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경주장에는 (히12:1-4)
본문
오늘은 고려 신학교 주일이다. 우리 고려 신학교는 성도간의 법정 소송 문제로 인해 부산 고신측에서 갈라져 나와 세운 신학교로 우리 교단의 총회 직영 신학교이다. 현재 문산에 캠퍼스가 있으며, 재학생은 100여명이 조금 넘는다. 1976년 3월 세상 법정에서 성도간 고소를 할 수 없다는 고전 6장의 말씀을 쫓아 부산 고신에서 갈려져 나와 서울에 고려 신학교를 개교한 이래 지난 98년 2월 19일 올해의 졸업식까지 719명의 주의 종들을 배출시켰다. 졸업생의 대부분은 목회 현장에서 복음 전파에 주력하고 있으며, 6명의 신학교 교수와 교수 요원으로 미국, 구라파 지역에서 학위 취득을 위해 유학 중에 있는 몇 몇 분들과 5대양 6대주의 타 문화권에서 땅끝까지 복음 전파를 위해 수고하시는 50여명의 선교사들이 있다. 우리 고려 신학교의 마크에 “CORAM DEO”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이 말은 라틴어로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이다. 저는 생각한다. 우리 고려 신학교의 3년간 교육은 학문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이 “CORAM DEO”의 정신을 훈련하고 익히는 교육 과정이라고 본다. 그래서 다른 신학교의 출신과는 달리, 이 “하나님 앞에서” 라는 정신이 조금은 남다르다고 느끼고 있다. 그래서 지난 해 고려 신학교 주일에는 “CORAM DEO의 정신”에 대하여 살펴본바 있다. 현재 고려 신학교의 재정은 교단 산하 지교회의 경상비의 3%의 신학교 후원금과 지교회에서 조직된 고려 신학교 후원회를 통한 후원금과 고려 신학교 주일 헌금으로 이루어진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지교회의 사랑 어린 지원으로 전교생의 기숙사 생활을 무료로 운용하고 있으며, 본 교단 소속의 학생들은 전액 장학생으로 수업료가 없다.
그런데 재정이 모자라지 않는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요, 하나님의 은혜이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믿음의 경주장”에 대하여 살펴 보고져 한다. 바로 이 “믿음의 경주장”에서 힘차게 달릴 선수들을 길러 내는 곳이 바로 우리 고려 신학교이다. 믿음의 경주장에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믿음의 경주”에 참여하고 있을까. 또 어떤 경기가 이루어지고 있을까 “믿음의 경주장”이기에 스포츠 경주장과는 다르다. 다시 말해서 사람 앞에서 하는 경주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경주하는 경주장이다. 스포츠 경주장에는 1등을 위하고, 상을 위해 경주한다. 그러나 “믿음의 경주장에는.” 1등, 2등, 3등의 순위가 없다. 다만 예수를 바라보고 달린다. 예수를 닮아 가고, 예수를 나타내고, 죄와 더불어 싸우는 경주이다. 믿음의 경주장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으며, 어떻게 그들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는지,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 보고져 한다.
1.구름 같이 모인 관중들이 있다. 본문 1절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라고 했다. 오늘 본문의 “믿음의 경주장”에 맨 처음 등장하는 이들은 바로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다. 다시 말해서 “믿음의 경주”를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증인들이다. 곧 관중드이다.
1.허다한 증인들 히브리서 11:39절에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라고 했다. 이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은 다 믿음으로 증거를 받은 사람들이다. 곧 히브리서 11장에서 말씀하는 믿음의 선진들이다(히11:2).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본 자들이요,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다. 아벨은 믿음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은 자이다(히11:4).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은 자이다(히11:5). 히브리 11장에 나타난 우리 성도들의 믿음의 선진들은 다 증거를 받은 자들이다. 믿음의 경주장에는. 이렇게 “믿음으로.” 증거를 가진 믿음의 선진들이 구름 같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허다한 증인들이 둘러서서 “믿음의 경주장”를 지켜보고 있다고 한다. 어떤 올림픽 경주장 보다도 더 많은 관중이 모여들어 환호를 지르며, 응원가를 부르며, 박수를 치며, 성원을 하고 있다.
