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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지키는 지혜 (롬12:2)

본문

여러분 만약 어떤 사람이 온갖 수고를 다하여 오랜 시간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금을 깨내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만 그 날 밤에 도둑을 맞았다면 어떻겠습니까. 금을 깨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금을 지키는 것 역시 중요한 것입니다.아무리 귀한 보물을 깨 내어도 지키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이러한 사실은 신앙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저는 그 동안 목회자로서 많은 성도들을 대하면서 이러한 경우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예배생활이나 봉사생활에 모범을 보이던 사람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믿음이 식어져 갑니다.수요일 저녁예배를 빠지기 시작하다가 주일저녁예배를 빠지고 그러나 주일오전예배를 빠지고 나중에는 신앙생활이 취미생활로 바뀌어서 특별한 일이 없고 어쪄다 시간이있을 때만 출석하는 성도가 되어버립니다. 기도의 시간이 점점 줄어듭니다.하나님 말씀과도 멀어집니다.열심히 봉사하다가 방관자가 되어버립니다.과거의 신앙생활은 이제 추억만 남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믿음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믿음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믿음을 지키는 것도 역시 중요한 것입니다.사탄은 우리의 믿음을 빼앗기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성경은 말하기를 굶주린 사자가 울며 먹이를 찾듯 계속해서 공격하고 있다고 말씀합니다.우리가 이 사실을 시인하며 경계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방심하는 사이에 사탄은 우리를 넘어뜨리고 마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러한 물음에 대한 해답의 말씀을 방금 봉독한 로마서의 말씀을 중심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로마서를 둘로 구분하면 오늘 읽은 12장 이전과 이후로 나눌수 있습니다.그 이유는 1-11장은 어떻게 구원받으며 어떻게 믿음을 갖느냐하는 교리적인 문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그러나 12장 부터는 이렇게 믿음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하는 성화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1절에 우리의 삶 전체가 예배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적인 말씀을 쓴 다음에 바로 이어서 우리가 얻은 이 믿음을 이제 부터 어떻게 세상속에 살면서 지켜나가야 하는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물결은 홍수같이 덮쳐오고 있습니다.
1.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세대란 어떤 시대를 말하는 것입니까.당시의 로마사회를 말하는 것입니다.당시의 로마사회는 타락한 사회였습니다.각종 우상이 범람하는 사회입니다.가는 곳마다 신전이 있었습니다.천체를 숭배했고 여러가지 형상을 만들어서 절을 했습니다. 도덕적으로도 타락했습니다.물질이 풍요로왔기에 그 만큼 부도덕한 소비생활을 했습니다.쾌락적이며 본능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일에 사람들은 관심을 가졌습니다.지금도 로마에는 원형 경기장이 있습니다. 사람과 동물을 함께 넣고 싸우는 자극적인 장면을 구경하는 장소 입니다.기독교인들은 신앙의 순결을 지켜야 했습니다.핍박과 타락한 시대 속에서 믿음을 지켜야 했던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현실에서 택할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하나는 소극적인 방법으로 떠나는 것입니다.쉽게 말하자면 말하지면 "속세를 떠난다"는 것입니다.깊은 산이나 동굴로 피해 자신의 믿음을 지키는 방법입니다.실제로 중세시대에는 산속으로 들어가 수도원을 만들고 신앙을 지킨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적극적인 방법으로 세상안에서 세상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개혁하는 것입니다.바울이 말한 것은 이것입니다.세상을 떠나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안 있으라 그러나 세상을 본 받지는 말라"는 말씀입니다.이것은 주님의 말씀과도 같습니다.주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세상이 부패했다고 세상을 떠나지 마라 오히려 부패한 세상에 소금이 되며 어두운 세상속에서 빛이 되라고 마태복음 5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원래 세상은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만드셨습니다.