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얻는 구원 (갈2:11-21)
본문
바울이 베드로와 교제 악수를 청하고 바울과 베드로는 인간적으로 상대 알되리만큼 거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요 바울 은 이제겨우 사도라불림을 받는 처지입니다. 나이도 훨씬 년배입니다. 그러한 바울이 베드로를 만나서 면박을 서슴없이 안디옥 까지 찾아온 선배를 바울이 면박을 주었습니다.별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님에도 바울 은 당당히 선배이신 게바를 면책할일이 있어 면책하였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선11절에서 13절 까지를 읽어보겠습니다.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 하였노라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 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남 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 노라 안디옥은 그때 이방인들이 살고 있는 지역입니다. 베드로가 그들과 함 께 어울려 식사를 하다가 예루살렘에서 야고보와 할례자곧 유대인이 오 자 베드로가 이방인과 함께 어울렸다는 소문이 두려워서 피했습니다. 이 사건 때문에 복음안에 있던 사람도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가 베드로 와 같이 외식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복음안에서 외식하지않고 살기가 무척 힘이 듭니다.베드로 하나님보다 사람들의 여론을 두려워 했습니다. 복음은 순수 합니다 속이는 것이 없습니다 안그렇척하는 것 이 아닙니다. 죄인이 아닌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롭다 하신것이지 의 인이 아닙니다 복음을 착각하지 마십시요 마치 수양해서 얻은 것으로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만 믿음으로 의롭다 하신 하나님 께로 가까워 지려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년륜이 짧은 바울이 베드로에게 하는 말이 14절 부터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쫒고 유대 인답게 아니 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무슨 말인냐 하면 인척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보는 데 서는 이방인의 풍속을 따르며 유대인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여론따라 사는 세상풍조를 따라 사는 사람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억지로 이방인 처럼 사다고 해서 이방인이 아니고 억지로 할례를 받고 유대인 처럼 산 다고 해서 유대인이 아닙니다. 신앙의 억지를 부리지 말고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앞에 나아 갑시다. 그러면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이외 오고 오는 교회들에게 천년만년의 영원한 진리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진리를 가를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차근히 살펴 보겠습니다.
1.율법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하나도 없습니다. 우선 15절에서 16절을 읽겠습니다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 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 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을 얻으려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육체가 없는니라 무슨 뜻이냐 하면 당시 유대인을 제외한 이방인들은 정결하지 못하고 불결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방인에 비교해서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서 의롭다 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도덕적 종교적 우위가 인정되지 않는다 말입니다, 높은 데서 내려다 보면 일층이나 육십삼층의 다 똑 같다는 말씀입니다. 의롭다 여김을 받을수 있는 길은 오직한 길 밖에 없고 유대인이나 당시 이방인 똑 같은 죄인일 수 밖에 없습니다.시편14:2,3절을 읽어 봅시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롭다하는 복이 하나님께서 주신 참된 복입니다 나머지는 일시적인 복 일수 밖에 없습니다. 건강,입학,재물,취업,다 지나가는 것에 밖에 없습니다.죽을 때 건강가져 갑니까 재물 가지고 저 세상에 가서 사는 사람 봤습니까 이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부수적 인 복입니다. 야곱이 아브라함과 이삭이 쭉내려오던 복은 그 형 에서를 속이고 축을 가로 채습니다.
말하자면 새치기를 한것이지요 에서 사냥해가지고 늦게 아버지 이삭에게 가서 축복 해 주십사고 했습니다 예서 아까왔다 갔는 데 음성이 좀 수상했지만 손은 네 특성인 털이 많이 나있더라 야곱에게 속았습니다. 야곱이 나를 속인 것이 두번째 입니다. 팠죽으로 장자권을 팔고 이번에는 나의 축복까지 가로 챘습니다. 에서 방성대곡하고 이삭 에게 아버지 남겨둔 복이 있으면 주십시요 그때 이삭이 한말을 성경에서 들어 보십시요 창27:39,40절을 읽어보겠 습니다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 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메임을 벗을 때는 벗을 때는 그 멍에를 네 목 에서 떨쳐 버리리라 하였더라 재산이나 그런 축복이면 남겨 둘법도 합니다 이것은 예수를 믿는 것에 대한 예언의 축복을 말합니다. 예수 믿지 않으면 칼이라도 믿어야지지 요 세상 능력이라도 믿어야겠지요 바울 은 이제 이 예수안에 생활의 확신을 세가지 절대부정을 통하여 강 조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절대부정을 쓸때가 많지요 만일 내일 아침에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이라고 절대이루워 질수 없는 사실로 믿음으 로 구원 얻은 것을 강조 하고 있습니다. 이 확신이 있기 때문에 대선배 이신 기둥같은 베드로의 위선을 책망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그 세가지 절대부정을 통한 바울의 변증을 들어 보겠습니다.