2.모두가 메달리스트들이다. 히브리서 11:1-2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고 했다. 믿음의 경주장에는. 일반 스포츠 경주장과는 달리 관중들 모두가 승리의 메달을 받은 사람들이다. “믿음으로 증거를 받은 자들”이다. 다시 말해서 “믿음의 경주”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다. 놀러 온 구경꾼들이 아니다. 일찍이 저 “믿음의 경주장”에서 시간을 바치고, 물질을 바치고, 청춘을 바치고, 한 평생을 다해 자신들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여 “믿음으로 증거”를 받은 자들이다. 믿음의 경주장에는. 그 어느 올림픽 경기장 못지 않게 응원과 격려가 환호를 이루고 있다. 믿음의 경주장에서 지치고 스러지는 후배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힘들었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용기를 잃지 말고 끝까지 인내하며 달리라고 응원과 격려의 소리가 대단하다. 피로의 기색도 없이 오직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인 예수를 바라보고 힘차게 달려가는 후배들을 바라보며, 더욱 힘내라고, 최후 승리가 바로 눈앞에 있으니, 마지막 힘을 다하라고 응원과 격려의 소리가 환호를 이룬다. 믿음의 경주장에는. 이들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그 수많은 관중들의 환호속에 열기를 더해 가고 있다.
2.달리는 선수들이 있다. 본문 1절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라고 했다. 믿음의 경주장에는. 오늘 본문 말씀에 두 번째 등장하는 이들은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는 자들”이다. 곧 달리는 선수들이다. 자신들의 생애에 주어진 믿음의 경주를 경주하는 모든 신앙인들을 가리킨다.
1.벗어 버리고 경주장에서 달리는 선수들에게는 몸을 가볍게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특히나 인생사에 비유되는 마라톤 같은 장거리 경기에는 더더욱 옷을 벗어 버리고 가벼운 운동복 차림을 해야 한다. 믿음의 경주장에는. 단거리 경기도 아니고, 한 판 승부로 끝나는 경기가 치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한 평생을 달려야 하는 “믿음의 경주”이다. “믿음의 경주장”에서 자신들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면서 벗어 버려야 할 것은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라고 했다. 모든 무거운 것은 우리 범죄한 인생이 짊어지고 가야 할 모든 짐이요, 얽매이기 쉬운 죄는 죄의 유혹이다.
2.앞만 바라보고 달리는 경주자가 앞만 바라보고 달려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1/100초를 다투는 단거리 경기가 아니기에 여유를 가지게 된다. 앞도 보고, 뒤도 보고,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살피게 된다. 믿음의 경주장에는. 자신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는 “믿음의 경주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고 좌로나 우로 치우침이 없이 똑바로 달려가야 한다. 이유는 전후 좌우에 유혹의 눈길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3.인내로서 불과 100여리 조금 넘게, 두 시간 조금 더 달리는 마라톤 경주에도 인내로서 끈질기게 달리는 것을 요구한다. 하물며 한 평생을 달려가는 신앙생활이겠는가 인내로서 끝까지 달려야 한다. 중도에 포기하지 말라고 한다. 세상에서 자기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주님처럼,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하신 주님처럼(요13:1), 끝까지 인내하며 달리라고 하신다. 믿음의 경주장에는. 무거운 짐 벗어 주님께 맡기고(마11:28), 주를 바라보며 죄의 유혹을 피하여 인내로서 자신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한다. 내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지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빌4:13) 내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경주이다. 내 힘으로 하는 경주가 아니다.
3.목표하는 결승점이 있다. 본문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했다. 경주장에서 경주를 하는 선수들은 골(Goal), 곧 목표하는 결승점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 골(Goal)를 보고 달려가기도, 볼을 차기도, 볼을 던져 넣기도 한다. 바로 이 골(Goal)이 경주자에게는 최고의 목표가 된다. 믿음의 경주장에는. “믿음으로. 증거”를 얻기 위해서 달려가는 수많은 경주자들이 있다. 이 경주자들에게도 골(Goal)이 있다. 바로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이다. 우리 앞에 본을 보이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사망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 우편 영광의 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1.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 믿음의 경주장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자신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달려가야 할 믿음의 경주자들이 바라보아야 할 골(Goal)이다. 이 경주가 바로 믿음의 경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라는 말씀의 뜻은 믿음의 시작이 예수 그리스도이요, 믿음의 끝이 예수 그리스도이라는 말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 믿음이 완성된다는 말이다.
