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변화 (히11:1-2)
본문
요즘 사업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경기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고 한다. 어떤 사람이 곤경을 표현했다. "문제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않됩니다. 감사하고 기뻐하려고 해도 되지 않습니다. 변화가 없어요. 장래에 변화가 있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과연 진퇴 양난에서 절망하고 있어야 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답답해 하는걸 본다. 오늘날 신자들의 문제가 무엇인가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못본다는 것이다. 신자다운 삶에서 더욱 그러하다. 누구나 대표기도 하라면 "노력은 했지만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하고 말한다. "당신은 제대로 된 신자입니까 신자로서 능력이 있습니까" 이런 질문을 당하면 자신이 없어진다. 믿음에도 능력에도 확신이 없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엄청난 일들이 벌어진다. 믿는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한다. 믿는자는 죽은 사람을 일으키고 폭풍우를 잔잔케 한다. 믿는자를 당 할 장사가 없다. 사도 바울을 따라다니면서 비난하다가 눈이 먼 사람도 있 고 엘리사가 대머리라고 놀리던 아이들이 곰에게 물려 죽었다. 얼마나 당 당한가! 다니엘은 사자굴에서, 그의 친구들은 불속에서도 죽지 않았다. 이러한 일이 오늘날 신자에게 벌어지고 있는가 아니, 너무도 무능력 한게 오늘의 신자들이다. 믿음은 놀라운 변화를 주는데 믿는다고 하면서 아무런 변화를 경험하지 못한다. 오늘의 말씀을 보라. "믿음은 바라는 것 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고 한다. 믿음으로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바라게 된다. 또한 그들의 실상을 보고 만진다는 말이다. 왜 신자가 무능한가 새로운 존재임에도 그것을 모르고 계속 옛 방법 으로 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주위에서 정보를 습득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자신을 이해한다. 모두가 자기보고 욕하는데 용기가 생기는 사람은 드물다. 돈많고 높은 사람이 되면 사람의 장막에 싸이는 경우가 많다. 칭찬만 듣는다. 그래서 자기는 다 잘하고 다 자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19살에 고등고시에 합격했다. 그후에 이 젊은이는 "영감" 이 된다. 모두가 자기 이야기만 듣고 지당하다고 아첨한다. 그는 자기 자 신이 모든 면에서 지혜로우며 모든 면에서 옳은 판단을 한다고 착각한다. 어떤 사람은 재벌의 부인이 되었다. 돈의 위력은 큰 것이었다. 모두가 존 경하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이제 그녀는 자신을 완전한 신자로 보고 있다. 이처럼 잘못된 정보는 듣는 자신을 잘못 이해하게 만든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에 대해 바른 정보를 얻으려 하지 않고 편들어 주는 사람을 좋아하는 경향이있다. 옳은지 틀린지 자신이 없을 때 무조건 두둔하고 축복할 예언자를 찾는다.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십니다. 잘될 것입니다"는 말을 듣고 헌금을 듬뿍 놓고 온다. 혹시 누가 잘못을 지적하면 싫어한다. 정확무오한 지식이 어디서 나오는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죄인을 변화 시키고 새사람 만드는 능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악귀 들을 물리치고 무서운 풍파를 잔잔케하는 능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 말씀 자체가 살았고 힘이 있다. 그 말씀은 천지를 창조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의 호흡이 실려 있다. 아니 하나님 자체이다. 이 말씀이 정확한 지식을 제공한다. 이 땅에서뿐 아니라 장차 올 영원 한 나라에서도 틀림없이 적용된다. 눈에 보이는 세상뿐 아니라 초자연과 영적인 세상에서도 이 말씀은 지배한다. 여기에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 바 른 자신의 모습이 나온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말씀을 재는 자라고 말한다. 변함없이 확실한 평가를 준다. 또한 분명히 지켜지는 약속이기도 하다.
