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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분량대로 주시는 하나님 (왕하4:1-7)

본문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지식이나 재산의 많고 적음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순경에 처할 때에는 고매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역경에 처하게 되면 천박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됨됨이를 정확하게 알려면, 역경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는 교인들의 믿음이 얼마나 두터운가는 만사가 형통할 때의 모습이 아니라,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의 모습을 보아야 올바로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교인들 역시 불행한 현실에 처하게 되면, 불평 불만을 일삼다가 절망해 버립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원망하며 등지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더 큰 문제를 만들고, 더 큰 불행을 만듭니다.
2. 엘리사를 찾아온 불행한 여인
여호사밧이 남 왕국 유다를 다스리고, 아합의 아들인 여호람이 북 왕국 이스라엘을 통치할 때에, 이스라엘에서 활동하고 있던 선지자 엘리사에게 선지자의 생도의 아내인 한 여인이 부르짖었습니다.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채주가 이르러 나의 두 아이를 취하여 그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내에겐 남편이 그냥 죽어도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일텐데, 빚을 많이 남겨 놓고 신학생이었던 남편이 죽었으니 오죽하겠습니까 이제 두 아들마저 갚을 수 없는 빚 때문에 율법에 따라 빚쟁이에게 종으로 끌려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여인이 부르짖을 수밖에 더 있습니까 그여인이 죽은 남편을 원망하고, 자기의 가정이 풍지박산이 되는 것에 대해 하나님을 원망한들 어떻게 그 여인을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놀라운 것은 불행을 당한 그 여인의 태도입니다. 여인은 그 엄청난 불행 때문에 죽은 남편을 원망하지도 않았고, 하나님께 대해 불평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믿는 여인은 불평이나 원망이 문제를 해결하거나,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기는커녕, 또 다른 불행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 그 믿음의 여인은 불행하면 할수록 그 만큼 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당대의 참 선지자인 엘리사를 찾아가 부르짖은 것입니다.
속수무책인 그녀의 애절한 부르짖음을 들은 선지자 엘리사는,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죽었고, 남은 두 아이는 빚 대신에 종으로 끌려가게 됐다는 여인에게 남아 있는 것을 알려 달라고 한 것입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말입니다. 그러나, 바로 여기서 우리는 일반인들이나 일반 교인들과 다른, 선지자 엘리사의 믿음의 눈을 볼 수 있습니다. 망했다고 울부짖는 여인에게, 그래도 그 비참한 현실 속에 하나님께서 남겨 놓은 소망의 그루터기가 있지 않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무슨 불행한 문제가 있습니까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교회나 직장, 사회나 나라 등에 어떤 불행한 문제가 생겼을 때에, 중요한 것은 무엇이 남아 있는가를 생각해 내는 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대개는 잃어버린 것에 연연하며 탄식하기에 바쁩니다. 아니면, 무엇 또는 누구를 의지할까를 생각합니다.
여인은 집에 있는 기름 한 병이 생각나서, “한 병 기름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미국의 어느 목사님의 사무실에 한 중년 신사가 찾아와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제 모든 것은 끝나 버렸습니다. 저는 모든 재산을 잃어버렸습니다. 다시 회복하기 위해 무척 애를 썼는데… 다 틀렸습니다. 제 나이 52살입니다.” 듣고 있던 목사님이 되물었습니다. “정말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남은 게 하나도 없습니까” 중년 신사는 맥없이 “예, 남은 것이라곤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같이 얘기해 보자고 하면서 물었습니다. “아내가 있습니까” “예, 훌륭한 부인이 있습니다.” “자녀가 있습니까” “귀여운 아이가 셋이 있습니다.” “친구가 있습니까” “예, 돕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순결합니까” “나름대로 깨끗하게 살아왔습니다.” “미국이란 나라가 기회를 찾는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기회를 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미국은 기회의 왕국이라고 생각됩니다.” “건강은 어떻습니까” “아직은 건강합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대답을 하던 그 중년 신사의 얼굴이 밝아지더니, “잘 알겠습니다.” 하고는 사무실을 떠났습니다. 뒷날, 그 중년 신사는 성공한 훌륭한 신사의 모습을 하고 그 목사님을 찾아와 고마운 인사를 드렸습니다.
어쩌면 우리 중에, “그 사람의 불행은 내게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내 슬픔은 가장 비참한 것이고, 내 불행은 최악의 것이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정말
그렇다면 오히려 다행입니다. 왜 더 이상 나빠질래야 나빠질 수가 없을테니까 말입니다. 물론, 어려운 처지나 불행한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려운 처지나 불행한 현실을 대하는 믿음의 태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자기 것을 소중히 여기라
남편은 죽고 남은 두 아들은 빚쟁이에게 빼앗길 수밖에 없는 여인에게, 한 병의 기름이란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말 보잘것없는 것입니다.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불행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전혀 쓸모가 없습니다. 오히려 바라보면 더욱 기가 막힐 뿐입니다.
그런데 선지자 엘리사는 바로 그것을 붙들라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것이나 잃어버릴 것이 아니라, 남은 것이 하찮은 것이라도 그것을 가지고 다시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허황된 꿈을 꾸라고 하지 않고, 아주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것을 붙잡고 새로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게 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엘리사는 다 잃어버리고 망했다는 여인의 집에 있는 한 병 기름을 붙잡았습니다. 그 한 병의 기름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바로 거기서 하나님의 풍성한 복의 그루터기를 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엘리사는 여인에게 모든 이웃에게서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많이 빌리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을 데리고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가득 채우라고 지시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지시요, 말도 안 되는 명령이었지만, 그러나 여인은 창조주 하나님의 복을 믿고 즉시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러자 창조주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빌린 모든 그릇에 기름이 다 차도록 기름이 부어졌습니다. 그릇이 다하자 기름도 다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한계가 있어서 기름이 다한 것이 아니라, 여인의 믿음의 분량 만큼 기름의 복이 채워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인의 순종하는 믿음을 보신 하나님께서 기름 한 병을 통하여 풍성한 복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은 빚을 갚고도 세 식구가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충분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믿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넘치도록 풍성한 복을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모든 문제를 해결받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영생까지 얻게 해 주는 것입니다.
실상 신학생 남편은 많은 빚만 남겨 준 것이 아니라, 위대한 유산도 남겨 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여인이 엘리사에게 그의 종인 자기 남편이 여호와를 경외한 것을 그도 아는 바라고 한 것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4. 맺음말
우리 모두 없는 것이나 잃어버린 것을 한탄 말고, 남아 있는 것을 소중히 여겨 그것을 붙잡고 다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아무것도 없다 하더라도, 그래도 우리에게는 그 모든 것보다 더 귀중한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창조주시고, 복의 근원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독생자 예수까지 보내셔서 우리의 영생의 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아무쪼록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믿음이 더욱 두터워지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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