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본질적 원리 (창15:1-6)
본문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이같은 아브라함의 신앙은 그 영혼의 자발적인 소산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의 결과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칭의는 죄와 허물이 전혀 없고 행위의 실수가 없는 완전무결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같은 사실은 아브라함의 경우를 통해 서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힘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 습니다. 실수도 있었으며,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힘은 그 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여기심을 받았습니다.(6 절,롬4:3갈3:6)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의 인간적 상태와 그의 '칭의' 사이의 대조를 통해 믿음의 본질이 무었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참 믿음의 출발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1절)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네번째 나타나신 것입니다. 하나님 께서는 아브람에게 나타나실 때마다 그를 영적으로 성장 시키시고 수준을 높이셨습니다. 세상에는 곳곳마다 인위적인 신앙의 대상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각종 샤 마니즘이나, 토테미즘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의 참 믿음의 대상이 될수 없습니다. 참 믿음으로서 올바른 출발점을 가질 려면 그 대상이 인위적인 하나님이 아닌, 스스로 자신을 계시하여 인간과 의 관계를 맺으신 하나님 뿐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계시없 이 참 믿음을 전혀 가질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시작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롬10: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고, 인간은 들으며, 이 렇게하여 그 마음이 믿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1절에 아브람이 전쟁에 나가 롯을 구하고, 소돔왕이 그에게 권하는 재물을 거부하는 믿음의 행동을 보시고는 하나님께서 나타나 친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하시며, 7절에서는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너를 갈 대아 우르에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고 스스로 계시해 주셨던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부분을 걸쳐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친히 계시하시며, 나타나 셔서 자신이 참 믿음의 대상이심을 보여 주십니다. 사44:6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 느니라."고 하셨으며, 또 사45:5절에서는 "나 밖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 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라고 하여 인간 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 신앙의 대상으로 존재하시며 인간을 다 스리시고 계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많은 신앙의 종류가 있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직 접 간접으로 신적인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기에 어떤 계시가 참 믿음의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의 계시인지 분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첫째로, 하나님(신)과 인간 상호간에 인격적인 관계 속에 계시 되어지는 말씀 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격이 없는 우주법칙이나 자연 만물들은 계시의 대상이 될수 없습니다.
둘째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비를 베푸시며, 악으로 부터 보호하시 며, 선으로 인도하시는 사랑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계시 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악의 모양이나 무자비한 능력 만이 움직이는 계시는 악한 계시 가 아닐수 없습니다. 더구나, 자비가 풍성하고 선과 사랑이 지고한것 같아 도 인격이 없는 무생물이나 사람이 아닌 생물들에게 조차 인격적인 대상으 로 격상시켜 지나치게 치우쳐 오히려 사람이 신앙이라는 미명하에 그것들 에게 노예화 비 인간화 되어 버리는 결과를 빚고 있는 계시들은 사탄의 고 단수적인 특급 함정이 아닐수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2.참 믿음의 행위는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하는 것입니다.(4-5절) 계시 중에 나타나신 하나님으로 부터 아브람에게 주신 말씀은 도무지 인간적으로는 믿기지 않는 약속이었습니다. 아브람의 나이가 많아 100세에 가까왔으며, 이미 노령으로 아이 생산 능력이 그들 부부에게는 끊겨진 것 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 4-5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 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 으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비록 나이들어 몸이 죽은 것 이나 다름 없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이 늙은 몸을 통해서라도 후손을 주 시겠다고 하시니 하나님의 이 말씀에 의지하여 나아 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없는 믿음은 단지 모험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막연히 하나님께서 선하시니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는 일반적인 믿음은 가질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특별한 축복을 원할 때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으면 확고한 믿음이 결여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의 믿음의 위대함은 ;
첫째로, 실행 불가능한 것 같은 약속을 믿은 것입니다. 상식의 한계를 벗 어난 약속을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믿음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의 로운 믿음이 되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지속적인 믿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할 때도, 또한 후손에 관한 약속 앞에서도, 그외 에 어떠한 말씀에도 아브람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사실 그대로 언제나 믿음으로 행하였습니다. 이러한 지속적인 믿음은 아브람의 믿음을 더욱 귀 하게 만들었습니다.