그러나 죄가 세상에 들어옴으로 점점타락하게 된 것입니다.우리가 이 세상속에서 있어야할 책임이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따라서 오늘 우리는 이 말씀에 동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을 갖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끔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목사님 직장에서 회식이 있는데 술자리에 가야 합니다.안가면 혼자 소외되고 가면 술을 먹어야 하는데 어떻게 합니까주일날 회사 야유회에 가야 하는데 어떻게해야 합니까"적은 문제들 같이 보이지만 우리는 이런 유형의 질문들 속에서 갈등하며 삽니다.생각해 보십시다.우리가 교회안에 있는 시간은 겨우 몇 시간에 불과 합니다.그러나 교회 밖에있는 시간은 거의 대 부분입니다.물살이 거세게 흐르는데 그 물살에 떠내려 가지 않고 꼿꼿이 서있는 것이 쉬운일은 아니잖습니까.세상의 물결은 홍수같이 날마다 우리에게 덮쳐오고있습니다 며칠전에 청소년 단체에서 우리나라 고교,대학생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우리사회가 가강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의 제일 순위가 돈이었습니다.그 다음이 건강이고 그 다음이 인격입니다. 결국은 그 형상이 하나님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인격과 사람됨보다 돈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부끄러운 사회가 되었다는 하나의증거입니다. 엊그제 한약업자 부부를 죽인 범인이 그 아들입니다.외국에서 빚진 돈을 갚아야하는 문제가 발단이 되어서 부모까지 죽인것입니다.최근 국회에서 매일 논쟁하는 상무대비리도 다 돈과 연관된 것입니다.국제 경쟁력강화라는 뜻이 무엇입니까.국제사회도 이제는 각 나라마다 무역으로 돈을 벌려는데 촛점이 되고있다는 것입니다.부자인 나라일수록 더 돈을 벌기위해 애쓰고 있는 냉정한 현실입니다.소위 황금만능의 맘모니즘의 사상이 우리도 모르게 우상처럼 밀려들고 있습니다.우리의 내부는 어떻습니까.자극적이며 쾌락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회로 변해갑니다.마약,본드,대마초 등이 급증하여 이제는 청소년과 주부들에게 까지 침투해있고 합니다.저희 동네만해도 생기는 건물마다 어떻게하면 더 나은 것을 먹고 마시며 즐길것인가하는 현대인의 관심에 맟추어 빽빽하게 들어서고 있습니다. 시대가 갈수록 세상은 더 어두운 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이런 세상의 물결속에서 믿음을 지킬수 있습니까.다른 사람들은 다 그 길로 가는데 나 혼자 의의 길을 선택해야 하는 고민을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할수 있습니까. 바울사도의 해답은 간단합니다."이 시대를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노아시대를 보십시다.그 시대 사람들은 날마다 먹고 마시고 즐겼습니다.그러나 노아는 그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그들과 함께 살았지만 그들을 본받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그는 다른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비웃을 때에도 산으로 방주를 지으러 갔습니다.그들과 함께 세상안에 있었지만 그들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갔습니다.본 받지 말라는 뜻은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비록 함께 참여하고 있을지라도 행동이나 관습을 따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그렇게되면 거기에서 주는 쾌락에 눈이멀어 결국은 그것이 우상이 되어 하나님도 믿음도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나안땅 정복당시 여러 우상을 섬기는 족속과 같이 있어야 했습니다.하나님께서는 들어가기 전에 모세를 통해 분명히 아무형상 이라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까.그들을 본받아 형상을 만들고 절을 하면 결국 그 형상이 하나님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안에 있습니다.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세상사람들 하는대로 그들을 본받아 살수가 있습니다.그러나 그 넓은 길의 결국은 어디입니까.멸망입니다. 여러분 이 세대를 본받지 맙시다.오히려 우리가 본을 보이십시다.오늘 여러분에게 먼저 이 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2.새 마음으로 변화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믿음을 지키기 위한 더욱 적극적인 두번째 비결은 나 스스로 변화받는 삶을 창조해 나가는 것입니다.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어디에 있습니까.마음과 생각입니다.마음을 새롭게 하라는 의미는 이전의 생각과 믿음은 뒤로하고 날마다 새 마음과 새 믿음으로 새롭게하라는 말입니다.
