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길 (룻3:1-5,히9:24-28,막12:38-44)
본문
1절에 나오는 안식할 곳 의 (히,마노아흐)는 쉬다, 정착하다는 뜻의 에서 파생된 말로 이 말은 쉼터, 안식처 등을 가리키는데 여기에서는 구체적으로 남편과 함께 사는 가정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나오미는 룻이 보아스와 결혼해서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단순히 이 일에 대해 희망만 했던 것이 아니고 이 일을 성사시킬 구체적인 방안도 가지고 있었습니다.(2-4절) (룻3:2) 네가 함께 하던 시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룻3:3)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룻3:4)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 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너의 할일을 네게 고하리라 고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나오미는 룻이 취할 행동 사항을 이렇게 하라고 지시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룻에게 명한 나오미의 지시는 과연 타당한 것인가 라는 것입니다. 물론 현대인의 시각으로는 용납하기 어려운 점이나, 그러나 그 당시 이스라엘의 법과 풍속을 보면 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신명기 법전을 보면 형제가 동거하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으면 그 형제가 과부를 아내로 취하여 후사를 있게 해야 하며, 이때 과부는 결혼 당사자에게 자신의 권리를 능동적으로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신25:5-10) (마22:24)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찌니라 하였나이다 (마22:25)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장가 들었다가 죽어 후사가 없으므로 그의 아내를 그 동생에게 끼쳐두고 또한 레위기 법전에는 친족이 가난해서 잃은 기업은 그 근족이 도로 살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레25:23-35) (레25:28) 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이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미쳐 돌아올지니 그가 곧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그리고 이것에 대한 구체적인 사건을 본서인 룻기 4장 5절에 잘 나타나 있는데 여기 에서 알 수 있듯 죽은 친족의 기업을 무르는 자는 그 당사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룻4:5) 보아스가 가로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야 할지니 라
그러므로 룻에 대한 나오미의 명령은 기업을 무를 대상자인 보아스에게 청혼을 요청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단순히 기업을 무르는 일에 규정한 것이아니라
1.룻에 대한 나오미의 사랑과,
2.시어머니의 명령에 대한 룻의 순종과,
3.친족 보아스의 아름다운 배려, 이 세가지가 합쳐져서 구원의 족보의 근거를 형성하게 됩것입니다.(마1:5) 히브리서9:24-28 (히9: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 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히9:25)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히9: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기자는 5장 이하에서 주님을 계속해서 대제사장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예수님의 대제사장 사역을 희생 제사를 담당하는 일반적인 대제사장 의 직무와 극명하게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1년에 한 번씩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참 하늘에 들어가셨습니다. 제사장은 동물의 피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피를 드리셨고, 그의 피로 모든 사람의 죄를 영원히 속했다는 것입니다. 한편 기자는 예수님께서 두번째 나타난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 목적은 그를 간절히 바라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것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것이 일반적인 대제사장과 주님과의 차인 것입니다. 특별히 본문은 주님이 나타나심에 대해 세 번 언급하고 있습니다. 24절은 주님의 현재의 나타나심으로 주님은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간구 하신다는 것입니다. 26절은 주님이 이미 과거에 나타나신 것으로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 오신 주님의 수난의 모습인 것입니다. 28절은 앞으로 오실 주님이 나타나심을 예고하고 있는데, 주님은 분명 우리를 영광 의 몸으로 구원하시기 위해 미래에 나타나실 모습인 것입니다. 결국 주님은 사람들이 만든 모형의 장막에서 섬기신 것이 아니고, 참 하늘에서 섬기 고 계시며, 자신을 완전한 희생 제물로 드림으로써 죄를 속량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확증 하시기 위해 두번째 세상에 나타나실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 인생의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2:38-44 (막12:38)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가라사대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막12:39)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막12:40)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 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막12:41) 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쌔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막12: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막12: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막12:44)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오늘 본문의 초점은 주님께서 칭찬한 과부에게로 향하고 있는데, 그녀는 적은 물질 이지만 자기의 소유 전부를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기의 사랑을 입증하려면 어떻게해야 합니까. 과부가 주님께 대한 자기의 사랑을 입증한 것입니다. 이에 반해 서기관은 경건을 내세워 탐욕을 하며, 외식으로 신앙의 본질을 훼손하였 던 바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자초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외형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가르침을 묵묵히 실천한 제자 도의 참된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이제 다음 주는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그리고 5주 만 지나면 성탄절 입니다. 그 기간을 대강절 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주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이 관연 어떠한지 점검해 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사실 히브리서 11장 즉 믿음 장에는 비록 과부의 이름이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성경 에는 믿음의 본을 보인 많은 인물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남편을 잃은 과부의 몸이지만, 소망을 하나님께 둠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성경 역사를 통해서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오는 말씀에서 과부가 등장하는데 이들을 통해서 참 신앙 인의 모습을 그려 보자(왕상 17장의 사르밧 과부, 눅 2장의 안나) (눅2: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눅2:37) 과부 된지 팔십 사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 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수종의 믿음을 자진자에게
1.하나님은 우리에게 엄청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히9:24-28).