3.참 믿음에는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시련이 있습니다.(2절)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아들을 약속 하셨건만 세월은 손살같이 지나가고 있었으며, 어느듯 인생의 황혼기로서 마지막날을 엄마두고 있지 않고있음 있음을 직감할 수 있을 정도였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후사가 있을 것이라니 혼돈 속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점점 시 간이 흐를수록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있었습니다. 기 대했던 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아 두려움과 불안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의심의 구름이 아브람을 쉴새없이 휩싸 오는 듯 합니다. 그래서 본문 2절 은 이같은 아브람의 심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 여 무었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이 말은 지금 아브람의 경험과 이성은 모두 자신의 신앙과는 상반된 것이니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하고 묻는 물음입니다. 이와같은 시험과 혼란은 과정은 고난으로 일종으로 서 신앙인들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이같 은 시험과 고난의 과정을 두실까요
첫째, 생동력 있는 신앙이 되게 하시려고 시험과 고난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의 신앙이 시험과 고난을 통과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이 온상 속의 야채처럼 저항력이 약하고 유약한 성도가 되고 말 것입니다.
둘째, 인내를 이루어 구비되어 온전케 하시려고 시험과 고난이 있습니다. 믿음은 어두움과 낙담 중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방법을 터득해야합니다 이같은 신앙이 될때에 비로소 구비된 신앙의 소유자가 되는 것입니다.
4.하나님에 대한 믿음 만이 인간의 의를 이룹니다.(6절) 본문 6절에서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 기시고"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로와집니다. 인간의 지식은 변할지라도 믿음은 항상 동일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스스로 의로와 질수 없습니다. 구원은 인간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에 의 해서 만이 의를 소유합니다.
'결론' 나이많아진 아브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약속은 자식이 있을 것이라고 하 지만 현실은 너무도 절망적이기에 인간적으로 불안하고 걱정 스러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또한,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나아간 아브람은 마침내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며 나중에 기어코 큰 축복을 소유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신앙인의 부단한 자세이며,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에게 어려운 시험과 고난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을 붙잡고 나아가기만 한다면 아브람이 경험한 하나님의 축복과 섭리를 체험하게 될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칭의는 죄와 허물이 전혀 없고 행위의 실수가 없는 완전무결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같은 사실은 아브라함의 경우를 통해 서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힘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 습니다. 실수도 있었으며,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힘은 그 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여기심을 받았습니다.(6 절,롬4:3갈3:6)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의 인간적 상태와 그의 '칭의' 사이의 대조를 통해 믿음의 본질이 무었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참 믿음의 출발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1절)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네번째 나타나신 것입니다. 하나님 께서는 아브람에게 나타나실 때마다 그를 영적으로 성장 시키시고 수준을 높이셨습니다. 세상에는 곳곳마다 인위적인 신앙의 대상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각종 샤 마니즘이나, 토테미즘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의 참 믿음의 대상이 될수 없습니다. 참 믿음으로서 올바른 출발점을 가질 려면 그 대상이 인위적인 하나님이 아닌, 스스로 자신을 계시하여 인간과 의 관계를 맺으신 하나님 뿐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계시없 이 참 믿음을 전혀 가질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시작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롬10: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고, 인간은 들으며, 이 렇게하여 그 마음이 믿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1절에 아브람이 전쟁에 나가 롯을 구하고, 소돔왕이 그에게 권하는 재물을 거부하는 믿음의 행동을 보시고는 하나님께서 나타나 친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하시며, 7절에서는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너를 갈 대아 우르에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고 스스로 계시해 주셨던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부분을 걸쳐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친히 계시하시며, 나타나 셔서 자신이 참 믿음의 대상이심을 보여 주십니다. 사44:6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 느니라."고 하셨으며, 또 사45:5절에서는 "나 밖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 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라고 하여 인간 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 신앙의 대상으로 존재하시며 인간을 다 스리시고 계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많은 신앙의 종류가 있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직 접 간접으로 신적인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기에 어떤 계시가 참 믿음의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의 계시인지 분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첫째로, 하나님(신)과 인간 상호간에 인격적인 관계 속에 계시 되어지는 말씀 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격이 없는 우주법칙이나 자연 만물들은 계시의 대상이 될수 없습니다.