2.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신 예수 믿음의 경주장에는. 여러 가지 고난과 시련, 핍박과 환란이 도사리고 있다. 그 고난의 최후는 죽음이다. 그러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믿음의 경주장이 아니다. 부활의 영광이 있고, 최후 승리가 기다리고 있다. 우리의 본이시오, “믿음의 경주장의 골(Goal)”이신 예수님도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의 죽으심을 참으셨다고 했다. 내일의 영광을 위하여 오늘의 자아를 희생하는 것이다. 바로 No Cross, No Crown이다.
3.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신 예수 우리는 초등학교의 가을 운동회에서 꼴찌로 달리던 학생이나 학부형들이 중도에서 포기하고 덜어가 버리는 것을 가끔 보게 된다. 왜 그럴까 달리기 경주에서 꼴찌한다는 부끄러움 때문이다. 사람들 앞에 창피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믿음의 경주장에는. 사람들 앞에 창피하고 부끄러운 것이 없다.
왜냐하면 “믿음의 경주”는 하나님 앞에서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 앞에서 하는 경주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CORAM DEO 정신으로 하는 경주장이기 때문이다.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이 때로는 하나님 앞에서 영광스러움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 앞에서의 실패가 하나님 앞에서 승리가 될 수도 있다. 바로 주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이다. 믿음의 경주장에는. 숱한 장애물과 감당키 힘든 어려운 시련들이 있다. 이 긴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기 위해서 지치고 쓰러지면 안된다. 왜 지치고 쓰러지는가. 전의(戰意)의 상실 때문이다. 힘이 없어서가 아니다. 믿음의 경주는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그 능력에 힘입어 경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장애물이 가로막는다 해도, 고난과 시련이, 환란과 핍박이 몰려온다 해도, 자신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는 믿음의 경주자는 전의를 상실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예수를 바라보라고 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하신 것이다.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부끄러움도 개의치 않으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을 생각하라고 한다. 무엇 때문에 그분이 수치를 당해야 하는가. 무엇 때문에 그분이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셔야 하는가. 무엇 때문에 그분이 죄인들의 거역을 십자가에 죽기까지 참으셔야 하는가를 바로 내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경주장에서 달려야 할 나에게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참으셨다고 한다. 나를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신, 나를 위해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던 그분을 생각하며. 믿음의 경주장에서 내가 낙심치 않도록 하시려. 참으셨다고 한다. 그분을 바라보며, 그분을 생각하며, 피곤하여 낙심치 말고 열심을 다하여 달리자. 내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고 뛰자.
4.최선을 다하는 싸움이 있다. 본문 4절에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 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라 했다. 바로 우리 성도들이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는 그 “믿음의 경주”가 무엇을 말하는 가.를 보여 주는 말씀이다. 바로 “믿음의 경주”는 죄와 더불어 싸우는 경주이다. “믿음의 경주”는 죄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죄의 유혹을 뿌리치고, 범죄치 않고 승리하는 것이다.
1.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여기서 말하는 “우리”는 믿음의 경주장에서 달리는 각 개인을 말한다. 각자가 자기 앞에 주어진 경주를 하라는 것이다. 스포츠 경기와 같이 함께 달려서 순위를 가려서 상을 주려는 경주장이 아니다. 믿음의 경주장이다. 마태복음 16:24절에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했다. 곧 각자 각자가 자기 몫에 테인 십자가를 지고 주를 쫓으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각자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라는 말씀이다.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에게 주어진 경주에 충실하라는 말씀이다.