B.C700년경 이스라엘의 멸망을 앞두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어떻습니까.그들의 마음은 변화할줄 모르는 마음입니다.딱딱한 마음입니다.하나님을 향한 새로운 변화에 대한 열망의 불꽃이 사라진지 오래였습니다.오로지 현실에만 안주할 뿐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호세아선지자를 보내셔서 호세아10:12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내리시리라" 묵은 땅은 무엇을 말합니까.변화 될줄 모르는 마음입니다.그 마음을 갈아 엎으라는 것입니다.이전의 죄와 생각과 사고방식들을 갈아엎고 새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심령을 개혁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시간 여러분도 마음을 바꿈으로 변화받는 새로운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마음을 바꿔야 합니까. 먼저 매사에 부정적인 마음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새롭게 바꾸십시다.탈무드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하나님게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동물을 만드하실 때 새가 찾아와서 불만이 가득찬 목소리로 말하기를 왜 나는 다른 동물과 같이 이빨도 없고 날쌘 다리도 없이 만들었냐고 불평을 했답니다.그래서 하나님은 하늘을 날수 있는 날개와 깃털을 달아주었습니다.얼마후 불평에 찬 소리로 말하기를 하나님이 자기를 미워하시기 때문에 지난번에 부탁을 드렸는데도 이렇게 덥고 무거운 것을 더 붙여 주셨다고 불평했습니다.그 새는 부정적인 마음으로 차 있었기에 하늘을 나는 시도 조차도 해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무리 하얗고 깨끗한 색깔도 노란색 안경을 쓰고 보면 노랗게 보이기 마련입니다.파란색 안경을 쓰고 보면 파랗게 보이는 것입니다.모든 일을 부정적인 마음으로 보게 되면 모두 비판과 불만의 대상이며 낙심의 원인이며 포기의 동기가 되고 말것입니다. 안된다,못한다,힘들다,못 살겠다,해 보았자다,그럴줄 알았지,희망이 없다,이제 끝났다,망했다,나는 무능하다 등등 이런 마음은 버려야 합니다.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한 우리는 어떤 극한 상황에 처한다해도 완전한 절망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할수 있다는 가능하다는 아직도 희망이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모든 생각을 바꾸시기를 축원합니다.
 죄책감에 찬 마음을 용서의 기쁨이 넘치는 마음으로 바꾸십시다.우리는 결코 완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면 부끄러운 후회 뿐입니다. 저도 어떤 때는 저 자신이 목회자로서의 부족한 여러가지 생활들을 생각할때 하나님께 늘 부끄러울 뿐입니다.마치 탕자처럼 남루한 자신을 바라 볼때도 있습니다.그 때마다 우리 속에서는 기쁨이 사라집니다. 창고에는 하루종일 부셔도 얼마든지 도자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집니다.낙심이 찾아옵니다.감사가 사라집니다.죄책감에 눌리게 됩니다.연약하고 부끄러운 자신이 원망스럽습니다.그러나 여러분 이런 생각을 해보십시다.세계에서 제일 큰 도자기공장의 회장님을 아버지를 아버지로 둔 아이가 있는데 그만 어쪄다 실수로 도자기 하나를 깼습니다.그 아이가 그때 부터 한달이고 두달이고 아무리 후회하고 슬퍼하며 울고 한숨쉬고 자신을 원망한들 깨지 도자기가 다시 붙을수 있습니까.아버지에게는 그 도자기 한개쯤 아무것도 아닙니다.아버지 창고에는 하루종일 깨부셔도 도자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아이가 기쁨을 회복하는 길을 붙들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 나아가는 길입니다.아버지는 오히려 그 도자기보다 혹시 손을 다치지는 않았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을 믿습니까.주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면 주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용서의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아무리 부끄러운 과거도 하나님의 용서하십니다. 여러분 날마다 이 마음으로 새롭게 하시기바랍니다.하나님께서 용서의 기쁨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3.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지혜를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거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라"고 했습니다. 사탄이 우리의 믿음을 빼앗기 위해서 쓰는 방법 중의 하나가 우리의 분별력을 흐리게 하는 것입니다.그래서 여러가지 시험과 문제들로 어지럽게합니다.