1.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정체를 파악하라. 말씀이야 말로 가장정확한 지식을 제공한다. 정치 경제 과학에까지 정확한 철학을 제공한다. 말씀은 이 세상 한계 밖의 것도 가르쳐 준자. 안보이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 그리고 앞으로 될 일도 말해준다. 그뿐이 아니다. 보이는 세상 안보이는 세상 장차 올 세상을 통틀어서 나의 모습을 정확하게 설명해 준다. 말씀은 두 부분이다. 율법(계명)과 복음이다. 율법은 너무도 정확하게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누구를 막론하고 여기 비추어 보면 죄인이다. "하나님 외의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이 한 계명도 제대로 지킬 수 없다. 인간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마찬가지로 범하고 있다. 마음 속에서는 미워하는 사람을 수없이 죽였고 이성을 향해서 수없이 간음했다. 사람들은 겉으로만 율법을 지키면서 자신이 의롭다고 여긴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계명을 어긴 죄 역시 외형적으로만 끝나는게 아니다. 계명이 영적인 것처럼 형벌이 육 신적인 죽음으로 그치지 않는다. 영혼이 다시 영원히 죽어야만 한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의 다른 면은 복음을 들려준다. 신자는 누구든지 여기 비추어 자신을 보아야 한다. 자기 자리에 우리를 세워주시고 우리 자 리에 자신이 선 것이다. 결과는 무엇인가 죄는 그리스도가 짊어지고 의는 우리가 받게 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죽이고 우리는 자기의 아들로 취 급해 주신다. 그래서 모든 면에 그리스도처럼 대해 주신다. 복음 아닌가! 자 어디에 비추어서 자신을 이해할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인가 아니 면 자기 생각대로 자신을 이해할 것인가 세상의 수준이나 자기 경험에 의 해서 자신을 평가하고 의롭다고 안심하면 속은 것이다. 죄인이요 죽고 망 할 존재인데도 괜찮을 것으로 생각하면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율법대로 인간은 형벌을 받아야 한다. 세상에서 사는 동안 그리고 죽어서도 영원히. 복음을 믿는 사람은 새로운 존재로 바뀐다. 이것은 경험이나 느낌으로 가 아니라 믿음으로 된다. 하나님이 해 주신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정치 경제 과학은 세상적인 이해를 줄뿐이다. 인간의 말을 듣고 자 신을 평가하지 말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보라. 그러면 자신에 대한 참 정보를 얻는다. 신자는 신문방송보다 말씀에 더 목말라야 한다.
2.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자신을 키운다. 하나님의 말씀은 새로운 자기 인식을 준다. 세상적인 방법과는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은 잘 믿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서도 그 혜택을 못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 지식보다 더 믿으라. 말씀을 공부하라. 예배를 통해서 그 말씀에 참여하라. 한번이라도 더 참석하라. 그러면 얻는다. 믿음은 들어야만 생긴다. 예배 참석 않하고 믿음 좋아지는 사람있으면 데리고 와 봐라. 믿음대로 행동하면 그 내용이 적용될 것이다. 그러면 더 욱 더 자신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게 될 것이다. 예수는 병자들에게 말씀을 주셨다. 그리고 그대로 움직이기를 명령했다. 그대로 한 사람들은 불 치의 병에서 놓임을 받았다. 소경은 보고, 앉은뱅이와 중풍은 일어났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한다. 베드로는 어부였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아침에 그물을 씻고 돌아가려는데 주의 말씀이 있었다. 깊은데 그물을 내리라는 것이다. 전혀 상황에 맞지 않았다. 진가민가한 그는 마지못해 말씀을 의지 하고 그물을 던졌다. 결과는 두 배에 잠길만큼 엄청난 양의 고기였다. 여기서 보듯이 믿음은 반드시 행동을 동반한다. 발밑에 보물이 있다는 소리를 믿는 사람은 반드시 땅을 팔 것이다. 그리고는 그 믿음의 열매를 확인한다. 여기서 더욱 큰 믿음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 믿음을 가진 사람 은 말씀에 복종함으로 더욱 믿음으로 나아간다.(롬 1:17) 그 결과는 무엇 인가 더욱 더 그리스도에 가까워지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다. 데일 카네기가 크게 성공해 세계적 인물이 된 뒤, 뉴욕 마불교회에서 간증을 했다. 그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미주리의 가난한 농촌에서 자라 났다. 잠자리에 들면 어머니는 옆에서 "하나님이 너를 돌보아주신다"는 말 을 그가 잠들 ㄸ까지 반복했다고 한다. 식사때도 작업때도 그의 옆에 평생 어머니가 계셨고 하나님이 계셨다. 그 말씀이 의식 밑에 항상 있었기에. 그리스도를 닮아 그리스도처럼 사는 생활이 인간적인 노력만으로는 되 지 않는다. 기도하고 금식하면 되는게 아니다. 말씀에 대한 지식이 많아지 고 그로 인해서 자신에 대한 더 정확한 인식이 자랄수록 그렇게 된다.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서 이미 해주신 일이 무엇인지 알면 알수록 믿음도 커 지고 강해진다. 정말로 말씀의 지식이 없는 자는 망하는 것이다.(호 4:6)