1).예수님은 이땅에 오시어 십자가의 희생은 모든 시대,(과거,현제,미래)에 모든 사람을 위한 것으로,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세상의 죄를 없이 하셨습니다.
2).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희망과 기대를 안고 사는 근거가 되게 하셨습니다.
3).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십니다.
4).오늘도 주님은 자기를 바라는 자를 구원하시기 위해 영광의 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인 것입니다.
2.하나님은 우리에게 전적인 순종을 요구하십니다(룻3:1-5). 룻은 비록 모압 사람이었지만, 그의 시어머니 나오미를 통해서 깨달은 신앙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삶은 한마디로 순종 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순종과, 믿음은 같은 말로써 신뢰할 수 있는 사람만 순종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룻은 그의 시어머니를 전적으로 신뢰했습니다. 그러기에 룻은 한 번도 그의 시어머니의 명령을 거역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명령이 모순되게 들릴지라도 전적으로 순종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순종이 오늘 본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나오미의 명령은 수줍음이 많은 여인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비록 먼발치에서 몇 번 본 사람이지만 밤중에 남자를 가까이 하라는 명령은 쉽게 따를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룻은 주저함이 없이 내가 다 행하리이다 고백하고 그대로 실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순종하는 삶을 산 그녀에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복을 주셨습니다(룻 4:15-17). (룻4:15)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 보다 귀한 자부가 낳은 자로다 (룻4:16) 나오미가 아기를 취하여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룻4:17) 그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주되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하여 그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비인 이새의 아비였더라 (아브라함의 후손이) 따뜻한 새 가정, 그리고 위대한 후손이 그녀가 받은 상급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순종이 동반된 믿음만이 이러한 복을 가능케 한 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3.하나님은 우리에게 전적으로 위탁하라고 명령하십니다(막12:38-44). 믿음의 표상은 종교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고,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위탁한 전적인 헌신에 있는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처럼 헌금하는 행위는 모든 사람이 같았습니다. 그러나 헌금의 질은 엄청나게 달랐던 것입니다. 주님께대한 헌신 즉 전부를 드린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입니다. 신앙은 무엇을 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자세로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심령을 살피시는 하나님, 우리의 믿음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우리의 중심 을 냉철히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외식과 형식으로 점철된 우리의 삶을 용납해 주시고 이제는 깨끗한 마음과 온전한 마음으로 주님께 헌신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단순히 이 일에 대해 희망만 했던 것이 아니고 이 일을 성사시킬 구체적인 방안도 가지고 있었습니다.(2-4절) (룻3:2) 네가 함께 하던 시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룻3:3)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룻3:4)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 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너의 할일을 네게 고하리라 고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나오미는 룻이 취할 행동 사항을 이렇게 하라고 지시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룻에게 명한 나오미의 지시는 과연 타당한 것인가 라는 것입니다. 물론 현대인의 시각으로는 용납하기 어려운 점이나, 그러나 그 당시 이스라엘의 법과 풍속을 보면 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신명기 법전을 보면 형제가 동거하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으면 그 형제가 과부를 아내로 취하여 후사를 있게 해야 하며, 이때 과부는 결혼 당사자에게 자신의 권리를 능동적으로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신25:5-10) (마22:24)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찌니라 하였나이다 (마22:25)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장가 들었다가 죽어 후사가 없으므로 그의 아내를 그 동생에게 끼쳐두고 또한 레위기 법전에는 친족이 가난해서 잃은 기업은 그 근족이 도로 살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레25:23-35) (레25:28) 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이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미쳐 돌아올지니 그가 곧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그리고 이것에 대한 구체적인 사건을 본서인 룻기 4장 5절에 잘 나타나 있는데 여기 에서 알 수 있듯 죽은 친족의 기업을 무르는 자는 그 당사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룻4:5) 보아스가 가로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야 할지니 라
그러므로 룻에 대한 나오미의 명령은 기업을 무를 대상자인 보아스에게 청혼을 요청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단순히 기업을 무르는 일에 규정한 것이아니라
1.룻에 대한 나오미의 사랑과,
2.시어머니의 명령에 대한 룻의 순종과,
3.친족 보아스의 아름다운 배려, 이 세가지가 합쳐져서 구원의 족보의 근거를 형성하게 됩것입니다.(마1:5) 히브리서9:24-28 (히9: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 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히9:25)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히9: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기자는 5장 이하에서 주님을 계속해서 대제사장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예수님의 대제사장 사역을 희생 제사를 담당하는 일반적인 대제사장 의 직무와 극명하게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1년에 한 번씩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참 하늘에 들어가셨습니다. 제사장은 동물의 피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피를 드리셨고, 그의 피로 모든 사람의 죄를 영원히 속했다는 것입니다. 한편 기자는 예수님께서 두번째 나타난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 목적은 그를 간절히 바라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것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것이 일반적인 대제사장과 주님과의 차인 것입니다. 