1'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절대 도덕적으로 더 큰 범죄를 짓는 것 이 아닙니다. 2:17,18,21절에 있는 만일 이라는 단어를 믿줄로 채크하시고 17절 말씀을 읽어 봅시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하는 자냐 결코 그럴수 없느니라 도덕적인 사람들끼리의 죄와 하나님만이 용서 할수 있는 죄를 엄격히 구분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이 하나님앞의 죄가 사람의 행위 죄 사함을 받을수 없는 죄를 용서 하신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니까 복음을 약방의 감초로 자기 범죄의 변명 의 방편으로 삼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십일조를 강조하면 예수를 들 먹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십일조도 예수안의 야속입니다 그러나 전에보다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더 못해도 괞찮다는 것을 말하지 아니 했습니다. 율법이 여러분의 도덕이나 종교의 최고의 법입니다. 예수님 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들어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5:17-20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온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러 함이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 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기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 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 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 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 가지 못하리라 위선적이고 가장이 많이 썩인 것이긴 해도 바리새인들의 신앙을 칭찬하 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들의 신앙상태가 잠자고 있습니다. 예수믿는다라는 거짓 거적을 덮어쓰고 영적인 깊은 잠에 들어 있지는 않습니다. 왠만한죄는 죄의조차도 없는 그런 것이아닙니까 예수안에서 예수의 의는 죄인의 진정한 회개와 슬픈 눈물속에 있습니다. 복음안에 서 울고 코물눈물로 회개하던 그 뜨거운 믿음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그저 현실에만 급급해서 재물 건강하기만 하다면 예수안에서 좋은게 좋 지하는 영적 무감각에 빠져 있어도 아픔을 모르는 무의식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청년이 호주에 유학하러 갔다가 이번에 여러가지 일이 있 어 잠시 귀국을 했습니다. 그곳에 이민간 사람이 딸을 주고 직장도 주 고 편히 살게 해주겠다고 회유했습니다. 그 청년이 그것을 뿌리 치고 호주를 그는 이렇게 평가하고 돌아 왔다고 합니다. 호주는 우리나라보 다 즐기기는 좋은 곳이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은 축복이 떠났기 때문에 호주에서 신앙인이 살곳은 아니다 선교 할 곳이다 의식이 죽으면 신앙 도 죽습니다.신앙이 살아 있는 사람은 의식도 살아 있습니다.지금여러분의 의식은 어떤 습니까 복음안에서 잘못이 있다면 용감히 바울 처럼 행동할수 있습니까용기가 있습니까 야고보 사도는 말합니다. 야고보 서 2:26절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지금나는 복음으로 위장한 의식없는 죽음 믿음 안에 안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절대복음이 이것을 허용하거나 허락치 않습니다.
2'예수님이 마음에 거하는 사람은 이제 하나님을 향하여 살고 율법의 한계에서 벗어나 게하십니다. 갈2:18절과 19절을 읽어 봅시다.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 이라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 하여 살려함이니라 예수 믿은 사람은 이제 율법에 매이지 않습니다. 율법을 무시한다는 것 이 아니라 그 보다 더 무섭고 엄격한 하나님께 어떻게 보여 질까에 관 심을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율법주의자인 유대사람 을 두려워 해서 눈치를 살피는 동안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법이 마음속 에 살아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사람보기가 문제 였습니다. 체면이 문제 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마음속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 어떻게 보실까가 문제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율법안에 있을때는 체면이 율법의 굴레가 부자유하게 했습니다. 이제 삶의 목표가 하나님 입니다. 여러분 행동중에 어디에 메여있습니까 율법에 메여 좌우상하 를 살피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 메여있습니까 성경은 하나님께 메여있는 사람에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3-7절에 말씀하시기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 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 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 법의 요구를 이루워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 을 영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지금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가까워 지겠다는 하나님의 원수,마귀의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제자들 앞에서 예수님께서 고난을 예고 했습니다. 수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이 걱정되어 충성스러운 한마디를 했습니다. 그 결과 칭찬을 들었습니까마태복음16:23절에 책망이 분명히 기록 되어있습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 하는도다 하시고 지금 여러분 걱정하는 것이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율법을 걱정하고 계 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일 생각하여 감사하고 기뻐하며 평안하십니까