둘째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비를 베푸시며, 악으로 부터 보호하시 며, 선으로 인도하시는 사랑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계시 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악의 모양이나 무자비한 능력 만이 움직이는 계시는 악한 계시 가 아닐수 없습니다. 더구나, 자비가 풍성하고 선과 사랑이 지고한것 같아 도 인격이 없는 무생물이나 사람이 아닌 생물들에게 조차 인격적인 대상으 로 격상시켜 지나치게 치우쳐 오히려 사람이 신앙이라는 미명하에 그것들 에게 노예화 비 인간화 되어 버리는 결과를 빚고 있는 계시들은 사탄의 고 단수적인 특급 함정이 아닐수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2.참 믿음의 행위는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하는 것입니다.(4-5절) 계시 중에 나타나신 하나님으로 부터 아브람에게 주신 말씀은 도무지 인간적으로는 믿기지 않는 약속이었습니다. 아브람의 나이가 많아 100세에 가까왔으며, 이미 노령으로 아이 생산 능력이 그들 부부에게는 끊겨진 것 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 4-5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 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 으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비록 나이들어 몸이 죽은 것 이나 다름 없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이 늙은 몸을 통해서라도 후손을 주 시겠다고 하시니 하나님의 이 말씀에 의지하여 나아 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없는 믿음은 단지 모험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막연히 하나님께서 선하시니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는 일반적인 믿음은 가질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특별한 축복을 원할 때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으면 확고한 믿음이 결여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의 믿음의 위대함은 ;
첫째로, 실행 불가능한 것 같은 약속을 믿은 것입니다. 상식의 한계를 벗 어난 약속을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믿음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의 로운 믿음이 되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지속적인 믿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할 때도, 또한 후손에 관한 약속 앞에서도, 그외 에 어떠한 말씀에도 아브람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사실 그대로 언제나 믿음으로 행하였습니다. 이러한 지속적인 믿음은 아브람의 믿음을 더욱 귀 하게 만들었습니다.
3.참 믿음에는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시련이 있습니다.(2절)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아들을 약속 하셨건만 세월은 손살같이 지나가고 있었으며, 어느듯 인생의 황혼기로서 마지막날을 엄마두고 있지 않고있음 있음을 직감할 수 있을 정도였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후사가 있을 것이라니 혼돈 속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점점 시 간이 흐를수록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있었습니다. 기 대했던 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아 두려움과 불안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의심의 구름이 아브람을 쉴새없이 휩싸 오는 듯 합니다. 그래서 본문 2절 은 이같은 아브람의 심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 여 무었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이 말은 지금 아브람의 경험과 이성은 모두 자신의 신앙과는 상반된 것이니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하고 묻는 물음입니다. 이와같은 시험과 혼란은 과정은 고난으로 일종으로 서 신앙인들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이같 은 시험과 고난의 과정을 두실까요
첫째, 생동력 있는 신앙이 되게 하시려고 시험과 고난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의 신앙이 시험과 고난을 통과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이 온상 속의 야채처럼 저항력이 약하고 유약한 성도가 되고 말 것입니다.
둘째, 인내를 이루어 구비되어 온전케 하시려고 시험과 고난이 있습니다. 믿음은 어두움과 낙담 중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방법을 터득해야합니다 이같은 신앙이 될때에 비로소 구비된 신앙의 소유자가 되는 것입니다.
4.하나님에 대한 믿음 만이 인간의 의를 이룹니다.(6절) 본문 6절에서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 기시고"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로와집니다. 인간의 지식은 변할지라도 믿음은 항상 동일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스스로 의로와 질수 없습니다. 구원은 인간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에 의 해서 만이 의를 소유합니다.
'결론' 나이많아진 아브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약속은 자식이 있을 것이라고 하 지만 현실은 너무도 절망적이기에 인간적으로 불안하고 걱정 스러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또한,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나아간 아브람은 마침내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며 나중에 기어코 큰 축복을 소유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신앙인의 부단한 자세이며,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에게 어려운 시험과 고난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을 붙잡고 나아가기만 한다면 아브람이 경험한 하나님의 축복과 섭리를 체험하게 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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