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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사람들 (히11:1-12)

본문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이 세상을 창조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알길은 오직 믿음으로 만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찾으려는 노력이 많은 성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아직도 이를 거부하거나 부인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론을 믿지 않고서는 인간의 타락과 구속의 필요성을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창조에 대한 신앙이 없으면 성경에 기록된 모든 초자연적인 사건을 믿을 수 없으며 그렇게 되면 성육신, 부활, 재림 등의 초자연적인 구속 사건 등도 믿을 수 없습니다. 비록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마음으로 확실하게 믿어지는 것 자체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에 대한 우리의 믿음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기적의 역사로 보아야 합니다. 오늘은 믿음의 교훈과 믿음의 사람들의 삶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돌아봅시다
1. 믿음의 실상이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에 나타난 믿음의 선진들의 믿음 생활을 예증으로 들며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말씀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한 것은 믿음의 본질적인 성격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믿음에 대한 완전한 정의라고 할 수는 없지만 성도들의 믿음에 대한 핵심적이고 중요한 일면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구약의 여러 인물들을 역사적으로 기록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사람들의 믿음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신앙의 모범을 보여 주고 있고 오늘 우리들에게 방향을 제시하여주고 있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구약 성도들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믿음의 정의에 부합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이냐 하면, 믿음은 시간적으로 미래에 대한 현재의 확신 입니다. 즉 믿음은 현재에 속하지 않고 미래에 속하며 이미 가진 것이 아니라 아직 갖지 못한 사실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믿고 바라는 실체인 하나님 나라와 구원의 완성은 이 땅에서 성취된 것이 아니고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말씀과 함께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믿음에 대한 정의는 구약의 여러 믿음의 선진들의 예에서 설명되어지며 오늘의 우리 성도들의 신앙 체험으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성경에 기록된 여러 믿음의 선진들을 통해 믿음 생활의 장단점을 배워서 장점은 본받아 실천하고 단점은 경계해야 합니다. 신약의 성도들은 구약 성도들이 미래적인 것으로 보지 못하고 믿었던 메시야에 대한 신앙을 이미 성취되어진 역사적 사실로 보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약 시대의 성도들에 비하면 신약 성도들의 큰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성경의 예언이 완전히 다 성취된 것은 아닙니다. 이제 우리 성도들에게는 예수께서 재림하심으로 이루어질 완전한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대한 소망과 믿음이 있습니다. 미래적인 사건이지만 믿음으로 확신할 수 있고 증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대상의 시제가 현재가 아니고 미래임과 동시에 또한 믿음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것이라면 자연인 상태에서 누구나 믿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방법은 믿음으로 영안을 통하여서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믿음을 굳게 잡고 요동치 아니함으로 믿음의 선진들과 같이 신실 되게 살아가며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인 믿음을 소유한 자들을 기뻐하시며 구원하여 주십니다. 인간들은 모두가 원죄와 자범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믿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의롭다 여기시고 그들을 구원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찾아오셔서 자신을 계시하셨고 그 계시를 믿는 자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십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을 입은 자들로서 신앙에 더욱 전진해야 합니다.
2. 믿음의 사람들의 예를 살펴 봅시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는 아벨이 형인 가인보다 하나님께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는 열납하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만을 열납하셨음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지내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으심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전 인격을 아름다운 것으로 받으셨고 그의 제물을 믿음에 의해 드려진 것으로 받으셨습니다. 아벨은 모든 삶 속에서 믿음에 따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였기에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사를 기뻐 받으셨습니다. 아벨이 의로운 자였다는 증거는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 그의 제물을 살라 버렸다는 사실을 통해 입증 됩니다. 하나님의 의의 상징인 불이 제물을 태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희생 제사를 보시고 그 예배자를 받으셨다는 자비의 증표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가인은 불신앙의 삶을 사는 자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가인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은 신 것에 대해 분을 품은 것이나(창 4:5) 아벨을 시기하여 죽인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자라는 증거를 얻은 자 입니다. 성경은 에녹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과 동해 하였다고 증거 합니다.(창 5:24). 에녹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또한 그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과 동행 하였습니다.
