되고 불평이 자라 원망이 되기 때 문입니다. 그러니 불안의 시기에는 자신에게 스스로 믿음의 선포 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고 믿음의 씨를 뿌리자고 자신에 게 선포해야 합니다.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 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43:5)
애매한 고난이든, 징벌의 고통이든 믿음으로 씨를 뿌리는 자에 게 하나님은 풍성하게 갚아 주십니다. 아름다운 결말을 주십니다. 눈물의 시기에 불신앙과 원망을 뿌릴 것이냐, 믿음의 씨를 뿌릴 것이냐 이것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126:5)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눈물로 뿌리는 씨는 바로 믿음의 씨입니다. 눈물의 시기에 믿음의 씨를 뿌리며 여호와 경외를 잃지 않는 자는, 결국 기쁨의 단을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꼭 기억할 일입니다. 이 사실은 바울의 일생도 명확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눈물과 한 숨의 시기에 찬송의 씨를 뿌리면 옥문이 터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준비됩니다. 바울은 한번도 눈물의 시기에 연민에 빠져 본적이 없습니다. 이고니온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성밖으로 던져질때 도 그랬고, 빌립보에서는 로마의 혹독한 매질을 당하고 이중 감 옥에 갇혀있을 때는 오히려 찬송이었고, 생애 마지막 길이 되는 로마 감옥에서는 빌립보 교회에게 보낸 편지에 보면 오히려 기쁨 이 주제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4장에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 할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 의 비결을 배웠노라" 했습니다. 풍부든 궁핍이든, 존귀든 비천이 든 "내게 능력 주시는자 안에서 내가 모든 걸 할 수 있느니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눈물의 시기 궁핍의 시기 비천의 시기에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의 능력을 의지할 것입니다. 그가 모든 걸 견디게 해 줍니다. 그가 승리하게 합니다. 그가 마음의 평화를 줍니다, 그가 참된 믿음의 씨를 뿌리게 합니다. 그러니 눈물과 한숨의 시기에 우리 안에 믿음으로 역사하시는 분의 능력을 따라 함께 믿음의 씨를 뿌립시다. 불안과 고난의 세 월을 믿음의 씨를 뿌려 일구며 통과합시다. 존귀케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이게 믿음의 사람들이 사는 방식입니다. 이런 축복이 가득 차고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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