3. 하나님의 말씀을 토대로 꿈꾸고 창조한다. 이 거룩한 지식이 많은 사람은 그래서 분명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땅을 바라보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땅을 보다가 5달라짜리 지폐를 주웠다. 그때부터 이 사람은 항상 땅만 보고 다녔다. 평생 한 뒤에 많은 것을 주웠다. 동전은 약 200불 그리고 핀이 2100여개, 기타 잡동산이들이었다. 큰돈이지만 얼마나 헛된 일인가! 땅의 방법대로만 사는 사람은 거기서 그 수준의 것만 얻을 것이다. 하 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신을 이해하고 그대로 살려는 사람은 또 거기맞는 수준의 삶이 펼쳐질 것이다. 마치 하늘을 향해 나는 새처럼 새로운 삶 을 시도할 것이다. 그렇게 창조가 이루어진다. 남들 수준으로 살기를 원하 지 않는다. 계속해서 도약하기를 원한다. 그 힘이 자기 속에 있기에. 똑같은 일도 보기에 따라서 다른 것이다. 돈을 절반 썼다. 그때 "절반 밖에 안남았네"하는 것과 "절반이나 남았네"하는건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까짓 표현상의 문제인데하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렇지 않다. 신앙은 암 흑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는가 천지창조의 첫 날은 흑암과 혼돈뿐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의 일을 계속하셨다. 믿음의 사람은 모든 것을 통해서 가능성을 본다. 절망을 뒤집으면 희 망인 것을 안다. 많은 사람들이 고백한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새로 운 문이 열린다." 신앙인은 창조한다. 길 없는 곳엔 길을 문 없는 곳엔 문 을 만든다. 그는 가족, 이웃, 인간에 대한 자신을 가지고 있다. 자기 자신 에 대해서는 더욱 확신을 가지고 있다. 복음에 비추어 보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을 다시 음미해 보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 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서 증거를 얻었느니라." 아직 아무 도 상상 못하던 것을 보고 바랐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친구가 된 이도 있 었고 아주 늙어서 아들을 얻은 이도 있었다. 자기 백성 전체를 노예상태에 서 구원해 나온 사람도 있었다. 믿음으로 전쟁을 이기고 기적을 행했다. 다른 말로 해보자. 바라지 않으면 얻지 못할 것이요 보지 못하면 증거 를 가지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창조요 이것이 변화의 능력이다. 신자는 바라고 보되 하나님처럼 한다. 그걸 훈련한다. 혼돈 속에서도 아름다운 천 지를 보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믿음은 흑암을 뚫고 빛을 던져준다. 믿음으 로 자신이 변화된 사람만이 창조할 수 있다. 창조는 하나님에게만 있다. 믿는자는 이미 변화된 존재이다. 이제 이것을 받아들이자. 느낌 이전 에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의 이름과 명예를 걸고 선포하는 복음이다. 이제 거기 맞추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 그 수준의 삶이 펼쳐진다. 절대로 자신의 상황에 맞추어 남의 말에 의해 자신을 보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보는 사람은 이미 자신이 변한 것을 안다. 어떻게 변했는가 새사람으로 능력자로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 변했다. 신앙의 모든 선배들이 같은 방법으로 변했음을 알았다. 바울이 어거스 틴이 칼빈이 루터가 그랬다. 성경은 이러한 예들로 채워져 있다. 믿는자는 엄청난 일을 상상해야 한다. 현실의 상황에 사로 잡혀서 좌절하는 사람은 아무 힘도 쓰지 못할 것이다. 변화받은 이여 위를 보라. 큰일을 생각하라.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에 대해 바른 정보를 얻으려 하지 않고 편들어 주는 사람을 좋아하는 경향이있다. 옳은지 틀린지 자신이 없을 때 무조건 두둔하고 축복할 예언자를 찾는다.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십니다. 잘될 것입니다"는 말을 듣고 헌금을 듬뿍 놓고 온다. 혹시 누가 잘못을 지적하면 싫어한다. 정확무오한 지식이 어디서 나오는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죄인을 변화 시키고 새사람 만드는 능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악귀 들을 물리치고 무서운 풍파를 잔잔케하는 능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 말씀 자체가 살았고 힘이 있다. 그 말씀은 천지를 창조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의 호흡이 실려 있다. 아니 하나님 자체이다. 이 말씀이 정확한 지식을 제공한다. 이 땅에서뿐 아니라 장차 올 영원 한 나라에서도 틀림없이 적용된다. 눈에 보이는 세상뿐 아니라 초자연과 영적인 세상에서도 이 말씀은 지배한다. 여기에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 바 른 자신의 모습이 나온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말씀을 재는 자라고 말한다. 변함없이 확실한 평가를 준다. 또한 분명히 지켜지는 약속이기도 하다.