3'지금도 율법에 매여산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었습니다. 먼저 본문 20,21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 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 사는 것이니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 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 되이 죽으셨느니라 우리가 은혜가운데 사는 것이 우리의 자주 더러워지는 율법적인 행위로 의롭게 된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것이 여러분 각자 한사람 한 사람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십으로 하나님의가 우리 죽을 몸에 나타나신것입니다.이제 고백하십시다 고린도후서 5:15,16절이 여러분의 개인적인 신앙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 니 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날마다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는 도덕적 이고 마땅히 하나님섬기는 법을 파괴하러 오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엄격히 완성하려왔습니다.이제 예수는 우리의 목표가 율법을 다지키는 것으로 만족하는 수준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목표가 하나님의 법을 항 상 생각하며 은혜와 더불어 구정 새해를 맞이 하시기를 빕니다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쫒고 유대 인답게 아니 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무슨 말인냐 하면 인척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보는 데 서는 이방인의 풍속을 따르며 유대인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여론따라 사는 세상풍조를 따라 사는 사람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억지로 이방인 처럼 사다고 해서 이방인이 아니고 억지로 할례를 받고 유대인 처럼 산 다고 해서 유대인이 아닙니다. 신앙의 억지를 부리지 말고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앞에 나아 갑시다. 그러면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이외 오고 오는 교회들에게 천년만년의 영원한 진리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진리를 가를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차근히 살펴 보겠습니다.
1.율법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하나도 없습니다. 우선 15절에서 16절을 읽겠습니다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 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 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을 얻으려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육체가 없는니라 무슨 뜻이냐 하면 당시 유대인을 제외한 이방인들은 정결하지 못하고 불결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방인에 비교해서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서 의롭다 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도덕적 종교적 우위가 인정되지 않는다 말입니다, 높은 데서 내려다 보면 일층이나 육십삼층의 다 똑 같다는 말씀입니다. 의롭다 여김을 받을수 있는 길은 오직한 길 밖에 없고 유대인이나 당시 이방인 똑 같은 죄인일 수 밖에 없습니다.시편14:2,3절을 읽어 봅시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롭다하는 복이 하나님께서 주신 참된 복입니다 나머지는 일시적인 복 일수 밖에 없습니다. 건강,입학,재물,취업,다 지나가는 것에 밖에 없습니다.죽을 때 건강가져 갑니까 재물 가지고 저 세상에 가서 사는 사람 봤습니까 이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부수적 인 복입니다. 야곱이 아브라함과 이삭이 쭉내려오던 복은 그 형 에서를 속이고 축을 가로 채습니다.
말하자면 새치기를 한것이지요 에서 사냥해가지고 늦게 아버지 이삭에게 가서 축복 해 주십사고 했습니다 예서 아까왔다 갔는 데 음성이 좀 수상했지만 손은 네 특성인 털이 많이 나있더라 야곱에게 속았습니다. 야곱이 나를 속인 것이 두번째 입니다. 팠죽으로 장자권을 팔고 이번에는 나의 축복까지 가로 챘습니다. 에서 방성대곡하고 이삭 에게 아버지 남겨둔 복이 있으면 주십시요 그때 이삭이 한말을 성경에서 들어 보십시요 창27:39,40절을 읽어보겠 습니다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 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메임을 벗을 때는 벗을 때는 그 멍에를 네 목 에서 떨쳐 버리리라 하였더라 재산이나 그런 축복이면 남겨 둘법도 합니다 이것은 예수를 믿는 것에 대한 예언의 축복을 말합니다. 예수 믿지 않으면 칼이라도 믿어야지지 요 세상 능력이라도 믿어야겠지요 바울 은 이제 이 예수안에 생활의 확신을 세가지 절대부정을 통하여 강 조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절대부정을 쓸때가 많지요 만일 내일 아침에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이라고 절대이루워 질수 없는 사실로 믿음으 로 구원 얻은 것을 강조 하고 있습니다. 이 확신이 있기 때문에 대선배 이신 기둥같은 베드로의 위선을 책망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그 세가지 절대부정을 통한 바울의 변증을 들어 보겠습니다.