2.피흘리기까지 믿음의 경주장에는. 죄와 더불어 싸우는 경주가 벌어지고 있다. 피곤하고 지치더라도 낙심치 말라고 한다. 죄와의 싸움에서 진다는 것은 곧 범죄하게 되고 그로 인하여 멸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죄와의 싸움은 피흘리기까지 계속된다고 한다. 곧 죽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육신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광의 부활이 기다리는 승리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내 몫에 테인 십자가를 지고, 죄와 더불어 싸우는 믿음의 경주장에서 경주할 때, 지치고 쓰러져 낙심하기 전에. 과연 피흘리기까지. 대항하여 싸워 보았는가. 우리 이 시간 한번 깊이 생각해 보자. 나의 낙심이 내 몫에 테인 십자가가 정말로 너무 무거워서, 그 십자가 때문에 지치고 쓰러지는 것인가. 과연 피흘리기까지. 죄와 더불어 싸우되 피흘리기까지 대항해 싸워 보고 낙심하는가. 믿음의 경주장에는.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격려의 소리를 외친다. 인내라하!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예수를 바라보라!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신 주님을 생각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내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는 “믿음의 경주자들”이다. 힘들고, 지치고, 피곤하고, 낙심이 되는가. 저 응원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저 격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믿음의 경주장에는.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믿음의 선진들이, 앞서 간 우리의 친구들이 응원과 격려의 소리를 외친다. 인내라하!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예수를 바라보라!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신 주님을 생각하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를 바라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힘내어 다시 일어나자. 우리 모두 힘내어 다시 달리자. 우리 모두 힘내어 예수를 바라보고 뛰자. 저 골인 지점에서 나를 영접하시려 두 팔 벌려 기다리시는 예수님의 품속에 달려가 안기자.
그런데 재정이 모자라지 않는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요, 하나님의 은혜이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믿음의 경주장”에 대하여 살펴 보고져 한다. 바로 이 “믿음의 경주장”에서 힘차게 달릴 선수들을 길러 내는 곳이 바로 우리 고려 신학교이다. 믿음의 경주장에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믿음의 경주”에 참여하고 있을까. 또 어떤 경기가 이루어지고 있을까 “믿음의 경주장”이기에 스포츠 경주장과는 다르다. 다시 말해서 사람 앞에서 하는 경주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경주하는 경주장이다. 스포츠 경주장에는 1등을 위하고, 상을 위해 경주한다. 그러나 “믿음의 경주장에는.” 1등, 2등, 3등의 순위가 없다. 다만 예수를 바라보고 달린다. 예수를 닮아 가고, 예수를 나타내고, 죄와 더불어 싸우는 경주이다. 믿음의 경주장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으며, 어떻게 그들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는지,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 보고져 한다.
1.구름 같이 모인 관중들이 있다. 본문 1절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라고 했다. 오늘 본문의 “믿음의 경주장”에 맨 처음 등장하는 이들은 바로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다. 다시 말해서 “믿음의 경주”를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증인들이다. 곧 관중드이다.
1.허다한 증인들 히브리서 11:39절에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라고 했다. 이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은 다 믿음으로 증거를 받은 사람들이다. 곧 히브리서 11장에서 말씀하는 믿음의 선진들이다(히11:2).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본 자들이요,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다. 아벨은 믿음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은 자이다(히11:4).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은 자이다(히11:5). 히브리 11장에 나타난 우리 성도들의 믿음의 선진들은 다 증거를 받은 자들이다. 믿음의 경주장에는. 이렇게 “믿음으로.” 증거를 가진 믿음의 선진들이 구름 같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허다한 증인들이 둘러서서 “믿음의 경주장”를 지켜보고 있다고 한다. 어떤 올림픽 경주장 보다도 더 많은 관중이 모여들어 환호를 지르며, 응원가를 부르며, 박수를 치며, 성원을 하고 있다.
2.모두가 메달리스트들이다. 히브리서 11:1-2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고 했다. 믿음의 경주장에는. 일반 스포츠 경주장과는 달리 관중들 모두가 승리의 메달을 받은 사람들이다. “믿음으로 증거를 받은 자들”이다. 다시 말해서 “믿음의 경주”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다. 놀러 온 구경꾼들이 아니다. 일찍이 저 “믿음의 경주장”에서 시간을 바치고, 물질을 바치고, 청춘을 바치고, 한 평생을 다해 자신들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여 “믿음으로 증거”를 받은 자들이다. 믿음의 경주장에는. 그 어느 올림픽 경기장 못지 않게 응원과 격려가 환호를 이루고 있다. 믿음의 경주장에서 지치고 스러지는 후배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힘들었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용기를 잃지 말고 끝까지 인내하며 달리라고 응원과 격려의 소리가 대단하다. 피로의 기색도 없이 오직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인 예수를 바라보고 힘차게 달려가는 후배들을 바라보며, 더욱 힘내라고, 최후 승리가 바로 눈앞에 있으니, 마지막 힘을 다하라고 응원과 격려의 소리가 환호를 이룬다. 믿음의 경주장에는. 이들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그 수많은 관중들의 환호속에 열기를 더해 가고 있다.