1.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정체를 파악하라. 말씀이야 말로 가장정확한 지식을 제공한다. 정치 경제 과학에까지 정확한 철학을 제공한다. 말씀은 이 세상 한계 밖의 것도 가르쳐 준자. 안보이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 그리고 앞으로 될 일도 말해준다. 그뿐이 아니다. 보이는 세상 안보이는 세상 장차 올 세상을 통틀어서 나의 모습을 정확하게 설명해 준다. 말씀은 두 부분이다. 율법(계명)과 복음이다. 율법은 너무도 정확하게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누구를 막론하고 여기 비추어 보면 죄인이다. "하나님 외의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이 한 계명도 제대로 지킬 수 없다. 인간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마찬가지로 범하고 있다. 마음 속에서는 미워하는 사람을 수없이 죽였고 이성을 향해서 수없이 간음했다. 사람들은 겉으로만 율법을 지키면서 자신이 의롭다고 여긴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계명을 어긴 죄 역시 외형적으로만 끝나는게 아니다. 계명이 영적인 것처럼 형벌이 육 신적인 죽음으로 그치지 않는다. 영혼이 다시 영원히 죽어야만 한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의 다른 면은 복음을 들려준다. 신자는 누구든지 여기 비추어 자신을 보아야 한다. 자기 자리에 우리를 세워주시고 우리 자 리에 자신이 선 것이다. 결과는 무엇인가 죄는 그리스도가 짊어지고 의는 우리가 받게 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죽이고 우리는 자기의 아들로 취 급해 주신다. 그래서 모든 면에 그리스도처럼 대해 주신다. 복음 아닌가! 자 어디에 비추어서 자신을 이해할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인가 아니 면 자기 생각대로 자신을 이해할 것인가 세상의 수준이나 자기 경험에 의 해서 자신을 평가하고 의롭다고 안심하면 속은 것이다. 죄인이요 죽고 망 할 존재인데도 괜찮을 것으로 생각하면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율법대로 인간은 형벌을 받아야 한다. 세상에서 사는 동안 그리고 죽어서도 영원히. 복음을 믿는 사람은 새로운 존재로 바뀐다. 이것은 경험이나 느낌으로 가 아니라 믿음으로 된다. 하나님이 해 주신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정치 경제 과학은 세상적인 이해를 줄뿐이다. 인간의 말을 듣고 자 신을 평가하지 말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보라. 그러면 자신에 대한 참 정보를 얻는다. 신자는 신문방송보다 말씀에 더 목말라야 한다.
2.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자신을 키운다. 하나님의 말씀은 새로운 자기 인식을 준다. 세상적인 방법과는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은 잘 믿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서도 그 혜택을 못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 지식보다 더 믿으라. 말씀을 공부하라. 예배를 통해서 그 말씀에 참여하라. 한번이라도 더 참석하라. 그러면 얻는다. 믿음은 들어야만 생긴다. 예배 참석 않하고 믿음 좋아지는 사람있으면 데리고 와 봐라. 믿음대로 행동하면 그 내용이 적용될 것이다. 그러면 더 욱 더 자신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게 될 것이다. 예수는 병자들에게 말씀을 주셨다. 그리고 그대로 움직이기를 명령했다. 그대로 한 사람들은 불 치의 병에서 놓임을 받았다. 소경은 보고, 앉은뱅이와 중풍은 일어났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한다. 베드로는 어부였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아침에 그물을 씻고 돌아가려는데 주의 말씀이 있었다. 깊은데 그물을 내리라는 것이다. 전혀 상황에 맞지 않았다. 진가민가한 그는 마지못해 말씀을 의지 하고 그물을 던졌다. 결과는 두 배에 잠길만큼 엄청난 양의 고기였다. 여기서 보듯이 믿음은 반드시 행동을 동반한다. 발밑에 보물이 있다는 소리를 믿는 사람은 반드시 땅을 팔 것이다. 그리고는 그 믿음의 열매를 확인한다. 여기서 더욱 큰 믿음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 믿음을 가진 사람 은 말씀에 복종함으로 더욱 믿음으로 나아간다.(롬 1:17) 그 결과는 무엇 인가 더욱 더 그리스도에 가까워지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다. 데일 카네기가 크게 성공해 세계적 인물이 된 뒤, 뉴욕 마불교회에서 간증을 했다. 그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미주리의 가난한 농촌에서 자라 났다. 잠자리에 들면 어머니는 옆에서 "하나님이 너를 돌보아주신다"는 말 을 그가 잠들 ㄸ까지 반복했다고 한다. 식사때도 작업때도 그의 옆에 평생 어머니가 계셨고 하나님이 계셨다. 그 말씀이 의식 밑에 항상 있었기에. 그리스도를 닮아 그리스도처럼 사는 생활이 인간적인 노력만으로는 되 지 않는다. 기도하고 금식하면 되는게 아니다. 말씀에 대한 지식이 많아지 고 그로 인해서 자신에 대한 더 정확한 인식이 자랄수록 그렇게 된다.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서 이미 해주신 일이 무엇인지 알면 알수록 믿음도 커 지고 강해진다. 정말로 말씀의 지식이 없는 자는 망하는 것이다.(호 4:6)