1'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절대 도덕적으로 더 큰 범죄를 짓는 것 이 아닙니다. 2:17,18,21절에 있는 만일 이라는 단어를 믿줄로 채크하시고 17절 말씀을 읽어 봅시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하는 자냐 결코 그럴수 없느니라 도덕적인 사람들끼리의 죄와 하나님만이 용서 할수 있는 죄를 엄격히 구분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이 하나님앞의 죄가 사람의 행위 죄 사함을 받을수 없는 죄를 용서 하신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니까 복음을 약방의 감초로 자기 범죄의 변명 의 방편으로 삼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십일조를 강조하면 예수를 들 먹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십일조도 예수안의 야속입니다 그러나 전에보다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더 못해도 괞찮다는 것을 말하지 아니 했습니다. 율법이 여러분의 도덕이나 종교의 최고의 법입니다. 예수님 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들어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5:17-20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온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러 함이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 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기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 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 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 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 가지 못하리라 위선적이고 가장이 많이 썩인 것이긴 해도 바리새인들의 신앙을 칭찬하 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들의 신앙상태가 잠자고 있습니다. 예수믿는다라는 거짓 거적을 덮어쓰고 영적인 깊은 잠에 들어 있지는 않습니다. 왠만한죄는 죄의조차도 없는 그런 것이아닙니까 예수안에서 예수의 의는 죄인의 진정한 회개와 슬픈 눈물속에 있습니다. 복음안에 서 울고 코물눈물로 회개하던 그 뜨거운 믿음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그저 현실에만 급급해서 재물 건강하기만 하다면 예수안에서 좋은게 좋 지하는 영적 무감각에 빠져 있어도 아픔을 모르는 무의식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청년이 호주에 유학하러 갔다가 이번에 여러가지 일이 있 어 잠시 귀국을 했습니다. 그곳에 이민간 사람이 딸을 주고 직장도 주 고 편히 살게 해주겠다고 회유했습니다. 그 청년이 그것을 뿌리 치고 호주를 그는 이렇게 평가하고 돌아 왔다고 합니다. 호주는 우리나라보 다 즐기기는 좋은 곳이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은 축복이 떠났기 때문에 호주에서 신앙인이 살곳은 아니다 선교 할 곳이다 의식이 죽으면 신앙 도 죽습니다.신앙이 살아 있는 사람은 의식도 살아 있습니다.지금여러분의 의식은 어떤 습니까 복음안에서 잘못이 있다면 용감히 바울 처럼 행동할수 있습니까용기가 있습니까 야고보 사도는 말합니다. 야고보 서 2:26절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지금나는 복음으로 위장한 의식없는 죽음 믿음 안에 안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절대복음이 이것을 허용하거나 허락치 않습니다.
2'예수님이 마음에 거하는 사람은 이제 하나님을 향하여 살고 율법의 한계에서 벗어나 게하십니다. 갈2:18절과 19절을 읽어 봅시다.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 이라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 하여 살려함이니라 예수 믿은 사람은 이제 율법에 매이지 않습니다. 율법을 무시한다는 것 이 아니라 그 보다 더 무섭고 엄격한 하나님께 어떻게 보여 질까에 관 심을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율법주의자인 유대사람 을 두려워 해서 눈치를 살피는 동안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법이 마음속 에 살아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사람보기가 문제 였습니다. 체면이 문제 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마음속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 어떻게 보실까가 문제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율법안에 있을때는 체면이 율법의 굴레가 부자유하게 했습니다. 이제 삶의 목표가 하나님 입니다. 여러분 행동중에 어디에 메여있습니까 율법에 메여 좌우상하 를 살피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 메여있습니까 성경은 하나님께 메여있는 사람에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3-7절에 말씀하시기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 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 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 법의 요구를 이루워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 을 영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지금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가까워 지겠다는 하나님의 원수,마귀의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제자들 앞에서 예수님께서 고난을 예고 했습니다. 수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이 걱정되어 충성스러운 한마디를 했습니다. 그 결과 칭찬을 들었습니까마태복음16:23절에 책망이 분명히 기록 되어있습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 하는도다 하시고 지금 여러분 걱정하는 것이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율법을 걱정하고 계 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일 생각하여 감사하고 기뻐하며 평안하십니까
3'지금도 율법에 매여산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었습니다. 먼저 본문 20,21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 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 사는 것이니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 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 되이 죽으셨느니라 우리가 은혜가운데 사는 것이 우리의 자주 더러워지는 율법적인 행위로 의롭게 된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것이 여러분 각자 한사람 한 사람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십으로 하나님의가 우리 죽을 몸에 나타나신것입니다.이제 고백하십시다 고린도후서 5:15,16절이 여러분의 개인적인 신앙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 니 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날마다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는 도덕적 이고 마땅히 하나님섬기는 법을 파괴하러 오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엄격히 완성하려왔습니다.이제 예수는 우리의 목표가 율법을 다지키는 것으로 만족하는 수준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목표가 하나님의 법을 항 상 생각하며 은혜와 더불어 구정 새해를 맞이 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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