2.달리는 선수들이 있다. 본문 1절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라고 했다. 믿음의 경주장에는. 오늘 본문 말씀에 두 번째 등장하는 이들은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는 자들”이다. 곧 달리는 선수들이다. 자신들의 생애에 주어진 믿음의 경주를 경주하는 모든 신앙인들을 가리킨다.
1.벗어 버리고 경주장에서 달리는 선수들에게는 몸을 가볍게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특히나 인생사에 비유되는 마라톤 같은 장거리 경기에는 더더욱 옷을 벗어 버리고 가벼운 운동복 차림을 해야 한다. 믿음의 경주장에는. 단거리 경기도 아니고, 한 판 승부로 끝나는 경기가 치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한 평생을 달려야 하는 “믿음의 경주”이다. “믿음의 경주장”에서 자신들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면서 벗어 버려야 할 것은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라고 했다. 모든 무거운 것은 우리 범죄한 인생이 짊어지고 가야 할 모든 짐이요, 얽매이기 쉬운 죄는 죄의 유혹이다.
2.앞만 바라보고 달리는 경주자가 앞만 바라보고 달려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1/100초를 다투는 단거리 경기가 아니기에 여유를 가지게 된다. 앞도 보고, 뒤도 보고,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살피게 된다. 믿음의 경주장에는. 자신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는 “믿음의 경주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고 좌로나 우로 치우침이 없이 똑바로 달려가야 한다. 이유는 전후 좌우에 유혹의 눈길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3.인내로서 불과 100여리 조금 넘게, 두 시간 조금 더 달리는 마라톤 경주에도 인내로서 끈질기게 달리는 것을 요구한다. 하물며 한 평생을 달려가는 신앙생활이겠는가 인내로서 끝까지 달려야 한다. 중도에 포기하지 말라고 한다. 세상에서 자기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주님처럼,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하신 주님처럼(요13:1), 끝까지 인내하며 달리라고 하신다. 믿음의 경주장에는. 무거운 짐 벗어 주님께 맡기고(마11:28), 주를 바라보며 죄의 유혹을 피하여 인내로서 자신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한다. 내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지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빌4:13) 내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경주이다. 내 힘으로 하는 경주가 아니다.
3.목표하는 결승점이 있다. 본문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했다. 경주장에서 경주를 하는 선수들은 골(Goal), 곧 목표하는 결승점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 골(Goal)를 보고 달려가기도, 볼을 차기도, 볼을 던져 넣기도 한다. 바로 이 골(Goal)이 경주자에게는 최고의 목표가 된다. 믿음의 경주장에는. “믿음으로. 증거”를 얻기 위해서 달려가는 수많은 경주자들이 있다. 이 경주자들에게도 골(Goal)이 있다. 바로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이다. 우리 앞에 본을 보이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사망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 우편 영광의 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1.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 믿음의 경주장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자신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달려가야 할 믿음의 경주자들이 바라보아야 할 골(Goal)이다. 이 경주가 바로 믿음의 경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라는 말씀의 뜻은 믿음의 시작이 예수 그리스도이요, 믿음의 끝이 예수 그리스도이라는 말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 믿음이 완성된다는 말이다.
2.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신 예수 믿음의 경주장에는. 여러 가지 고난과 시련, 핍박과 환란이 도사리고 있다. 그 고난의 최후는 죽음이다. 그러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믿음의 경주장이 아니다. 부활의 영광이 있고, 최후 승리가 기다리고 있다. 우리의 본이시오, “믿음의 경주장의 골(Goal)”이신 예수님도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의 죽으심을 참으셨다고 했다. 내일의 영광을 위하여 오늘의 자아를 희생하는 것이다. 바로 No Cross, No Crown이다.
3.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신 예수 우리는 초등학교의 가을 운동회에서 꼴찌로 달리던 학생이나 학부형들이 중도에서 포기하고 덜어가 버리는 것을 가끔 보게 된다. 왜 그럴까 달리기 경주에서 꼴찌한다는 부끄러움 때문이다. 사람들 앞에 창피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믿음의 경주장에는. 사람들 앞에 창피하고 부끄러운 것이 없다.