특별히 본문은 주님이 나타나심에 대해 세 번 언급하고 있습니다. 24절은 주님의 현재의 나타나심으로 주님은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간구 하신다는 것입니다. 26절은 주님이 이미 과거에 나타나신 것으로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 오신 주님의 수난의 모습인 것입니다. 28절은 앞으로 오실 주님이 나타나심을 예고하고 있는데, 주님은 분명 우리를 영광 의 몸으로 구원하시기 위해 미래에 나타나실 모습인 것입니다. 결국 주님은 사람들이 만든 모형의 장막에서 섬기신 것이 아니고, 참 하늘에서 섬기 고 계시며, 자신을 완전한 희생 제물로 드림으로써 죄를 속량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확증 하시기 위해 두번째 세상에 나타나실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 인생의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2:38-44 (막12:38)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가라사대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막12:39)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막12:40)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 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막12:41) 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쌔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막12: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막12: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막12:44)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오늘 본문의 초점은 주님께서 칭찬한 과부에게로 향하고 있는데, 그녀는 적은 물질 이지만 자기의 소유 전부를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기의 사랑을 입증하려면 어떻게해야 합니까. 과부가 주님께 대한 자기의 사랑을 입증한 것입니다. 이에 반해 서기관은 경건을 내세워 탐욕을 하며, 외식으로 신앙의 본질을 훼손하였 던 바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자초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외형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가르침을 묵묵히 실천한 제자 도의 참된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이제 다음 주는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그리고 5주 만 지나면 성탄절 입니다. 그 기간을 대강절 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주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이 관연 어떠한지 점검해 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사실 히브리서 11장 즉 믿음 장에는 비록 과부의 이름이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성경 에는 믿음의 본을 보인 많은 인물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남편을 잃은 과부의 몸이지만, 소망을 하나님께 둠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성경 역사를 통해서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오는 말씀에서 과부가 등장하는데 이들을 통해서 참 신앙 인의 모습을 그려 보자(왕상 17장의 사르밧 과부, 눅 2장의 안나) (눅2: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눅2:37) 과부 된지 팔십 사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 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수종의 믿음을 자진자에게
1.하나님은 우리에게 엄청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히9:24-28).
1).예수님은 이땅에 오시어 십자가의 희생은 모든 시대,(과거,현제,미래)에 모든 사람을 위한 것으로,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세상의 죄를 없이 하셨습니다.
2).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희망과 기대를 안고 사는 근거가 되게 하셨습니다.
3).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십니다.
4).오늘도 주님은 자기를 바라는 자를 구원하시기 위해 영광의 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인 것입니다.
2.하나님은 우리에게 전적인 순종을 요구하십니다(룻3:1-5). 룻은 비록 모압 사람이었지만, 그의 시어머니 나오미를 통해서 깨달은 신앙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삶은 한마디로 순종 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순종과, 믿음은 같은 말로써 신뢰할 수 있는 사람만 순종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룻은 그의 시어머니를 전적으로 신뢰했습니다. 그러기에 룻은 한 번도 그의 시어머니의 명령을 거역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명령이 모순되게 들릴지라도 전적으로 순종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순종이 오늘 본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나오미의 명령은 수줍음이 많은 여인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비록 먼발치에서 몇 번 본 사람이지만 밤중에 남자를 가까이 하라는 명령은 쉽게 따를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룻은 주저함이 없이 내가 다 행하리이다 고백하고 그대로 실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순종하는 삶을 산 그녀에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복을 주셨습니다(룻 4:15-17). (룻4:15)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 보다 귀한 자부가 낳은 자로다 (룻4:16) 나오미가 아기를 취하여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룻4:17) 그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주되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하여 그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비인 이새의 아비였더라 (아브라함의 후손이) 따뜻한 새 가정, 그리고 위대한 후손이 그녀가 받은 상급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순종이 동반된 믿음만이 이러한 복을 가능케 한 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3.하나님은 우리에게 전적으로 위탁하라고 명령하십니다(막12:38-44). 믿음의 표상은 종교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고,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위탁한 전적인 헌신에 있는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처럼 헌금하는 행위는 모든 사람이 같았습니다. 그러나 헌금의 질은 엄청나게 달랐던 것입니다. 주님께대한 헌신 즉 전부를 드린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입니다. 신앙은 무엇을 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자세로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심령을 살피시는 하나님, 우리의 믿음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우리의 중심 을 냉철히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외식과 형식으로 점철된 우리의 삶을 용납해 주시고 이제는 깨끗한 마음과 온전한 마음으로 주님께 헌신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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