혼란 속에 빠뜨려서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게 못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한번은 사단이 아나니아라는 사람을 넘어뜨린 일이 있습니다.가롯유다와 마찬가지로 물질에 대한 욕심을 불어넣었습니다.아니니아는 급기야 판단력이 흐려졌습니다.결국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사도들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임으로 비참한 종말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때로는 이렇게 물질과 세상에 대한 애착과 지나친 욕심을 통해서 다가오기도 합니다.때로는 다윗과 같이 가정의 문제들을 통하여 다가오기도 합니다.남편을 통해서 자녀를 통해서,또는 인간관계를 통해서 지치고 복잡하게 만듭니다.욥과 같이 고난과 환란의 문제들을 가지고 오기도 합니다.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마치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입니다.전에 부동산 투기가 한참일 때 이런 성도를 만난일이 있습니다.법적으로 분명히 잘못된 일인줄 알면서도 기도해보니 하나님께서 이 땅을 팔고 신개발지의 땅을 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그 분은 하나님께서 부동산 투기하시는 분으로 오해하고 계셨습니다.누구의 뜻입니까 자신의 욕심을 하나님의 뜻으로 합리화 했던 것입니다.하나님의 올바를 뜻을 알려면 어떻게해야 합니까. 오늘 이 시간이 새로와지는 시간입니다. 말씀안에 있으면 됩니다.말씀 속에 하나님의 뜻과 의도가 있습니다.밤이 아무리 짙어도 등대불을 삼키지는 못합니다.말씀을 듣고 읽을 때 하나님의 환한 뜻을 발견할수 있는 것입니다.아무리 어지럽고 복잡한 문제들을 통하여 사단이 다가온다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서서 그 말씀대로 살때 올바른 믿음의 길을 갈수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지난 주간에 미국의 재키여사라는 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그는 세게 최고의 권력을 가졌던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이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는 세계적인 부자인 선박왕인 오나시스라는 사람의 부인이었었습니다.그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권세와 부를 가졌지만 그 아무것하나 지키지 못하고 빈몸으로 쓸쓸히 돌아갔습니다.그렇습니다.우리가 이 땅에서 아무리 귀한 보물을 가진들 어느것하나 지킬수 없으며 지킬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세상에 다 놓고 가야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나라에 갈 때까지 꼭 지켜야할 것이 있습니다.딤후4:6-7에서 바울은 이렇게 디모데에게 고별사를 합니다."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갈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면류관이 예비되었음으로"그는 믿음외에는 아무것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지키며 살았으며 또 무엇을 지키며 살기 원하십니까.건강 입니까! 행복 입니까! 물질 입니까! 사단은 이렇게 말합니다."내가 건강,행복 돈을 다 줄것이니 너의 믿음을 나에게 달라" 어떤 사람은 세상을 따라다니며 믿음이 잃어버리고 신앙생활을 적당히해도 사업이 잘되고 아무일이 없다고 반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그는 사단에게 자신의 가장 소중한 믿음을 점점 빼앗기고 있는 현실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오늘 여러분 중 혹 믿음을 상실한 사람은 없습니까.과거의 추억만 남아있는 사람은 없습니까.그동안 나도 모르게 하나님을 떠나 있었다고 느끼는 분은 없습니까.하나님께 나오십시요 .오늘 이 시간이 새로와지는 시간입니다.새롭게 변화하는 시간이 될 것을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믿음을 지켜야 합니까.이 세대를 본받지 마십시다.세상사람들 따라서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오히려 우리의 믿음을 본받도록합시다.날마다 우리마음 속의 부정적인것,죄로 얼룩진 것들을 씻어 깨끗한 새 마음을 가집시다.그리고 이제는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바른 뜻을 분별하여 승리하는 그날까지 힘찬 전진을 합시다. 믿음 하나로 세상을 정복하고 환란을 물리치고 기적을 일으켰던 히브리서11장의 영웅들,우리가 하나님앞에 갔을 때 그들이 우리를 환영할 것입니다.믿음을 지킨 수 많은 신앙의 선진들이 우리를 환영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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