이러한 에녹의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세상 것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실 상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선한 삶을 살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비록 하나님이 육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고 그 분을 위한 삶을 살게 되면 그 분께서는 반드시 상을 주십니다. 이러한 믿음이 없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상급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죽음을 보지 않고 직접 하늘로 올리움을 받는 복을 받았습니다. 이는 믿음으로 사는 자가 영생의 복을 얻게 될 것을 암시 합니다. 믿음은 행함의 순종을 필요로 합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방주를 건조한 것은 그의 순종하는 믿음을 보여 줍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120년 후에 비를 내리셔서 온 지면의 생명들을 물로 심판하시겠다고 경고하자 그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방주를 건조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순종이 곧 믿음입니다. 믿음은 세상으로부터의 모든 핍박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 것 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경고를 받았을 때 믿음으로 보지 못하는 일들에 확실한 증거를 받아 경외함으로 순종 하였습니다. 노아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지도 못했지만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함으로 묵묵히 방주를 건조 했습니다. 노아는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오직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방주를 건조 했습니다. 노아에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경외심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경고는 너무나도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렸을 것 입니다. 비도 오지 않는 데 120년 동안이나 배를 만든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실한 믿음 없이는 불가능할 것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노아가 건조한 방주는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물론 온 지면이 덮이는 데 있어서는 방주 이외의 어떠한 것도 구원의 방법이 될 수 없었던 것 입니다. 세상의 물질과 권력은 실제적으로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그 역사를 믿음으로 바라보고 세상의 보이는 것을 버리고 믿음을 따라 행하여 순종하는 것이 바른 신앙인의 모습 입니다. 노아가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건조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모든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는 것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음을 인정하고 예수님의 사랑의 계명을 순종하여 지켜 행하는 것 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거짓된 것 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노아와 같이 순종하는 믿음으로 주님의 뜻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노아와 같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여 궁극적으로 구원의 복을 받는 온전한 신앙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의로 여기셨다(창 15:6)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어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믿음 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중요한 사실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지만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었다는 사실 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찾아가서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찾아오셨던 것 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었다면 아브라함은 믿음도 구원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그 부름에 순종하여 고향을 떠나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간 데서 믿음이 시작되었고 결국엔 독자인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기까지 순종함으로 믿음의 의를 이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사 약속의 땅을 주시기로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그 땅이 어디인지도 몰랐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곳으로 떠났을 뿐입니다. 즉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그는 본토와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곳으로 정처 없는 길을 떠나야 했던 것 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 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그곳이 어디냐고 묻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기업이 있음을 믿고 순종함으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을 향하여 나아갔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하나님의 뜻에 무조건으로 순종하는 행함으로 이루는 믿음인 것 입니다.(약 2:21-2
4). 이러한 아브라함의 순종의 믿음은 모든 성도들이 어떠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되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구원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으로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심으로 구원을 베푸시는 것 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믿음으로 주님께 순종함으로 구원의 복과 은혜를 충만히 받아야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의 부인인 사라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단산한 중에서도 아들 이삭을 낳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사자를 보내사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사라는 이미 단산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육체적으로 이미 잉태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창 18:11). 그러나 하나님께서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었으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아들을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주의 사자가 사라에게 아들을 낳게 될 것을 전했을 때 처음부터 사라가 그 말씀을 믿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라는 하나님의 사자가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을 때 처음에는 속으로 웃으며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자신과 남편인 아브라함이 늙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라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시고 분명히 아들을 낳게 될 것임을 말씀하셨을 때 사라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경외심을 갖게 되었습니다.(창 18:10-15). 사라는 하나님께서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분임을 믿었으므로 바랄 수 없는 상황에서 아들 이삭을 잉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은 하나님의 초자연적 능력을 통하여 이적을 낳았습니다. 또한 사라가 아들을 잉태함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구원의 역사가 계속 성취되어 지게 되었던 것 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 모든 성도들의 믿음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말미암는 은혜의 선물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스스로 가질 수 없는 자연인 상태의 우리들에게 구원의 복을 주시기 위하여 성령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믿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믿음을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하시고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와 영광의 찬미를 드리기에 힘써야 합니다 아벨과 같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는 믿음의 예배 입니다. 에녹과 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입니다. 노아와 아브라함과 사라와 같이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의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예배는 영적 예배로 모든 삶을 통하여 산 제사로 드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이 영적 예배는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롬 12:1-2).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주일날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뿐만 아니라 일주일의 모든 날들 속에서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어디서든지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은 것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말씀에 순종함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은 것을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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