3. 하나님의 말씀을 토대로 꿈꾸고 창조한다. 이 거룩한 지식이 많은 사람은 그래서 분명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땅을 바라보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땅을 보다가 5달라짜리 지폐를 주웠다. 그때부터 이 사람은 항상 땅만 보고 다녔다. 평생 한 뒤에 많은 것을 주웠다. 동전은 약 200불 그리고 핀이 2100여개, 기타 잡동산이들이었다. 큰돈이지만 얼마나 헛된 일인가! 땅의 방법대로만 사는 사람은 거기서 그 수준의 것만 얻을 것이다. 하 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신을 이해하고 그대로 살려는 사람은 또 거기맞는 수준의 삶이 펼쳐질 것이다. 마치 하늘을 향해 나는 새처럼 새로운 삶 을 시도할 것이다. 그렇게 창조가 이루어진다. 남들 수준으로 살기를 원하 지 않는다. 계속해서 도약하기를 원한다. 그 힘이 자기 속에 있기에. 똑같은 일도 보기에 따라서 다른 것이다. 돈을 절반 썼다. 그때 "절반 밖에 안남았네"하는 것과 "절반이나 남았네"하는건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까짓 표현상의 문제인데하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렇지 않다. 신앙은 암 흑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는가 천지창조의 첫 날은 흑암과 혼돈뿐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의 일을 계속하셨다. 믿음의 사람은 모든 것을 통해서 가능성을 본다. 절망을 뒤집으면 희 망인 것을 안다. 많은 사람들이 고백한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새로 운 문이 열린다." 신앙인은 창조한다. 길 없는 곳엔 길을 문 없는 곳엔 문 을 만든다. 그는 가족, 이웃, 인간에 대한 자신을 가지고 있다. 자기 자신 에 대해서는 더욱 확신을 가지고 있다. 복음에 비추어 보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을 다시 음미해 보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 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서 증거를 얻었느니라." 아직 아무 도 상상 못하던 것을 보고 바랐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친구가 된 이도 있 었고 아주 늙어서 아들을 얻은 이도 있었다. 자기 백성 전체를 노예상태에 서 구원해 나온 사람도 있었다. 믿음으로 전쟁을 이기고 기적을 행했다. 다른 말로 해보자. 바라지 않으면 얻지 못할 것이요 보지 못하면 증거 를 가지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창조요 이것이 변화의 능력이다. 신자는 바라고 보되 하나님처럼 한다. 그걸 훈련한다. 혼돈 속에서도 아름다운 천 지를 보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믿음은 흑암을 뚫고 빛을 던져준다. 믿음으 로 자신이 변화된 사람만이 창조할 수 있다. 창조는 하나님에게만 있다. 믿는자는 이미 변화된 존재이다. 이제 이것을 받아들이자. 느낌 이전 에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의 이름과 명예를 걸고 선포하는 복음이다. 이제 거기 맞추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 그 수준의 삶이 펼쳐진다. 절대로 자신의 상황에 맞추어 남의 말에 의해 자신을 보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보는 사람은 이미 자신이 변한 것을 안다. 어떻게 변했는가 새사람으로 능력자로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 변했다. 신앙의 모든 선배들이 같은 방법으로 변했음을 알았다. 바울이 어거스 틴이 칼빈이 루터가 그랬다. 성경은 이러한 예들로 채워져 있다. 믿는자는 엄청난 일을 상상해야 한다. 현실의 상황에 사로 잡혀서 좌절하는 사람은 아무 힘도 쓰지 못할 것이다. 변화받은 이여 위를 보라. 큰일을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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