왜냐하면 “믿음의 경주”는 하나님 앞에서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 앞에서 하는 경주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CORAM DEO 정신으로 하는 경주장이기 때문이다.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이 때로는 하나님 앞에서 영광스러움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 앞에서의 실패가 하나님 앞에서 승리가 될 수도 있다. 바로 주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이다. 믿음의 경주장에는. 숱한 장애물과 감당키 힘든 어려운 시련들이 있다. 이 긴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기 위해서 지치고 쓰러지면 안된다. 왜 지치고 쓰러지는가. 전의(戰意)의 상실 때문이다. 힘이 없어서가 아니다. 믿음의 경주는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그 능력에 힘입어 경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장애물이 가로막는다 해도, 고난과 시련이, 환란과 핍박이 몰려온다 해도, 자신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는 믿음의 경주자는 전의를 상실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예수를 바라보라고 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하신 것이다.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부끄러움도 개의치 않으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을 생각하라고 한다. 무엇 때문에 그분이 수치를 당해야 하는가. 무엇 때문에 그분이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셔야 하는가. 무엇 때문에 그분이 죄인들의 거역을 십자가에 죽기까지 참으셔야 하는가를 바로 내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경주장에서 달려야 할 나에게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참으셨다고 한다. 나를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신, 나를 위해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던 그분을 생각하며. 믿음의 경주장에서 내가 낙심치 않도록 하시려. 참으셨다고 한다. 그분을 바라보며, 그분을 생각하며, 피곤하여 낙심치 말고 열심을 다하여 달리자. 내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고 뛰자.
4.최선을 다하는 싸움이 있다. 본문 4절에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 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라 했다. 바로 우리 성도들이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는 그 “믿음의 경주”가 무엇을 말하는 가.를 보여 주는 말씀이다. 바로 “믿음의 경주”는 죄와 더불어 싸우는 경주이다. “믿음의 경주”는 죄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죄의 유혹을 뿌리치고, 범죄치 않고 승리하는 것이다.
1.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여기서 말하는 “우리”는 믿음의 경주장에서 달리는 각 개인을 말한다. 각자가 자기 앞에 주어진 경주를 하라는 것이다. 스포츠 경기와 같이 함께 달려서 순위를 가려서 상을 주려는 경주장이 아니다. 믿음의 경주장이다. 마태복음 16:24절에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했다. 곧 각자 각자가 자기 몫에 테인 십자가를 지고 주를 쫓으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각자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라는 말씀이다.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에게 주어진 경주에 충실하라는 말씀이다.
2.피흘리기까지 믿음의 경주장에는. 죄와 더불어 싸우는 경주가 벌어지고 있다. 피곤하고 지치더라도 낙심치 말라고 한다. 죄와의 싸움에서 진다는 것은 곧 범죄하게 되고 그로 인하여 멸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죄와의 싸움은 피흘리기까지 계속된다고 한다. 곧 죽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육신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광의 부활이 기다리는 승리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내 몫에 테인 십자가를 지고, 죄와 더불어 싸우는 믿음의 경주장에서 경주할 때, 지치고 쓰러져 낙심하기 전에. 과연 피흘리기까지. 대항하여 싸워 보았는가. 우리 이 시간 한번 깊이 생각해 보자. 나의 낙심이 내 몫에 테인 십자가가 정말로 너무 무거워서, 그 십자가 때문에 지치고 쓰러지는 것인가. 과연 피흘리기까지. 죄와 더불어 싸우되 피흘리기까지 대항해 싸워 보고 낙심하는가. 믿음의 경주장에는.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격려의 소리를 외친다. 인내라하!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예수를 바라보라!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신 주님을 생각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내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는 “믿음의 경주자들”이다. 힘들고, 지치고, 피곤하고, 낙심이 되는가. 저 응원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저 격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믿음의 경주장에는.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믿음의 선진들이, 앞서 간 우리의 친구들이 응원과 격려의 소리를 외친다. 인내라하!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예수를 바라보라!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신 주님을 생각하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를 바라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힘내어 다시 일어나자. 우리 모두 힘내어 다시 달리자. 우리 모두 힘내어 예수를 바라보고 뛰자. 저 골인 지점에서 나를 영접하시려 두 팔 벌려 기다리시는 예수님의 품속에 달려가 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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